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조회수 :
6,015
추천수 :
188
글자수 :
1,774,925

작성
21.12.02 18:10
조회
25
추천
1
글자
22쪽

111화

DUMMY

북쪽에는 나쁜 것이 많다는 펠릭스의 말을, 실비아는 처음에는 그리 주의깊게 듣지 않았다. 지역차별적인 발언이라는 것도 그렇고, 사실 실비아는 북쪽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기껏해야 산이 많고 춥다는 것밖에는.



하지만, 실비아는 그런 산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벽돌로 닦인 도로는 커다랗고 흉악해 보이는 거대하고 뾰족한 바위산 골짜기 사이로 나 있어서, 그 길로 접어들자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그 산. 그것은 실비아가 살던 따뜻한 남동쪽의 부드럽고 색채로 범벅인 흙산과는 전혀 달랐다. 산에 남은 것은 잎사귀가 모조리 떨어져 나간 쓸쓸한 나무와, 아직 덮인 눈이 녹지 않은 고지. 그리고 바위 틈바구니에 종종 자라난 이끼와 잡초, 그것을 뜯기 위해 위태로운 곡예를 하는 산짐승이 전부였다. 그 무엇하나 보기 좋은 것이 없었다. 그곳은,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한 전쟁터였다.



“어때요?”



차창 밖의 음울한 풍광을 목도한 실비아에게, 펠릭스가 슬며시 웃으며 말을 걸었다.



“북쪽의 경치가 마음에 드시나요 아가씨?”



실비아는 평소처럼 펠릭스에게 톡 쏘아붙이려고 했지만, 그 잠깐 사이에 입이 북풍에 얼어버렸는지, 그녀는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펠릭스. 실비아를 너무 놀리지는 마. 북쪽을 처음 오는 사람들은 다들 저런 반응을 보이거든.”



그 대신이랄지, 올리버가 펠릭스에게 말했다.



“아, 하기야. 여기서 태어난 사람과는 사뭇 다르죠.”



펠릭스는 알겠다는듯 손을 깍지껴서 뒤통수를 받쳤다.



“뭐, 환영해요. 북쪽 땅은 손님을 그리 반기는 곳은 아니지만요.”



약간의 긴장을 눈동자속에 감추고는 팔자좋게 늘어지는 펠릭스를 바라보며, 실비아는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을 느꼈다. 그건 분명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좋은 것은 아니었다.






마차는 조용히 도로를 달렸고, 마차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실비아가 연금술 가게에 찾아온 이래로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리고 이곳에 찾아오기 전에는 너무나 흔히 느꼈던 바로 그 침묵. 이건, 단순히 무겁고 조용한 침묵 따위가 아니었다.



이건 좀 더 근본적인 침묵이었다. 허무, 부재, 무(無) 그 자체가 현실에 현현한듯한, 바로 그 침묵이었다. 예술가가 꿈틀거리는 발상을 싹틔우기 직전의 침묵이 아니라, 숨이 끊어질듯말듯 고통스레 색색거리는 병자의 한숨과 또다른 한숨 사이의 그 침묵이었다. 창문을 열면 가볍게 환기되는 것이 아니었다. 창문을 열어도 새로운 공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좁은 공간에 쌓이고 또 쌓여서 빗자루질로도 흩어낼 수 없는 그 무거운 침묵이었다.



“에취!”



하지만, 그 침묵도 펠릭스의 재채기 소리에는 못 당했다. 침묵을 쫓는 가장 단순하면서 확실한 방법은, 역시, 살아있는 사람의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휴.”



펠릭스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어찌됐든 펠릭스 덕분에, 그가 생기로 가볍게 떨리는 소음을 낸 덕분에 실비아를 짓누르던 침묵은 금새 흩어져 사라졌다.



“고마워요.”



“네?”



손등으로 코를 훔치며 펠릭스가 실비아를 돌아보았다.



“재채기가 고마워요? 아, 혹시 그건가요? 학교 가기 싫어서, 감기 걸린 친구한테 자기한테도 좀 옮겨 달라고 하는······.”



“됐어요, 펠릭스.”



그리고 실비아는 다시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고, 펠릭스는 다시 코를 훌쩍이더니 주머니를 뒤져 손수건을 꺼냈다. 그가 팽 하고 코 푸는 소리를 듣자, 비록 잠깐이었지만, 북쪽의 무시무시한 풍광이 실비아의 눈에도 잠시나마 조금 우습게 보였다.






