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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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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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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화

DUMMY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이 황량해 보이는 사막 위에도 사람 사는 곳은 드문드문 있었다. 개중에는, 호기롭게도 이 팍팍한 사막의 땅을 갈아 자기 몫의 토지를 만들려는 사람도 있었고, 이유를 알려주지 않고 은둔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어쩌다보니 여기서 살게 되었다고들 했다.




좋은 흑살구를 찾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조그마한 오아시스를 발견하여 잠시 마차를 멈춰세우고 마차에서 내려 늦은 점심시간을 가졌다.


“펠릭스! 이것 봐요!”


실비아는 오아시스 옆에 서 있는 야자 나무를 가리켰다.


“실제로 보는건 처음이에요!”


펠릭스는 나무와 실비아를 번갈아 보더니,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뭐에요! 또 속으로 무슨 실례되는 말 생각했죠?”


“그걸 꼭 들을 심산인가요?” 펠릭스가 말했다. “그리고, 저 나무는 원래 여기서 자라는게 아니에요. 누가 옮겨 심은 거겠지.”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오아시스에서 막 물을 떠 오던 올리버가 펠릭스에게 물었다.


“모를 일이죠. 내가 어떻게 알아요? 머리가 조금 돈 사람일지도-”


“이곳에 자생하는 야자나무도 있다.”


가만히 지켜보고있던 실바누스 준남작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렇습니까?”


“그래. 연금술사라고는 해도, 모르는 것도 제법 있군.”


준남작은 야자나무쪽으로 걸어가, 힘없이 축 쳐진 커다란 잎사귀를 힐끗 보았다.


“열매를 먹을 수 없는 종인게 아쉽군.”


“먹을수 있는 거였으면 하나 먹어보려고요?”


펠릭스는 준남작에게 살짝 비꼬듯 말 했지만, 준남작은 별로 기분나쁜 기색 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 치고는 제법이군요.”


“귀족을 뭐라고 생각하는거냐?”


“글쎄요. 운 좋은 사람들?”


펠릭스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 생각을 재고하는게 좋을거다. 운 나쁜 귀족도 많으니까.”


준남작은 말을 해놓고선, 뒤늦게 그 말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먼저 마차쪽으로 걸어가버렸다.


“손님들. 한 오 분 정도 쉬다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준남작이 사라지자마자 오아시스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던 마부가 말을 끌고 이쪽에 잠시 들러 말했다.


“그래요. 고마워요. 아, 미리 말 하겠는데, 뒷돈 받았다고 해서 여기 우릴 버려두고 먼저 출발하시면 안 됩니다?”


“원, 손님. 걱정은요. 그랬다가는 마을에 나쁜 소문이 돌아서 장사 더 못합니다요.”


펠릭스의 농담을 들은 마부는 쓴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치고 마차 쪽으로 털레털레 걸어갔다.


“우리도 적당히 돌아가자.” 올리버가 말했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몸에 별로 안 좋으니까.”


“알았어요.”


하늘빛이 반사되어 새파란 오아시스의 아래를 들여다보던 실비아는, 올리버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차가 다시 사막을 달리기 시작할 즈음 실바누스 준남작이 차창을 열고 마부에게 물어보았다.


“길은 알고 가는건가?”


“아, 그렇습니다. 알고 말고요. 지금 방문하는 곳이 제가 아는 마지막 농가입니다.”


말을 모느라 마부는 이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야생 군락에 대해서는 더 모르는가?”


“그건 동네 양치기한테 물어보는게 나을겁니다요.” 마부가 대답했다.


“양치기가 있어요?”


“아니, 양치기는 아니고. 소를 치던가? 아무튼, 뭐 찾아보면 있을겁니다.”


마부는 실비아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는듯 하다가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그래. 알았다.”


어쨌든 실바누스 남작은 도로 차창을 드르륵 닫았다.




한 몇 분 정도 마차가 다그닥거리며 사막 위를 달려가는 와중에, 펠릭스가 실바누스 준남작을 넌지시 불렀다.


“준남작.”


“뭐냐.”


“마지막 농가의 흑살구 말입니다. 제게 조금만 양보해 주시면 안 됩니까?”


“싫다.” 준남작은 단호하게 말했다. “말하지 않았나? 나는 시장을 독점하길 원한다고.”


