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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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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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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59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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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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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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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98화

DUMMY

말발굽소리를 들으며 올리버는 어느덧 마차에 가까이 따라붙은 다섯 명의 마적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천으로 머리와 얼굴을 거의 감싸 눈만 겨우 보였는데, 그들의 눈동자를 볼 수 있을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올리버는 침착하게 펠릭스가 건네준 약병을 새총에 매기고 가까운 바닥을 겨냥하여 새총을 쏘았다. 그는 곧바로 펠릭스가 시킨대로 마차 안으로 들어가 차창을 닫았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말의 이히힝거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약이었는데?”


“빙결의 약이요. 병이 터지면 액체와 냉각 가스가 동시에 뿜어져나와 가까이 있는 것을 얼어붙게 만들어요.”


올리버는 다시 차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 얼음의 폭풍에 휩쓸려 마적 둘이 저 멀리 나동그라졌고, 남은 세명은 한층 더 험악한 눈으로 마차에 따라붙고 있었다.


“계속 따라오는데.”


“그래요? 이봐요!” 펠릭스는 마부를 큰 소리로 불렀다. “더 빨리는 못 가나요?”


“무립니다! 마차 무게도 있고. 여긴 사람도 넷이나 탔는데, 저놈들은 말 위에 혼자 타고 있지 않습니까?”


“하긴. 그럼, 보자. 뭐가 좋으려나······.”


올리버는 이런 상황에서 태연하게 약을 고르는 펠릭스는 내버려두고, 다시 상황을 확인하러 차창으로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그러나, 본능적인 위협을 느끼고, 그는 도로 얼굴을 마차 안으로 재빨리 집어넣었다. 그의 머리가 있던 곳으로 끝이 휜 칼날이 번쩍거리며 지나갔다.


“따라붙었네.”


올리버는 이제 마차와 나란히 달리고 있는 마적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는 가만히 움직이지 않다가, 순식간에 새총을 당겨 그에게 돌을 쏘았다. 그러나 그는 예상했다는듯 고개를 슬쩍 돌려 돌을 피하더니, 칼날을 차창 안으로 들이밀었다.


“왁!”


마차 한 가운데로 쑥 들어온 칼날에 베인 사람은 다행히 없었지만, 그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올리버. 잘좀 쏴요!”


“흔들리잖아. 그리고, 이크!”


또다시 날아드는 칼날을 올리버는 재빨리 피했다.


“뭐 없어 펠릭스?”


“좀, 있어봐요.”


펠릭스는 잠시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유리병 하나의 뚜껑을 열어 손 위에 탈탈 털더니, 차창 밖으로 휙 집어던졌다.


“뭐였어?”


갑자기 마차 밖에서 비명이 들리더니 또다시 말 한마리가 울음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벌레요. 가시누에 애벌레.”


“애벌레요?” 깜짝 놀라 실비아가 말했다.


“네.”


“아니, 당신, 애벌레를 갖고 있었어요?”


“생명력이 질긴 놈들이라. 쓸만한 데가 있을까 싶어서 가지고 다녔죠. 이런 용도로 쓸 생각은 없었는데. 아깝다.”


“아니, 애벌레랑 같이 여행을 다녔다니······꺅!”


남은 두 마적은 동료들이 쓰러져 단단히 약이 오른듯했다. 그들은 잠시 마차와 나란히 달리더니, 말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마부를 노리려나본데.”


올리버의 예상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아, 마부의 비명과 함께 마차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그럼 막아줘요, 올리버.”


올리버는 다시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새총을 겨냥했다. 그러나 놀란 마부가 갑자기 말 고삐를 돌린 탓에, 마차가 크게 기우뚱하여 올리버는 그대로 마차 밖으로 튕겨나갈뻔했다.


“으악!”


펠릭스와 실비아가 올리버의 옷을 붙잡아, 그는 겨우겨우 버텨냈다.


“운전 똑바로해요!”


“그럴 새가 어딨어요!”


“그건 그렇네. 준남작님. 뭐 뾰족한 수가 없습니까?”


그러자 실바누스 준남작은 허리에 찼던 레이피어를 슥 뽑더니, 잠시 마차의 벽을 가만히 보다가, 마차의 벽의 조그만 구멍으로 레이피어를 쑥 집어넣었다.


“끄악!”


가벼운 비명과 함께, 준남작이 레이피어를 도로 뽑아들자 또 한명의 마적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레이피어의 날 끝에는 선혈 한 방울이 맺혀있었다.


“솜씨 좋군요.”