한동안 아무런 문제 없이 달려가던 마차가 갑자기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실비아는 밖에 무슨 일이라도 났나 싶어 창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고, 펠릭스는 그런 실비아에게 한 마디 했다.



“눈보라라도 휘몰아치나요?”



“눈이 오려면 아직 멀었어.” 올리버가 조금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북쪽에 눈이 많다지만, 눈이 오려면 우선 구름이 끼어야지. 구름을 만들 정도로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기에는 아직이야.”



“척척박사로군요 올리버.”



올리버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래서, 실비아? 뭐예요? 설마 진짜 눈보라는 아니죠?”



“아니에요.” 도로 마차 안으로 돌아와 실비아가 말했다. “저 앞에, 무슨 검문이 있는것 같던데요? 천막 몇 개가 놓여 있고, 울타리도 세웠네요. 경비병 둘이 도로에 서 있고요.”



“흠. 어디서 탈옥이라도 한 건가?”



“아니면, 역병이라도 도는가보죠 올리버.”



펠릭스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역병이 돌면, 당신이 좀 도와줘요.”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실비아가 펠릭스에게 말했다.



“왜요?”



“연금술사잖아요?”



그러자 펠릭스는 히죽 웃으며 실비아에게 말했다.



“당신이 도와요.”



“제가요? 어떻게 제가 돕겠어요?”



“꽤 배웠잖아요, 그동안. 간단한 병이라면, 당신도 충분히 약을 만들 수 있어요. 뭐, 식중독이라든가······.”



“식중독이 역병이에요? 내 참. 차라리, 독감이라면 몰라.”



펠릭스는 실비아의 투정 쯤은 웃음으로 여유롭게 받아넘겼다.



“거기서 거기죠 뭐.”



그리고 마차가 점점 느려지더니, 마침내 마차는 길 위에 완전히 멈춰섰다.



“무슨 일인지 한번 물어나 봐요.”



“그러시든지. 하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전 안 도와줄겁니다.”



“하여튼. 마음대로 해요, 펠릭스.”



그리고 마차의 문이 벌컥 열리자, 세 사람은 차례대로 마차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펠릭스는 얼굴을 찡그리며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이 구조, 이 배치. 심지어는 이 냄새까지. 거슬리는것 투성이였다.



마부가 경비병 둘에게 둘러싸여 가볍게 조사를 받는 동안, 펠릭스는 이미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분명하게 이해했다. 새하얀 천으로 얼굴까지 가린 경비병들. 마찬가지로 쓸데없이 새하얀 천막. 기분나쁜 나무 타는 향내. 멀리 바람에 섞여 희미하게 들려오는 통곡 소리. 앓는 신음 소리. 이 공간 전체에 드리운 불길한 공기. 한 마디로, 여기는 역병이 도는 곳이었다.



“펠릭스······?”



“왜요?”



자기도 모르게 펠릭스는 짜증스레 실비아를 돌아보았고, 한 박자 뒤늦게 어색하게 웃었다.



“뭐, 볼일이라도?”



“볼 일은요. 그냥, 조용히 있길래요. 뭐 있어요?”



“아니, 뭐. 그냥. 딱히.”



그는 이 광경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긍지높은 연금술사로서, 도저히 납득 할 수 없는 단 한번의 실패. 붉은 가루 병이 돌았을 그 때도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이 냄새. 저 색깔. 그 소리. 시간과 장소가 바뀌었어도, 역병에 딸려오는 것들은 같았다.



“다음!”



“내 차례인가.”



경비병이 부르자, 올리버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아니, 제가 먼저 가도록 하죠.”



그리고 펠릭스는 실비아에게 노골적인 가짜 미소를 지어보인 다음, 올리버를 가볍게 제치고 앞으로 가서 경비병 사이에 섰다. 그리고 실비아는 어딘가 경직되어 보이는 펠릭스의 등을,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보았다.







펠릭스는 여행 증서와 신분 증명을 보여주고 가볍게 검문을 통과했다.



“무슨일이죠?”



그리고 자신의 신원이 확보되자마자 펠릭스는 경비병에게 가볍게 물어보았다.



“지명수배범이 도시를 탈출했다고 한다.”