“독점은 나쁜거잖아?”


실비아가 대화에 끼어들어 그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실비아. 나는 폭리를 취할 생각따위 없다. 유통과정에서 돈을 남겨먹을 생각도 없고. 나는 정직한 방법으로 돈을 벌 것이다.”


실바누스 준남작이 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가정교사가 그랬는걸. 독점은 나쁘다고.”


“웨일 같은 수전노 때문에 그렇지.” 준남작이 비꼬듯 말했다. “오히려, 예전에는 독점이 권장되던 때도 있었다. 당장 장인들만 해도 봐라. 황금과 보석으로 장신구를 만들어 왕족과 귀족에게 파는 길드는 오직 한 군데 뿐인데, 거기에 대해 누가 뭐라고 떠드는 걸 봤느냐?”


“아니.”


실비아가 조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쟁 중에는, 단 한 곳의 대장장이 길드에서만 군에 무장을 납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거기에 대해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정직하게 물건을 만들었으며, 또한 최고의 상품을 만들었으니까.” 준남작이 말했다. “그래. 그랬는데, 그 빌어먹을 공작가 놈들 때문에······.”


“크흠.” 펠릭스가 헛기침을 했다. “딸아이 앞에서 쓸 만한 단어는 아니군요.”


펠릭스의 말을 들은 실바누스는 짜증스레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아무튼, 나는 독점을 원한다. 네게 조금도 양보할 수 없다.”


“그럼 물량의 일부분을 저한테 따로 팔 생각은 없습니까?”


“아직 시세도 잡히지 않은 물건을 팔라고?”


준남작이 펠릭스를 힐끗 돌아보며 말했다.


“비싸게 쳐드리지요.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얼마에?”


“한 알에 은화 한닢.”


준남작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펠릭스를 보았다.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많은 물량이 필요한게 아니라서 괜찮습니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야.” 준남작이 눈쌀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동쪽에서도 흑살구 한 알을 은화 한닢에 팔 생각이다.”


“세상에! 수박도 아니고, 그렇게 비싼 과일이 어딨어?”


실비아가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실비아!” 그러자 준남작이 근엄하게 말했다. “네 생각보다, 과일이라는 것은 훨씬 비싸다. 평민들이 먹는 멍들고 시어빠진 과일들이야 한 바구니에 은화 한 닢 단위로 팔리지만, 왕족과 귀족의 입에 맞는 과일들은 한 알에 은화 다섯닢씩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비싼 줄은 몰랐는걸······.”


실비아는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인지, 금새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돌렸다.


“그럼 개당 은화 두 닢에 사죠.”


“그래도 안 돼.” 준남작이 말했다. “네가 한 알에 금화 한닢을 지불한다 해도 역시 네겐 팔 생각이 없다.”


“왜죠?”


“말하지 않았나! 내 딸에게 주는 약을 만드는데 쓴다면서? 정체도 모를 약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재료를, 아비인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채로 순순히 넘겨줄 것 같나?”


준남작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말이 나온김에 말인데, 실비아. 대체 연금술사에게 무슨 약을 부탁한거냐?”


“몰라.”


실비아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모른다고? 내 딸을 상대로 사기극이라도 벌인 건가? 당장 이 연금술사를 재판소에 넘기겠어.”


“아, 그런거 아냐! 아빤 좀 몰라도 돼! 하여튼, 언니도 그렇고. 재판소 이야기부터 나오잖아. 다들 왜 그런담?”


실비아가 이번에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실비아. 연금술사에게 이미 한번 데어놓고,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려는 셈이냐?”


“이 사람은 그런 가짜랑 다르다니까?”


“네가 아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눈이 있냔 말이다, 실비아! 나는 그 눈을 얻기 위해 십수년도 넘는 세월동안 혹독한 훈련을 거듭했다. 그렇게 해서 얻어낸 이 눈이, 네게 있냐는 말이다.”


“크흠. 저기.”


이번에는 올리버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부녀싸움은 다른데서 해 주면 안될까? 이 비좁고 덜컹거리는 마차보다 좋은 곳이 어디 있을것 같은데.”