준남작은 대꾸하지 않고 손수건으로 칼날을 슥 닦은 다음, 도로 조심스레 칼을 허리춤에 채웠다.


“한놈 남았는데. 올리버. 처리해요.”


“내 참. 가끔, 너는 날 너무 부려먹어.”


올리버는 툴툴거리면서도 마차 밖으로 다시 고개를 내밀어 새총을 조준했다. 마부를 향해 고함을 지르며 연신 칼을 휘두르는 마적과, 그 칼에 베이지 않도록 계속 몸을 피하는 마부 때문에 마차는 계속 덜컹거려 제대로 조준이 되질 않았다. 올리버는 숨을 참고, 맨질맨질한 돌맹이를 새총에 매겨 마적의 머리를 향해 쏘았다.


“으아!”


하필, 마부가 갑자기 고삐를 당겨 올리버의 공격은 빗나가고 말았다. 돌멩이는 마적의 귓가를 스쳤고, 마적은 다시 목표를 바꾸어 말고삐를 조금 늦추었다.


“올리버. 뭐해요? 빨리 들어와요!”


“끼었어!” 올리버가 몸을 버둥거리며 말했다.


“아니, 올리버. 끼었다고요? 큰일이네. 잠시만, 잠시만 있어봐요.”


“야 펠릭스! 저놈 저거, 날 노리나본데? 이봐! 말 좀 잘 몰아봐!”


올리버가 버둥거리는 것을 보던 실비아는, 무언가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반대쪽 차창 밖으로 위험천만하게 상체를 불쑥 내밀었다.




“실비아!”




준남작이 그녀를 붙잡았지만, 실비아는 이미 몸의 절반 가량을 마차 밖으로 내민 뒤였다. 곧, 딱-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또 한 명의 사람이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소리가 마차 밖에서 들려왔다.


“처리했어요.”


의기양양한 얼굴로, 마차 안으로 돌아오며 실비아가 말했다. 그러나, 그녀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실바누스 준남작의 호통이었다.


“실비아! 귀족으로서의 체통을 지켜!”


“왜! 올리버가 위험했잖아!” 실비아가 곧바로 맞받아쳤다.


“위험했다! 잘못하면, 네가 크게 다칠 수도 있었어!”


“나도 알아! 그래서 알아서 잘 했다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안 다쳤잖아.”


“실비아! 너는, 정말이지. 어릴 때부터, 대체 왜 그러는거냐? 왜 굳이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는거냐? 누가 옆에서 아무리 말을 해도 조금도 듣지않고 순 네 마음대로만 하려고 드는구나.”


“아빠도 자기마음대로 하잖아!” 실비아가 지지않고 외쳤다. “우리한테 뭐 말도 안 해주고. 혼자 훌쩍 가버리고. 가끔 집에 돌아오면 올 때마다 생각도 못한 말이나 하고. 내가 기숙학교에 다니고 싶었는줄 알아? 언니 결혼은 또 어떻고? 멀쩡히 잘 있던 하인은 또 왜 쳐낸건데?”


“다, 너희들을 위해 그런거야!”


두 사람이 돌연 싸움을 시작하자, 펠릭스는 조심스럽게 헛기침을 하며 점잖게 끼어들었다.


“자. 진정들 하시고.”


“빠져있어요, 펠릭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준남작의 따가운 시선과, 실비아의 매몰찬 냉대 뿐이었다.


“펠릭스. 나좀 끌어줘!”


그리고 올리버도. 올리버는 여전히 창틀에 어깨가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실비아와 준남작은 다시 싸움을 시작했고, 이 지긋지긋한 혼란을 못 견딘 펠릭스는 조용히 약병을 하나 꺼내들었다.




마차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실비아와 실바누스는 머리를 푹 수그리며 꾸벅꾸벅 잠들었고, 그들이 잠든 것을 확인한 펠릭스는 병의 뚜껑을 닫은 다음 마차의 차창을 활짝 열었다.


“펠릭스? 뭐야. 갑자기 조용해졌는데.”


“신경꺼요 올리버.”


손수건으로 코를 막아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펠릭스가 말했다. 그는 잠시 공기를 환기시킨 다음 손수건을 고이 접어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일단 마차 안의 혼란을 잠재운 다음, 펠릭스는 있는 힘껏 올리버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올리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는 재수없게 아주 단단히 창틀에 끼인듯했다.


“안 돼?”


“산호항구까지만 버텨요.”


“내 참. 경비병들이 보면 당황하겠군.”


“뭐, 어쩌겠어요. 수상해 보이기는 하겠네요. 그래도, 어찌저찌 다들 목숨은 부지했군요.”




