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조회수 :
6,038
추천수 :
188
글자수 :
1,774,925

작성
21.11.28 18:10
조회
29
추천
1
글자
23쪽

104화

DUMMY

동굴 안으로 들어오기 직전에만 해도, 펠릭스와 실비아 그리고 올리버는 서쪽에서 겪은 일들에 대해 두서없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이 검은 영역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너나할것없이 그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물방이 똑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퍼지며 공기에 긴장감을 조금 더 불어넣어 주었다. 어둠 속에서 펠릭스가 전보다 훨씬 환하게 빛나는 야광 구슬을 꺼낼 때까지, 아무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들 긴장했어요? 처음 와보는것도 아니면서.”


펠릭스가 운을 떼고 나서야 실비아와 올리버는 각각 한숨을 내쉬며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그래도 긴장된다구요.”


“난 동굴은 좁아서 영.”


“거 참. 둘 다 별것도 아닌걸 가지고.”


그러면서 펠릭스는 야광 구슬을 허리춤에 매달고 앞장섰다. 그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구슬은 도깨비불처럼 위아래로 흔들흔들하며 뒤따라오던 실비아의 눈을 현혹했다. 그래서 실비아는 몇 발자국 걷다가 잠시 멈춰서서 눈을 부비고는, 다시 펠릭스의 뒤를 따라 걷기를 반복했다.


“왜 자꾸 멈춰서는거야?”


후미에 있던 올리버가 말했다.


“야광 구슬 때문에요.”


“이게 왜요?”


펠릭스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녹색빛의 이상한 조명 때문에, 그의 얼굴은 잠깐동안 무슨 괴물처럼 보였다.


“왜 하필 초록색이에요? 다른 색은 없었어요?”


“아니, 반딧불 색이잖아요. 좋지 않아요?”


“도깨비불같잖아요!”


실비아의 외침이 동굴 안에서 메아리쳤다.


“자꾸 눈에 밟힌단 말이에요. 사물도 잘 안 보이고······.”


“그런가요 올리버?”


“난 글쎄. 하지만, 실비아가 힘들다는데, 뭐 달리 좋은 방법 없어 펠릭스?”


“횃불이라든가, 방법이야 많죠.”


“구슬 불빛 색깔은 어떻게 못 바꿔요?”


“지금은 무리에요.”


펠릭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휴. 정말이지. 그럼 그냥 횃불이나 하나 켜고 가요. 그 도깨비불은 너무······악!”


배낭을 열어 횃불을 꺼내던 실비아는 그만 균형을 잃고 가볍게 미끄러져 넘어졌다.


“허둥거리니까 그렇죠. 안 그래요 올리······”


그 때, 불길하게 무언가 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세 사람은 동시에 그 자리에 가만히 얼어붙었다.


“방금 뭐였죠?”


“움직이지마.” 올리버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갈라지는 소리였어. 펠릭스. 그 빛나는 구슬 좀···.”


‘쩌적, 쩍! 와르르!’


“꺅!”


동굴 바닥이 균열을 일으키며 갈라지더니, 순식간에 실비아를 꿀꺽 어둠 속으로 삼켜버렸다.


“살려줘요!”


당장 올리버와 펠릭스가 납작 엎드려 개구리처럼 팔다리를 쭉 뻗어 몸의 하중을 분산시킨 채로 실비아가 빠져버린 균열을 향해 슬금슬금 기어갔다. 그들이 가까이가자, 다시 균열이 쩌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조금 더 커졌다.


“실비아! 괜찮아요?”


“아마도요. 엉덩방아를 좀 찧은것 같은데, 그것 말고는 괜찮은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 캄캄해서 아무것도 안 보여요! 뭐라도 좀 내려줘요!”


“올리버. 어쩔까요?”


“일단 안전한 곳으로 물서서서······펠릭스!”


“으악!”


또다시 균열이 쩌적 갈라지더니 펠릭스도 그만 바닥 아래로 추락해버렸다. 그리고, 올리버 역시 바닥의 붕괴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재빨리 몸을 뒤로 내뺐지만, 이미 그곳 바닥 전체에 금이라도 가 있었는듯, 그 역시도 동굴의 시커먼 아가리 속으로 쑥 빠져버리고 말았다.




