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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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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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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3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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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108화

DUMMY

도마뱀을 맡긴다는 편지를 메를린에게 부친 다음, 세 사람은 연금술 가게 안에다가 네이비를 잘 숨겨놓고 가게 문을 잠근 다음 길을 나섰다.



“코튼은요? 설마, 네이비한테 잡아먹히는건 아니겠죠?!”



실비아의 끝나기 무섭게, 올리버의 주머니 사이에서 코튼이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



“그렇다는데.”



“다행이다.”



실비아는 펠릭스가 쳇 하는 소리를 낸 것 같았지만, 기분탓이려니 하며 못들은척 했다.



“그래서, 어디로 가죠?”



“실비아. 이제 가게 근처 지리는 외울 때도 안 됐나요?”



“제가 정말 몰라서 묻겠어요? 여행길에 조용하고 적적하니까 해 보는 말이지.”



펠릭스는 입을 뭐라 비죽였다.



“밤숲마을로 가서 마차 타고, 뉴캐슬에서 마차 갈아탄 다음, 무려 북쪽으로 갈겁니다.”



“북쪽이라. 이 시기에 가긴 좋지 않지.”



올리버가 가볍게 중얼거렸다.



“왜요?”



“그야, 당연하지. 춥잖아.”



“겨우 그것때문에요?”



그러자 두 사람은 동시에 걸음을 멈추고 실비아를 돌아보았다.



“왜요?”



“실비아. 당신, 진짜 추위를 못 느껴봤나요?”



“당연히 느껴봤죠. 가짜 추위도 있어요? 하지만, 털장갑을 끼고 두꺼운 모피 코트를 입으면······.”



“뭐, 겪어보면 알겠지. 일단 마저 가자고, 펠릭스.”



“그렇게 추워요? 북쪽이?”



“가 보면 알아요.”



펠릭스는 싱긋 웃으며 대답하고는, 실비아가 아무리 캐물어도 그 이상 말을 해 주지는 않았다.






뉴캐슬에서 마차를 타고 북쪽으로 가는 길에, 실비아는 차창 밖을 신기한 눈으로 내다보다가 돌풍이 조금 거세지자 차창을 닫았다.



“그런데, 펠릭스. 그 벤투스 경은 언제 만나게 해 줄 거예요?”



“수도에 가 있으라고 편지 썼어요. 수도에서 보겠죠 뭐.”



펠릭스의 말을 들은 실비아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당신이 그 사람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나 돼요?”



“뭐 못할건 없죠.”



실비아는 올리버를 힐끗 돌아보았다. 그러자 올리버는 자기도 모른다는듯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그래서. 어디로 가고있는거죠? 바로 수도로 가나요?”



“바로 가긴 좀 멀죠. 일단은 엠버타운을 경유할겁니다.”



“엠버타운?”



“그냥 적당히 큼직하고 목가적인, 흔해빠진 마을이에요. 호박 농사를 많이 짓는다는데, 그 이상은 저도 몰라요.”



“호박이요! 그러고보니, 지금은 한창 호박 수확철이잖아요? 아, 어쩌면 마을 곳곳에서 넝쿨에 주렁주렁 달린 호박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꿈 속에 사는군.”



실비아는 이번에는 분명하게 펠릭스의 비아냥을 들었지만, 특별히 못들은척 해주기로 했다.



“아, 그러고보니. 아마 지금쯤이면 10월의 마지막 날 축제를 하고 있겠군.”



“그게 뭔데요?”



“오늘 밤은 유령들의 밤이거든요. 예전에는 그래서 밤에 밖으로 다니지 말라고 그랬다는데, 뭔가 언제부턴가 조금 의미가 바뀌어서 사람들이 유령 분장을 하고 축제를 벌여요. 어차피 내일은 성인의 날이기 때문에, 돌아다니던 유령들은 모조리 도로 지하로 사라진다고 하더군요.”



