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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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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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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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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97화

DUMMY

한동안 휑한 사막 위를 오가면서 야생 흑살구 군락을 살펴보던 그들은, 잠시 마차를 바위 그늘 아래에 멈춰세웠다.


“쉬어가자.”


사막 위를 돌아다니느라 다들 어느정도 지친 상태였기에, 다들 준남작의 말에 말없이 동의했다.




마차에서 내린 올리버는 주변을 둘러보며 마른 나뭇가지와 풀을 조금 그러모으더니, 금새 조그만 불을 피웠다. 그리고 그는 그 불 위에 조그마한 냄비를 걸어두었다.


“물이 좀 부족하려나.”


올리버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자기 몫의 가죽 부대의 물을 냄비 안에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요리라도 하려고요?”


“배고프지 않아?”


“글쎄요. 그건 실비아에게 물어보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배고파요.”


실비아는 귀족의 자부심 같은 것은 잠시 제쳐두고 솔직하게 말 하였다. 그러나 그 모습이 준남작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는듯 했다. 실비아의 말을 들은 준남작은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다.


“당신은?”


올리버는 준남작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 몫은 내가 알아서 하마.”


“같이 먹지. 말라 비틀어진 건조 식량보다는, 그래도 물에 한번 빠졌다가 나온 것이 먹기 더 편할텐데.”


“내가 알아서 하마.”


준남작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며 냄비에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렇다면. 어이, 당신! 당신도 같이 식사 할건가?”


올리버는 여전히 마차에 올라타있는 마부를 불렀다. 그러자 그는 대답 대신 뜯고있던 육포를 이쪽으로 내밀어 보였다.


“그래. 그렇다면야.”


그리고 올리버는 더는 그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이상하게도 별로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더운 사막에서 불의 열기를 쬐는 것은 사실 조금 지치는 일이었다.


“덥네요.”


실비아가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하며 말했다.


“품위라고는 조금도 없군요.”


“뭐 어때요! 품위 지킬 자리도 아니고. 더운걸.”


실비아는 펠릭스의 농담에 톡 쏘아붙였다.


“당신은 안 더워요?”


“딱히.” 펠릭스가 대답했다. “전 더위도 추위도 별로 안 타거든요.”


“흥. 그런 주제에, 비 좀 맞았다고 감기 걸렸잖아요? 열이 펄펄 끓을 정도로.”


실비아의 말을 들은 펠릭스는 실바누스 준남작의 눈치를 살폈다. 다시 그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랬던가요?”


“그랬죠! 당신, 아주 인사불성이 돼서는. 제가 당신 먹을 약까지 직접 끓여줬잖아요. 그래놓고서도 고맙다는 말도 안 하고. 약이 뭐 어떻다는둥, 재료를 너무 많이 넣었다는둥······.”


펠릭스는 다시 실바누스 준남작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여전히 아무것도 못 들은척 하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이미 험악하기 짝이 없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 이야기는 그쯤 하죠.”


“더 할 것도 없거든요.


실비아가 입을 비죽 내밀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펠릭스는 다시 준남작의 눈치를 살피더니 씩 웃었다.




올리버가 만든 스튜는 그럭저럭 먹을 만 했다. 물론, 지치고 배고픈 와중에는 어떤 스튜든 그럭저럭 먹을 만은 할 것이다.




실비아는 조그마한 국자로 말라 비틀어진 고기 조각과 이름모를 채소, 그리고 정체불명의 흐느적거리는 건더기를 피하여 국물만 떠서 자그마한 그릇에 담아, 두 손으로 그릇을 들고 모닥불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당신은 안먹나?”


올리버는 펠릭스가 비위 좋게 건더기를 듬뿍 담아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막 떠올랐다는듯 실바누스 준남작을 불렀다.


“내 몫은 내가 알아서 하마.”


“같은 말만 세 번째군요.” 스튜를 뜨며 펠릭스가 말했다. “그런다고 딱히 더 위엄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 말을 들은 준남작은 이쪽을 힐끗 돌아보더니, 뚜벅뚜벅 걸어와서 실비아의 옆에 앉았다.


“좀 앉겠다.”


“얼마든지.”


올리버가 웃으며 준남작에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준남작은 못본체 하며 품에서 페미컨 한 덩이를 꺼내 베어물었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올리버는 갑자기 피식 웃었다.


