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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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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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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3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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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107화

DUMMY

펠릭스는 마당으로 나와 햇살을 쬐고 있는 커다란 도마뱀 옆에서서 쉴새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열린 현관문으로 그걸 지켜보던 실비아는, 스케치를 완성하고 수첩을 덮은 다음 현관으로 나갔다.



“뭐해요?”


실비아의 말을 듣지도 못한듯, 펠릭스는 계속 뭐라 주절거리기만 했다. 호기심이 동하여 실비아는 펠릭스의 등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 그가 뭐라고 하는지 엿들었다.



“음. 돌핀, 실, 크릴, 아니야. 좀 더, 커다랗고 새파란 무언가······.”



“뭐해요, 펠릭스?”



“으악!” 펠릭스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실비아! 인기척을 내야죠. 뭐하고 있었어요 여기서?”



“아까 불렀거든요. 자기가 못 들어놓고.”



실비아가 가까이 다가오자 도마뱀은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고 두어번 꿈뻑였다.



“아무튼. 왜요?”



“그냥 당신이 뭐하고있나 궁금해서 와 봤어요.”



“이름 짓고 있죠 뭐.”



“이름이요?”



“네. 이 도마뱀. 제가 키우게 되었으니, 그럴듯한 이름 하나 붙여줘야 하지 않겠어요?”



실비아는 도마뱀을 힐끔 내려다보았다.



“당신을 따르던가요?”



“네! 봐요!”



펠릭스는 허리를 굽히고는 손을 뻗어 도마뱀의 등을 슬슬 쓰다듬었다. 그러자 도마뱀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어때요?”



“그냥 당신을 무시하고 있는거 아니에요?”



“꼭 그렇게 섭섭하게 말 해야겠어요?”



실비아는 펠릭스의 얼굴을 힐끔 보고는, 조금만 더 놀렸다가는 그가 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기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났다.



“왜요?!”



“아니, 아니에요 아무것도. 하여튼, 그래서. 뭐라고 이름붙일건데요?”



“고르고 있어요. 뭐 그럴듯한 이름 없나?”



“파란색이니까, 파랑이는 어때요?”



펠릭스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실비아를 보았다.



“실비아. 복실이도 그렇고, 이름 짓는 감각이 아주 시대에 뒤쳐지는군요.”



“복실이가 뭐 어때서요! 정말 복실복실했거든요?!”



“하지만, 얘는 전혀 복실거리지 않는다고요.” 펠릭스는 도마뱀을 내려보며 말했다. “얘는 어느쪽이나면, 거칠고 딱딱한 편이죠.”



“몰라요. 알아서 지어요.”



그러자 펠릭스는 다시 두서없이 단어들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안으로 돌아온 실비아는 가볍게 투덜거리며 부엌으로 곧장 가서, 그녀가 좋아하는 사랑초를 섞은 홍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올리버가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쯤 부엌 뒷문을 벌컥 열며 올리버가 들어왔다.



“올리버. 아침부터 어디 다녀왔어요?”



“펠릭스 편지 심부름.”



올리버는 손에 들고있던 편지봉투 두 개중에서, 새하얀 것을 실비아에게 내밀었다.



“네?”



“에밀리아 콘월이 네 앞으로 보낸 거다.”



실비아는 봉투를 받아들고 익숙한 언니의 필체를 손가락으로 가만히 훑어보았다.



“고마워요 올리버!”



“고맙긴. 어이, 펠릭스! 편지왔다! 어디갔어?”



“밖에요. 마당에 가 봐요.”



“마당에는 왜?”



“도마뱀 이름 붙인다고 그러고 있던걸요.”



“그래? 거 참.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올리버는 아리송한 얼굴로 가게를 가로질러 마당쪽으로 나갔다.






