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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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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1
추천수 :
188
글자수 :
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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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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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95화

DUMMY

실비아와 올리버, 그리고 실바누스 준남작은 사고 현장에서 각자의 일을 할 수 있는 데까지 했다. 화물 상자도 대강 모두 치워졌고, 부상자들이 분류되어 부상의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처치가 내려졌다.




하지만, 화물 상자에 직통으로 깔려 죽은 사람도 두 명 있었다. 그리고 꺼져가는 숨을 있는 힘을 다해 붙잡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실비아도 올리버도, 그리고 실바누스 준남작도, 현장을 지원하러 나온 산호항구의 경비원들도,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방도는 마땅찮았다.


“봐라, 실비아.”


준남작이 목숨줄이 달랑달랑하게 붙어있는 중상자를 힐끗 내려보며 말했다.


“연금술사들은, 정작 책임을 져야 할 때면 꽁무니를 내빼고 도망쳐버린다.”


“펠릭스는 그런 사람 아니야.”


실비아는 중상자를 살펴보다가, 들리지 않게 한숨을 쉬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꿰매지 않나?”


“이 사람은, 그런 문제가 아니니까.”


실비아가 웅얼거리듯이 말했다.


“상자에 깔리면서, 피부 아래 뼈랑 장기가 뭉개진것 같아.”


“끝났군.”


준남작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건 연금술사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그래도, 펠릭스라면 또 모르니까······.”


실비아의 말을 들은 준남작은 아주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딸을 보았다.


“실비아. 왜 그렇게 연금술사들을 믿는거냐? 아니, 넌 어째서 그렇게 사람들을 쉽게 믿어버리는 것이냐?”


“왜그래, 갑자기?”


“실비아. 너는 살면서 배신을 당한 적이 없나? 실망한 적이 없나?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 빌어먹을 음유시인과 연금술사가 아니었더라도, 분명 너도 배신도 당하고 또 실망도 했을 테지. 그런데.”


준남작은 잠시 실비아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너는, 왜 그렇게 사람을 쉽게 믿고, 또 일단 믿기 시작하면 끝까지 믿어 주는거냐?”


“왜? 믿어주면 안돼? 그럼 아빠는, 왜 그렇게 못 믿어주는데? 나도 못믿어, 언니도 못믿어, 연금술사도 음유시인도 하인들도 못믿어, 같이 사업하는 친구도 못믿어, 그럼 아빤 대체 뭘 믿고 사는건데?”


준남작은 한숨을 푹 쉬더니 몸을 돌려 임시 병동을 빠져나가버렸다.


“봐. 또 그렇잖아. 설명도 안 해주고 그렇게 가버리면, 내가 뭘 알아? 뭘 알려줘야 아빠 말을 믿든말든 할 거 아냐······.”


실비아는 준남작의 등에 향해 울먹이며 중얼거렸지만, 준남작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듯 했다.




임시 병동을 빠져나온 준남작은 경비대원들에게 가볍게 증언을 하고, 현장 상황의 정보를 그들과 공유했다. 즉, 사고는 순전히 우연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 항만은 거의 안정을 되찾았다는 것, 부상자들에게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 것과, 이 모든 일이 실바누스 로즈베리 준남작의 지휘 아래 이뤄졌다는 것이었다.


경비대원들은 준남작의 증언을 확보한 뒤로 현장을 한번 죽 둘러보고는 도로 돌아가려 했다.


“아니, 기껏 와 놓고 그냥 가려는건가?”


“하지만, 준남작님. 이미 현장은 질서를 되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경비대원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들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는군요.”


“시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것이, 너희들의 임무 아닌가?”


“맞습니다만, 이미 이곳 시민의 안전과 재산은 보호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저희들은 달리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준남작은 불만스러운 투로 그들에게 물었다.


“항만에서 난 사고보다 중요한 일인가?”


“사막에서 마적들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터무니없군.” 준남작이 경비병의 말을 일축했다. “산호항구는 두터운 성벽이 지켜주고 있는데, 까짓 마적 떼가 두려운가?”


“첩보가 들어와서 말입니다. 듣자하니, 마적들을 후원해주는 정신나간 사람이 있다더군요. 그래서, 우리 경비병들도 만전을 기하려고 합니다.”


준남작은 그들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 알았다.”


하지만 준남작은 그들을 돌려보내기로 했다. 여긴 그의 작위를 인정해주는 국왕의 손길이 닿지 않는, 머나먼 서쪽의 땅이었기 때문에.




