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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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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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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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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92화

DUMMY

사막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오두막의 주인이 깨어나기 기다리는 동안, 다섯 명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실비아는 일전에 펠릭스가 주었던 수첩을 꺼내 이런저런 그림들을 그렸고, 준남작은 뒤에서 힐끗거리며 실비아가 그리는 그림을 훔쳐보았다. 마부는 밖에서 말들을 돌보았고, 올리버는 가만히 앉아 딴생각을 하는듯 했다. 그리고 펠릭스는, 무례하게도, 집주인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집을 뒤지고 있었다.


“무례하기 짝이없구나, 젊은 연금술사.”


준남작이 부스럭거리며 돌아다니는 펠릭스에게 말했다.


“저는 펠릭스입니다. 그리고, 당신만 할까요, 준남작? 숙녀의 수첩을 멋대로 훔쳐보다니. 어디서든지 그리 자랑스레 떠벌리고 다닐 일은 아닐겁니다.”


그 말을 들은 실비아는 깜짝 놀라며 수첩을 덮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서로 어색해 하다가 시선을 피했다.


“내 딸이다.”


“숙녀죠. 어쨌든 간에.”


펠릭스는 그러고는 다시 밭을 헤집는 두더지처럼 방안을 이리저리 오갔다.


“아까부터 정신사납게, 뭐해 펠릭스?”


“올리버. 그냥요.”


펠릭스는 별것 아니라는듯 대답했다.


“너.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기는 해도, 주인 허락도 없이 남의 물건 뒤지는 사람은 아니잖아.”


“올리버. 그냥 호기심이 동해서요. 이번 한번만 눈 감아주면 안 될까요?”


“뭐, 모르겠다. 내가 굳이 고자질할 이유도 없고······.”


“집주인이 알면, 흑살구 계약 건은 물 건너 가겠군.”


준남작이 조금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펠릭스는 준남작의 얼굴을 돌아보고, 그의 비열한 웃음이 어딘가 어색한 것을 보더니, 히죽 웃으며 다시 하던 일에 열중했다.




펠릭스는 계속 부스럭거리며 집 안을 돌아다녔다. 그는 서랍이란 서랍은 모조리 열어볼 심산인듯 했다. 그는 침실에서 잠긴 서랍을 발견하고는, 가볍게 탄성을 지르며 품에서 약병을 하나 꺼냈다. 펠릭스가 열쇠구멍에 약을 붓고 잠시 기다리자 구멍 안에서 금속이 부식되는 소리가 났다. 곧 펠릭스는 서랍을 잡아당겼고, 서랍은 조금 덜컹거리며 열렸다.




펠릭스는 서랍 안에 들어있는 낯설 정도로 깨끗한 종이를 조용히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의 안색이 변했다. 펠릭스는 종이를 한참 가만히 보다가 거실 근처에서 사람의 신음 소리가 들리자 도로 종이를 서랍안에 넣고 서랍을 닫은 다음, 아무것도 모르는척 방에서 나왔다.




의식을 되찾은 집주인은 처음에는 그저 두 눈을 끔뻑거리기만 했다. 아마, 자신이 사후세계에 있는지 아직 지상에 남아있는지 분간하는데 시간이 걸리는듯 했다. 마침내, 그는 아직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제서야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낯선 손님들을 돌아보았다.


“당신들은, 대체, 누구요?”


“아, 아직 몸이 완전히 낫지 않았군요. 좀 진정하고, 일단 앉아요 앉아. 올리버?”


올리버는 그 남자의 뒤에 의자를 놓고 반쯤 억지로 남자를 의자에 앉혔다.


“우리들은 당신에게서 물건을 사고 싶어 찾아온 떠돌이들입니다.”


그리고 남자가 의자에 앉자 펠릭스가 가볍게 소개를 했다.


“물건? 무슨······.”


“흑살구요. 뒷마당에 제법 자랐던데.”


펠릭스가 더러운 창문쪽으로 고개를 힐끔 돌리며 말했다.


“아, 아. 저것들. 저런게 팔리기도 하는군. 그래서, 얼마에 사려고?”


“저는······.”