그리고 올리버가 밖으로 나가자, 실비아는 조심조심 편지의 봉인을 뜯고 봉투를 열어보았다. 안에 곱게 접혀 들어있던 종이를 꺼내 실비아는 차근차근 편지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실비아에게······’



편지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에밀리아의 손글씨를 읽은 실비아는 금새 감상에 젖은 얼굴로 가만히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마당에 나무가 잘 자라고 있다는 것, 남편 콘월 후작이 생각보다 늠름하고 멋진 남자라는 것. 그외 기타등등. 그리고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추신. 실비아. 아직 피아노를 좋아하니? 수도에서 피아노 콩쿠르가 열린다더구나. 혹시, 초대장을 받았니? 만약 못 받았다면, 내가 동봉한 초대장을 쓰렴.’



실비아는 편지지 사이에 숨어있던 조그만 종이를 꺼내 살펴보았다.



“언니, 고마워.”



실비아는 편지지와 초대장을 가만히 가슴 위에 올려놓고 중얼거렸다. 현관 쪽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요란한 소리가 들려 실비아가 현관 바깥을 살펴보니, 거기에는 도마뱀과 뒤엉켜있는 펠릭스가 있었다.



“아, 실비아. 좋은 아침.”



펠릭스는 도마뱀 밑에 깔려있었는데, 도마뱀은 의기양양한듯한 얼굴이었다.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예요?”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려 했죠.”



“무슨 소문이요?”



“도마뱀을 타고다니는 기사들의 소문이요.”



실비아는 도마뱀 아래에 깔려있는 펠릭스를 보고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헛소문이었나봐요.”



“그러니까요. 하여간, 소문은 믿을게 못 된다니까. 올리버. 이제 그만 구경하고, 저 좀 꺼내줘요.”



“무서워.”



올리버가 말했다.



“네?”



“도마뱀. 위험하잖아.”



“아니, 올리버. 당신은 체면도 없어요?”



“없어.”



그러자 펠릭스를 할 말을 잃었다.



“아 참. 실비아. 당신, 도마뱀이랑 말 좀 통하는것 같던데, 얘좀 치워봐요.”



그러자 실비아는 잠시 당황했다가, 모처럼 자기가 우위를 점한 김에 펠릭스를 조금 놀려주기로 했다.



“‘도와주세요 실비아 님’이라고 말하면 도와줄게요.”



“싫은데요.”



“그럼 알아서 수고해요.”



“아! 잠깐잠깐. 아, 알았어요. 아니, 그냥 가면 어떡해요? 야, 움직이지 말아봐. 아니, 실비아! 실비아! 도와주세요 실비아 님!”



그제서야 실비아는 뒤를 돌아보았고, 다시 도마뱀과 엉켜있는 펠릭스를 발견하고 풋 웃었다.






블루드래곤은 실비아가 공손하게 부탁하자 혓바닥을 낼름거리더니 슬금슬금 펠릭스의 위에서 내려갔다.



“어휴!”



겨우 도마뱀에게서 빠져나온 펠릭스는 옷을 털며 한숨을 쉬었다.



“왜 동물들은 다들 나를 싫어하는거람?”



“동물들은 누가 착하고 나쁜지 본능적으로 안다니까요.”



실비아는 꼴좋다는듯 펠릭스를 살짝 비웃어주었다.



“난 무시무시한 역병도 막았는데.”



“그렇지만, 성격이 비비 꼬여있잖아요?”



“내 성격이 어디가요? 제 성격은, 장인이 만들어 낸 바이올린의 현 만큼이나 뻣뻣하고 탱탱하게 쭉 폈거든요!”



“어련하겠어요. 그나저나, 펠릭스. 우리 수도에 갈 일 없어요?”



“당신 약은요?”



실비아는 시선을 피해버렸다.



“약 안 만들어요?”



“······만들기는 해야죠. 하지만! 펠릭스. 수도에서 콩쿠르가 열린댔다고요! 저, 거기 꼭 가고 싶었거든요.”