“그냥 축제네요?”



“그런거죠 뭐.”



“궁금하다.”



그리고 실비아는 다시 차창을 드륵 열고 바깥으로 시선을 던졌다. 기대감과 가벼운 흥분으로 그녀의 뺨이 살짝 발갛게 물들었다.






마차를 타고 한참 조용히 가던 중에, 실비아가 갑자기 떠올랐다는듯, 그리고 조금 걱정된다는듯 펠릭스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보니까요. 펠릭스. 네이비가 메를린 말을 안 들으면 어떡해요?”



“별걸 다 걱정하는군요, 실비아. 메를린은 마녀의 후손이에요. 설마, 그 도마뱀이 아무리 영물이라고는 해도, 메를린을 따르지 않을리는 없어요.”



펠릭스는 별걸 다 걱정한다는듯 말했다.



“그렇지만, 걘 서쪽에서 왔잖아요? 메를린은 동쪽 사람이고.”



“그런게 의미가 있나요? 그렇게 따지자면 서쪽에서 건너온 동물들도 많아요. 당장, 양만 해도 서쪽에서 넘어온건데, 전 메를린이 양이랑 잘 노는걸 봤거든요.”



“양은 온순하잖아요?”



“큰일날소리.” 옆에서 올리버가 말했다. “야생 양을 한 번이라도 만나봤다면, 그런 말은 함부로 못 할거다 실비아.”



“그래요? 온순하지 않나요? 털이 복슬복슬하고······.”



“괜히 공성추 머리에다가 양 머리를 새기는게 아니에요. 뭐, 하긴. 때론 모르는게 약이기도 하니까.”



“그래요?” 실비아는 호기심에 눈을 반짝였다. “나중에, 책 찾아봐야겠다. 야생 양이라. 하지만 걔도 분명 온순하고 귀엽게 생겼을 거예요. 흉흉한 무기 머리에 양머리를 새긴건, 조그만 장난이겠죠 뭐.”



올리버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펠릭스의 눈빛을 받고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실비아가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내버려두었다.






한동안 조용히 있던 실비아는 어느 순간 하품을 하며 말했다.



“가을 풍경은 꽤 지루하네요.”



“북쪽으로 가면 또 달라져요. 수도에는 국화가 많을테고, 아니면 단풍나무를 많이 심은 곳도 있죠. 거긴 볼게 많아요. 여기야 뭐,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요? 빨리 도착하면 좋겠다.”



올리버는 입을 가리고 펠릭스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쪽은 단풍 벌써 다 떨어지지 않았어?”



그러자 펠릭스는 잠시 허공에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무언가 생각했다.



“음. 그렇네요.”



그리고 올리버는 다시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는 실비아를 힐끗 보았다.



“너, 나중에 또 얻어맞겠다.”



“그 때 쯤엔 잊어버리겠죠 뭐.”



“둘이 아까부터 뭘 그리 속닥거려요?”



그러자 두 사람은 아주 수상쩍게 헛기침을 하며 짐짓 모른체했다.






역참에 멈춰 그들은 가벼운 식사를 시작했다. 처음 역참에 내릴 때만 해도, 실비아는 아무런 걱정도 의심도 없이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러나, 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허접한 부엌에서 순식간에 식어가는 스튜를 먹으니, 실비아의 북쪽에 대한 기대감도 크게 바뀌었다.



“바람이 너무 술술 들어오는데요.”



“북쪽이니까요. 북풍은 차죠.”



“이것 봐요. 스튜, 금새 식었어요.”



실비아는 울상이 되어 스튜 그릇을 휘휘 저었다.



“그거라도 먹어야지 뭐. 다시 불을 피우기엔, 장작을 너무 많이 쓰게 되니까.”



“으, 역참에다가 장작 좀 넉넉히 놔 둘 것이지. 에, 에-”



“안돼! 기다려요!”



“에취!”



다행히 실비아는 그나마 귀족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재채기를 하였다.



