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조회수 :
6,035
추천수 :
188
글자수 :
1,774,925

작성
21.11.23 18:10
조회
28
추천
1
글자
19쪽

94화

DUMMY

산호항구의 새하얀 건물들의 외벽은 바다 위로 떠오르는 아침의 태양 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누군가, 바닷속에서 거대한 조개를 건져올려 그 진주를 캐내더라도, 그 빛깔은 지금의 저 부서지는 햇빛에는 못 미칠것이 분명했다.




여관 침대에서 눈을 뜬 올리버는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잠시 몽롱한채로 침대에 누워 두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지난 밤에 마셨던 그 술은 아주 독하면서도 독특한 술이라, 그는 아무런 숙취도 없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허, 거참.” 올버는 방안에서 혼잣말을 했다. “사막에는 신기한 일 투성이로군.”


그리고 올리버는 가볍게 몸을 풀며 어제 저녁 준남작과 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술에 취한 탓인지, 별달리 기억나는 것은 딱히 없어 그는 금새 어깨를 으쓱하며 방에서 나갔다.




식당에는 이미 펠릭스와 실비아가 자리를 잡고 빵을 한 조각씩 오물거리고 있었다.


“좋은아침, 꼬마들.”


올리버가 펠릭스의 옆 자리에 앉자, 펠릭스는 갑자기 고개를 쑥 들어올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왜그래, 펠릭스?”


“어디 꼬마가 있나 살펴보려고 그랬죠.”


“여깄네.” 올리버가 펠릭스를 보며 말했다.


“글쎄요, 올리버. 왕국 법에 따르면, 저는 결혼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나이를 먹었는데요.”


“하는 짓은 애잖아.”


맞은 편에 앉아있던 실비아는 그 말을 듣더니, 풋 하고 웃었다.


“그러는 올리버. 당신은 술은 좀 깼어요?”


“어? 나? 술 마신줄은 어떻게 알았어?”


“우리 라이벌 준남작이 알려줬죠.”


올리버는 눈을 끔뻑거렸다.


“실바누스 준남작이?”


“아침에 식당에서 만났는데, 보나마나 늦잠자고 있을거라고 해 주던걸요. 어제 같이 의기투합이라도 했어요?”


“설마. 그냥, 내가 멋대로 찾아간거지.” 올리버는 입맛을 다시며 어제 저녁의 일을 떠올렸다. “뭐, 조금 무례했을지도.”


“아무튼, 당신도 대강 준비해요. 오늘도 사막 뒤져야 하니까.”


“그래, 알았어. 그런데. 사막을 뒤진다고 흑살구를 찾을 수는 있을까?”


“해보기 전에는 모를 일이죠.”


펠릭스는 올리버를 향해 씩 웃고는, 남아있던 빵조각을 입 안에 모조리 욱여넣고 우적우적 씹어대었다.




식당을 겸하는 여관에서 걸어나온 세 사람은 펠릭스의 뒤를 따라 항만 쪽으로 갔다.


“항구에는 왜?”


“아, 올리버. 준남작이 불러달라 그래서요.”


펠릭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며 대답했다.


“아니, 네 사업 라이벌 아냐? 준남작이랑 같이 사막을 뒤지려고? 그러면, 보나마나 어제처럼 눈앞에서 죄다 뺏길 텐데······.”


“올리버.” 펠릭스는 걸음을 멈추고 올리버를 돌아보았다. “준남작이 가진 흑살구를 사는게, 저로서는 최상의 선택지에요.”


“그러면, 사막을 뒤지지 말고 준남작을 설득하는게 낫지 않아?”


“설득할 건덕지가 없으니 그렇죠.” 펠릭스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사막을 같이 돌아다니다보면 준남작이 실언을 할 지도 모르고. 아니면, 어제처럼 운좋게 연금술사의 진면목을 준남작한테 보여줄수도 있고. 저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


“아, 하긴.” 올리버는 마른 입안을 혀로 적시며 말했다. “어제 그러더군. 자기 마음을 돌릴 여지는 있다고.”


“고무적인 소식이군요. 다른 건 뭐 없나요?”


“음. 그러니까.” 올리버는 마른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마음이라는건, 일단 한 번 움직이면 반대쪽으로 되돌리긴 어렵다더라.”


“그건 별로 고무적이지 않군요. 좋다 말았네.” 펠릭스는 바닥의 튀어나온 돌멩이를 발끝으로 툭 툭 쳤다. “실비아.”


“왜요?”


“당신이 당신 아버지좀 설득할 수는 없나요?”