펠릭스는 올리버를 힐끔 돌아보았다. 그러자 올리버는 왜 자길 쳐다보냐는 눈으로 펠릭스를 보았다.



“가요, 그럼.”



“같이 가 줄건가요?”



“아니, 당신 혼자 가라고요. 저는 수도에는 별 볼일 없는데.”



“혼자 가긴 좀 그런데······.”



“왜요?”



실비아는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여자 혼자 가면 좀 안좋은 이야기가 나오는 자리라고 할까······.”



펠릭스는 아리송한 얼굴로 실비아를 쳐다보다가, 이내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고 기분나쁘게 씩 웃었다.



“아. 그러니까, 사교계에 나쁜 소문이 돌까봐서?”



“네. 그, 좀. 그렇거든요.”



“그래서, 제게 에스코트를 부탁한다?”



실비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올리버를 힐끔 올려보았다.



“뭐? 나?”



그러자 올리버는 화들짝 놀라며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아니, 보호자 해 달라는거예요. 둘 다,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그러자 올리버는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실바누스 준남작 있잖아.”



“아빤 바빠요.”



“달리 아는 사람 없어?”



“없어요.”



“콘월 후작은······.”



“저랑 별로 안 친해요.”



“친한 하인이나, 집사나 뭐 없어?”



실비아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올리버는 몇 가지 가능성을 더 떠올리다가, 이내 금방 포기해버렸다.



“알았어. 까짓거, 내가 해 줄게.”



“정말이죠?”



“그래. 내가 뭘 너 상대로 거짓말을 하겠어, 뭘 하겠어. 펠릭스. 괜찮지?”



“으음, 수도. 수도라. 역시, 저는 영 내키지가 않는군요.”



“왜요?”



펠릭스는 실비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왕국에서 나쁜것은 모두 북쪽에 있다는 말, 들어봤어요?”



실비아는 눈을 깜빡였다.



“저는 처음 들어봐요, 그런 말.”



“그런 말이 있어요. 아무튼, 수도도 북쪽에 있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영 껄끄럽다 이거죠.”



“그래도 수도인데 나쁠게 뭐가있어요? 아무튼, 펠릭스. 저 가고 싶단 말이에요. 네?”



“당신 약은요?”



실비아는 다시 입을 비죽이며 고개를 돌렸다.



“······잠시 계약 기간을 동결해 드릴게요.”



“정말 제멋대로군요.” 펠릭스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기간은 기간이에요. 당신 마음대로······.”



“아, 알았어요! 까짓 돈, 주면 될 거 아니에요? 얼마에요, 얼마면 돼요?!”



실비아가 화를 버럭 내자, 펠릭스는 웃으며 얼버무렸다.



“아, 알았어요. 좀 진정해요. 그냥 좀 놀린걸 가지고.”



“됐어요. 관 둬요! 저 혼자 갈 테니까.”



“실비아?”



그리고 실비아는 씩씩거리며 그녀의 큰 가방 안에다가 자기 물건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정말로 혼자 가려고요?”



“당신같은 사람이랑은 더 못 있겠어요.”



“벤투스 경의 편지는, 필요 없나요?”



“그것도 허풍이겠죠.”



배낭에 금방 짐을 다 싼 실비아는 배낭끈에 어꺠를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짠데.”



“당신같은 장난꾸러기를 어떻게 믿겠어요?”


그러자 펠릭스는 잠시 싱긋 웃고는 계단을 올라갔다. 실비아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그가 대체 뭘 하려나 지켜봐 주기로 했다. 곧, 펠릭스는 조금 낡은 종이 한 장을 팔랑이며 내려왔다.



그건 편지지였다. 그리고 그 빛바랜 편지지 위에는, 실비아가 존경해 마지않는 동화작가 벤투스 경의 필체로 글씨가 씌여 있었다.



“아니, 이건······.”



“맞다니까요?”



실비아는 고개를 휙 돌리고 펠릭스를 쳐다보았다.