“뭔가?”


“아니. 준남작이래서, 나는 무슨 대단한 거라도 준비했나 싶었는데. 우리들이랑 별반 차이없는걸 꺼내길레.”


“효율적으로 살지 않으면, 재산을 모을 수 없다.”


준남작은 페미컨을 한입 베어물었다.


“그렇기는 하지.”


“쓸데없는데 낭비해선 안 돼. 필요하다면, 귀족의 지위를 잊을 때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아무렴요.”


펠릭스는 갑자기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실비아. 방금 당신 아버지가 하는 말 들었죠? 당신도 툭하면 귀족 거리지말고······.”


여전히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실비아가 펠릭스를 째릿 노려보자, 펠릭스는 히죽 웃으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식사 시간은 조용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 후룩 하는 소리, 우물거리는 소리. 아무도 쓸데없는 소리는 내지 않고, 다만 다들 주린 배를 채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가장 먼저 배를 채운 것은 펠릭스였다. 그는 금새 스튜 한 그릇을 비운 다음 올리버를 시켜 조그만 냄비를 닦도록 하더니, 깨끗해진 냄비 안에 물을 넣고 이상한 약재를 몇 가지 집어넣었다.


“뭐해요?”


국물을 호록 마시던 실비아가 그릇에서 입을 떼고 펠릭스에게 물었다.


“연금술사의 진면목을 보여주겠다고 준남작에게 말했거든요.”


펠릭스는 품 속에서 파스텔톤으로 반짝거리는 모래 같은 것이 담긴 길쭉한 플라스크를 꺼내들었다.


“뭘 만드는데요?”


“연금술사에 대한 생각이 바뀔 만한 것이요.”


펠릭스는 준남작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나 준남작은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건 뭐에요?”


“아, 몇 번 보지 않았나요? 뭉게뭉게 구름을 피우는데 제가 자주 쓰는 물건이죠. 요정 가루라고.”


펠릭스는 플라스크를 살짝 흔들며 말했다.


“요정 가루요. 요정. 아니, 전에 당신이 요정이라는건······.”


“쉿!”


펠릭스는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며 말했다.


“연금술사의 비밀이잖아요. 안 그래요, 실비아?”


펠릭스가 준남작을 눈짓하자, 실비아는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준남작은, 그 모습을 보더니 더욱 불쾌한 얼굴이 되어 시선을 슬쩍 피해버렸다.




펠릭스는 냄비 안에 물과 요정 가루를 넣고, 말라 오그라든 꽃잎 몇 개를 위에 동동 띄웠다. 그리고 흰 분말 같은 것과, 조그마한 결정체, 그리고 검게 말라 비틀어진 잎사귀 몇 장을 넣었다.


그는 처음에는 냄비를 느릿느릿 젓다가, 어느 순간부터 아주 맹렬하게 냄비를 젓기 시작했다. 물 속에 빠져들어간 재료들은 반죽처럼 섞이는듯 싶더니, 펠릭스가 냄비 젓기를 멈추자 냄비 안에 반짝이는 액체가 가득 담겨 있었다.


“자, 한잔 해요!”


펠릭스가 올리버에게서 조그만 그릇을 넘겨받으며 말했다.


“이게······뭐에요?”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실비아가 다가왔다.




“음료수요. 새콤달콤하고, 잃어버린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그런 음료수. 자, 한잔 해요.”


펠릭스는 그릇에 음료를 한 국자 떴다. 실비아는 두 손으로 그릇을 받았는데, 갑자기 그녀의 위에서 누군가의 손길이 내려와 그녀의 손에 들린 그릇을 휙 가져가버렸다.


“아빠?”


실바누스 준남작이 근엄한 얼굴로 실비아에게서 음료 그릇을 빼앗았다.


“뭘 만든거지?”


“방금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내 딸에게, 정체도 모르는 음료를 먹일 수는 없다.”


준남작이 펠릭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인체에 무해합니다.”


펠릭스는 음료를 한 그릇 더 담더니, 순식간에 그것을 비워냈다.


“봐요. 마취약이나 수면제는 아니고, 미약이나 세뇌약은 더더욱 아니죠. 그냥 음료입니다.”


준남작은 여전히 영 못믿겠다는 듯한 얼굴로 펠릭스를 보았다.


“정 의심스러우면, 직접 드셔보시던가요.”