“힘들걸요.” 실비아는 고개를 살짝 내리며 대답했다. “아빠는, 제 말은 듣지도 않는데다가, 저만 보면 감싸려고만 드니까······.”


“그래 보이긴 하더군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사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실비아는 자기는 정말로 모른다고, 억울하다는 얼굴로 펠릭스에게 말했다.


“저는 왜 그렇게 연금술사나 음유시인이나, 뭐 그런 사람들을 싫어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말 했던가요? 제가 어릴때, 그러니까, 막 열 살이 되었을 때였나? 유랑 음유시인이 우리집에 자주 놀러온 적이 있었거든요. 체구는 작았지만 목소리는 고운 남자였어요. 밤마다 창문 아래에서 노래를 불러주는데······.”


“잠깐, 잠깐만요.” 펠릭스는 실비아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당신 부모님이 허락했나요?”


“아빤 그때 사업 때문에 집에 없었어요.”


“실비아. 당신, 나름대로 장원이나 저택에서 머물지 않았나요?”


“그랬죠. 마당이 넓어서 좋았는걸요. 울타리가 있었는데······.”


“그 사람. 당신 집에 제대로 초대받아 들어온 사람이었나요?”


“음. 글쎄요.”


실비아는 고개를 살짝 위로 들고, 두 눈을 깜빡이며 생각했다.


“잘 모르겠어요. 집안에 나이든 하녀가 있었는데, 항상 그녀가 문을 열어준 건 기억나요. 저희 어머니가 아버지랑 결혼 하여 집으로 오면서 직접 고용한 하녀였어요. 그래서 그런지, 집 안에서 나름대로 존경받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당연히 초대받아 온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요?”


실비아는 침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나중에, 아버지가 그와 만났는데, 제 말은 듣지도 않고 바로 지하실에 넣어버렸어요.”


“흠.” 펠릭스는 조금 불만스런 얼굴을 지었다. “흠. 흠흠. 그렇군요. 그 때, 열 살이던 때라고요?”


“네. 아마도.”


“그럼. 연금술사는?”


“아, 그건요.” 실비아는 조금 주저하며 말했다. “어릴 때, 저는 툭하면 밤마다 숲으로 놀러다니다 보니까, 아무래도 잔병치레도 잦고 감기도 곧잘 걸렸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음유시인이 몸에 좋은 약이라면서 약병을 하나 가져왔어요. 그리고, 하필 그 날 마침 아빠가 예고없이 집으로 찾아와서······.”


“그 약.” 펠릭스가 말했다. “묘사할 수 있겠어요? 기억나는대로? 질감과 향기, 맛이라든가, 색깔이나······.”


“잘 몰라요. 레몬색 비슷했던것 밖에는.”


“냄새는?”


“전혀요.”


“질감은? 질감 정도는 기억할 텐데.”


“저는 몰라요. 이미 병에 담겨있었으니까. 다만, 조금 혼탁하던걸요. 꼭 우유를 섞은 차처럼?”


실비아의 말을 가만히 듣고있던 펠릭스는 잠시 눈쌀을 찌푸리고 생각했다가, 짜증난다는듯 몸을 휙 돌리고 항구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왜그래, 펠릭스?”


“올리버. 그, 빌어먹을 가짜 연금술사 놈이 만약 내 눈앞에 나타난다면.” 펠릭스는 여전히 정면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그놈의 머리통을 둘로 쪼개주겠어요!”


“펠릭스! 끔찍한 소리하지마요!” 뒤에서 실비아가 경악하며 말했다. “당신, 갈수록 말이 거칠어지는군요?”


“아니! 그놈이 쓸데없는 짓을 해서 내 사업에 이만큼 손해를 끼쳤는데,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


“뭔데그래?”


올리버가 펠릭스에게 재차 물었다. 그러자 펠릭스는 성난 얼굴로 올리버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취약! 열 살 소녀한테 소 잡을 때나 쓰는 마취약 주는 사람이 어딨어요!”


“네, 네에? 아니, 펠릭스. 그냥 하는 말이죠?”


실비아는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몰라요.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아니니까. 하지만, 으휴. 그 망할 놈팽이가, 내 발목을 잡다니. 올리버. 이번 여행이 끝나면, 그 가짜 연금술사 놈들과 거짓말쟁이 약팔이들을 소탕하는 모험이라도 떠나야겠어요!”


“난 빼줘.”


올리버는 씩씩거리며 걸어가는 펠릭스의 등을 향해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실비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쉴래?”


“아니, 아니에요.” 실비아는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펠릭스가 뭔가 착각했겠죠. 아니면 저나.” 그리고 실비아는 살짝 비틀거리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힘들면 말 해. 무리하지말고.”