“당신, 필체를 위조할 수도······.”



“아니!” 펠릭스가 버럭 외쳤다. “내가 재주꾼이기는 해도, 그런 재주는 없거든요!”



“어떻게 당신을 믿어요?”



그러자 펠릭스는 씩씩거리며 실비아의 손에서 편지지를 휙 낚아챘다.



“좋아요. 그렇게 나온다면, 그 ‘벤투스’경을 당신 눈앞에 데려다 주도록 하죠.”



“에이. 당신이 어떻게? 당신은 그냥 숲 속에 자리잡은 연금술사일 뿐이잖아요. 하지만, 벤투스 경은 세상 방방곡곡을 여행하는, 우아하면서도 신사적인 면모로 사교계를 휩쓸고 다니는 그런······.”



실비아가 거기까지 말 했을 때, 펠릭스는 배를 부여잡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펠릭스!”



“아니, 말 하는게 웃겨서 그만.” 그는 손등으로 눈물까지 맺힌 눈을 부비며 말했다. “아무튼, 진짜 그 벤투스라는 사람 보여줄게요. 그러니까, 좀 진정해요. 알았어요, 알았어. 그만 놀릴테니까.”



실비아는 못마땅한 눈으로 펠릭스를 곁눈질 하다가, 도로 배낭을 내렸다.



“환영해요.”



“퍽이나요. 아까, 그만 놀리기로 한 거나 잘 기억해요.”



“어이쿠. 알겠습니다.”



그리고 펠릭스는 실비아가 다시 배낭에서 주섬주섬 물건을 꺼내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슬쩍 현관문을 열고 다시 그 도마뱀의 곁으로 다가갔다.






“륑클, 잉크, 디프, 듀, 포레, 실바, 사우르······.”



그리고 펠릭스는 도마뱀 옆에서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뭐해, 펠릭스.”



“아, 올리버. 도마뱀 이름이요. 뭐 괜찮은 이름이 없어서요.”



“말고. 아까, 실비아랑 싸우는것 같더만?”



“아, 뭐. 갑자기 집에 가겠다고 그래서 말이죠. 여기까지 와서는, 아깝게.”



올리버는 잠시 생각했다.



“그래서?”



“그래서, 뭐 있는 말 없는 말 다 해 가며 말렸죠.”



“너도 알게모르게 정이 꽤 많이 들었나봐?”



“에이, 설마요.” 펠릭스는 기가 차다는듯 웃었다. “아까워서 그렇죠. 어쩌면, 내가 못 만드는 약을 만들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그동안 알게모르게 내가 가르쳐준게 얼만데요?”



“솔직하지 않기는. 그냥 정이 들었으면서.”



“제가요? 실비아한테? 에이. 그럴리가.”



펠릭스는 말도 안 된다는듯 올리버의 말을 일축한 다음, 다시 도마뱀을 향해 중얼거렸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현관문이 슬쩍 열리더니, 실비아가 밖으로 걸어나와 여전히 도마뱀 이름짓기에 열중하고 있는 펠릭스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끼악!”



“꺅!”



예상 못한 펠릭스의 반응에, 실비아는 자기가 더 놀라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뭐에요?!”



“아니, 펠릭스. 당신이야말로, 뭐에요?”



“뭐긴요. 도마뱀 이름 짓고 있었죠. 그러는 실비아. 당신은요? 깜짝 놀랐네.”



“그렇게 놀랐어요?”



실비아는 펠릭스를 놀래켰다고 생각하니 아주 고소하여, 실실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옷을 털었다.



“놀라죠, 당연히. 한창 집중하고 있었는데. 떠오를락말락 했단 말이에요.”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중요하죠!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데. 앞으로 얜 평생 그 이름으로 불릴 거잖아요? 그러니 ‘복실이’같은 성의없는 이름은······, 크흠. 아니에요.”