먼지 구름이 가라앉자, 세 사람은 펠릭스의 허리춤에 붙어있던 야광 구슬의 빛에 의지하여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런. 이 동굴, 사람 다닐 곳이 못 되겠어.”


가장 먼저 올리버가 말했다. 그는 실비아가 움직이려 하자, 재빨리 손을 들어 그녀를 저지했다.


“또 무너질지도 몰라. 조심해. 그나저나 펠릭스. 넌 괜찮아?”


“괜찮아요. 일단은.”


저쪽 돌 무더기 사이에서 펠릭스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조심해. 둘 다 어디 다친 데 없는지 잘 확인하고.”


“다친게 문제가 아니에요.”


펠릭스는 자리를 털고 훌쩍 일어나며 말했다. 올리버가 당장 손을 들어 펠릭스에게도 움직이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는 가볍게 무시했다.


“펠릭스. 또 무너질라.”


“이건 단단한 바윈데요 뭘. 재질부터가 다른데.”


그러면서 펠릭스는 겁도 없이 폴짝폴짝 뛰며 바닥을 쿵쿵 밟았다. 그 꼴을 본 올리버와 실비아는 잠시 기겁을 했지만, 아무런 반향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는 그들도 안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저나. 얼마나 떨어진거죠?”


올리버는 실비아의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근처에 있던 돌멩이를 하나 주워들고 천장을 향해 집어던졌다. 돌이 천장에 부딪히고, 다시 바닥에 떨어지며 딱 하는 소리를 낼 때까지 올리버는 숨죽이고 있었다.


“한 3미터쯤 떨어졌나본데.”


돌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나서 올리버가 말했다.


“다친데가 없어서 다행이군.”


“어떻게 도로 올라가죠?”


“글쎄. 일단, 저 위쪽 땅은 또 무너질지도 모르니까, 가능하면 좀 단단한 암반을 찾았으면 하는데. 그나저나, 펠릭스. 뭐하는거야?”


야광 불빛이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저쪽으로 가버리자, 올리버는 고개를 휙 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바위의 틈새 옆에 서서 틈새 안쪽을 기웃거리는 펠릭스가 있었다.


“뭐해, 거기서?”


“통로가 있잖아요. 한번 가보는 게 어때요?”


“또?” 올리버가 넌더리를 냈다. “위로 올라갈 생각을 해야지. 아래로 내려가면 어떡해?”


“하지만 수정 동굴이 있을지도.” 펠릭스가 실비아를 힐끗 돌아보며 말했다.


“그렇게 팔자좋게 수정동굴이 있을리가 없잖아요.”


“또 모를 일이죠. 아니면 둘은 여기 있든가요. 저 혼자만 슬쩍 다녀올테니까.”


“큰일날소리.” 올리버가 말했다. “그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펠릭스. 구슬 이리 줘. 내가 앞장설테니까.”


“오? 가 줄건가요?”


올리버는 펠릭스에게서 야광 구슬을 넘겨받았다.


“안 가주면, 계속 한숨 푹푹 쉬면서 귀찮게 굴 거 아냐. 전에 그 도마뱀때처럼.”


“그건 또 그렇네요. 대신, 낌새가 이상하면 바로 도망쳐 나오자고요.”


“그래, 알았다 실비아. 펠릭스. 너도 그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


“저야, 뭐. 이쪽으로 가기만 하면 상관없어요.”


펠릭스는 틈새 안에다가 벌써 무슨 보물이라도 숨겨둔마냥 히죽거리며 대답했다.


“그래. 너무 히죽거리지는 말고.”


그리고 올리버는 좁은 틈새 안으로 몸을 구겨넣기 시작했다.


“거 더럽게 좁군. 어이, 이쪽에, 뭔가······아니! 이게, 다 뭐야?!”


“뭔데요?”


실비아는 틈새 중간즈음에 끼인듯이 가만히 서 있는 올리버의 등 뒤에서 기웃거렸다.