경비병들과 가벼운 입씨름을 끝낸 준남작은 다시 항구를 둘러보았다. 그 혼란의 도가니는 하룻밤사이 꿈처럼 사라지고, 항구에는 여느 때와 같은 질서가 자리잡고 있었다. 다만, 임시 병동에 누워있는 부상자들만이 한때 이곳에서 사고가 일어났음을 짐작케 해줄 뿐이었다.


“내가 내 손으로 일궈낸거야.” 준남작이 중얼거렸다. “내 능력으로, 내 능력 덕분에, 내 손으로 일궈낸······.”


그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이 새햐얘지다못해 그 위에 발간 피가 맺힐 때까지, 준남작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가 표정을 바꾼 것은,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넉살좋게 웃으며 뛰어오는 연금술사를 보았을 때였다.




펠릭스는 이번에도 수상한 약을 주렁주렁 들고왔다. 그는 실비아의 설명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서, 순전히 자기 마음대로 부상자들에게 약을 들이밀었다.


“아니, 펠릭스! 제가 다 분류해놨다니까요? 이쪽 줄에는 경상자고, 저쪽 줄에는······.”


그러자 펠릭스는 실비아를 휙 돌아보며 말했다.


“실비아. 오른손 손목에 금이 간 것과, 왼쪽 발목이 부서진것. 뭐가 더 중한 부상이죠?”


“발목이 부서진거죠. 금 간 손목은 금새 낫잖아요?”


“하지만, 금 간 손목이 제대로 낫지 않으면, 그사람은 평생 외팔이로 살아야겠죠. 상상만해도 불편한걸요. 다리야 목발이 있다지만, 글쎄, 손은요?”


펠릭스의 말을 들은 실비아는 그에게 반박을 하려다가, 차마 말을 하지는 못했다.


“그렇죠? 당장 저만해도 이 다리로 꽤 걸을 만 하니까요. 하지만, 손은 아니죠.”


“아니, 그래, 알았어요. 그래서 아까부터 무슨 약을 들이밀고 다니는 거예요?”


실비아는 펠릭스의 약을 먹고 연신 고통스레 기침을 해 대는 환자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막 또 한 명의 환자가 펠릭스의 약을 마시더니, 고통스레 기침을 해 대었다.


“약이 좀 독해서 그래요.”


“뭔데요?”


“대충 그냥 뼈 붙고 새살 돋아나는 약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급하게 만든거라 맛이니 질감이니 따위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으니까.”


펠릭스는 미안한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자기가 만들어낸 끔찍한 맛의 약을 사람들이 마시면서 고통스레 기침하는 장면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디, 아니. 이사람들은 큰일났네. 이봐요. 정신 들어요?”


펠릭스는 가장 부상이 심각한 사람에게 도착했다. 그는 부상자의 입 안에다가, 그 때 뱀에게 물린 사람의 입에 흘려넣었던 것과 같은 약을 흘려넣었다. 진한 오랜지 빛의 조금 걸쭉하고 말랑말랑한 느낌이 드는 액체가 남자의 입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러자 남자의 흐리멍텅한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의식이 들어요? 아픈가요? 배에 통증이 느껴져요?”


“으······살려줘······너무 아파······.”


“아하. 통증이 느껴진다니. 아주 고무적이군요. 어디, 잠시 보자······자, 이거다!”


펠릭스는 도박장에서 카드를 뽑는 사람처럼, 주렁주렁 달고온 약병들을 슥슥 훑다가 그중 하나를 쑥 뽑아내 뚜껑을 퐁 열고 대뜸 남자의 입 안에 쑤셔넣었다.


“읍······.”


“자, 삼켜요 삼켜. 쭉 삼켜요. 맛 없죠? 나도 알아요. 아, 뱉거나 토해내면 당신 목숨도 그걸로 끝입니다. 죽을 각오로 삼켜요!”


펠릭스는 그의 입에 약병을 들이밀고 억지로 목을 젖혀 약을 흘려넣었다. 남자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이상한 소리를 계속 냈지만, 펠릭스는 그를 단단히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다 삼켰어요? 됐어요. 다행이네요. 자, 이제 여기 가만히 누워있어요. 한 이틀정도는 가만히 누워있는 편이 좋을겁니다. 괜히 움직였다가는 뼈가 어긋나거나, 장기에 상처가 날 지도 모르니까.”


“펠릭스.”


실비아가 그에게 다가와 환자를 살피며 물었다.


“약으로 그런 상처도 낫게 할 수 있어요?”


펠릭스는 빈 약병을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분한 재료와 뛰어난 실력, 그리고 조금의 영감이 있다면요.”


“아니, 그래봤자 약 아니에요? 식물이나 벌레, 돌멩이, 정체모를 동물의 신체 일부를 섞은 것에 그정도로 엄청난 효능이 있다고요?”