펠릭스는 실비아의 찌릿한 시선을 외면했다.



“아무튼, 수도에 같이 가기로 했잖아요?”



“네. 일단은.”



“그리고, 벤투스 경도 직접 보여주기로 했고요.”



“네. 그것도 일단은.”



“펠릭스! 믿어도 되는거죠?”



펠릭스는 꿍하니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언제 출발해요?”



“출발이라뇨?”



펠릭스가 실비아에게 고개를 돌리며 되물었다.



“수도로 가야죠. 좀 멀잖아요.”



“언제까지 가야 하는데요?”



“앞으로, 보자. 보름 남았대요.”



“에이. 보름이면 뭐. 느긋하게 가도 아무 문제 없어요. 요새 길이 얼마나 잘 닦여있는데.”



“그건 그렇지만······.” 실비아는 펠릭스의 옆얼굴을 힐끔 보았다. “당신하고 같이 다니면, 꼭 무슨 사고가 터지잖아요.”



“그건 내 탓이 아니에요.”



“누가 당신 탓이랬어요? 그냥 그렇다는거죠. 그러니까, 좀 일찍 출발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으으음······. 잉크, 잉크 색이랑 비슷한데······.”



실비아는 딴청을 피우고 있는 펠릭스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펠릭스! 내 말 무시하지 말고요!”



“으헉!”



펠릭스는 몸을 비틀며 실비아를 돌아보았다.



“얘 이름만 정해주고요.”



“그러니까, 나중에 정해도 되잖아요?”



“아니오! 지금 정해야죠! 우리 셋이 또 여행간다고 집 비우면, 얘는 누가 돌봐줘요?”



“······알아서 잘 살겠죠.”


“동네 사람들이 신고해요. 잡혀갈지도.”



“메를린한테 못 맡겨요?”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요!” 펠릭스가 손가락질까지 하며 말했다. “메를린은 이상하게 이름 붙인단 말이에요. 얘는 파랗고 딱딱하니까, ‘청돌이’ 이런 식으로.”



그 말을 들은 실비아는 자기도 모르게 풋 하고 웃었다.



“메를린. 그런 구석이 있네요?”



“아무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녀가 그렇게 이름 붙여버리면, 얜 평생 ‘청돌이’가 되는 거잖아요? 난 그런 이름 용납 못한다고요!”



“난 또. 무슨 대단한 이유라도 있나 했는데. 펠릭스. 하여튼, 당신한테 기대한 내가 바보죠.”



펠릭스는 실비아가 노골적으로 자기를 비웃고 있다고 확신했지만, 또 괜한 소릴 했다가는 그녀가 집에 가겠다고 짐을 쌀까봐 꿍하니 입만 다물었다.



“그러면 같이 생각이나 해 보죠. 어디보자. 뭐라고 부르는게 좋을까? 숲에서 찾았으니까, 제 이름을 따서 ‘실바’는 어때요?”



“절대 안 돼요. 이건 ‘내’ 도마뱀이라고요!”



“만지지도 못하면서.”



“만지거든요? 봐요. 자, 옳지······악!”



펠릭스가 손을 뻗자 도마뱀은 가만히 그의 손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채찍같이 혀를 내밀어 그의 손을 훑었다.



“아야!”



“것 봐요. 당신 도마뱀은 무슨. 아, 연금술 가게의 도마뱀이니까, 연금술과 관련된 이름은 어때요?”



“뭐 아는거나 있어요?”



펠릭스가 물으니, 실비아는 고개를 가만히 들어올리고 눈을 깜빡이며 잠시 생각했다.



“금? 황금이?”



“정말 끔찍한 상상력이군요.”



“전 연금술은 잘 모르니까요!”



뒤늦게 얼굴을 붉히며 실비아가 항의했다.



“좀 더 근본적인 뭔가를 찾아보자고요. 용을 닮았으니까 드라고? 하지만, 날개가 없으니 그것도 영 별로고.”