“직접 봐. 이건······정말이지. 원. 엄청나군!”


“올리버! 당신이 비켜줘야 저도 보든가 말든가하죠. 뭔데요? 뭔데 그래요?”


“아, 미안. 잠시만.” 올리버는 꿈틀거리며 안으로 더 들어가, 실비아가 비집고 들어올 틈을 만들어 주었다.




좁은 틈바구니로 몸을 집어넣으며 실비아는 이 너머에 뭐가 있을지 조금 기대했다. 물론, 그 펠릭스 때문에 오게 된 곳이니 아마 벌레라든가, 다리가 많은 절지동물이라든가, 또는 그녀는 봐도 별반 감흥이 들지 않는 버섯이나 지의류 따위가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틈새 너머로 들어온 실비아의 두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새하얀 수정의 바다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새하얀 수정의 바다.


“세상에!”


실비아의 새까만 눈동자 위에, 그 수정의 하얀 반짝임이 눈부시게 반사되어 빛났다.


“수정이에요!”


“봐요. 내가 수정 동굴이 있을지도 모른댔잖아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펠릭스의 비아냥을 실비아는 가볍게 무시해치웠다.


“정말 아름다워요. 세상에나. 이게 다······.”


실비아는 홀린듯 앞으로 걸어나가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 수정을 살며시 만져보았다. 그 매끄럽고 차가운 감촉에, 그녀는 손을 재빨리 떼었다가 다시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다 수정이죠. 물론, 금전적인 가치는 거의 없겠지만서도.”


“펠릭스. 이럴때 꼭 돈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하여튼, 낭만이라고는 조금도 없기는.”


“그냥 해 본 소리에요. 그나저나, 여기 너무 오래 머물지는 않는 편이 좋을걸요.”


“왜요?”


실비아가 고개를 돌리고 눈을 깜빡이며 말하자, 펠릭스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대답했다.


“여긴 공기가 별로 없어요. 동굴 속인데, 땅 아래기까지 하니까. 오래 머물면 질식할지도.”


“그런 말은 빨리좀해요!” 얼굴을 붉히며 실비아가 허둥거렸다. “자, 자! 나가요 어서.”


“좀 더 구경 안 하고요?”


“숨 막히긴 싫거든요!”


“거 참. 알았어요, 알았어. 아, 밀지 마요!”


잠시 소란이 있은 뒤에 펠릭스와 실비아는 도로 틈새 밖으로 빠져나가버렸다. 그리고 수정동굴 안에 남은 올리버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그래도 기념으로 수정 하나를 캐 왔다.




다시 추락한 공동으로 돌아온 세 사람은 멍하니 고개를 위로 치켜들고 그들이 떨어져내린 구멍을 올려다보았다.


“올리버. 뭐하다 늦었어요?”


별달리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한 펠릭스가 이번에도 먼저 말을 꺼냈다.


“수정하나 캐 왔어.”


“왜요?”


“그냥. 기념으로. 볼래?”


올리버가 방금 캐온 하얀 수정을 꺼내들자 실비아는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금전적인 가치는 요만큼도 없어요.”


그리고 펠릭스의 초치는 소리를 들은 실비아는 그녀의 허리를 꾹 찔렀다.


“아야!”


그리고 실비아는 대꾸 한 마디도 안 하고 다시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그렇게 본다고 무슨 수가 나요?”


찔린 허리를 손으로 문지르며 펠릭스가 말하자, 실비아는 그를 힐끗 돌아보았다.


“적어도, 헛소리나 하고 있는 당신보단 낫죠.”


“헛소리 아니에요. 진짜 금전적인 가치는 없어요.”


“우리가 돈 벌러 왔어요? 하여튼. 그냥 보고 예쁘면 그걸로 그만이지. 올리버. 그 수정, 내다 팔 생각이었으면 저한테 팔지 않겠어요?”


“오, 얼마에 살건데?”


“은화 세 닢이요.”


“실비아! 제 돈부터 갚아요! 은화 세닢. 어제 제가 당신한테 준 약값이랑 똑같잖아요!”