“정말 귀족적이지 못하군요!”



“미안해요. 하지만, 생각보다 추워서 그랬어요.”



“내 참. 옷부터 사든가 해야지 원. 실비아. 내가 챙겨온 모포 있으니까, 마차에 타거든 그거라도 덮고 있어.”



그러자 코를 훌쩍이며 실비아가 대답했다.



“네. 고마워요 올리버.”






마차가 도로 달리기 시작했을 때, 실비아는 번데기처럼 모포를 돌돌 말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팔자좋네.”



올리버가 조용히 중얼거리자 펠릭스도 맞장구를 쳤다.



“꼭 나방 번데기 꼴이군요.”



“언젠가 우화하겠네.”



“봄이 오면, 그렇겠죠.”



두 사람의 실없는 대화는 금새 벽에 부딪혔다.



“펠릭스. 그런데 말이야. 그 벤투스 경이라는 사람. 정말 만나게 해 줄수 있는거야?”



“제 친구니까요.”



“또 연금술사야? 네 친구들. 그, 역병 건으로 뿔뿔이 흩어진건 알았지만,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을 벌이는군그래.”



“다들 평범하게는 못 사는 사람들이니까요 뭐. 평범하게 살 수 있었으면, 연금술에 손이나 댔겠어요?”



“하기야. 그것도 그렇긴 하군.”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있는 실비아를 힐끔 돌아보았다.



“이제, 북쪽이 마지막이지?”



“그래요. 마지막 여행이죠.”



“실비아가 약을 만들수 있을까? 아직 연금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잖아.”



“눈이 뜨인 사람에게, 약을 만드는 공식과 기술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올리버. 진정한 연금술사는 흠집투성이의 조그만 솥에다가 기적을 끓여내는 사람이죠.”



“넌 가능해?”



펠릭스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거의요.”



“하지만,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면서. 실비아가, 연금술사의 마음가짐이 되었을까?”



“그건 정말 저도 모를 일이죠. 죽음의 약을 만드는게 걸맞는 마음을 가졌을까요? 여전히 실비아는 죽음을 갈구하고 있을까요? 가끔, 그녀는 아무런 생각도 없어보여요.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실비아. 당신은 지금 뭘 생각하고 있죠? 당신은 어떤 마음을 갖고 있죠?”



잠든 실비아에게 말해봤자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만약에, 실패하면 그 때는 어떡할거야?”



펠릭스는 올리버에게 대답하지 않고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올리버도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려주었다.






출발 시간이 늦은 탓에, 해가 지고 밤이 어둑해 지는데도 아직 마차는 길 위를 달리고 있었다. 마차 앞에 달린 등불은 말발굽이 도로 위를 달릴 때마다 위태롭게 흔들렸고, 마차 안에 탄 사람들도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저마다 조금씩은 긴장한듯 보였다.



“밤이네요.”



실비아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걱정마요. 밤샘마차도 있는 시대인데.”



“그게 아니라요. 저, 그 앰버타운 어떤 곳인지 궁금했단 말이에요. 하지만, 이 밤중에 도착해봤자······.”



“해봤자?”



실비아는 고개를 들고 펠릭스를 보았다.



“구경할게 아무것도 없을것 아니에요?”



“에이. 뭘 그런 걱정을. 보자, 이제 오후 여섯 시일 뿐이에요.”



“바깥이 이렇게 어두운데도요?”



실비아가 차창에 달라붙다시피하며 말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잖아요. 그리고 여긴 북쪽이기도 하고.”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빨리 어두워져요?”



“하늘에 구름이라도 끼었나보죠 뭐.”



펠릭스는 별 것 아니라는듯 대답했고, 그러자 실비아의 얼굴 위에도 안도의 빛이 깃들었다.



“그러면 좀 다행이고요. 아직 사람들이 잘 시간은 아니니까, 마을 곳곳에 불이 밝혀져 있겠죠? 거리에는 아직 개구쟁이 꼬마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창문 밖으로 새어나오는 노란 불빛이라든가······.”