실바누스 준남작과 실비아는 올리버의 말을 듣고는 서로 동시에 고개를 반대편으로 휙 돌려버렸다. 그걸 보고 있자니 펠릭스는 어쩐지 웃음이 날 것 같아 손으로 입을 가렸다.




다행히 마차는 금방 멈춰섰다. 마차가 멈추자, 펠릭스는 마부가 문을 열기도 전에 먼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흑살구 농장은 어디든 다 비슷하게 보였다. 야생 흑살구 군락을 대강 울타리로 둘러치고, 그 근처에 조그마한 오두막을 지은 것. 여기도 똑같았다.


“계십니까?”


펠릭스는 오두막의 문을 통통 두드렸고, 준남작은 멀찍이 떨어진 흑살구 나무들을 눈을 가늘게 뜨고 살펴보고 있었다.


“계세요?”


펠릭스가 다시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제대로 안내한거 맞아요?”


펠릭스는 마부를 힐끗 돌아보며 말했다.


“맞습니다. 분명, 여깁니다요. 갑자기 집주인이 어디 가거나 한게 아니라면······.”


“계세요? 저기, 당신네 흑살구를 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만.”


그러나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올리버. 창문으로 안에 좀 들여다봐요.”


올리버는 어깨를 으쓱하며 창문으로 다가가, 불투명한 싸구려 유리에 두 눈을 바싹 붙였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고 가만히 있더니, 대뜸 마차로 달려가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왜요?”


“안에, 뱀이 있어!” 올리버가 말했다.


“뱀! 어떤? 무슨? 독이 있나요?”


“몰라. 방울뱀같은데. 실비아, 준남작, 위험하니 당신들은 물러서있어.”


올리버는 접이식 장대를 꺼내더니 솜씨좋게 올가미를 만들어 장대 끄트머리에 매달았다. 그 다음, 그는 오두막의 문을 발로 뻥 걷어차버렸다.




문을 부수고 안으로 쳐들어오자, 올리버는 바닥에 쓰러진 사람과 그 옆에서 꼬리끝을 파르르 떨며 위협을 가하고 있는 뱀을 발견했다. 뱀이 꼬리를 움직일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났는데, 적어도 사막 한 가운데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아니었다.


“아하. 이런.” 펠릭스는 금새 상황을 이해했다. “올리버. 저것좀 치워줘요.”


펠릭스가 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그래서 이거 가져왔잖아.”


올리버는 뱀과 눈싸움을 하면서 천천히 장대를 들이밀었다. 뱀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다가, 갑자기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장대를 물어뜯었다. 올리버는 겁먹지 않고 장대를 슬금슬금 움직이다가 올가미로 뱀의 머리를 휙 낚아채버 올가미를 조였다. 뱀의 머리가 고정되자마자 그는 주머니칼을 뽑아들어 뱀의 머리를 몸통에서 잘라내버렸다. 머리가 끊긴 몸은 바닥에 이리저리리 요동쳤는데, 만약 실비아가 그 꼴을 봤다면 몇 끼 정도는 식사를 굶어야 했을 것이다.




“처리했나?”


준남작이 문간에 서서, 실비아가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막으며 물었다.


“뱀은 죽었습니다. 하지만······.”


올리버는 두꺼운 가죽 장갑을 낀 다음, 펠릭스에게서 작은 집게를 건네받았다. 그는 유리병 안에 잘라낸 뱀의 머리를 조심조심 집어넣고 유리병의 뚜껑을 닫아버렸다.


“이제 연금술사가 나설 차례죠.”


펠릭스는 쓰러진 사람의 안색을 살피고, 맥을 짚은 다음 두 병의 약을 그의 입 안에 흘려넣었다. 하나는 맑고 투명한 액체였으며, 다른 하나는 누렇고 걸쭉한, 꼭 고름같은 액체였다.


“올리버.”


올리버는 그 약이 기도로 넘어가지 않도록 남자의 얼굴을 받쳐들었고, 그 사이에 펠릭스는 부엌으로 가서 달그락거리며 냄비를 찾아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뭘 하려는거냐?”


“약 만들어야죠. 당연히.”


문간에 서 있는 준남작을 스쳐지나가며 펠릭스가 대답했다. 그는 우물에 가서 물을 뜬 다음 냄비에 물을 쏟아부었다.


“방울뱀이었다. 곧 죽을테지.”