“아, 괜찮아요 올리버. 그, 펠릭스도 가끔은 실수 하잖아요? 이번에는 그가 착각했겠죠 뭐. 아마, 별 일 아니었을 거예요.” 실비아는 꼭 변명을 늘어놓듯 말했다. “제가 잘못 기억했다든가, 뭐 그렇겠죠. 좋은 사람이었는데, 설마요.”


올리버는 실비아에게 무언가 조언이나, 또는 위로의 말을 건넬까 하다가, 그가 가진 빈약한 지식을 아쉬워 하며 그저 입을 다물어버렸다.




산호항구의 항만은 한창 바쁜 와중이었다. 인부들은 배에 널빤지를 놓고 무거운 상자를 이리 나르고, 저리 나르고, 가끔은 들고 멀뚱거리기도 했다.


“분주하군요.”


펠릭스는 잠시 항만의 일꾼들을 구경하며 말했다.


“그래. 그래서, 준남작은 어딨지?”


“저기, 보이네요.”


펠릭스는 손가락으로 배 위에 올라 인부들을 지휘하는 준남작을 발견했다.


“배를 타네. 난 배는 못 타겠던데.”


“사업 한다잖아요? 바다 건널 일이 한두번이겠어요?”


펠릭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실바누스 준남작을 살펴보다가, 그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디가?”


“가서 불러와야죠. 여기서 품위없이 두 손 모아 소리질러 부르기는 그렇잖아요?”


“아, 하긴. 그렇긴 하네. 그럼 다녀와 펠릭스.”




펠릭스는 항만 저쪽으로 다가가 널빤지를 타고 배로 건너갔다. 그는 실바누스 준남작의 곁으로 가더니, 뭐라 잡담을 시작하는듯 보였다.


“실비아.”


올리버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있는 실비아를 불렀다.


“왜요, 올리버?”


“너희 아버지 말이야. 아니, 긴장하지 말고.”


올리버는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실비아의 얼굴이 굳는 것을 보고 황급히 말했다.


“뭐, 좋아하시는거나, 그런거 없어?”


“그걸 왜 물어봐요?”


“아까 펠릭스가 그랬잖아. 네 아버지가 가진 흑살구를 구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그런데, 도통 펠릭스한테는 팔 생각이 없으시니······.”


“그러니까, 아빠를 회유하겠다 뭐 그런 생각이에요?”


“비슷하지.”


올리버는 여전히 저쪽 배 위에서 준남작과 떠들고 있는 펠릭스를 불안한 눈으로 힐끗 보았다.


“글쎄요. 사실, 저는 아빠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몰라요.”


“몰라?”


“네. 올리버 당신은 아나요? 당신 부모님이 뭘 좋아하시는지.”


“나도 모르네.”


올리버는 잠시 생각하는척을 하다가 금새 대답했다.


“그런거죠 뭐.”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올리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준남작이 예전에 본 연금술사는 제대로 되먹지 못한 놈이라고 설득할 수도 없고.”


“펠릭스가 대단한 성과라도 보인다면, 또 모르겠죠.”


실비아의 말을 들은 올리버는 그녀를 힐끗 보았다.


“예를 들어, 어떤 식으로?”


“그러니까요. 펠릭스는, 약을 만들 때 아주 화려하게 만들잖아요? 그가 만드는 약들도 하나같이 효과가 극적이고. 그러니, 때마침 그런 약을 만들 만 한 기회가 온다면야······.”


“무리군.” 올리버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렇죠. 사실, 갑자기 항만에서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바로 그 때, 항구에 싣기 위해 밧줄로 고정시켜둔 나무 상자의 무더기가 불길하게 기우뚱 하더니, 사람들을 덮치며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항만은 혼란과 고통의 비명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저런 식으로?”


실비아는 이번에도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져 두 손으로 자기 입을 가렸다.


“저, 저, 올리버······.”


“알아. 네 탓 아냐. 입으로 화를 부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라고. 그나저나. 뭐, 덕분에, 펠릭스한테는 기회가 됐네.”


올리버는 그새 배에서 폴짝 뛰어내려 사고 현장으로 뛰어가는 펠릭스와, 마찬가지로 배에서 내려 현장으로 걸어가는 준남작을 보았다.


“일단은 우리도 갈까. 우리들이 도울 만한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 네, 네! 가요. 올리버. 저, 응급의학을 배웠으니까. 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알아. 그러니 가자고.”


올리버와 실비아는 썰물 빠지듯 현장에서 멀리 피신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뚫고, 사고 현장으로 걸어들어갔다.