실비아는 벌써부터 어느 목가적인 마을의 정취가 눈앞에 아른거리는듯 했다.



“가 보면 알겠죠 뭐.”






마침내, 저 앞 멀리에 주황색, 노란색, 불그레한 적색의 불빛과 조명, 그리고 속을 파내 만든 호박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을 둘러싼 밭에는 아직 수확하지 않은 커다란 호박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으며, 마을 관문에는 누가 꽃과 줄기를 엮어 커다란 화환 비슷한 것을 걸쳐 장식해두었다.



“펠릭스! 봐요! 축제에요!”



그리고 실비아는 평소보다 두 배 정도 눈이 커진 채로 펠릭스에게 말한 다음, 재빨리 차창 밖으로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거리에는 불빛이 가득했으며, 조그마한 악단들이 곳곳에서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소리로 연주했다. 큰 소리로 사람을 모으는 호객꾼도 없었고, 음탕한 농담을 던져대는 싸구려 재담꾼도 없었다. 지금껏 겪어본 두 번의 축제와는 달리, 이곳 엠버타운의 축제는 조용하고 포근하여, 마치 겨우날 바람에 쫓기다가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아늑함이 느껴졌다.






마차가 마차대여소에 멈춰서자마자, 실비아는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린 다음 펠릭스가 마차의 삯을 지불하는 동안 그녀는 엠버타운의 신기한 거리를 두 눈으로 바라보았다. 검은 천과 하얀 칠을 한 나무 가면으로, 그리고 속을 파낸 호박 가면으로, 어설프게 유령을 흉내내는 한 무리의 조그만 가장 행렬이 떠들며 그녀의 앞을 가로질러가자, 실비아는 자기도 그 행렬에 끼고 싶은 가벼운 충동을 느꼈다.



“재밌어?”



어느새 실비아의 등 뒤로 다가온 올리버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네. 재밌어요. 올리버, 난 이런거 처음 보거든요.”



“나이가, 음. 그렇게 나이를 먹었는데, 처음 본다고?”



“네.”



올리버는 잠시 턱을 쓰다듬었다.



“흠. 북쪽에만 있는 축제는 아닌데. 아직 왕국 곳곳으로 덜 퍼진건가? 아무튼, 실비아. 그럼 기왕 온 김에 찬찬히 둘러봐라.”



“네!”



그리고 또 한 무리의 가장 행렬이 그녀의 앞을 지나가자, 다시 실비아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엠버타운의 여관에 방을 잡고 가벼이 식사를 마친 다음, 펠릭스와 실비아, 올리버는 조용하면서도 조금은 떠들썩한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다.



“이번에야 말로 아무 일도 없겠죠?”



그리고 두 번의 축제에서 두 번이나 봉변을 당한 펠릭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설마. 그리고, 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뭐 어떻게든 헤쳐나가지 않겠어?”



“어휴. 또 무슨 일에 휘말리는건 사절이에요, 올리버. 그나저나······.”



펠릭스는 자기 말에는 관심도 주지 않고 그저 신기한 눈으로 거리를 둘러보고있는 실비아의 뒤통수를 힐끗 보았다.



“실비아!”



“왓, 깜짝이야! 펠릭스. 놀랐잖아요?”



펠릭스가 갑자기 그녀의 어깨를 덥석 움켜쥐자 실비아는 화들짝 놀랐다.



“아, 죄송. 영 딴데 정신팔린 것처럼 보여서요. 그렇게 재밌어요?”



“네!”



그리고 펠릭스는 속을 파낸 호박 모양의 등불 어디에서 그 재미를 찾아야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렇군요. 대체 이게 어디가······.”



“앗, 저쪽이 소란스러워요. 가 봐요!”



그리고 실비아는 먼저 쪼르르 걸어나가버렸다.