“내가?”


“네. 딸아이를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뭐 그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수상한 것에는 손 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당신 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본데요?”


펠릭스가 실비아를 힐끔거리자 준남작도 고개를 내려 그의 딸을 보았다. 실비아는, 호기심과 실망이 섞인 눈으로 조금 원망스레 그녀의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약에 뭘 탔지?”


“비밀입니다.” 펠릭스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요리 비법을 멋대로 알려주는 요리사가 있습니까? 없죠.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수상한 물건을 만들었다는 뜻이군. 남들에게, 떳떳하게 알릴 수 없는 것을.”


“비법을 알고싶다면 비용을 내시지요. 종이에 써 드릴테니.”


펠릭스의 말을 들은 준남작의 눈썹이 다시 꿈틀했다.


“인체에 무해하다고?”


펠릭스는 대답 대신 올리버에게 음료를 한 국자 덜어주었다. 그러자 올리버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릇에 담긴 음료를 꿀꺽 삼켜버렸다.


“보시는대로.”


“너희들 그릇에만 수작을 부렸을지도 모를 일 아니냐.”


“그럼 그거 주시든지요. 새로 한 국자 담아 드릴테니까.”


준남작은 펠릭스와 올리버를 돌아보고, 다시 실망과 원망이 담긴 눈으로 자기를 보는 실비아를 힐끗 보더니, 조심스레 그릇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준남작의 입술에 음료가 닿는 바로 그 순간을 펠릭스는 놓치지 않았다. 비록 찰나였지만, 준남작은 깜짝 놀라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옳거니. 펠릭스는 생각했다. 역시,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이 사람도 실비아와 마찬가지로 아주 풍부한 감각과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어떻습니까?”


준남작은 인상을 쓰며 천천히 음료를 음미했다.


“이건, 대체, 무슨 맛이지?”


“꿈같은 맛이지요.” 펠릭스는 넉살좋게 웃으며 말했다. “꽤 좋지 않습니까?”


“연금술사 놈들은 하나같이 믿을 수가 없군.”


준남작은 음료 그릇을 잠시 노려보다가, 입안에 마저 휙 털어넣어버렸다.


“독이 없는건 알았으니, 나도 더이상 뭐라 하진 않겠다.”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자, 실비아. 마셔요. 당신도 맛 봐야죠.”


실비아는 펠릭스가 만든 음료를 별달리 의심하지 않고 금새 홀짝거렸다. 그녀도, 음료가 입에 닿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얼굴이 폈다.


“우와. 이게 대체 무슨 맛이에요?”


“좋죠? 올리버. 가서 마부도 한 잔 줘요. 자, 더 마시고 싶은 사람? 준남작님. 한잔 더 드시겠습니까? 아, 물론 많이 마셔도 부작용은 없습니다. 다만, 나중에 오줌이 샛노랗게 나와도 놀라지는 마시고······.”


사막 한 가운데서, 철썩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야야, 실비아! 왜요!”


“옆에서 뭐 마시고 있는데, 말좀 가려 하라니까요!”


준남작은 깜짝 놀라 실비아와, 실비아에게 등짝을 얻어맞은 펠릭스를 곁눈질했다.


“그렇다고 때려요 왜 자꾸?”


“맞을 짓을 하니까요! 내 손에 매가 안 들린걸 고마워 해요. 그래도 저도 귀족이거든요? 당신 같은 사람을 때려줄 정도의 권리는 있어요.”


“내 참. 귀족 무서워 살겠나 어디. 보십시오, 준남작! 당신 딸좀 잘 간수해요!”


“아빠랑은 상관없는 일이거든요? 그리고 아빠가 저한테 가르친 거예요. 귀족으로서의 명예를 무시하는 놈이 있으면, 아주 단단히 혼쭐을 내 주라고!”


“그게 이런 뜻은 아니었을 텐데요. 안 그래요, 준남작?”


실바누스 준남작은 조금의 품위도 보이지 않는 자신의 딸과, 그 딸을 상대로 조금도 겁먹지 않고 넉살좋게 장난질이나 치고 있는 펠릭스를 말없이 지켜보다가, 이내 고개를 사막 쪽으로 돌려버렸다.




올리버는 마부에게 펠릭스가 만들어 준 음료를 갖다주었다. 마부는 깜짝 놀랐다가 금새 고마워하며 음료를 마셨다.