마부는 바로 경비대에 마차를 멈춰세우고, 우선 경비병들의 도움을 받아 끼인 올리버를 구출했다. 그리고 펠릭스가 준남작과 실비아에게 향을 맡게 하자, 그들도 금새 잠에서 깨어났다.


“연금술사. 무슨 약을 쓴거냐?” 잠에서 깬 준남작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펠릭스를 의심하는 것이었다.


“따님과 싸우려 들길래, 둘 다 조용히 재웠습니다.”


“감히, 내게, 수면제를 쓴거냐?”


“가만히 놔 두었다가는 귀족으로서의 품위를 크게 해칠 것같아 그랬습니다. 그리고, 자는 동안 아무것도 안 했으니 걱정 마시길.”


준남작은 잠시 펠릭스를 노려보다가, 마차에서 풀쩍 뛰어내려 주변을 힐끗 돌아보았다.


“경비대에 왔군.”


“신고는 해야죠.”


펠릭스는 실비아의 잠을 깨우며 말했다. 그녀는 좀처럼 일어나려 하지 않았는데, 펠릭스가 계속해서 귀찮게 이름을 부르자 실비아는 대뜸 팔을 쭉 뻗어 펠릭스를 때리고 말았다.


“아야!”


“으응-!”


실비아는 크게 기지개를 켜더니, 뒤늦게 눈을 깜빡였다.


“아, 깜빡 잠들었네.”


“내 참.”


펠릭스는 뜻하지않게 얻어맞은 턱을 손으로 슬슬 문질렀다.


“당신, 잠버릇이 왜그렇게 고약해요?”


“네? 제가요? 아, 그러고보니. 왜 갑자기 잠든거지?”


“그 좁고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아버지랑 싸우려 들길래, 내가 좀 잠재웠어요.”


“네? 펠릭스. 그 말은, 제게 수면약을 썼다는 뜻이에요?!”


“걱정 마요! 아무짓도 안 했으니까. 당신 아버지랑 똑같은 소릴 하는군요. 부녀가 똑 닮았네.”


펠릭스의 말을 들은 실비아는 잠시 머뭇거리며 실바누스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튼, 내리기나 해요. 사막에서 마적들을 만난 일을 증언하고, 이제 경비대에서는 나가자고요. 오래 머물러 좋을 것도 없는 곳이니까.”


그리고 펠릭스는 준남작에게 걸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시간 좀 내 주시죠, 준남작. 할 말이 있으니.”


“뭐지?”


“있어보면 압니다.”


준남작은 여전히 넉살좋게 히죽 웃는 펠릭스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다가, 불편한듯 헛기침을 하며 먼저 경비대원에게 걸어갔다.




여관 식당에 앉아 음료 한 잔씩을 앞에 놓고 올리버와 실비아가 마주앉아 있었다.


“펠릭스는 이번에는 또 무슨 생각인거죠?” 음


료를 마시려다 말고, 도로 잔을 내려놓으며 실비아가 말했다.


“낸들 알아.”


올리버는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그나저나, 아깐 도와줘서 고맙다 실비아. 시퍼런 칼날이 눈앞에서 번쩍거리는데, 솔직히 좀 무섭더군.”


“올리버. 감사인사는 넣어둬요. 우리 사이에, 뭘 그런걸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실비아를 쳐다보다가, 올리버는 피식 웃었다.


“왜 웃어요?”


“아니, 그. 이렇게 말하면 좀 그런데, 너무 판에 박힌 말이라서.”


“아니, 올리버! 당신까지 펠릭스를 닮아가는 거예요?”


실비아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 뭐랄까. 낭만 소설에 나올 것 같은 말이라서, 좀 상투적이라고 할까, 그걸 실제로 말 하는 사람을 볼 줄은 몰랐다고 할까······.”


“됐어요! 하여튼, 다음에는 제 도움 기대하지 말아요.”


실비아는 씩씩거리며 음료수 잔을 집어들고 순식간에 반을 비워버렸다.


“그래, 그래야지. 어른이 돼서, 애들한테 손 벌릴 수는 없지.”


올리버도 실비아를 따라 음료수를 한 모금 꿀꺽 마셨다.


“그나저나, 실비아. 아까는 준남작의 말이 맞아. 너무 위험했어. 다음부터는, 그런 일 생기면 나서지 말아라.”


“당신도 아빠편이에요?”


실비아가 조금 울상이 되어 말했다.