“거 참. 올리버. 당신은 재밌어요?”



“뭐, 그럭저럭?”



올리버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자 펠릭스는 여전히 모르겠다는듯 알쏭달쏭한 얼굴로 호박들을 훑어보며 거리를 걸어갔다.






실비아가 멈춘 곳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조그만 단상같은 것을 에워싸고 있었다. 단상 위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사회자인지, 재담꾼인지가 한창 무언가를 떠들고 있었으며, 그것보다는 훨씬 중후하고 위엄이 느껴지는 옷을 입은 마을 촌장인지 누군지가 그 옆에 서 있었다.



“뭘까요?”



올리버는 단상 뒤에 세워진 표지판을 읽었다.



“올해 최고의 호박 이라는데.”



“호박이요?”



사회자가 누군가의 이름을 호명하자, 농부 한 명이 두 손 가득 들어올 정도로 커다란 호박을 겨우 들고 뒤뚱거리며 단상 위로 올라왔다. 그가 올라오자 단상을 둘러싼 관객들이 환호했다.



“말 그대로인가본데. 가장 큰 호박을 겨루는 대회인가봐.”



“그래요? 호박은 커 봤자 다 거기서 거기 아니에요?”



“글쎄. 하지만, 저건 꽤 큰데.”



그 농부는 호박을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저울의 눈금은 14를 가리켰다.



“14kg!”



사회자가 외치자 농부는 두 팔을 들고 환호했고, 사회자 뒤에 서 있던 누군가는 큼직한 흑판 위에 농부의 이름과 호박의 무게를 흰 분필로 나란히 적었다.



“대단하군요. 올해로 삼 년째, 이렇게 튼실한 호박을 키워내다니. 하지만! 1등을 한 적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답니다!”



그러자 관객들은 깔깔 웃고 농부는 조금 부끄럽다는듯 얼굴을 붉히며 도로 호박을 들고 무대를 내려갔다.



“이런 대회인가본데.”



“저는 이런 대회, 처음 보는걸요.”



“흥. 바보같은 대회에요.”



펠릭스가 초치는 말을 하자 실비아가 그를 찌릿 노려보았다.



“왜요?”



“크다고 좋은 호박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방금건 그리 크지도 않다고요. 애초에, 호박이라는게 커 봤자······.”



그리고 사회자가 다음 이름을 호명하자 또 한 명의 농부가 호박을, 아까보다 더 큰 호박을 들고 뒤뚱거리며 단상 위로 올라왔다. 어찌나 큰 호박인지, 두 팔 가득 안기고도 남아서 턱까지 동원하여 호박을 고정시켜야 할 정도였다.



“좀 큰데.”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저렇게 큰 호박이라니. 대체 어떻게 키운걸까요?”



“······뭐, 방법이야 다 거기서 거기죠. 큼직한 수박이나 박이랑 접을 붙인다든가, 토질도 좋아야하고. 아니면, 순 물만 잔뜩 먹여 크기를 키웠을지도. 아, 그러고보니. 바다 건너 호박은 왕국 토박이 호박보다 크기가 큰 편이라는데······.”



“펠릭스. 당신, 말이 좀 많아졌네요.”



실비아의 말을 들은 펠릭스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16kg!”



또다시 환호가 울려퍼졌다.



“저게 일등일까요?”



“그렇겠죠.” 다시 펠릭스가 입을 열었다. “저것보다 더 크게 키우는건, 평범한 사람에겐 불가능한 일이라고요.”



그리고 다음 농부는, 아예 손수레에 호박을 싣고 왔다. 누가봐도 방금보다 더 큰 것이었다.



“불가능하다면서요.”



“어, 음. 뭐, 크기만 하고 속은 비었을지도.”



“20kg! 세상에, 대단합니다! 삼 년 연속 우승의 빛나는 호박입니다!”



실비아는 펠릭스를 조용히 돌아보았다.