그러나 실비아는 뾰루퉁한 얼굴로 펠릭스를 힐끗 보고 치워버렸다.


“내 참. 다음부터는 무조건 계약서를 써야겠어. 아야야. 그나저나, 대체 뭘로 찌른 거예요? 아직도 아프네.”


“그냥 손으로 꾹 찌른거거든요? 운동 좀 해요 펠릭스.”


“자. 둘다 잡담은 그쯤하고.” 올리버는 실비아에게 수정을 넘겨주며 말했다. “그래서, 뭐 괜찮은 방법이 없을까?”


실비아는 다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밧줄을 이용하면······.”


“저긴 지반이 약해서 또 무너질지도 몰라. 머리위에 돌이 쏟아지면 위험하고.”


“그럼 어떡해요?”


“어떡하기는요. 다른 길 찾아야죠.”


“펠릭스. 말만 하지말고 좀······.”


막 펠릭스에게 한 소리를 해 주려던 실비아는, 또다른 시커먼 통로를 발견하고 그 옆에서 히죽거리는 펠릭스를 발견했다.


“다른 통로. 어때요?”


“펠릭스. 당신이 방금 판건 아니죠?”


“농담도. 올리버. 이쪽으로 가죠? 달리 방법 없으면.”


“막힌 길이면 어쩌려고?”


“걱정도 원. 싫음 거기 가만히 앉아서 누가 도와주러 올 때까지 기다리든가요. 저는 이리로 갈 겁니다.”


“거 고집하고는. 알았어. 달리 좋은 수도 없으니까. 다만, 거기는 공기가 충분히 많기만 바란다.”


“정 없으면, 제가 약 줄게요.”


“무슨?”


“숨 참는약.”


펠릭스는 그 말을 끝으로 기세좋게 틈새로 걸어들어갔다.




다행히 틈새는 막다른 곳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허리를 숙여가며 불편한 자세로 동굴 안의 동굴 속으로 계속계속 걸어들어갔다.


“내 참.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것 같으니.”


올리버는 비를 피하는 사람처럼, 한 손으로 머리 위를 감싸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우습기도 하고 불편해 보이기도 했다.


“뭐 가다보면 또 공동이든 뭐든 나오겠죠.”


“안 나오면 어떡해요?”


실비아가 걱정스레 묻자 펠릭스는 별 것 아니라는듯 대답했다.


“돌아가야죠, 뭐.”


“이 좁은데서요? 몸 돌리기도 힘든걸.”


“정 안돼면 천장을 부수든가 할게요.”


“부수면, 큰일나는거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그런 방법도 있다는거죠 뭐.”


실비아는 조금도 긴장한 기색이 없는 펠릭스를 보고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왜요?”


“그냥요. 좀 더 진지할 순 없어요?”


“전 항상 진지한데.”


실비아는 더이상 펠릭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그 뒤로도, 펠릭스는 혼자 계속해서 떠들어대며 저벅저벅 걸어갔다.




어두운 동굴을 한참 걸어가던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에 멈춰서서 잠시 자리에 풀썩 앉아버렸다.


“나갈수 있겠죠?”


펠릭스는 가죽부대를 입에 대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신다음에야 대답했다.


“당연하죠.”


“하지만, 벌써 몇 시간이나 여길 빙빙 돌고 있는건지······.”


펠릭스는 회중시계를 꺼내보았다.


“시간은요. 아직 한 시간도 안 됐거든요.”


“말이 그렇다는거죠. 여기서 계속 빙빙 돌고 있는것 같단 말이에요. 안 그래요, 올리버?”


“글쎄. 오히려 난 제대로 가고 있는것 같은데.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기분탓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바람결도 이따금씩 느껴지는걸.”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이제서야 한숨을 푹 쉬며 실비아도 가죽 부대를 꺼내들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영 재미가 없네요. 보석 도마뱀이라도 보면 좋을텐데.”


그러자 물을 마시던 실비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가죽부대를 입에서 뗐다.


“보석 도마뱀이요? 세상에 그런 생물이 다 있나요?”


“거짓말이죠 뭐.”