“아니. 난 딱히 누구 편을 드는건 아닌데. 그냥, 잘못하면 네가 다칠까봐 그러는거지. 나야, 몸에 상처 한둘쯤 더 나도 별 상관없는데.”


올리버는 다시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네 고운 피부에, 상처라도 나면······.”


“제 몸이에요. 제가 알아서 해요.”


실비아가 새침하게 말했다.


“그걸 볼 때마다, 내가 죄책감이 들 거 아냐.”


올리버의 말을 들은 실비아는 금새 표정이 어두워졌다.


“뭐,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조금 몸 조심해. 나도 오늘처럼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안 하도록 애쓸테니까.”


“알았어요······.”


실비아는 머뭇거리며 음료 잔을 집어들다가, 다시 남아있는 절반을 단숨에 비워버렸다.


“하지만, 아빠는 너무해요.”


“준남작이? 왜?”


“항상 그렇다구요. 제가 아무것도 못 하도록 만들어요. 함부로 누굴 만나지도 못하게 막고, 밖에서 무슨 음식 하나 집어먹는것도 못 먹게 말려요. 누가 저한테 웃으며 말이라도 걸어오면, 당장 제 앞을 가로막고요. 너무하지 않아요?”


“그래?”


올리버는 눈을 끔뻑이며 잠시 생각했다.


“글쎄. 널 사랑해서 그러는거 아냐?”


“그럴리가요. 항상 저한테 화를 낸다고요. 아까도 봤잖아요? 화부터 내고. 그리고, 산호항구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저보고 잔소리부터하고.”


“그러게. 왜 그럴까?”


실비아는 빈 잔을 집어들고 슬렁슬렁 돌려, 바닥에 조금 고여있는 액체가 움직이는 것을 가만히 눈으로 쫓았다.


“어릴 때, 아무래도. 그 음유시인 때문에 그럴 거예요.”


“그 사람이 대체 무슨 짓을 벌였길레?”


“그러니까. 사실, 별것 아니기는 해요. 아빠가 오해한거기는 한데······.”


“혹시, 나한테 그 이야기 해 줄수 있을까?”


올리버는 어쩌면 펠릭스에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실비아에게 물었다. 대번에, 실비아의 얼굴 위에는 긴장과 두려움의 빛이 깃들었다.


“불편하다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 억지로 들을 생각은 없으니까.”


실비아는 두 손으로 잔을 붙잡고, 고개를 살짝 위로 들어올린채 잠시 생각했다.


“아니에요. 해 줄게요, 올리버. 당신도 제 이야기를 듣고 나면, 우리아빠가 달리 보일걸요.”


“기대되네.”


“너무 기대하지는 말고요.”


실비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올리버는 실비아가 조용한 목소리로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것을 주의깊게 들으며 이따금 고개를 끄덕였다.




산호항구 경비대에서 길고 지루한 증언을 마친 펠릭스와 실바누스 준남작은 이제서야 경비대 밖으로 걸어나올 수 있었다.


“어휴. 거, 귀찮게 캐묻기는.”


펠릭스는 공연히 바닥을 발끝으로 툭툭 차며 투덜거렸다.


“아니, 준남작님. 그렇다고 절 무시하고 그냥 그렇게 가시려고요?”


“할 말이 남아있나?”


실바누스 준남작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있죠. 아까 제가 종이에 열심히 써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 마적. 저는 짚이는데가 조금 있거든요.”


“그러면, 아까 경비대에서 말 했으면 될 것 아닌가. 왜 그때는 말 안하다가, 이제와서 내게 말하려는 것이냐?”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차차 설명해 드리지요. 다만, 그전에 우편국에 잠시 들렀으면 합니다만.”


준남작은 잠시 주변을 흘긋거리더니 펠릭스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너, 정체가 뭐냐?”


“연금술사입니다.”


펠릭스가 넉살좋게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준남작은 잠시 펠릭스를 노려보다가, 우편국이 있는 거리를 향해 몸을 휙 돌리고 앞장서서 뚜벅뚜벅 걸어갔다.


“거, 같이좀 가자니까요!”




우편국에 들어간 펠릭스는 오 분 정도 지나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빠져나왔다.


“아하, 필요한건 대강 갖춰졌습니다. 그래서, 어디 조용히 이야기 나눌 만한 곳이 없을까요?”


“조용한 곳이라면, 여관이 있지 않느냐.”


“그럼 올리버랑 실비아가 옆에서 기웃거릴텐데. 전, 그것까지는 원하지 않거든요.”


“그럼 항만으로 가지.”


“네? 거기요?”


“조용한곳 아니냐.”