“표준 규격 나무 상자 단위로, 한 상자에 은화 스무 닢.” 펠릭스의 말을 자르며 실바누스 준남작이 말했다.


“스무 닢? 그렇게나 많이? 저건, 이 동네에서는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한 물건인데······.”


“스무 닢. 팔건가, 말건가?”


“어휴, 당연히 팔아야죠.”


“아니, 잠시만요!” 펠릭스가 잽싸게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봐요. 나한테도 조금 팔아요.”


“응? 왜?”


“그야, 제가 당신 살려줬으니까요! 기억하죠? 방울뱀한테 물린거.”


남자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곧 두려움에 벌벌 떠는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그게, 꿈이 아니었어?”


“네. 뭣하면 증거라도 보여줘요? 올리버.”


올리버는 유리병에 담아둔 방울뱀의 잘라낸 머리를 슬쩍 꺼냈다. 그것을 본 남자의 얼굴은 한층 더 기이하게 벌벌 떨렸다.


“아, 아아, 아아······꿈이 아니었어. 으, 으윽······.”


남자는 머리가 지끈거리는듯, 두 손으로 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왜 그래요? 진정좀 해요. 뭐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으, 그래. 꿈이 아니었다니. 꿈이길 바랬건만······.”


알쏭달쏭한 말을 해 대는 남자를, 펠릭스도 실바누스 준남작도 조금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아무튼, 이봐요. 내가 당신 목숨도 살려줬는데, 그 흑살구 저한테도 좀 팔죠?”


“아니, 몰라. 마음대로 해. 나는 아무것도 몰라······.”


“거 참. 이상하네. 잠깐 있어봐요. 자.”


펠릭스는 약병 하나를 꺼내 뚜껑을 퐁 하고 연 다음, 그의 코 아래에 약병을 가져다댔다. 병에서 하얀 증기가 새어나왔고, 그것을 쐰 남자의 얼굴에는 조금 편안한 빛이 깃들었다.


“뭘 하는거지?”


“진정제의 일종을 투여했어요.” 병의 뚜껑을 닫으며 펠릭스가 말했다. “이봐요. 당신, 정신 들어요? 자, 좀 진정좀해요. 내 참. 방울뱀한테 좀 물렸기로서니, 그렇게 사람이 맛이 갈 수가 있나?”




진정제의 연기를 쐬고 나서야 오두막의 주인은 조금 제정신을 되찾은듯 보였다.


“자. 이제 좀 진정이 된 것 같으니, 천천히 이야기를 해 봅시다.”


펠릭스는 여전히 조금 얼이 빠져있는 남자의 주의를 끌기 위해 손뼉을 짝 쳤다.


“아! 어, 그래.” 남자는 어딘가 안절부절 못하며 펠릭스를 돌아보았다. “그래, 내 목숨을 살려줬다고 했지?”


“네. 오롯이 저 혼자서.” 펠릭스가 ‘혼자’부분을 강조하여 말했다. “죽어가던 당신의 목숨을 살렸죠. 그래서말인데, 뒷마당에서 자라고 있는 흑살구를 저한테 조금 파시지 않겠습니까?”


“글쎄. 하지만, 아까 저 남자가 한 말을 들어보면······.”


“조건을 조금 바꾸도록 하지.” 실바누스 준남작이 말했다. “표준 규격 나무 상자 단위로, 한 상자에 은화 스물다섯 닢.”


“스물다섯!” 남자는 입을 떡 벌렸다.


“대신, 조건이 있다. 나한테 독점적으로 판매할것. 지금 저기 자란 열매들 뿐만아니라, 앞으로 이곳 농가에서 자라는 열매들까지 전부 다.”


“아니, 치사하게. 이봐요. 잘 생각해봐요. 나는 당신 목숨도 살려준 사람인데······.”


“음. 저기, 그. 목숨 살려준건 고맙기는 한데, 아무래도······.”


남자는 실바누스 준남작을 힐끗 보았다.


“내 승리로군.”


준남작은 계약서를 꺼내 금액 부분을 가볍게 고친 다음 펠릭스의 앞을 지나쳐갔다. 그가 내민 계약서에 남자는 주춤거리며 서명을 했다.