“아니, 뭐에요? 난 또 진짜 있는건줄 알고 기대했는데.”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도둑이 부자의 주머니를 털어서 보석을 한줌 얻어냈는데, 그걸 내다판다고 생각해봐요. 허름한 차림으로 보석상을 기웃거리면 보석상에서 어디서 구했는지 당연히 묻지 않겠어요?”


“물어보겠죠. 장물을 샀다가는 나중에 경비대에 압수당하니까.”


“그래서, 변명이랍시고 만들어낸 거짓말이 보석 도마뱀이니, 보석 거북이니, 심할 때는 보석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니뭐니 하는 거예요. 세상에, 어떻게 그런 생물이 존재할수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던 펠릭스는, 등 위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잔뜩 붙어있는 도마뱀과 눈이 마주쳤다.




펠릭스는 재빨리 손을 뻗어 도마뱀을 덮쳤지만, 도마뱀은 한발 빠르게 달아나더니 동굴 벽의 조그마한 틈새 속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있네요. 진짜로.”


“이게 있네.” 펠릭스는 어이가 없다는듯 헛웃음을 지었다. “거짓말인줄 알았는데, 진짜 볼 줄이야.”


“누구한테 들었는데요?”


“대스승님이요.” 펠릭스는 아깝다는듯 입맛을 다셨다. “붙잡았으면 좋았을걸. 안 그래요, 올리버?”


“별로. 아마, 저 반짝이던것도 우리가 잠시 잘못 본 거거나, 비늘이 조금 희한하게 변화한 것에 불과할걸.”


“낭만없기는. 어휴. 알았어요. 이제 그만 출발하죠.”


그리고 펠릭스는 손을 툭툭 털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마뱀이 사라진 틈새를 계속 아깝다는듯 힐끗거렸다.




얼마쯤 안을 걸어가던 올리버는 두 사람을 불러세웠다.


“왜요?”


“여기, 위쪽에 구멍이 뚫려있는데. 펠릭스. 조명 좀 가까이 줘봐.”


펠릭스가 가까이오자, 올리버는 눈쌀을 찌푸리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때요?”


“구멍이 있기는 한데, 지반이 좀 약한것 같아. 잠시······아이쿠!”


올리버가 휘청거리자 펠릭스는 재빨리 그에게 달려갔다.


“왜그래요?”


“아니, 뭐야 이게. 썩은 밧줄이잖아. 왜 여기있지?” 올리버는 밧줄을 들고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다시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좀 보여요?”


“전혀. 잠시만, 이쪽 벽을 타면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밧줄 잡아줘요?”


올리버는 발에 채이는 돌멩이를 하나 집어, 천장을 향해 휙 던졌다. 돌멩이는 금새 어딘가에 부딪혀 또르르 소리를 냈다.


“맨몸으로 떨어져도 다치지도 않겠는데. 일단, 올라가볼게. 보고 땅이 단단하면 로프를 내려 줄테니까, 너희 둘은 여기서 기다려.”


“다녀와요 올리버.”


“그래.”


“조심해요.”


실비아가 걱정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올리버는 웃으며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벽을 타오르기 시작했다.




올리버는 그 어둠 속에서도 능숙하게 벽을 타올라, 금새 밧줄을 하나 내려주었다.


“먼저 올라가요.”


펠릭스가 밧줄 끄트머리를 실비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고맙네요.”


그리고 실비아는 밧줄을 허리에 감고 벽을 타올라, 역시 금새 위로 쭉쭉 올라갔다.


“귀족 가문의 아가씨라는거, 사실 거짓말이죠?”


“진짜에요!”


“벽 타오르는 폼만 봐서는, 무슨 시골에서 나무타고 놀던 어린애랑 똑같은데.”


“나무타고 논건 맞지만, 전 귀족 맞거든요!”


위로 올라간 실비아는 밧줄을 아래로 휙 던졌다. 펠릭스는 밧줄을 두어번 당겨본 다음에야 그 역시 몸에 밧줄을 감고 암벽을 타올랐다.




구멍 위의 공간에는 전혀 뜻밖의 것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머물던 비밀 공간 같은 곳에 뜻하지 않게 들어온 세 사람은 다들 말이 없었다.