“이 사람이 죽어버리면, 전 누구랑 계약합니까?”


펠릭스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이번에는 마차로 쪼르르 달려가 재료들을 한아름 들고 다시 오두막 안으로 돌아왔다.


“죽게 내버려 두는 편이 너한테는 더 이득일텐데. 나보다 좋은 계약 조건을 제시할 수 있나?”


“저는 성실한 왕국의 시민이라. 가급적이면 산 사람과 계약을 하고 싶지, 죽은 사람의 주머니를 뒤지긴 싫거든요.”


펠릭스는 히죽 웃으며 준남작에게 대꾸한 다음, 나무 주걱을 찾아 냄비를 휘적휘적 젓기 시작했다.


“이상한 놈이군.” 준남작이 말했다. “그래봤자 못 살릴게 뻔하다. 넌 약재와 시간, 노력만 낭비한 셈이 되겠지.”


“그거야, 가짜 연금술사들 이야기죠. 나는 진짜 연금술사라 죽은 사람 빼고는 다 살릴 수 있거든요.”


“제정신이 아니군.” 준남작이 비아냥댔다.


“그렇게들 부르더군요.”


그러자 펠릭스도 지지않고 맞받아쳤다.


“스승님은 제게 어느날 말씀하셨죠. 악마같은 놈이라고. 세상 천지에 나같은 놈은 또 없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범인들의 평가따위 제가 신경이나 쓸 것 같습니까?”


준남작은 펠릭스의 뻔뻔스러운 태도에 더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문간에 비스듬히 서서, 연금술사가 기이한 요술을 부리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무릇 실력좋은 연금술사란, 커다란 솥과 충분한 장작 그리고 질 좋은 재료를 가지고 좋은 약을 만드는 사람이다. 하지만 최고의 연금술사란, 허름한 냄비와 싸구려 장작 그리고 부족한 재료를 가지고 최고의 약을 만드는 사람이다.




펠릭스는 후자에 가까웠다. 그는 온갖 일이 일어날 때를 대비하여 사전에 다양한 종류의 약과 재료들을 가지고 다녔다. 그것은, 그의 옛 친구인 트로이나 게일, 또는 첼시의 영향때문이었다. 거점을 잡지않고 세상 방방곡곡을 유랑하는 꿈을 꾸던 사람들은 펠릭스에게 임기응변의 재주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펠릭스는 그 임기응변의 재주를 한껏 발휘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연금술사나 의사, 약사도 함부로 다루기 힘든 방울뱀의 독을 해독하는 약을 그는 싸구려 냄비 안에다가 끓이고 있었다.


“봐. 내가 말 했잖아. 저 사람은, 그런 가짜들이랑 다르다구.”


여전히 멀찍이 떨어져서, 펠릭스가 약을 만드는 것을 지켜보며 실비아가 말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아직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준남작은 여전히 고집스러웠다. 그는 펠릭스가 냄비 안에다가 석탄처럼 검은 약을 만드는 것을 눈쌀을 찌푸린채 보았다.


“왜 그렇게 연금술사들을 싫어해?”


실비아가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실바누스 준남작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무언가 말하려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버렸다.




거름종이에 그 검은 덩어리를 걸러내자 이른 봄에 내린 눈처럼 거무칙칙한 액체가 방울방울져 쪼르르 종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준남작은 약물의 색깔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눈을 찌푸렸다. 그것을 먹는게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 잠깐이나마 다행스레 느껴졌다.


펠릭스는 걸러낸 약물을 쓰러진 남자의 입 안에 흘려넣고, 그의 맥을 다시 짚어보았다.


“끝났나?” 준남작이 안으로 걸어들어오며 물었다.


“일단은요. 하지만, 보나마나 중간에 발작을 두어번 일으킬게 뻔한데다가, 열이 꽤 많이 올라가겠죠. 아직까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그리고, 뭣보다도 본인이 버텨줄지 어떨지도 모르니까.”


펠릭스는 쓰러진 남자를 힐끗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탄탄하게 근육이 잡힌 몸이라면 아마 버티겠죠. 그나저나. 이 사람은 대체 이 사막에서 뭘 하길래 이렇게 몸집을 키운걸까요?”


“모를 일이지.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어쩌면, 농사를 짓느라 그런건지도 모르고······.”