“당신, 이름이 이게 맞나?”


그러나 실바누스 준남작은 계약서를 살펴보더니, 대뜸 남자에게 물었다.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맞아. 내 이름이야.”


남자는 횡설수설했다. 그러자 준남작은 가만히 계약서를 바라보다가 돌연 계약서를 갈갈이 찢어버렸다.


“아니! 뭐하는거야?”


“정체도 모르는 수상한 사람과는 거래할 수 없다.”


실바누스 준남작은 갈가리 찣긴 계약서의 조각을 허공에 흩뿌렸다.


“아무리 물건이 탐이 나도, 넘어선 안 될 선도 있는 법이니까.”


“오호라. 아주 정직한 사람이군요, 준남작. 그야말로 타의 모범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틈을 타, 펠릭스는 두 손을 비비며 남자를 불렀다. “어때요? 이제 흑살구를 저한테 팔 만한······.”


“아니, 됐어.”


남자는 잠시 무언가 생각해 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


“됐어. 미안한데, 아무에게도 안 팔거야.”


“아니, 내가 당신 목숨까지 살려줬는데, 거 좀 팔면 어디 덧납니까?”


“미안한데, 이건 내가 써야겠어. 구해준건 고맙지만, 생각해 보니까, 아무래도 저건 못 팔겠어.” 남자가 말했다.


“왜요?”


펠릭스가 짜증스레 물었지만, 그는 다만 조금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결국 펠릭스는 혼자 씩씩거리며 먼저 오두막을 나가버렸다.


“흑살구의 품질이 꽤 좋던데, 아깝게 됐군.”


실바누스 준남작도 한 마디 한 다음 오두막을 나갔고, 곧이어 실비아가 오두막을 빠져나갔다.


“저기.”


막 올리버가 자리에서 일어나려하자, 남자가 올리버를 불러세웠다.


“뭔가?”


“그, 혹시 당신들. 산호항구에서 머물고 있나?”


“그런데?” 올리버가 물었다.


“그, 가급적이면 빨리 다른데로 가는게 좋을걸. 최대한 빨리.” 남자가 중얼거렸다.


“왜지?”


“그, 그냥. 불길한 예감이랄까, 그······.”


“어이.”


올리버는 그에게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그의 멱살을 붙잡고 공중으로 번쩍 들어올렸다.


“으, 으악!”


“똑바로 말 해. 왜 다른데로 가라는거야? 뭐 아는 정보라도 있어?”


“잠시만, 좀, 내려놓고 말 해!”


올리버는 그 상태 그대로 손을 놔버렸다. 덕분에 그 남자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우리가 네 목숨을 구해줬다는거, 잊지 마라.”


“안 잊었어. 나도 그것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말이라고.”


그는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아마, 곧 마적 떼가 산호항구를 습격할거야.”


남자가 불안하게 눈을 깜빡이며 조용히 속삭였다.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 아니군.”


올리버는 그의 말을 듣고 코웃음쳤다.


“진짜야. 빨리 다른데로 가라고.”


“아니,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훈련도 안 된 오합지졸 마적 따위가, 변변찮은 무기도 무장도 없을 것이 뻔하고,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아리와 사막에서 멋대로 자라난 야생마 뿐일텐데, 정규 훈련을 받고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춘 경비병들이 지키는 도시를 침공한다고?”


“어휴. 됐어. 아무튼, 난 말해줬어. 나중에 원망하지 마.”


남자는 다시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올리버가 오두막에서 빠져나왔을 때는, 이미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마차에 타고 있었다. 그는 좁은 마차 안으로 몸을 구겨넣고 마차의 문을 쿵 닫았다.


마부가 채찍을 휘두르자, 말들은 왔던 길을 되짚으며 사막 위를 달려갔다.


“올리버. 뭐, 안에서 뭐라 그러던가요?” 펠릭스가 올리버에게 물었다. “좀 걸리던데요.”


“허튼 소리를 하길래, 무슨 소린가 싶어 좀 물어봤지.” 올리버가 대답했다. “산호항구에서 머무냐고 하던데.”


“그래서요?”