“전 호박 전문가는 아니라. 아무튼! 이건 바보같은 대회에요. 크다고 좋은 호박도 아니거니와, 저정도 호박은 저라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요.”



“당신은 농부도 아니잖아요?”



“좋은 종자를 골라, 좋은 땅에 심으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에요. 하여튼. 시골이란. 놀 거리가 없으니 이런 대회라도 여는거지. 바보같이······.”



“그래, 바보같은 대회야.”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주름이 깊게 패이고 수염과 머리칼 모두 하얗게 세어버린 노인이었다. 그는 느릿하게 펠릭스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진짜 큰 호박을, 다들 못 봐서 그래. 이건, 바보같은 대회야.”



“어르신. 바보같은 대회라는데는 저도 동의합니다만, 방금것보다 더 큰 호박은 아마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있었다면, 어느 장난기 넘치는 자칭 예술가의 가짜 호박이었겠죠!”



“떽! 어린놈이, 노인을 놀려?”



그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펠릭스는 웃으며 몸을 뒤로 슬쩍 뺐다.



“그건 진짜 호박이었어! 난 아직도 기억해. 대회가 끝나면 커다란 칼로 호박을 잘라 나누어 주었지. 참, 사람좋은 농부였어.”



“기분탓이겠죠. 기억이 왜곡된거 아닙니까?”



“아니야!” 다시 노인이 화를 냈다. “저 쬐끄만 단상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란 호박이었다고!”



노인의 말을 들은 펠릭스는 잠시 손을 움직여가며 그 호박의 크기를 가늠했다.



“어르신. 집으로 가시는 걸 도와드릴까요!”



“어린놈의 자식이! 노인을 놀려!”



“아, 아야! 지팡이 휘두르지 마요! 세상에 그렇게 큰 호박이 어딨어요? 착각이겠죠!”



“진짜라니까! 난, 아직도 기억한다고. 이런 콩알만한 것이 아니라, 진짜로 큰 호박이 있었다니까!”



소란이 커지자, 대회의 분위기가 어색해지며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진짜라고!” 시선이 쏠리자 노인이 다시 외쳤다. “저것보다 훨씬 더 큰 호박이 있었어.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단 말이야!”



어디선가 호각 소리가 들리더니, 말탄 경비병이 군중을 헤치고 달려왔다. 그는 노인을 보자마자 가볍게 한숨을 쉬었는데, 아마 처음 있는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노인을 끌고 저쪽으로 갔고, 그리고 그의 동료가 펠릭스를 불렀다.



“왜요?”



“같이 가 주시죠.”



“아니, 나는 왜요?!”



“같이 싸운것 아닙니까?”



“아니에요. 난 그저 우연히 휘말렸을 뿐인데······아니, 잠깐만. 좀 놔요! 으악! 올리버!”



결국 펠릭스도 그 경비병에 의해 경비대로 같이 끌려갔고, 올리버는 뒤통수를 긁으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어휴! 하여튼 펠릭스. 축제 때만 되면 꼭 이런다니까!”






경비대에서 가볍게 조서를 작성한 펠릭스는 금방 빠져나왔다. 물론, 그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이럴거면 왜 우릴 체포한거람?”



“축제를 방해하니 그렇지 뭐.” 올리버는 그래도 퍽 안심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만하길 다행이지.”



“까짓 호박이 뭐라고. 하여튼.”



“진짜로, 있었다니까?” 노인은 지치지도 않고 다시 성을 냈다. “도대체, 다들 머리를 뭣하러 달고 다니는거야? 그것도 기억 못할 거면?”



“아이구, 어르신. 고집 그만 피워요. 호박이 커 봤자 다 거기서 거기지, 그렇게 큰 호박이 세상 천지에 어딨어요?”



“흥. 멍청하기는.”



노인은 전략을 바꾸어 펠릭스의 성질을 긁기 시작했다.



“뭐라고요?”