사고 현장은 생각보다 처참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화약이 폭발하여 시뻘건 불길과 비명이 바람에 섞여 휘몰아치던 화이트플레인 마을 보다는 훨씬 점잖은 편이었다.


대다수의 인부들은 상자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았고, 불행한 몇 명 만이 화물 상자의 무더기에 신체의 일부, 또는 전체가 깔린 상황이었다.


실바누스 준남작은 인부들을 지휘하여 화물 더미가 다시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받침과 동시에, 무너진 상자들을 다시 한 옆으로 치우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펠릭스는 화물 상자에 깔린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입 안에다가 진통제와 무언가를 섞은 약을 흘려넣고 있었다.


“아빠!” 실비아는 실바누스 준남작에게 달려갔다.


“실비아. 위험하니 딴데 가 있어라.”


“아냐. 나도 도울테니까. 어때? 다친 사람들은 어디로 보낼까? 아, 저기, 경매장 쪽으로 보내? 지금은 경매도 안 하고 있으니까······.”


“실비아. 그만 가라니까.”


실바누스 준남작의 말을 들은 실비아는,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저쪽으로 휙 가버렸다. 그러더니 그녀는 몇 명의 인부들을 불러모아 조그마한 병동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애들이 말을 안 듣지?”


어느새 다가온 올리버가 준남작에게 말했다.


“당신은 또 뭔가?”


“아니, 나는 이래뵈도 힘 깨나 쓰는 편이거든.” 올리버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쓸만한 일꾼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저기 가서 상자 치우는거나 좀 도와주시오.”


“알겠습니다, 준남작.”


올리버는 준남작의 지시를 듣더니 저쪽으로 갔다. 그는 인부 둘이서 끙끙거리던 상자를 번쩍 들어 한 옆으로 치워버렸다.


“준남작!”


그리고 부상자들의 입에다가 약을 먹여주던 펠릭스가 돌아왔다.


“뭔가.”


“어디, 솥 없습니까?”


“솥?” 준남작이 의아한 눈으로 펠릭스를 돌아보았다. “어디 쓰려고?”


“약 만들어야죠.”


“필요없다. 감기나 열병이면 모를까, 외상에는······.”


“당신한테 연금술사의 마술을 조금만 맛보여 드리지요.”


펠릭스는 어딘가 음흉하게 웃으며 준남작을 보았다.


“필요없다.”


“그러지말고. 일단 한번 보고 나면, 연금술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크게 바뀔겁니다. 어디, 솥 없습니까?”


“네가 알아서 찾아라.”


준남작이 펠릭스 쪽은 거들떠도 안 보고 말했다.


“나는 너희 연금술사 놈들의 하찮은 마술에 어울려 줄 새가 없어. 내겐 더 중요한 일들이 있다.”


펠릭스는 혼란 와중에 벌써부터 질서를 잡아가기 시작하는 항만을 돌아보았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기다리고 계십시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멋진 약을 가져올테니.”


그러더니 펠릭스는 사고 현장에서 벗어나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무언가를 묻기 시작했다. 그는 금새 원하던 것을 찾았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저쪽으로 다다다 달려갔다.


“연금술사를 믿으라니.”


그 뒷모습을 힐끗 보며 준남작이 중얼거렸다.


“믿을게 따로 있지. 네놈들을 어찌 믿어?”


그리고 준남작은 다시 사고 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현장은 꽤 질서를 잡았다. 위태롭게 쌓인 상자 무더기 아래에 단단한 막대와 판자들을 지지대 삼아 쑤셔넣어 더이상 상자가 무너지지 않게 한 다음, 올리버를 필두로 인부들이 상자를 치우면, 실비아가 이끄는 의무대가 부상자를 저쪽으로 후송하는 체계가 자리잡았다.


일단 현장이 체계를 갖추고 부상자의 후송이 시작되자, 준남작은 사람을 다 구하고 어질러진 항구를 수습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 암산해 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잠시 자리를 벗어나 실비아에게 갔다.




실비아는 준남작의 기억보다, 그의 생각보다 훨씬 능숙하게 부상자들을 다루고 있었다. 여기저기 부러진 사람들에게 부목이 덧대어졌으며,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에게는 곧바로 진통제가 주어졌다.


“실비아. 여기서 뭐하고 있느냐.”


그러나 준남작은 영 못마땅하다는 투로 말했다.


“바빠. 도와줄거 아니면, 돌아가 아빠.”


“네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하러 왔다.”


“아빠가 뭔데?”


실비아는 준남작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피가 흐르는 상처에서 피를 닦아냈다.