“머문다고 했지. 그런데,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알아?”


“모르죠.” 펠릭스가 말했다.


“곧, 마적 떼가 산호항구를 습격할 거라면서, 빨리 다른데로 도망가라고 하더군. 내 참. 어이없어서. 안 그래, 펠릭스?”


그러나 펠릭스는, 뜻밖에 조금 심각한 얼굴로 소리없이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안 그렇소, 준남작?” 그래서 올리버는 대신 실바누스의 동의를 구했다.


“마적들이 사막에서 기승을 부린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래봤자 마적일 뿐인데. 도시를 습격한다니, 어이없는 이야기군.”


“그래. 방울뱀에 물려 제정신을 덜 차려서 하는 말이었겠지. 내 참. 그나저나, 그 집 안에 무슨수로 뱀이 기어들어간거지? 딱히 틈새도 없던데.”


올리버의 말을 들은 실비아는 갑자기 나쁜 생각이 들어 몸을 가볍게 떨었다.


“왜그러냐?”


실바누스 준남작이 실비아에게 묻자, 실비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녜요.”


“왜, 실비아. 뭐 이상한거라도 있어?”


“그, 그러니까요. 만약에. 혹시나.” 실비아는 눈치를 보며 주저하며 말했다. “누가, 일부러 집 안에다가 방울뱀을 풀어놨을지도 모르잖아요?”


실비아의 말을 들은 올리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체, 누가 뭣하러 그런 일을?”


“그, 있잖아요! 왜, 도둑 길드에서는 배신자를 죽이기 위해 독거미를 집 안에 풀어둔다든가······.”


“실비아.”


실바누스 준남작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실비아는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네?”


“네가 상상력이 풍부한 건 알고 있지만, 지금 네 상상은 너무 지나친 것 같다.” 준남작이 조용히 말했다. “가끔, 너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공상에 빠져서······.”


“됐어!” 실비아는 새침하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여튼, 이럴것 같아서 말 안하려고 했던 건데, 다들 날 바보 취급 하기만 하고. 그럴거면 묻지를 말든가!”


“하지만, 이번에는 네 아버지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실비아. 사막 한 가운데 동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이, 설마 도둑은 아닐거 아냐? 만약에 그가 마적이라도 하더라도, 그 집 안에서 딱히 수상한 물건은 없었어. 간부쯤이나 된다면 또 모를까······.”


“그래요.”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있던 펠릭스가, 단 1그램의 영혼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 올리버가 펠릭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펠릭스는 여전히 영혼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짜증스러운 얼굴로 창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그 뒤로 그는 마차가 산호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호항구 마차 대여소에 마차가 멈춰서자, 네 사람은 차례대로 마차에서 내렸다. 펠릭스와 실바누스는 각각 마부에게 자기들 몫의 삯을 지불했고, 덕분에 마부는 한 번 일을 하고 두 번 일을 한 요금을 받게 되어 온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마차 여행으로 지친 실비아는 방으로 돌아갔고, 펠릭스와 실바누스 준남작은 식당에서 각자 정산을 하기 시작했다.


“좋겠네요.”


한 테이블 떨어져 앉아있는 준남작에게 들릴 정도로 펠릭스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준남작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혼자 그렇게 독식하다니. 배탈날까봐 겁도 안납니까?”


“겁쟁이들은 사업을 일구지 못한다.” 준남작이 계약서를 천천히 살피며 말했다. “나라고 겁이 안 나는줄 아느냐? 하지만, 나는 철저한 분석과 계산으로 나의 동물적인 본능을 억누를 수 있다. 본래 사업이란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쓸데없이 겁먹는건 내 사업을 번창시키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저한테 조금만 파시지. 거 흑살구 한 줌 판다고 사업에 큰 영향이 가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난 연금술사 못 믿는다.”


준남작이 지나치게 위협적으로 말한 탓에,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가게 주인이 화들짝 놀랐다.


“아까, 저는 죽을둥말둥 하는 사람도 살렸는데요? 그래도 여전히 제가 가짜 연금술사처럼 보입니까?”


“내가 어떻게 알겠나? 나는 그 방울뱀을 가까이서 보지도 못했다.” 준남작이 말했다.