“어떻나?”


“맛있군요. 연금술사가 아니라 요리사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요.”


“다행이군.”


“그런데, 저쪽에서 무슨 소란이 있는데. 안 가봐도 됩니까?”


올리버는 바위그늘쪽을 힐끗 돌아보았다. 평소처럼 실비아가 펠릭스와 장난을 치는 것을 보고 그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들 장난이오.”


“애들 치고는 나이가 있어 보이던데. 약혼자쯤 된답니까?”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군.”


올리버는 화들짝 놀라 재빨리 마부에게 말했다.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함부로 하지 말지.”


“아, 뭐······알았습니다.”


마부는 다시 음료를 한 모금 꿀꺽 마셨다.


“그나저나. 너무 오래 머물지는 않는게 좋을겁니다.”


“그래?”


“바위 그늘을 찾는건 우리 여행자들만이 아닙니다.”


마부는 텅 빈 사막을 두리번거렸다.


“마적들도, 이런 그늘을 자주 찾아오거든요.”


“미리 좀 말하지.”


올리버는 뒤늦게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지평선을 쳐다보았다.


“지금, 내 눈앞에 뭐가 보이는 것 같은데.”


“아이쿠!”


마부는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고쳐잡고 말 고삐를 붙잡았다.


“손님들! 빨리 마차에 타십시오!”


“뭔가?”


“마적이오, 마적! 손님, 가서 빨리 치우고 다들 마차에 좀 태워주십시오.”


“아니,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다고?”


“그럼, 마적이 갑자기 나타나지, 뭐 편지라도 미리 써 놓고 나타납니까?”


올리버는 그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군.”


올리버는 마부에게서 그릇을 넘겨받고 재빨리 바위그늘 아래로 뛰어갔다.




올리버는 바위그늘 아래에 널어둔 집기를 재빨리 수습하고, 모닥불은 발로 밟아 꺼버렸다.


“애들은 빨리 마차에 타!”


모닥불을 짓밟으며 올리버가 말했다.


“애 아니에요.”


“실비아. 입씨름할 시간 없다!”


준남작이 채근하자, 실비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차로 뛰어갔다.


“펠릭스. 넌 왜 안가?”


“애가 아니니까요.”


“아니, 좀. 펠릭스. 그러지 말고 너도 빨리 가. 하여튼, 가끔 보면 일부러 그러는가 싶기도 하고.”


올리버는 털레털레 걸어가는 펠릭스와, 지평선 저쪽에서 점점 커져가는 먼지 구름을 번갈아 보았다.


“우리도 갑시다, 준남작님.”


“그래. 가지.”


준남작은 조금 불안한 눈으로 머물렀던 자리를 살피다가, 허리를 굽혀 무언가를 주운 다음 마차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마차가 사막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그들을 따라오는 불길한 구름을 피하여, 새하얀 산호 항구를 향해서.


“금방 따라잡힐걸요.”


계속 차창 밖을 힐끔거리는 올리버에게 펠릭스가 말했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지?”


“우연히 발견한 거겠죠.” 펠릭스가 말했다. “모닥불의 연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고.”


“연기가 많이 나지도 않았고, 색깔도 흰색이었어. 눈에 잘 띄지도 않았을텐데.”


“그럼 우연이겠죠.”


펠릭스는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약병 몇 개를 골라내기 시작했다.


“뭐하게?”


“올리버. 새총은 챙겼댔죠? 그럼 이걸 걸고 우리 마차 뒤쪽으로 쏴요.”


펠릭스는 하늘색 액체가 찰랑거리는 약병을 올리버에게 건네주었다.


“뭔데?”


올리버는 반신반의하며 약병을 받아 들면서도, 새총을 꺼내 약병을 매기고 차창을 드륵 열었다.


“쏴 보면 알아요.”


그리고 펠릭스는 폭죽 터지기를 기대하는 어린애처럼 히죽 웃었다.


“너희들 연금술사들은 사실대로 말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리는건가?”


준남작이 불만스럽게 펠릭스에게 중얼거리자, 펠릭스는 전혀 미안하지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개인적인 취미라. 하지만, 준남작. 막이 오르기도 전에 무대 위에서 펼쳐질 공연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극단이 있다면, 그들이 무슨 소리를 듣겠습니까?”


“이건 연극이 아니다.”