그리고 그 전략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어린놈이, 꼬마야. 네가 아는게 세상 전부라고 생각하냐?”



“전 알 만큼 알거든요? 당신보다 훨씬 많이?”



“그런데, 그 큰 호박을 모른다고? 어이, 이봐! 그 커다란 호박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경비대에서 걸어나오며 노인이 대뜸 길바닥에서 소리를 치자, 사람들은 머뭇거리며 그에게서 멀어졌다.



“아, 기억해.”



하지만 누군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누군가가 노인에게 다가오며 중얼거렸다.



“누구네집 호박이더라? 그, 헛간 만큼 큰 호박이 있었는데.”



“여기도 허풍이 심하군요.”



하지만 그 남자를 시작으로, 그 거대한 호박을 봤다고, 심지어는 직접 먹어보기까지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달콤하고 크림 같은 맛이었는데······.”



“노란색 보다는 주황색에 가까웠어. 아니, 단풍 색이랑 비슷했던가?”



“속이 꽉 차 있었지. 돌멩이보다 단단했어.”



따위의 증언들의 파도가 펠릭스를 향해 덮쳐왔다. 그러자 노인은 의기양앙해져 펠릭스를 쳐다보았다.



마침내, 펠릭스는 더는 못참겠다는듯 크게 외쳤다.



“어르신! 내가, 당신이 착각하고 있다는걸 분명하게 밝혀드리지요!”



“멍청한 꼬마 같으니. 난 똑바로 기억하고 있어! 진짜로 그 큰 호박이 있었다니까!”



그리고 펠릭스는 씩씩거리며 노인을 잠시 노려봐준 다음, 여관으로 휙 걸어가버렸다.



“가만보니.” 실비아가 중얼거렸다. “펠릭스는 일부러 사건에 휘말리려고 그러나봐요.”



“나도 가끔 그런 생각 해. 하여튼. 일이 없으면 꼭 무슨 일을 만든다니까.”



그리고 그 두 사람도 펠릭스를 뒤따라 여관쪽을 향해 털레털레 걸어갔다.



“그런데요. 그렇게 큰 호박이 진짜 있을까요?”



“모르지. 근데, 만약에라도, 그렇게 큰 호박이 있었다면.”



올리버가 말을 멈추자 실비아는 그를 돌아보았다.



“꽤 낭만적이겠는걸.”


그리고 두 사람은 여관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문을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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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연금술 가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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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113화 21.12.03 25 1 24쪽
112 112화 21.12.02 24 1 23쪽
111 111화 21.12.02 26 1 22쪽
110 110화 21.12.01 27 1 24쪽
109 109화 21.12.01 23 1 19쪽
» 108화 21.11.30 32 1 22쪽
107 107화 21.11.30 26 1 23쪽
106 106화 21.11.29 28 1 25쪽
105 105화 21.11.29 24 1 22쪽
104 104화 21.11.28 29 1 23쪽
103 103화 21.11.28 32 1 23쪽
102 102화 21.11.27 27 1 23쪽
101 101화 21.11.27 22 1 21쪽
100 100화 21.11.26 25 1 20쪽
99 99화 21.11.26 24 1 23쪽
98 98화 21.11.25 26 1 19쪽
97 97화 21.11.25 25 1 19쪽
96 96화 21.11.24 25 1 20쪽
95 95화 21.11.24 24 1 20쪽
94 94화 21.11.23 28 1 19쪽
93 93화 21.11.23 23 1 18쪽
92 92화 21.11.22 28 1 21쪽
91 91화 21.11.22 24 1 19쪽
90 90화 21.11.21 26 1 21쪽
89 89화 21.11.21 25 1 22쪽
88 88화 21.11.20 25 1 20쪽
87 87화 21.11.20 31 1 23쪽
86 86화 21.11.19 27 1 22쪽
85 85화 21.11.19 27 1 23쪽
84 84화 21.11.18 27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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