“마음가짐!”


펠릭스가 주먹으로 실비아의 가슴 한가운데를 톡 치며 말했다.


“네?”


“마법을 부리고 싶다면, 마음가짐을 달리 먹어요 실비아. 연금술사를 뭐라고 생각하는거죠? 우리는 수학자가 아니에요. 정교하고 복잡한 계산을 통해 약을 만드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그래서는 절대 최고가 될 수는 없죠.”


펠릭스는 병동에 누워있는 환자들을 죽 둘러보았다.


“마법을 부리고 싶다면 마법사가 되어야지,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어떻게 마법을 부려요? 나는 대스승님의 말을 따라, 숫자와 그림과 복잡한 도식을 뛰어넘는 훈련을 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뛰어넘었고, 그 결과 이런 요술도 부릴 수 있게 된 거죠. 어때요?”


펠릭스는 다시 환자들을 죽 둘러보았다. 그들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보다, 훨씬 안정되어 보였다. 개중에는, 조금 위험하게도, 부목으로 기껏 고정해둔 팔이며 다리를 움직여보려 하는 사람도 있었다.


“거기! 움직이지 마요!”


그걸 보자마자 실비아가 쏘아붙이듯 말하자, 그들은 아무것도 안한 척 도로 가만히 누워버렸다.


“자, 그럼 됐죠? 이제 여기서 제가 더 할 일은 없겠죠?”


“그렇네요.”


실비아는 조금 못마땅한 얼굴로 펠릭스를 보았다.


“왜요?”


“당신. 성격이 조금만 더 좋았으면, 정말 존경받을 만한 연금술사였을텐데.”


실비아가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


“하, 칭찬인가요?”


“몰라요.”


실비아는 잠시 병동을 살펴보더니, 거기서 그녀가 더이상 할 일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자리를 옮겼다.




병동 바깥에는 준남작이 조그마한 책상을 세워두고, 항만 노동자들을 일렬로 줄세워 무언가를 받아적고 있었다. 펠릭스는 그를 발견하자마자 뚜벅뚜벅 그에게 걸어가 책상 근처를 얼쩡거리며 괜히 신경쓰이도록 소리내어 기지개를 켰다.


“휴! 저 많은 부상자들에게 약을 지어 먹이려니, 저로서도 꽤 힘든 일이로군요.”


준남작은 종이에 뭘 받아적다가, 펠릭스를 힐끗 보고는 다시 하던 일에 열중했다.


“온 몸이 엉망진창인 남자도 있던데, 아마 오늘 밤에 고열이 펄펄 끓을 겁니다. 하지만 내일 아침이 된다면 고통이 가라앉겠죠. 그리고 내일 저녁이 되면 멍이 줄어들기 시작할테고. 아마 일 주일쯤 지나면 쌩쌩해 질겁니다.”


“방해된다.”


준남작이 종이를 둘둘 말아 묶은 다음, 다음 사람을 불러 의자에 앉히며 말했다.


“저 사람들은 운이 좋군요. 이 연금술사가 공짜로 만들어주는 약을 다 받아먹고.”


펠릭스는 실바누스 준남작을 힐끗 보았다. 그러나 그는 펠릭스의 말을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아까부터 뭐하고 계십니까?”


“증언을 받고있다.” 준남작은 펠릭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경비대가 딴데 정신이 팔려있어, 내가 그들을 조금 도와주기로 했다. 기왕 시작한 일이기도 하고, 여기서 내 명성을 떨쳐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 테니.”


“대단하시군요.” 펠릭스는 영혼없이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순수한 선의로 약을 만들었지만요.”


“내 알바 아니야.” 다시 준남작은 서류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난 네가 만드는 약따위, 안 믿는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난 다음에는 아마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저는 그정도로 뛰어난 연금술사니까.”


준남작은 펠릭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서류 작업에 몰두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준남작. 아, 치사하게 혼자 마차를 타고 사막 위로 달려가지는 않겠습니다. 우리는 공정하게 경쟁하는 사업 라이벌이니까요.”


“방해된다, 아까부터.”


“이런. 죄송. 그럼, 이따봅시다.”


그리고 펠릭스는 꽤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며 항만을 벗어났다.




펠릭스와 올리버, 실비아는 마차 대여소 앞에 모여 뭉그적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펠릭스. 정말 준남작을 기다려 주려고?”


올리버의 물음에, 펠릭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그새 정이라도 들었어?”


“그럴리가.” 펠릭스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준남작한테서 점수 따려고 그러는거죠. 나는 성실한 사람이다, 정직한 사람이다, 비겁한 일은 하지 않는다······.”