“그렇죠.” 펠릭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극 따위와는 비교도 안 돼죠!”


준남작은 그런 펠릭스를 보고 조금 불쾌한 얼굴을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올리버는 약병을 새총에 매기고, 적당히 떨어진 바닥을 겨냥하여 새총을 쏘았다. 약병이 바닥에 닿자 하얀 연기가 순식간에 확 피어올라 안개의 장벽을 만들었다.


“좋네.” 마차 안으로 돌아온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이제 못 쫓아오겠지?”


“바보도 아니고, 설마요. 저건 일 분도 안 돼서 없어지거든요. 다음은, 이거요.”


펠릭스는 이번에는 파란 잉크같은 액체가 들어있는 약병을 건넸다.


“이건 또 뭔데?”


“쏴 보면 안다니까요.”


“무슨 효과인지 미리 알려주면, 내가 좀 더 잘 겨냥해서 쏠 수 있지 않겠어?”


“대충 쏴요. 어차피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는 조준도 제대로 안 되는데.”


“그렇기는 해.”


올리버는 다시 약병을 새총에 매기고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펠릭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까지 우리들한테 숨기는건······.”


펠릭스는 웃으며 자기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댔다. 조용히하라는 그의 메세지에 실비아는 금새 입을 다물었다.


“왜요?”


펠릭스는 종이를 꺼내더니 이렇게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도 멋들어진 필기체로 술술 써내려갔다.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요?”


‘저 마적들. 왜 우리를 쫓아올까요?’


“그야, 도둑이니까. 우리들을 잡아서 물건을 훔치고······.”


‘우리한테 훔칠 것이 있는지는 어떻게 알죠?’


“뭐, 여행객이니까, 당연하지 않아요?”


‘산호항구가 벌써 가까워 졌어요. 그런데도, 산호항구의 경비병에게 잡힐 위험을 무릅쓰면서 까지 우릴 쫓는 이유는?’


“무슨 말이 하고싶은건데요?”


펠릭스는 실바누스 준남작을 힐끗 보았다.


“왜그러나?”


‘준남작. 산호항구 안에, 어쩌면 마적과 내통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터무니없는 소리로군.”


마차 바깥에서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실비아는 고개를 차창 밖으로 빼꼼 내밀어, 이번에 던진 약병이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살펴보았다. 폭풍이 이는 바다의 먹구름처럼, 시커멓고 무거운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있었다.


약병의 효과를 살펴본 실비아는 다시 마차 안으로 돌아왔고, 펠릭스가 쓴 글씨를 보았다.


‘이 마차 안에 훔칠 것이라고는, 귀족 뿐입니다.’


“나는 산호항구에 온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그럴 거였으면 진작 나를 습격했겠지.”


‘마을에 가 보면 알게 될 겁니다.’


펠릭스는 웃으며 필담을 마무리하고 올리버에게 또 한병의 약병을 건넸다.


“또?”


“마지막이에요.” 펠릭스가 말했다. “이건, 놈들이 꽤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는 쓰지 마요. 그리고 쏘자마자 바로 돌아와서 차창 닫고.”


“뭔데?”


“비밀이죠.”


펠릭스는 씩 웃더니, 순식간에 서늘한 얼굴을 지으며 차창 밖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산호항구로 돌아가면, 이것저것 살펴볼게 많겠어요.”


“뭐, 그래.”


올리버가 다시 새총에 약명을 매기고 차창 밖으로 상체를 내밀자, 펠릭스는 실바누스 준남작에게 조용히 말했다.


“준남작. 도와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는데.”


“뭔가.”


“산호항구에 도착한지 한 달 정도 되었다면서요?”


“그래.” 준남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마을에 머물면서, 수상한 기색이 있는 사람들을 제게 좀 알려 주십시오.”


“왜?”


“알아볼게 좀 있거든요. 그리고, 당신도 아마 궁금했을 것 같은데요. 어째서 이 황량한 사막 위에 아직까지도 마적 따위가 남아있는지.”


펠릭스의 말을 들은 준남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고싶은 말이 뭔가?”


“그게 답니다. 뭐가 됐든, 산호항구에 도착하면 알게 되겠죠. 그러니, 그 전까지는 올리버가 새총을 잘 쏴 주기를 기다려 보자고요.”


그리고 펠릭스는 듬직한 올리버의 등을 힐끗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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