“출혈이 심하다.”


“나도 알거든.”


실비아는 그 상처에 준남작은 모르는 약을 뿌리더니, 곧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늘과 실로 상처를 꿰메기 시작했다.


“사람이 고깃덩어리로 보이는 것이냐? 배가 터질 때까지 속을 채운 칠면조도 아니고······.”


“학교에서 배웠거든!” 실비아가 상처를 꿰매며 말했다. “정규 교과는 아니지만, 내가 손재주도 좋고 재능도 있다면서 특별히 나한테 더 가르쳐줬어.”


“쓸데없는걸 배워왔구나. 의사들이 하면 될 일을······.”


“난 만족해. 거기서 투정이나 부릴거면 딴데 가든가. 혼자 알아서 잘 하고 있는데 왜 시비야? 자, 다 됐어요.”


실비아는 그새 상처 하나를 다 꿰매고는, 상처 위에 다시 무슨 약을 바르고 다음 환자에게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실비아. 귀족이면 달리 귀족답게 할 일이 있지 않느냐?”


“사람들 부리는 건 아빠가 하고 있잖아? 내가 거기 끼어서 뭐해?”


준남작은 실비아에게 뭐라 말하려다가, 그녀의 지적이 뜻밖에 타당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바쁘게 움직이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실비아에게서 조금 낯선 느낌을 받아, 금새 그 자리를 떠버렸다.




임시 병동을 벗어난 준남작은 이번에는 아직 화물 상자들이 위태롭게 남아있는 항만으로 돌아갔다.


“잘 돼 가나?”


준남작은 인부들을 통솔하여 상자들을 일사불란하게 옮기고 있는 올리버에게 물었다.


“일단은 그렇기는 한데, 솔직히 저 무더기는 건드릴 엄두가 안 나는군.”


올리버는 위태롭게 쌓인, 판자와 막대로 겨우 지탱하고 있는 무더기를 가리켰다.


“저 아래에도 분명 누가 깔렸을텐데······.”


“기중기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있었어도 붙박이라 별 소용은 없었겠지만.”


올리버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시 인부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뭐 뾰족한 수라도 있나?”


“없어. 그럴 때는, 몸으로 때워야지.”


올리버는 준남작을 향해 씩 웃은 다음, 그 위험한 화물 상자를 감히 건드리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그 상자들은 위태로운 모양으로 쌓여있었기 때문에, 올리버가 그것을 건드릴 때마다 무너질듯 휘청거렸다. 상자가 무너져내리면 올리버는 가장 먼저 깔릴 것이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겁먹지 않고 몸소 상자를 치우기 시작했다.


“목숨이 아깝지도 않나?”


“몸으로 때워야 할 때는 달리 방법이 없는걸. 그리고, 난 막말로 죽어도 별로 슬퍼해 줄 사람이 없어서. 하지만 ,저 사람들은 아닐거 아냐?”


“잘도, 태연하게도 그런 말을 늘어놓는군.”


준남작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올리버는 그의 말은 듣지도 않고, 그 사이에 상자 하나를 더 들어 옮겼을 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행복의 연금술 가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3 113화 21.12.03 25 1 24쪽
112 112화 21.12.02 24 1 23쪽
111 111화 21.12.02 26 1 22쪽
110 110화 21.12.01 27 1 24쪽
109 109화 21.12.01 24 1 19쪽
108 108화 21.11.30 32 1 22쪽
107 107화 21.11.30 27 1 23쪽
106 106화 21.11.29 28 1 25쪽
105 105화 21.11.29 24 1 22쪽
104 104화 21.11.28 29 1 23쪽
103 103화 21.11.28 32 1 23쪽
102 102화 21.11.27 27 1 23쪽
101 101화 21.11.27 22 1 21쪽
100 100화 21.11.26 25 1 20쪽
99 99화 21.11.26 24 1 23쪽
98 98화 21.11.25 26 1 19쪽
97 97화 21.11.25 25 1 19쪽
96 96화 21.11.24 26 1 20쪽
95 95화 21.11.24 24 1 20쪽
» 94화 21.11.23 29 1 19쪽
93 93화 21.11.23 23 1 18쪽
92 92화 21.11.22 29 1 21쪽
91 91화 21.11.22 24 1 19쪽
90 90화 21.11.21 26 1 21쪽
89 89화 21.11.21 25 1 22쪽
88 88화 21.11.20 25 1 20쪽
87 87화 21.11.20 31 1 23쪽
86 86화 21.11.19 27 1 22쪽
85 85화 21.11.19 27 1 23쪽
84 84화 21.11.18 27 1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