“오, 그래요? 의외네요.” 펠릭스는 진심으로 말하며, 그 새하얀 천막들과 하얀 천을 두리번거렸다. “전 무슨 역병이라도 도는 줄 알았거든요.”



“역병도 돈다. 쭉 가다가 서쪽으로 빠지면 수선화 마을이 있는데······.”



“됐어. 뭘, 그런거까지 말 해.”



막 떠들려던 경비병은 동료의 말을 듣고는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통과야. 다음!”



“아, 저 사람들은 제 동료입니다. 제가 신원을 보증하죠.”



경비병들은 펠릭스와 실비아,올리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래도, 절차는 따라야 한다.”



“쳇. 꽉 막힌 사람 같으니라고. 알았어요. 대신, 쓸데없는 질문이나 심심풀이는 사절입니다. 당신 상관한테 일러바칠거예요.”



펠릭스는 경비병들이 자꾸 실비아를 힐끗거리는 것을 보고는 한 마디 해 주었다. 그러자 경비병들은 괜히 딴청을 피우며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다음!”






펠릭스는 경비병들의 뒤에 붙어서서 그들이 실비아에게 시비를 걸지 않나 감시했다. 정작 실비아는 별 생각도 없어보였는데, 그녀는 오히려 펠릭스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힐끗거렸다.



“뭐 묻었어요?”



그리고 올리버가 검문을 받는 동안에, 실비아가 펠릭스에게 물었다.



“안 묻었어요.”



“자꾸 빤히 보길래요. 뭔가 했죠.”



“기분탓이겠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 보고 있다는 착각.”



펠릭스가 일부러 얄미운 말투로 말을 해서, 실비아는 그를 한대 때려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펠릭스. 왜 검문을 하고 있대요?”



“안 물어봤어요?”



“네.”



실비아는 그리고 뒤를 흘끗 돌아보더니,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조용히 속삭였다.



“뭔가, 별로 말을 걸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아, 뭐. 그럴 수 있죠. 어디서 지명수배범이 탈출했다던데요.”



“세상에, 무시무시한 일이네요?”



“별로요.” 펠릭스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상식적으로, 지명수배 당한 사람이 멀쩡한 도로 위로 다니겠어요?”



“그럼, 더 위험한거 아니에요? 거친 숲 속을 방황하다가······.”



펠릭스는 실비아의 두 눈동자 위에서, 어느 낭만소설의 한 페이지를 본듯한 착각이 들었다.



“숲으로 들어가면 죽은 목숨이죠. 이 계절에, 이 시기에 이 북쪽에서 사람 사는 길을 벗어나면, 죽느니만 못한 꼴을 볼 걸요.”



“그런가요?”



“네.”



펠릭스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거리자, 실비아는 잠시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렇군요. 아, 그러면. 역병 같은건 안 도나봐요?”



“돈대요.”



말을 하자마자 펠릭스는 가볍게 후회했다.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으면 실비아도 더는 그를 채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말을 해 버렸고, 그리고 실비아는 예상한대로 펠릭스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좀 도와줘요. 연금술사면서.”



“싫-어-요.”



“펠릭스! 그 사람들은, 당신이 갖고 있는 그 조그만 지식과 약이 없어서 고통받고 있다구요! 가벼운 친절을 베푸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데. 싫다니요?”



“그 사람들은 가벼운 친절을 베풀어주면, 더 큰 친절을 원하거든요. 가령, 이런 식이요. 병상에 누워 골골대는 사람에게, 한쪽 다리를 저는 대신 병을 씻은듯이 낫게 해 주는 약을 먹여요. 그럼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제 손을 붙잡고는 손등에다가 말라비틀어진 입술로 감사하다며 키스를 퍼붓죠.



하지만, 제가 떠나고 한 이틀 정도만 지나면, 그들은 한쪽 다리를 절게 만든 돌팔이 연금술사가 온 마을을 망쳐놨다고 하늘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녀요. 차라리 약을 먹기 전이 나았을 거라고.”



그리고 펠릭스는 실비아가 방금 들은 말을 천천히 이해하도록 잠시 침묵했다.



“난, 그런 족속들을 구해주려고 연금술사가 된 게 아닙니다.”



그러자 실비아도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눈만 깜빡거렸다.



“됐죠?”



“아니, 저기, 펠릭스.” 실비아는 잠시 머뭇거리며 말했다. “당신, 그런 일을 겪어본 적 있어요······?”