“파라니까 파랑이 어때요?”



“메를린과 당신이 죽이 잘 맞는 이유를 알 것 같군요.”



“뭐예요! 지금 또 놀린 거에요?”



“아니오.”



그리고 펠릭스는 다시 입을 다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얘는 뭘 할수 있을까요?”



어느 순간부터 이름 생각하긴 포기하고 가만히 구경만 하던 실비아가 말했다.



“뭐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얘랑도 공놀이를 할 수 있으려나요? ‘물어와!’ 라든가, ‘손!’이라든가, 아니면 ‘굴러!’라든가······.”



“해 보면 알죠. 손!”



그러나 도마뱀은 펠릭스의 눈을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굴러!”



도마뱀은 혀를 한번 날름거렸다. 그바람에 펠릭스는 몸을 움찔하며 뒤로 뺐다.



“형편없는 도마뱀 같으니.”



“제가 해 볼게요. 어디보자······아. 이거면 되겠다.”



실비아는 바닥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들고 도마뱀의 눈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물어와!”


그리고 실비아는 나뭇가지를 휙 집어던졌다. 그러나 때마침 맞바람이 불어, 그녀가 던진 나뭇가지는 날아가다 말고 그녀의 발치에 툭 떨어졌다.



“저 안웃었어요.”



실비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는데, 펠릭스가 먼저 실토했다.



“안 물어봤거든요!”



그리고 얼굴을 붉히며 실비아가 말했다.






블루드래곤이라 불리는 이 영물이 뭘 할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자, 펠릭스도 실비아도 의외로 이 큰 동물이 별로 쓸모가 없다는걸 금방 알아차렸다. 무언가를 훈련시켜 보려고 해도 눈만 멀뚱거릴 뿐이고, 애교도 눈꼽만큼도 없었다.



“펠릭스. 방금 든 생각인데요. 얘, 길들여 졌다고 말이나 할 수 있는 걸까요?”



나뭇가지나 밤, 도토리, 고무 공, 온갖 잡동사니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던 펠릭스가 조용히 말했다.



“일단, 날 싫어하는건 알겠군요.”



“왜 그렇게 동물들은 당신을 싫어할까요?”



“그럴 법도 하죠. 뭐, 이해는 가지만. 하지만! 억울하군요. 내가 재미로 짐승 잡아 죽이는 사람도 아니고.”



“뭘 했는데요?”



“예전에. 약 시험한다고 동물들을 의도치않게 좀 죽였죠.”



“얼마나요?”



“한, 백? 이백? 그 때 토끼가 마차 한개분에······.”



“펠릭스, 이, 이, 이! 잔인한 짐승 도살자! 실망이야! 어떻게, 그 귀여운 것들을······.”



펠릭스는 뒤늦게 실비아가 애완견을 키울 만큼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걸 깨달았다.



“아, 그거, 그거 다 사정이 있어서 그랬거든요! 그, 그 뭐냐. 붉은 가루 병이 돌았을 때, 그 때 그런거에요. 난 취미로 짐승 죽이는 사람 아니에요! 진짜, 맹세해요!”



그러자 실비아는 그제서야 주먹질을 멈추었다. 사실, 그녀의 손은 별로 아프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하여튼. 당신, 나중에 죗값 단단히 치를걸요.”



“뭐, 그러든가 말든가. 아무튼,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얘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러자 다시 실비아는 말이 없어졌다.



“저도 모르죠.”



“내 참. 오늘 중으로는 지을 수 있겠죠?”



실비아는 펠릭스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숲 속으로 사냥을 다녀온 올리버는, 도마뱀 앞에 멀뚱히 앉아있는 두 사람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뭐, 수도에 가니 마니 하더니만. 뭐해?”



“얘 이름 지어주고 있어요.”



올리버는 그리고 도마뱀과 두 사람 근처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잡동사니들을 보았다.