“그렇군.” 올리버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또 약값으로 얼마나 쓴거야?”


“돈으로 환산하면 금화 두닢쯤 나오겠군요.”


그 말을 듣자마자 올리버는 한숨을 쉬었다.


“어마어마하군.”


“온 몸이 안에서부터 박살난 사람이 있어서 그래요.” 펠릭스가 대답했다. “개구리와 애벌레의 뼈는 구하기 힘들거든요.”


“네? 애벌레에, 뼈가 있어요?”


“비유에요. 뭐, 무슨 버섯의 일종인데. 아무튼 좀 재료가 비싸요. 마침 갖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렇네요.” 실비아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정말 다행이에요. 당신이 때마침 재료를 갖고 있던 덕분에, 그 사람. 아마 죽지 않고 살아나겠죠.”


“그리고 저는 준남작한테 점수를 따고요. 이럴까봐 재료를 주렁주렁 달고 다닐 수밖에 없다니까.”


펠릭스는 개구쟁이같은 얼굴로 발 끝으로 바닥을 톡톡 차며 말했다.


“네?”


그리고 실비아는 조금 놀란 얼굴로 펠릭스를 돌아보았다.


“당신, 그러면, 약을 만들어 준 이유가 설마······.”


“물론이죠! 지금 실비아 당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 이유죠.”


펠릭스는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준남작한테 점수를 따야해요. 말 몇 마디 보다는 한 번의 행동이 사람의 마음을 크게 울리는 법이죠. 아무리 준남작이 연금술사를 싫어하네마네 해도, 오늘 내가 약을 만들어 ‘공짜’로 사람들에게 먹인 것을, 준남작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을걸요?”


펠릭스는 그 공짜라는 부분을 유난히 강조하여 말했다.


“펠릭스. 당신은 정말이지······”


“왜요?”


“나빴어요!”


실비아가 벌처럼 펠릭스를 콕 쏘았다.


“좋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도와줘야죠! 그 사람들, 얼마나 놀라고 또 아팠겠어요? 그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줘야지 라든가, 저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줘야지 라든가, 그런 좋은 뜻에서 약을 만들어 줄 수도 있잖아요?”


“자기들 잘못인데요 뭐.” 펠릭스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 사람들, 항만에서 하루이틀 일 했겠어요? 그 많은 사람들 중, 상자들이 쓰러질 줄 안 사람이 한 명도 없었겠어요? 대충 서로 미루고 뭉개고 하다보니 사고가 터진거죠. 그래서 전 그 사람을 안 불쌍해요.”


“하여튼, 말을 해도······.”


“그리고 뭐가 됐든 간에, 저는 제대로 약을 만들어 줬는데다가, 또 비용도 안 받았어요. 그러니, 항만에서 사고를 당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제가 천사처럼 보이지 않았겠어요?”


“그렇게 나쁜 마음 먹는 천사가 어딨어요? 순 자기 이익만 따지고들고. 다친 사람들 바보 취급이나 하고.”


“그래도, 그들은 저한테 비웃음을 사는 대신, 공짜 약을 처방받았죠. 금화 두닢 분으로. 평범한 사람은 한닢도 감당하기 힘든데, 두 닢이요 두 닢.”


비용 이야기가 나오자 실비아는 펠릭스의 말에 마냥 말대꾸를 할 수도 없었다.


“······아무튼. 공짜 약을 만들어 준 건 잘 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다른 꿍꿍이가 있기는 했지만.”


“오, 이해해 주나요, 실비아? 드디어 당신도 그 같잖은 도덕군자 행세를 그만두기로······.”


“말 가려 해욧!”


다시 실비아가 펠릭스를 콕 쏘았다.


“방금 저한테 마음가짐 운운한 사람의 말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네요. 사람들을 하찮다고 깔보기나 하고. 펠릭스. 당신, 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약을 만드는건지 저는 도저히 짐작조차 안 가네요. 항상 머릿속으로 계산만 하고, 몸이든 마음이든 아픈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약을 받을 사람이 이 약으로 웃을지 울지도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좋은 마음가짐으로 약을 만들죠, 저는.”


펠릭스는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얼마나 좋은 마음가짐인데요? 어디, 한번 들어나 봐요.”


“좋아요. 잘 들어요.”


펠릭스는 어마어마한 비밀을 몰래 말하려는 것처럼, 고개를 살짝 숙이고 눈동자만 힐끗거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중얼거렸다.


“저는 항상 최고의 약을 만든다는 마음가짐으로 약을 만들어요.”