“겪어 봤으면 어떻고, 안 겪어봤으면 또 어때요?” 펠릭스는 히죽 웃었다. “어쨌든,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이해했을 텐데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는다고요.”



“한 사람이라도 그런 놈이 있다는게 문제죠. 그래서야, 뭘 베풀어줘도 보람이 없잖아요. 안 그래요? 자기가 받은 것은 기억 못하고, 끝없이 남 탓만 하는 사람. 그런걸, 사람이라고 부를 수나 있나요?”



“펠릭스! 너무 나갔어요!”



실비아가 날카롭게 외치자, 저쪽에서 검문을 빙자한 잡담을 나누던 세 사람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뭐, 그냥 그렇다고요.”



시선 때문인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 펠릭스는 이쯤에서 꼬리를 말았다.



“하여튼. 펠릭스. 당신은 아무리 해 봐도······.”



그 때, 천막 걷히는 소리가 나더니 공기가 조금 바뀌었다. 그들 모두는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흰 천으로 얼굴을 덮지 않은 경비대장이 멀뚱히 서 있었다.



“무슨 일이지? 어, 선생님. 혹시, 연금술사 입니까?”



그는 펠릭스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에게 대뜸 걸어왔다.



“그렇다면요?”



“아, 혹시. 좀, 도와주실 수 없으십니까?”



“뭘요? 들어보고 판단하죠.” 펠릭스는 슬쩍 고자세로 나왔다. “저도 그렇게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은 아닌지라.”



“아,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벌써, 도와주고 계신 연금술사 선생님이 한 분 있거든요.”



경비대장의 말을 듣더니, 펠릭스의 두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럼 그분께 전적으로 맡기시지 그럽니까?”



“아, 그게. 좀······.” 경비대장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 천막으로 가서 이야기를 하시겠습니까?”



“그러시죠. 뭐. 보나마나, 그 연금술사. 제대로 일 처리를 못 하고 있어서 그런거죠?”



경비대장은 부끄럽다는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다음, 펠릭스를 천막 안으로 데려갔다.






천막 안에는 별게 없었다. 딱히 뭐 둘러볼것도 없고 하여, 펠릭스는 경비대장이 안내해준 대로 조잡한 간이 테이블에 바로 앉았다.



“대접할게 없어 죄송합니다. 제대로 된 진지였다면, 차라도 끓였을텐데.”



“괜찮습니다. 오히려, 오랜만에 연금술사다운 대접을 해 주시려하니, 그것만으로도 좋군요.”



펠릭스가 웃으며 말하자, 경비대장도 씩 웃었다.



“예전에는 연금술사들이 지금보다 존경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런 적이 있었죠. 그 때가 좋았는데.”



“그렇습니까. 저, 아무튼. 연금술사 선생님.”



“펠릭스 입니다.”



펠릭스가 웃으며 말했다.



“크흠. 알겠습니다. 펠릭스 선생님. 다름이 아니라······.”



“잠깐. 제가 맞혀 볼까요?” 펠릭스는 경비대장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역병을 어떻게 좀 해 달라고 부탁하려는거죠?”



“······바로 맞히혔습니다.”



“경비대에서 할 부탁은 아니잖아요?”



“크흠.” 경비대장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 마을에, 제 약혼자가 살고 있다보니.”



“아, 그런가요?”



“네. 그래서, 도움이 되어주고 싶기는 하지만. 보다시피, 얼마 전에 지명수배범이 이 근방에서 목격되었다는데, 그 사람을 붙잡기 전까지 저는 여길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펠릭스는 경비대장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그 먼 옛날의 해리어가 떠올랐다. 앞으로 무슨 일이 닥쳐올지도 모르고, 실실 웃으며 사랑 이야기를 하던 그 해리어.



“뭐, 가서 한번 봐 주는 것 정도라면. 그런데, 이미 연금술사가 그리로 떠났다면서요?”



“아, 그렇습니다. 벌써 한 달 정도나 되었는데, 그는 아직도······.”



그 때, 천막 입구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곧 천막이 걷히더니, 누군가가 안으로 두어발자국 걸어오다가 그대로 멈춰섰다.



뒤를 돌아본 펠릭스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금발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잘생긴 청년이 얼어붙은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다가, 봄날 눈녹듯 순식간에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펠릭스에게 걸어왔다.



“펠릭스.”



