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HoneyShake 님의 서재입니다.

전쟁 이후의 판타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06.23 14:41
최근연재일 :
2020.10.22 17:46
연재수 :
103 회
조회수 :
12,002
추천수 :
388
글자수 :
549,913

작성
20.06.24 12:22
조회
474
추천
11
글자
13쪽

유령 사냥꾼 - 3

DUMMY

아그리파는 나이가 들면서 사냥보다는 투자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테디아와 천족의 다른 영토를 잇는 무역 회사들에 상당한 자금을 쏟아 부었다.


자연스럽게 가문의 전통을 잇는 것은 마리우스의 역할이 되었다. 그리고 부모를 속이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되었다.


우선 클라우디아는 부모에게 자신이 정수 추출을 오빠에게 배우겠다고 말했다. 루첼은 반대했지만, 아그리파는 딸이 드디어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며 크게 기뻐했다. 약속대로 마리우스는 가끔씩 유령을 한두 마리 사냥해 그녀에게 가져다주었다.


물론 그걸로는 부모에게 가져다 줄 돈을 충당할 수는 없었다. 마리우스는 군트프리트의 집에서 가져온 금화를 하나씩 클라우디아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그 금화를 가지고 테디아 성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뒤’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런 다음 그 금화를 부모에게 준 것이다.


마리우스는 시간이 날 때마다 군트프리트의 집에 찾아갔다. 쇠사슬을 타고 올라가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마리우스는 마법진에서 유령이 만들어지는 광경을 딱 한 번 보았는데, 처음에는 약간 겁을 먹었지만 역시나 화살 한 방에 죽어버렸다. 그는 군트프리트의 집을 서너 번 정도 더 방문하며, 그의 집에 있던 모든 종류의 책이나 무기들을 살펴보았다.


그 중 가장 유의미한 소득은 암흑 군주의 일기장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속마음을 남에게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어린 아이처럼, 서재가 아닌 무기 창고의 깊숙한 곳에 그 일기장을 보관해 두었다. 마리우스는 마치 관음증에 걸린 사람처럼 일기를 빠르게 읽어 나갔다.


990년 3월 6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공허해진다. 난 분명 수백 년 전 연인의 복수를 위해 천족의 영토로 왔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하지만 전혀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가 아이넬의 병사들을 죽이면 천족의 계승자들이 내 유령들을 학살한다. 그러면 얼마 뒤 마족의 계승자들이 날 도우러 온다. 끝없는 일진일퇴의 반복이다.


언제부턴가 내가 사랑했던 여자의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미쳐버릴 것 같다. 부하의 말로는 20년 전 쯤에 천족의 암살자들이 내 집을 불태우고 나에게 심한 부상을 입혔는데, 이때 그녀에 관한 기록이 전부 사라지고 그녀에 대한 기억까지 잃어 버렸다고 한다. 하하하. 난 참 한심한 사람이다.


종종 이 짓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마족 계승자들의 말에 따르면 난 천족 영토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유일한 마족으로서, 사실상 장군의 직책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그만둬서도 안 된다고 한다.

난 그런 직책은 바란 적 없다. 그저 복수를 위해 싸워왔을 뿐이다.


990년 5월 19일

요즘 들어 내 유령을 사냥하려는 사냥꾼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다. 첩자들의 말에 의하면 유령에서 나온 정수가 마법 무기를 만드는 데 꽤 비싼 값에 팔린다고 한다. 계승자도 아닌 주제에 나에게 도전하다니, 그 용기만큼은 칭찬해주고 싶다. 물론 그들은 단 한 명도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990년 10월 22일

이틀 전 천족 계승자들이 대규모로 습격해 왔다. 이제까지 본 적 없던 규모다. 그들은 전방의 포병 부대까지 끌고 와 쉴 새 없이 포격을 퍼부었다.


날 도우러 온 마족 계승자들은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대부분이 결국 죽고 말았다. 내가 이런 말 하는 게 좀 한심하지만, 천족 군대는 정말 잔인했다. 심지어 항복한 마족 병사들까지 전부 죽여 버렸다.


내가 데리고 있던 유령들의 절반가량이 소실되었다. 내 집이 있는 부유섬은 더 이상 자체 에너지만으로는 버티지 못한다. 난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부유섬에 말뚝을 박고 쇠사슬을 연결한 뒤, 내 영토에서 가장 마력의 농도가 높은 곳에 같은 방식으로 연결해 뒀다. 이제 그 영토에서 생긴 마력이 쇠사슬을 타고 올라가 부유섬을 하늘에 떠 있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991년 2월 7일

상황이 갈수록 안 좋아지는 것 같다. 첩자들의 말로는 모든 전선에서 마족이 밀리고 있다고 한다. 마족 영토 곳곳에서 정체불명의 괴수들이 나타나 도시를 습격해서, 제대로 된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이곳에도 그 패배의 여파가 전해지고 있다. 날 도우러 오는 마족 계승자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자신들의 주요 도시가 공격당하는 상황에서 적 진영에 침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적극적인 공격을 강구해야만 한다. 공격은 언제나 최선의 방어다.