“이건 농부의 몸이 아니에요.” 펠릭스가 말했다. “차라리 전사의 몸에 가깝지. 사막 어디에 사는 괴물하고 싸우기라도 할 셈인가?”


어느새 펠릭스의 얼굴에서는 진지한 빛이 모조리 사라졌고, 대신 그 빈자리를 평소와 같은 장난기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적일지도 모르지.”


준남작이 안으로 걸어들어오며 말했다.


“마적?”


올리버가 묻자, 준남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막에 어울리지 않는 건장한 육체를 가진 사람. 마적말고 달리 있나?”


“하지만, 그러기에는 여기는 칼도 없고, 말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올리버가 오두막 안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럼 마적의 간부쯤 되겠지. 아니면 말단이나. 어쨌든, 누가 알겠나?”


그리고 준남작은 펠릭스에게 다가가 말했다.


“안됐군, 연금술사. 네가 방금 애써 살린 사람은, 어쩌면 부도덕한 강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요?”


펠릭스는 관심없다는 투로 말했다.


“저는 이 사람이 누구든 별 관심없어요. 중요한건, 저 흑살구 농장의 주인이 아마 이 사람일거라는 그점이죠. 저는 계약하러 온거지 무슨 법의 집행자를 대리하여 정의를 집행하러 온게 아니라고요.”


“죄책감이나 미안한 마음도 없나? 어쩌면, 네가 오늘 살린 이 사람 때문에······.”


“관심없어요.”


펠릭스가 얄밉게 하품까지 하며 말했다.


“일이 터지면, 그 때 가서 또 새로운 약을 만들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말인데, 준남작. 이번에는 저도 흑살구를 조금은 살 수 있을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다른것도 아니고 생명의 은인인데.”


“제정신이 아니군.”


준남작이 혀를 차며 말했다.


“좋은 뜻으로 해석하겠습니다.” 펠릭스가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어쩌실거죠 준남작? 이 사람이 깨어나려면 적어도 몇 시간은 있어야 할 텐데. 당신처럼 바쁘신분은 슬슬 돌아가시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내가 없는 사이에 주인과 거래를 트려고? 어림없다, 연금술사.” 준남작이 말했다.


“이 사람이 살아날거라 믿어주시는겁니까? 제 실력을 인정해 주시다니, 퍽 기쁘군요.”


“아니. 내가 없는 동안, 네가 허튼 짓을 할까봐 감시하려고 남는거다.”


“솔직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시군요.”


준남작은 펠릭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짜증스레 얼굴을 휙 돌려버렸다.


“아무튼, 그러면 마부는 어떡할겁니까?”


펠릭스는 열린 문 너머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마부를 눈짓했다.


“여기 같이 있어야지.” 준남작이 말했다.


“마부 입장에서는 손해겠군요.”


“충분한 돈을 주면 그만이다.”


“아빠. 돈으로 다 해결되는건 아니잖아. 저 사람도 이런 사막 한 가운데 가만히 있기는 싫을텐데······.”


실비아가 말하자, 준남작은 실비아를 보고 말했다.


“아니, 실비아. 돈이면 된다. 충분하지 않은 돈으로 때우려는 놈들 때문에 돈의 가치가 계속 폄훼되어 온 것일 뿐이야. 충분한 비용을 치른다면 괜찮다.”


그리고 준남작은 마부에게 뚜벅뚜벅 걸어가, 몇 마디 말을 나눈 다음 그에게 은화 열 닢을 쥐어주었다.


“이런 식으로.”


“대단한 씀씀이로군요, 준남작.”


입이 귀에 걸릴듯 웃고있는 마부를 힐끗 보며 펠릭스가 말했다.


“남에게 손해를 끼칠 생각이라면, 이정도 비용은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직하고 성실한 왕국 시민으로서의 도리지.” 준남작이 말했다.


“그렇군요. 그런 점에서는 의외로 저와 잘 통하는 부분이 있을지도요. 저도 물건 값은 확실하게 처리하는 편이거든요. 오호, 어쩌면 준남작. 우린 꽤 사이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끔찍한 소리군.”


준남작은 펠릭스의 시선을 피하며, 바닥에 쓰러져 색색거리고 있는 남자가 빨리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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