펠릭스도 그를 보더니, 히죽 웃었다. 하지만,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



“펠릭스. 너 맞아? 맞지?”



“노리스.” 펠릭스가 조용히 그의 이름을 말했다. “여기서 뭐하고있어?”



“야, 반갑다 펠릭스.”



노리스는 펠릭스의 질문을 무시하며 악수하려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펠릭스는 여전히 히죽 웃는 얼굴을 한 채, 그의 손을 맞잡아주지는 않았다.



“아, 뭐.” 그러자 노리스도 손을 거두었다.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것 같아서.”



“네 도움이?”



노리스는 경비대장을 턱짓했다.



“좀, 도와주고 있었거든.”



“그래?”



펠릭스는 노리스에게서 눈을 돌려, 경비대장을 힐끗 보았다.



“흠. 그래서. 뭐, 보고라도 하러 온 거야?”



“그렇지 뭐.”



“그래.” 펠릭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천막 밖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비켜줄게.”



“아, 그럴것까진 없는데?”



“아냐. 방해하긴 싫거든. 천천히 하고 나와.”



그리고 펠릭스가 천막 밖으로 휙 나가버리자, 경비대장은 노리스에게 물었다.



“친구 사이입니까?”



“뭐, 비슷하죠. 한 때, 같은 곳에서 같은 스승아래에서 배웠으니까요.”



“아하. 동문이군요?”



노리스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은 좀 어땠습니까? 병에, 좀 차도는······.”



“아하. 잠시만요. 그러니까······.”



그리고 노리스는 경비대장에게 무언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비대장은 사뭇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노리스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펠릭스가 천막을 거칠게 걷으며 밖으로 나오자, 실비아는 안에서 싸움이라도 했나 싶었다.



“가요.”



그리고 그말을 들은 실비아는, 실망감을 담아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펠릭스 당신은 어쩔 수가 없군요? 도무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펠릭스는 짜증스레 실비아에게 대꾸했다. “그 마을로 가자고요. 역병이 도는 마을로.”



“네?”



“뭐?”



그리고 병사들까지. 그들 모두가 조금 놀란 얼굴로 펠릭스를 돌아보았다.



“가자고요! 연금술사인 내가 직접 가봐야겠으니까. 자, 빨리요. 빨리! 어이, 마부! 어딨어요? 아, 당신들. 마을로 빠지는 길에 표지판정도는 있겠죠?”



실비아는 서둘러 떠날 준비를 하고있는 펠릭스를, 의아한 눈으로 힐끗거렸다.



“올리버.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던걸까요?”



“글쎄. 아니면, 아까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랑 관련있는 일일까?”



“그 사람은 펠릭스의 대스승님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옛 친구라든가, 뭐. 모를 일이지.”



“둘 다, 안 타요? 빨리 와요!”



벌써 펠릭스는 마차에 올라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뭐. 일단은 타자.”



“그래요.”



그리고 실비아와 올리버는 알쏭달쏭한 기분으로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에 올라타서도, 펠릭스는 계속해서 신경질적인 얼굴로 초조해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실비아에게도, 그리고 올리버에게도 아주 낯설었다.



“펠릭스. 왜 그렇게 안절부절 못해요?”



펠릭스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대뜸 마부 쪽으로 난 차창을 드륵 열었다.



“더 빨리 가요!”



그리고 펠릭스는 도로 차창을 드륵 닫았다.



“대답 안 해 줄 거예요?”



그래도 펠릭스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실비아는 뾰로통한 얼굴로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래요! 싫음 말든가요. 하여튼, 보나마나 또 당신 대스승님이랑 관련된 일이죠?”



“아니오!”



“꺅!”



갑자기 펠릭스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실비아는 깜짝 놀라버렸다.



“갑자기 그러면 어떡해요? 숙녀 앞에서. 좀 조심좀 하지.”



“아, 미안해요. 아니! 안 미안해요. 왜 자꾸 물어요?”



올리버는 무슨 병이라도 난 것처럼 오락락하는 펠릭스를 의아한듯 보았다.



“펠릭스. 너 왜그래? 이상한데. 정말 무슨 병이라도 났어?”



“병이요? 병이라니! 아니, 잠시. 잠시만.”



그러더니 펠릭스는 약병을 하나 골라내어 뚜껑을 열고 잠시 그 냄새를 맡았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휴. 역시나. 그 빌어먹을 개자식이.”