무슨 대단한 말을 하려는지 궁금하여 숨을 죽이고 있던 실비아는, 그의 말을 듣고 그만 김이 새버렸다.


“됐어요. 기대한 내가 바보지.”


“아니, 나는 사실대로 말 했는데.”


“됐어요. 역시, 펠릭스 당신하고는 말이 통하지를 않네요. 전 마차에 먼저 올라타 있을게요.”


실비아는 털레털레 마차로 걸어가 폴짝 뛰어 마차 위에 올라탔다.


“올리버. 같이 타요.”


“어? 나? 왜?” 올리버가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마부가 실비아를 갑자기 납치하면 안 되니까.”


“아니, 갑자기?” 올리버가 의아한듯 물었다.


“준남작이 실비아 혼자 마차에 타고 있는거 보면 뭐라 그럴지도 모르잖아요.”


“나랑 같이 타고있는건, 괜찮고?”


“그야.” 펠릭스는 올리버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당신은, 십대 소녀를 유혹하기에는 너무 부족함이 많으니까요.”


“펠릭스. 사실이긴 한데, 좀 좋게 돌려 말 할 수는 없었어?”


“괜히 엄살은. 돌려 말해도 금방 알아들으면서. 아무튼, 올리버. 같이 타고 있어요. 심심하면 잡담이라도 좀 하고 있고.”


올리버는 마차쪽으로 걸어가다가, 펠릭스를 힐끗 보며 말했다.


“너도 타지그래?”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준남작이 오면 달라붙어서 점수 좀 따 봐야죠.”


“내 참. 오히려 역효과 아닐까?”


펠릭스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뭐든, 해 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니까.”


“그래. 너 알아서 해.”


그리고 올리버는 느릿느릿 걸어서 마차에 뛰어 오르려다가, 다시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연금술사 한 명이 서 있었다.




실바누스 준남작은 그로부터 한 시간쯤 지나서야 겨우 마차 대여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오십시오, 준남작님.”


준남작은 펠릭스의 과장스러운, 꼭 싸구려 유랑극단의 광대같은 몸짓에 조금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뭐하고 있나?”


“그야.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죠.”


펠릭스는 원래의 말투로 되돌아와 허리를 펴며 대답했다.


“왜?”


“왜냐니. 공정한 경쟁을 하려고요.”


“공정한 경쟁이라.”


준남작은 미묘한 웃음을 띄며 사막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게 조금이라도 사업 수완이 있었다면, 진작 마차를 출발시켰을텐데.”


“아, 저는 사업가는 아니라서.” 펠릭스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따지고 보면, 자선 사업가에 가깝겠군요. 아까, 항만에서 공짜 약을 만들어 줬으니까요.”


“나는 연금술사들의 약은 믿지 않는다.”


“부상자들은 다르게 생각하겠죠. 개중에는, 저를 구세주처럼 보던 사람도 있던데요?”


준남작은 펠릭스를 째릿 노려보았다.


“보나마나, 싸구려 진통제를 입 안에 잔뜩 들이부었겠지.”


“그렇다면, 오늘 밤이 되면 알 수 있겠군요. 내가 만든 약이 싸구려 진통제인지, 아니면 진짜 약이었는지.”


펠릭스는 히죽 웃으며 준남작의 말을 맞받아쳤다.


“아무튼, 준남작님의 오해가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좋겠군요.”


“아하. 그래서였나. 연금술사. 네 속내가 빤히 보인다. 그러니, 분명하게 말 하겠다.”


준남작은 조금 위협적으로 펠릭스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는, 너희 연금술사들은 믿지 않는다.”


“믿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드리죠. 당신이 지금껏 본 것은 연금술의 위대한 마술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니까. 제가 연금술의 진면목을 보여주도록 하죠. 방울뱀의 독을 해독하고, 몸이 안에서 부서진 남자를 고치는 것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마술을 기대하십시오. 나는 연금술사에 대한 당신의 생각도 뜯어 고칠거고, 그리고 아주 정당한 방법으로 당신에게서 그 흑살구 사고야 말 겁니다.”


두 사람은 마차 대여소의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마당에서 잠시 서로를 노려보다가 거의 동시에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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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93화 21.11.23 23 1 18쪽
92 92화 21.11.22 28 1 21쪽
91 91화 21.11.22 24 1 19쪽
90 90화 21.11.21 26 1 21쪽
89 89화 21.11.21 25 1 22쪽
88 88화 21.11.20 25 1 20쪽
87 87화 21.11.20 31 1 23쪽
86 86화 21.11.19 27 1 22쪽
85 85화 21.11.19 27 1 23쪽
84 84화 21.11.18 27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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