“자요.”


그러자 펠릭스는 올리버에게서 받은 유리병을 준남작 쪽으로 불쑥 내밀었다.


“이게 뭐지?”


“아까 잘라낸 뱀 머리.”


펠릭스가 유리병을 흔들며 말했다.


“악취미군. 짐승이 불쌍하지도 않나?”


“사람 무는 짐승인데, 살려서 뭣합니까? 사냥개도 주인을 물면 바로 머리에 화살이 박히는 법이고, 말도 주인을 발로 걷어차면 그 즉시 목이 잘리는데. 하물며 뱀 따위한테 불쌍하니마니 하시는 겁니까?”


“됐다. 아무튼, 난 딸아이에게 무슨 약을 만들어 주는지 가르쳐 주지도 않는 연금술사는 못 믿는다.”


“대체, 무슨 일을 그렇게 당했길래 이렇게 연금술사들을 싫어하실까?”


준남작은 서류에서 눈을 떼고 펠릭스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펠릭스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실실 웃으며 준남작의 두 눈을 쳐다봤다.


“네 알바 아니다. 우리 가족사니까. 그리고, 내가 네게 말해준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준남작이 다시 서류를 살피며 말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일 뿐이야. 이제와서 떠들어본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테지.”


“일리있는 말입니다, 준남작.” 펠릭스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이미 벌어진 일을 막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군.” 준남작은 마침내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펠릭스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보니, 아까 그 오두막 안을 유난히 뒤적거리고 다니던데.”


“아, 맞습니다. 그 방울뱀 말이죠. 낯이 익은데가 있어서.”


펠릭스의 말을 들은 준남작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낯이 익다고?”


“뭐, 사실 따지자면 낯이 익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군요. 직접 본건 그게 처음이니까.”


“무슨 말을 하고싶은거냐?”


“준남작. 산호항구를 떠날 생각 있으십니까?”


펠릭스가 실바누를 향해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없다.”


실바누스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펠릭스는 한숨을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기했나?”


“설마요. 저는 여기 머무는 동안, 당신과 마주칠 때마다 계속 교섭할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달리 중요한 일이 있어서.”


“이 외딴 곳에서?” 준남작이 말했다.


“뭐, 그렇군요.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준남작은 펠릭스가 식당을 빠져나갈 때까지 눈동자만 옮겨 그의 뒷모습을 쫓다가, 그가 식당을 빠져나가자 다시 서류에 두 눈을 고정시켰다.




산호항구의 우편국은 항구 가까이에 있었다. 아마, 배가 주로 오가는 곳인 것을 생각해보면,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펠릭스는 그 우편국 안으로 들어가 관리 앞에서 짜증을 내고 있었다.


“아니, 가장 빠른 편지가 도착하는데 하루 넘게 걸린다고요?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여기도 왕국 땅 아닙니까?”


“그, 죄송합니다. 하지만, 고속정이 출항할 예정도 당분간 없는데다가, 육로로 워낙에 멀리 떨어진 곳이라······.”


“됐어요. 아무튼, 그럼 가장 빠른걸로 부탁해요. 자, 이걸 부쳐주시고.”


펠릭스는 방금 막 써낸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건 속달로, 산호항구 시장? 촌장? 여긴 명칭이 뭐죠? 아무튼 그분한테 전해주세요. 급한 일이니까 빨리 좀 전해주고요.”


관리는 귀찮다는 얼굴로 편지를 받은 다음 펠릭스에게 억지로 웃으며 인사했다.




우편국을 빠져나온 펠릭스는 잠시 거리를 걸어다녔다. 그는 별 생각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보였는데, 조금 주의를 기울여 펠릭스를 관찰한다면 그가 유난히 마을 경비대원들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펠릭스가 거리를 쏘다니고 돌아올 때까지 준남작은 식당에 남아있었다. 펠릭스는 그를 발견하자마자 스스럼없이 다가가, 그와 같은 테이블에 넉살좋게 주저앉았다.


“합석을 허락한 적이 없는데.”


“이정도면 친구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습니까?”


“불쾌하군.” 준남작이 서류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난 아무하고나 친구가 되지 않아.”