“펠릭스. 대체 뭔데요?”



“실비아, 올리버.” 펠릭스는 약병의 뚜껑을 도로 닫았다. “내 말 잘 들어요. 아까, 천막 안으로 들어간 그 금발머리 기억해요?”



두 사람은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에게, 뭔가 말을 걸어오던가요?”



“그냥 뭐. 이름이나, 어디로 가는지 묻던데.”



올리버가 대답했다.



“사실대로 말하지는 않았겠죠, 올리버?”



“응? 아, 아니. 잠시만. 사실대로 말 한것 같은데······.”



“쾅!”



펠릭스가 마차의 벽을 주먹으로 쾅 치자, 이번에는 마차를 몰던 말이 깜짝 놀랐다.



“미안해요!”



그리고 펠릭스는 다시 차창을 열어 한 마디 해 주었다.



“빌어먹을 놈이. 좋아요. 둘 다, 잘 들어요. 그놈하고 어떤식으로든 엮이지 말아요. 알겠죠? 절대로, 절대로요.”



실비아는 멀뚱멀뚱했다.



“왜요? 그 사람이 뭐라고······.”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줘요!”



펠릭스는 또다시 소리를 꽥 질렀다가, 뒤늦게 다시 그 약병의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대체 왜그러는거야, 펠릭스?”



“알았어요. 설명해 줄게요. 그놈 이름은 노리스. 저랑 같이 숲 속에서 연금술을 배운 동문이에요. 그리고······.”



펠릭스는 약병의 뚜껑을 도로 닫았다.



“내가아는 최악의 연금술사에요.”



“최악이요?” 실비아가 물었다. “실력이 형편없나요?”



“아니오. 실비아. 모든 연금술사가, 나나 메를린처럼 좋은 뜻으로 약을 만들지는 않아요. 놈은, 고통과 죽음의 약을 만들죠.”



“그럼 당신이랑 비슷하네요?”



갑자기 펠릭스는 어딘가 무시무시한 미소를 지으며 실비아를 쳐다보았다.



“그래요. 비슷하죠. 하지만, 그 근본이 달라요. 실비아. 내 말 잘 들어요. 절대, 절대로 그 노리스와 엮이지 말아요. 말도 나누지 말아요.”



그리고 펠릭스는 올리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올리버. 당신은 실비아 잘 챙기고요.”



“뭐, 그래. 대체,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노리스라는 사람. 대체 뭐하는 사람인데요?”



펠릭스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차창을 열고 고개를 밖으로 돌려버렸다.



“모르는게 나아요.”



“붉은 가루 병을 퍼트리기라도 했어요?”



“노리스는 그런 재주 없어요. 실력은 나만 못하니까. 하지만.”


펠릭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만약 할 수 있었다면 했겠죠.”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마차 안에는 다시 무시무시한 침묵이 감돌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행복의 연금술 가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3 113화 21.12.03 25 1 24쪽
112 112화 21.12.02 24 1 23쪽
» 111화 21.12.02 26 1 22쪽
110 110화 21.12.01 27 1 24쪽
109 109화 21.12.01 23 1 19쪽
108 108화 21.11.30 31 1 22쪽
107 107화 21.11.30 26 1 23쪽
106 106화 21.11.29 28 1 25쪽
105 105화 21.11.29 24 1 22쪽
104 104화 21.11.28 29 1 23쪽
103 103화 21.11.28 32 1 23쪽
102 102화 21.11.27 27 1 23쪽
101 101화 21.11.27 22 1 21쪽
100 100화 21.11.26 25 1 20쪽
99 99화 21.11.26 24 1 23쪽
98 98화 21.11.25 26 1 19쪽
97 97화 21.11.25 24 1 19쪽
96 96화 21.11.24 25 1 20쪽
95 95화 21.11.24 23 1 20쪽
94 94화 21.11.23 28 1 19쪽
93 93화 21.11.23 23 1 18쪽
92 92화 21.11.22 28 1 21쪽
91 91화 21.11.22 24 1 19쪽
90 90화 21.11.21 26 1 21쪽
89 89화 21.11.21 25 1 22쪽
88 88화 21.11.20 25 1 20쪽
87 87화 21.11.20 31 1 23쪽
86 86화 21.11.19 27 1 22쪽
85 85화 21.11.19 27 1 23쪽
84 84화 21.11.18 27 1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