준남작이 펠릭스를 힐끗 내려보며 말했다.


“바다의 파도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우리들의 말소리를 조용히 묻어주겠지.”


“일리있군요. 그럼, 그럽시다.”




펠릭스와 실바누스는 항만에 나란히 서서, 아무 말도 하지않고 먼 바다를 내다보았다. 물론, 펠릭스는 금새 바다구경이 질려 준남작의 얼굴을 힐끗힐끗 살펴보았다. 그의 얼굴은 적당한 미남형이었는데, 세월의 파도가 휩쓴 탓인지, 얼굴 곳곳에 고난의 흔적이 그대로 서려있었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싶은거냐, 연금술사?”


“아. 그거야, 당연히 마적들 이야기죠. 마차 안에서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준남작은 펠릭스를 돌아보았다.


“그래요. 마적들이요. 왜 갑자기, 왜 이시점에, 왜 공교롭게도 우릴 습격했을까요? 저는 거기에 아주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추측했습니다.”


준남작은 펠릭스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준남작의 추임새를 기다리던 펠릭스는, 헛기침을 하고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준남작님 말대로, 이곳 산호항구의 마적들은 누군가의 후원을 받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누가?”


“방울뱀.” 펠릭스가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준남작님은, 그 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웨일.” 준남작이 말했다. “웨일 가문은, 배신자에게 독사를 보낸다고 하더군.”


“잘 아시는군요. 그 웨일이겠죠. 웨일의 독사가 있다는건, 다시말해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웨일과 거래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봐도 되겠죠?”


“그렇겠지.” 준남작이 중얼거렸다.


“자, 그러면 말입니다. 그 독사를 받은 사람은, 말도 없이 사막 한가운데서 뭘 하고 있었을까요? 저는 그가 일종의 교섭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적들과 웨일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그런 사람 말이죠.”


“그런데?”


“그런데. 거래에 문제가 생겼겠죠. 저는 모릅니다. 뭐, 마적들이 쓸데없는 짓을 벌였겠죠? 거래는 파기되었고, 그들에게 떨어지던 웨일 가문의 달콤한 꿀물은 이제 말라버렸습니다. 마적들이 뭘 하겠습니까?”


“글쎄.”


펠릭스는 어딘가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박살난 계약서를 도로 짜맞춰야죠. 그 웨일 가문의 눈 밖에 났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그들이 더 잘 알겁니다. 웨일을 설득할만한 뭔가가 그들에게 아주, 절실하게 필요했을 겁니다.”


“그게 뭐지?”


펠릭스는 실바누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곳, 산호항구에서 새로운 돈벌이를 찾는 사람이 있잖습니까. 그의 사업을 받아내어 웨일에게 넘겨주면, 어쩌면 그 수전노 공작가가 이번만은 특별히 용서해 줄지도 모를 일이죠.”


“난, 내 사업을 아무에게나 넘기지 않아.” 준남작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렇죠. 바로 그래서 문제가 생겼을 겁니다. 준남작님. 이곳에 머무는 한달 남짓한 시간동안, 당신을 방해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까?”


준남작은 펠릭스를 노려보았다.


“마적이 언제부터 기승을 부리던가요?”


“네 주장은 터무니없어.”


“정 의심스럽다면.” 펠릭스는 웃으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를 따라오시든가요.”


“어디로 가는거냐?”


“알 만한 사람에게 물어보러 갑니다.”


펠릭스는 위험천만하고 수상해 보이는, 적색과 녹색 그리고 청색이 섞였지만 아주 섞이지는 않은 약병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빌어먹을 연금술사가. 대체, 어디서 누구한테 뭘 듣고 온 거지? 네놈. 정체가 뭐냐?”


“그냥, 연금술사입니다. 자그마한 마법과 요술을 부릴 줄 알죠. 어떻습니까, 준남작님. 당신도 제가 이렇게 떠드는걸 가만히 듣고있느니, 알만한 사람이 해 주는 증언을 들어보는게 좋지 않습니까?”


“그, ‘알만한 사람’이 대체 누구지?”


“달리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들이랑 가까이 지내면서, 사막 한 가운데로 우리를 데려가도 아무런 의심도 안 받는사람.”


준남작은 펠릭스의 말을 금새 이해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펠릭스의 뒤를 따라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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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89화 21.11.21 25 1 22쪽
88 88화 21.11.20 25 1 20쪽
87 87화 21.11.20 31 1 23쪽
86 86화 21.11.19 27 1 22쪽
85 85화 21.11.19 28 1 23쪽
84 84화 21.11.18 27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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