“이건 다 뭐고?”



“얘 훈련 시키려고 쓰던 물건이요.”



“똑똑하지?”



두 사람 모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올리버는 어깨를 으쓱하며 부엌 뒷문쪽으로 갔다.



“토끼랑 비둘기 한 마리씩 잡았어. 먹고싶으면 와.”



“네. 그럴게요.”



두 사람은 영혼없이 대답한 다음, 다시 이 금빛 눈을 끔뻑이는 도마뱀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줄곧 멀뚱히 엎드려 햇볕만 쬐고 있던 도마뱀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눈으로 도마뱀의 뒤를 쫓았고, 곧 도마뱀은 부엌 뒷문쪽으로 스르륵 기어들어갔다.



“초식이라면서요.”



실비아가 나직이 말했다.



“사실, 쟤는 희귀해서 별로 알려진게 없어요. 사실은 잡식이었을지도.”



두 사람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난장판을 외면하며 부엌으로 갔다.






부엌에는, 올리버가 구운 고기 조각을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는 도마뱀이 있었다. 올리버는 아주 만족스럽게 고기를 뜯어 주고 있었고, 도마뱀은 멀뚱히 그걸 받아먹고 있었다.



“먹보 같으니.”



“그러게요. 먹보네.”



도마뱀은 벌써 비둘기 고기는 다 먹어치운듯 했고, 이미 토끼 고기도 반 이상 먹어치운 뒤였다.



“그래요, 펠릭스. 먹보 어때요?”



“좋은 이름이네요. 포기야, 포기! 어휴. 이 먹보야.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올리버, 실비아. 난 메를린한테 먹보 좀 맡긴다고 편지 쓰고 올테니까, 그동안 여행 채비라도 해 둬요.”



“그래.”



올리버는 펠릭스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그 먹보 도마뱀에게 웃으며 먹이를 던져주고 있었다.






방으로 올라온 펠릭스는 테이블에 촛불을 켜고 종이를 꺼내 펜을 잉크에 푹 담갔다. 문득, 잉크병에 새겨진 글귀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로열 네이비.



“네이비! 그래, 그게 있었지! 내 참. 바보같은 펠릭스. 이걸 이제야 떠올리다니, 멍청하기는!”



그리고 펠릭스는 이제서야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는듯, 편지지 위에다가 춤을 추듯 글씨를 새겨넣고 순식간에 편지를 봉투에 봉인했다.



“네이비!”



그리고 봉투를 흔들며 펠릭스는 부엌으로 달려와, 불 옆에 엎드려있는 도마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네이비야!”



“네이비요? 별로 멋없어요.”



“아니, 실비아! 제가 쓰는 잉크 색이랑 얘 껍데기 색이랑 똑같거든요. 그 잉크 이름이 로열네이비인데, 얜 왕족은 아니니까 네이비. 어때요?”



“뭐, 당신 마음대로 해요.”



“그래. 야, 네이비, 잘 기다리고 있어! 내 친구가 당분간 널 돌봐줄텐데, 물면 안 된다!”



그리고 펠릭스는 신바람난 어린아이처럼 뒷문을 벌컥 열고 오솔길위를 달려가버렸다.



“저런 사람이 뛰어난 연금술사라니.”



“나도 가끔 그런 기분이 들긴 해.”



“세상은 조금 불공평하네요.”



“뭐 어때? 실비아 너도 귀족이고, 그리고 이 도마뱀이 널 따르잖아.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아?”



“그렇기는 하지만요.”



텅 빈 오솔길 사이로 바람이 부는 것을 보며 실비아가 조용히 말했다.



“그건 그렇네요. 하긴, 저도 꽤 특권이 있는 편이긴 하죠! 그래요. 부러워할것 없다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실비아가 대견스러워 올리버는 가볍게 웃었다. 그러나 그 도마뱀만큼은,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듯 여전히 멀뚱히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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