그리고 썩어버린 옷가지와 낡아버린 종이. 녹아내린 양초. 백골 시체를 그들은 천천히 돌아보았다.


“세상에. 여기 살던 사람이 있었나봐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실비아가 말하는 동안, 펠릭스와 올리버는 비위좋게 그 공간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예의좀 차려요! 여긴, 무덤이잖아요······.”


“무덤은 무슨.”


펠릭스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는 조그마한 종이 책자 같은 것을 집어들어 페이지를 훌훌 넘겼다.


“뭐에요?”


“아, 뭐. 별건 아니네요. 일기장이에요. 서쪽 살던 사람인데, 전쟁 때문에 이리저리 도망다니다가 여기 자리를 잡았다고. 우리보다 먼저 그 수정 동굴도 찾았나봐요.”


펠릭스가 펼쳐진 일기장을 실비아 쪽으로 보여주며 말했다. 하지만 거리와 어둠 때문에 실비아는 책자의 글자를 읽지는 못했다.


“그렇군요. 그래서, 어쩌다가 죽었대요?”


펠릭스는 다시 책자를 살펴보았다.


“자살이요.”


“네?!”


“연인이랑 같이 도망왔는데, 식량이 다 떨어졌대요. 밖으로 나갈 용기도 없었고. 그래서 같이 죽은거죠 뭐.”


펠릭스는 책자를 탁 덮고 도로 내려놓았다.


“그게 다예요. 밖으로 나가는 통로가 있다니까, 우리한텐 잘 된 일이죠.”


“안됐군.”


올리버는 두 구의 백골을 씁쓸하게 내려보았다.


“장례도 못 치르고.”


“에이, 올리버. 그렇다고 등에 시체를 업고 여길 빠져나갈 수는 없어요.”


“나도 알아. 그리고, 우리가 들고 옮겨봤자 금방 부서질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불쌍한 아이들이군.”


“저기, 그러면요. 저, 기도문 욀 줄 아는데. 기도라도 하고 가요.”


실비아의 말을 들은 올리버는 그녀를 돌아보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조용한 동굴 한 가운데서 실비아의 청아한 목소리가 조곤조곤 울려퍼졌다. 이름도 모르는 서쪽 땅의 누군가를 향해, 실비아는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 조용한 기도문을 외어주었다.


“다예요.”


실비아는 다시 백골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명복도 빌어줬고, 이제 그만 가죠. 원, 시간낭비야. 하여튼······아야!”


그 때, 천장이 쩍 갈라지더니 조그마한 돌 하나가 펠릭스의 머리를 강타했다. 펠릭스는 억울한 얼굴로 머리를 쓸어내리며 천장을 보다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위, 위!”


“뭐?”


“위에!” 펠릭스가 방방 뛰며 말했다. “금, 금이요! 금이에요!”


“뭐?”


그 공간을 나서려던 올리버도 펠릭스의 말을 듣고는 재빨리 돌아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진짜야? 황동석이나, 뭐 그런거 아냐?”


“알아봐야겠지만, 일단은 금 같아요! 잠시만요······.”


펠릭스는 허둥거리며 주머니를 정신사납게 뒤적거리다가, 무슨 긴 금속 자 같은 것을 꺼내 그 금빛 광물을 조금 긁어보았다. 그리고, 다시 그가 웃기 시작했다.


“진짜! 진짜 금이다! 세상에. 금광이 있었다니!”


“펠릭스! 그건, 당신 금이 아니에요.”


“그럼 누구건데요. 저 사람들?”


펠릭스가 백골을 가리키자 실비아는 헛기침을 했다.


“실비아거지. 이 경우엔.”


그리고 가만히 금을 바라보던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네? 왜요?”


“실비아가 기도문을 외서, 금이 나온거잖아. 안 그래?”


“아니, 그거랑은 아무 상관도 없죠. 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인데······.”


“어허. 펠릭스. 미신을 믿는 주제에, 너무 함부로 말하는거 아냐? 너 그러다 저주받을지도 몰라.”