“어련하겠어요. 아무튼, 그래서 준남작님. 똑같은 서류를 굳이 몇 십 분 동안이나 들여다 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펠릭스의 말을 들은 실바누스는 서류를 휙 내렸다.


“하고싶은 말이 있나?”


“네. 이건 흑살구와는 무관한 이야기입니다만.” 펠릭스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만약에, 만약에 말입니다. 준남작님. 정말로 오늘 밤에 그 마적 떼가 산호항구로 쳐들어오면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어떡하기는.” 준남작은 짜증스레 펠릭스를 보았다. “싸워야지. 부당한 방법으로 내 것을 훔치려 드는 놈들은 마땅한 대가를 치러야 해. 설령, 그게 목숨일 지라도.”


“아하. 아주 마음에 드는 대처 방법이군요. 좋습니다.” 펠릭스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런 불길한 소리를 하는거지?”


“뭐, 별건 아닙니다. 그냥 혹시나 해서요.”


그리고 펠릭스는 어색하게 기지개를 켠 다음, 목소리를 낮추어 준남작에게 말했다.


“준남작님. 아까, 재밌는 이야기를 하셨지요. 웨일 가문쯤 되는 곳이라면, 도둑과 강도를 후원할지도 모른다고.”


“그래. 왜 그러나?”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말입니다.” 펠릭스는 별 일 아니라는듯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들에게 후원을 받던 도둑이나 강도들이, 갑자기 후원이 끊긴다면 그 때는 어떻게 움직일까요?”


“알아서 자멸하겠지.” 준남작이 말했다. “강도와 도둑 중에는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 별로 없어. 돈줄이 끊기면, 놈들은 어리석은 짓을 벌이거나, 아니면 조용히 사그라들겠지.”


“어리석은 짓이라, 함은?”


“뭐든지. 가까운 도시를 습격한다든가······.”


준남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놈.” 준남작이 펠릭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뭔가, 아는 것이 있나?”


“아무것도요. 전부다 추측일 뿐입니다. 방울뱀도, 그 겁쟁이 오두막 주인도, 마적 떼들도, 산호항구를 습격할지 어떨지도.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미리 대비 하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사업가가 지녀야 할 자질 아닙니까?”


실바누스 준남작은 펠릭스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너, 정체가 뭐지?”


“연금술사입니다. 그게 전부죠. 다른 그 어떤 말도, 그보다 저를 더 잘 설명하진 못 할 겁니다.”


준남작은 펠릭스를 노려보다가 서류를 둘둘 말아 넣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이번 한번만, 네 조언을 들어주마. 항구로 간다. 화물선을 출발시키러.”


“아하. 그럼, 이제부터 발견하는 새로운 흑살구들은 제가 가져도 되겠지요?”


“어림도 없다!” 문을 나서며 준남작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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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109화 21.12.01 23 1 19쪽
108 108화 21.11.30 32 1 22쪽
107 107화 21.11.30 26 1 23쪽
106 106화 21.11.29 28 1 25쪽
105 105화 21.11.29 24 1 22쪽
104 104화 21.11.28 29 1 23쪽
103 103화 21.11.28 32 1 23쪽
102 102화 21.11.27 27 1 23쪽
101 101화 21.11.27 22 1 21쪽
100 100화 21.11.26 25 1 20쪽
99 99화 21.11.26 24 1 23쪽
98 98화 21.11.25 26 1 19쪽
97 97화 21.11.25 25 1 19쪽
96 96화 21.11.24 25 1 20쪽
95 95화 21.11.24 24 1 20쪽
94 94화 21.11.23 28 1 19쪽
93 93화 21.11.23 23 1 18쪽
» 92화 21.11.22 29 1 21쪽
91 91화 21.11.22 24 1 19쪽
90 90화 21.11.21 26 1 21쪽
89 89화 21.11.21 25 1 22쪽
88 88화 21.11.20 25 1 20쪽
87 87화 21.11.20 31 1 23쪽
86 86화 21.11.19 27 1 22쪽
85 85화 21.11.19 27 1 23쪽
84 84화 21.11.18 27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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