펠릭스는 혼자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금새 투덜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요 가. 내 참. 알았어요. 실비아, 당신 맘대로 해요!”


“진짜죠?”


“그래요. 뭐, 사실 난 저런 금광같은거 없어도 아무런 문제도 없거든요!”


펠릭스는 과장된 걸음걸이로 앞서가며 말했다.


“그러니, 당신 가져요.”


“좋아요. 아빠한테 알려줘야겠다.”


“네? 다른데 안 팔고요?”


“아빠요. 잘은 몰라도, 항상 돈 버느라 바쁘니까요······.”


실비아는 순식간에 침울해졌다.


“그래. 뭐, 실바누스 준남작이라면 괜찮겠지. 안 그래, 펠릭스? 그는 일 처리도 확실히 할테고······.”


“그렇겠죠. 금광이 발견되면, 도로도 새로 닦고. 인부도 많이 필요하고. 마을은 덩치가 커지고, 마차가 거리를 오가고. 황금을 이리저리 옮기고. 발전하고 그러겠죠 뭐. 하지만, 일단은 밖으로 나가기나 하자고요.”


그리고 펠릭스는 마침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나무 문짝을 있는 힘껏 열어젖혔다. 문을 열고보니, 거긴 출입구를 돌과 흙으로 대강 덮어두어 동굴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었다.


“출구네요. 거, 숨을거면 좀 안쪽 깊이 숨지.”


그리고 공연히 투덜거리며 펠릭스는 먼저 동굴 밖으로 나가버렸다.


“야, 펠릭스! 구슬은 주고 가야지! 혼자 가면 어둡잖아!”


“펠릭스! 쓸데없이 심술 부리기는요!”


그리고 두 사람이 허겁지겁 밖으로 빠져나오는 동안에, 펠릭스는 그 일기장의 말미에 적혀있던 말을 떠올렸다.


‘동쪽도, 서쪽도, 서로 사이좋게 지냈으면.’


“흠. 실바누스 준남작이라면, 뭐. 현지인 대접은 잘 해주려나.”


“펠릭스. 혼자가면 어떡해? 내 참. 갑자기 어두워져서 놀랬네.”


그리고 올리버가 빠져나오자 펠릭스는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뭐 어때요. 조금만 걸어나오면 바로 이 찬란한 빛 아래인데. 여긴, 굉장히 밝잖아요? 안 그래요?”


대답을 마친 펠릭스는 다시 한낮의 따사로운 태양이 비추는 길 위를 걸어가기 시작했고, 올리버는 조금 들뜬 실비아와 함께 펠릭스의 뒤를 따라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행복의 연금술 가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3 113화 21.12.03 25 1 24쪽
112 112화 21.12.02 24 1 23쪽
111 111화 21.12.02 26 1 22쪽
110 110화 21.12.01 27 1 24쪽
109 109화 21.12.01 24 1 19쪽
108 108화 21.11.30 32 1 22쪽
107 107화 21.11.30 27 1 23쪽
106 106화 21.11.29 28 1 25쪽
105 105화 21.11.29 24 1 22쪽
» 104화 21.11.28 30 1 23쪽
103 103화 21.11.28 32 1 23쪽
102 102화 21.11.27 27 1 23쪽
101 101화 21.11.27 22 1 21쪽
100 100화 21.11.26 25 1 20쪽
99 99화 21.11.26 24 1 23쪽
98 98화 21.11.25 26 1 19쪽
97 97화 21.11.25 25 1 19쪽
96 96화 21.11.24 26 1 20쪽
95 95화 21.11.24 24 1 20쪽
94 94화 21.11.23 29 1 19쪽
93 93화 21.11.23 23 1 18쪽
92 92화 21.11.22 29 1 21쪽
91 91화 21.11.22 24 1 19쪽
90 90화 21.11.21 26 1 21쪽
89 89화 21.11.21 25 1 22쪽
88 88화 21.11.20 25 1 20쪽
87 87화 21.11.20 31 1 23쪽
86 86화 21.11.19 27 1 22쪽
85 85화 21.11.19 27 1 23쪽
84 84화 21.11.18 27 1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