991년 11월 29일

테디아 지역에서 활동하던 마족들과 연합해 테디아 성을 공격했다. 일시적 점령에는 성공했지만, 곧이어 차원문을 통해 천족의 대규모 군대가 몰려드는 바람에 다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나름 유의미한 타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적의 주요 생산 시설과 무기고, 유물 보관소를 모두 불태웠으며, 무엇보다 사원을 파괴했으니 당분간은 테디아에서 계승자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쪽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내가 복부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당분간은 부유섬 안에서 틀어박혀 지내야 할 것 같다.


991년 12월 20일

무기에 맹독이 묻어 있었는지 쉽게 낫지를 않는다. 이 상황에서 가만히 누워 있으면 안 되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992년 3월 15일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여전히 낫지 않는다. 몇몇 마족 사제들이 날 치료하려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이 저주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최고위 사제가 와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내 요청에 답하지 못하고 있다. 전황이 갈수록 우리에게 불리하게 변하는 탓이다.


우리의 수도 발할라가 공격을 받아 점령되기 직전의 상황이라고 한다. 몇몇 마족 외교관들이 협상을 시도하지만 잘 안 되는 것 같다.


정말로 우리가 패배한 것인가? 마족은 천 년에 가까운 전쟁에서 대체적으로 공세적인 입장에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패배는 사실 납득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정말로, 정말로 이제 끝이라면, 차라리 계속 싸우는 것보다는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난 너무 오래 싸웠다. 더군다나 상처 때문에 갈수록 움직이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 그냥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마침내 내가 사랑했던 그녀 곁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992년 5월 19일

처음 보는 여자가 날 치료해줬다.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내가 사랑했던 그 여자와 닮게 느껴졌다. 순간 정말로 연인이 살아 돌아온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녀는 마족의 날개를 갖고 있었다. 내가 사랑했던 여자는 분명 천족 사람이었다. 그것만큼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그 여자는 사제들이 쓰는 치유의 주문을 어느 정도 쓸 수 있었다. 상처는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고통은 한결 덜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은 바이젤이며, 자신은 차원문에 대한 조사를 위해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내가 누워 있는 사이 전쟁은 이제 거의 다 끝났다고 한다. 천족의 군대는 마족 영토 깊숙이 진군했으며, 우리의 주신 데브칸은 죽었다. 몇몇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저항이 벌어지고 있지만, 머지않아 전부 제압당할 것이라고 한다.


바이젤의 말에 따르면 마족이 패배한 가장 큰 이유는 마계에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수들 때문이라고 한다. 정황상 예전에 마족 영토를 습격한다고 했던 그것들이 맞는 것 같다. 아무튼 그녀는 그 괴수들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형태를 띄고 있으며, 군대가 출동하면 이길 수는 있지만 도시 곳곳에 끊임없이 출몰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마족의 피해가 누적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대부분의 마족은 천족에게 항복했으며, 천족들이 곧 이곳에도 들이닥칠 것이다. 난 항복할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반대했다. 추하게 도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살아있는 쪽이 더 낫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내가 지금 그녀가 하는 일에 동참하기를 원했다.


992년 5월 25일

결국 그녀를 따라 내 영토에서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 마족이 패배한 상황에서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이는 일이긴 하지만,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녀를 돕기로 했다. 어찌되었든 날 치료해 준 사람이 아니던가.


바이젤은 본래 마족 장교였으며, 다른 계승자가 그렇듯이 수많은 전투를 치루었다고 한다. 전쟁의 막바지에, 그녀는 마족 영토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수에 대해 조사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조사 결과 괴수들의 전투력은 상당히 강력했으며, 바이젤은 괴수 퇴치에 더 많은 군대를 투입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천족과의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그녀의 요청은 기각되었고, 결국 도시 곳곳에 괴수들이 출몰해 마족을 크게 약화시켰다.


마족을 휩쓴 괴수는 현재 천계에도 계속 나타나고 있지만, 천족 정부는 그것을 감추고 있다. 아직까지는 그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며 언젠가는 천족 역시 우리와 같은 꼴을 당할 것이다. 그 전에 그 괴수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비록 적이었지만, 괴수를 그대로 놔두면 언젠가는 모든 인류가 전멸할 것이다.


난 일기장에 그 괴수에 대해 기록하려 한다.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천족의 군대를 부르는 것이지만, 그랬다간 우리가 먼저 죽을 수도 있을뿐더러, 천족의 계승자들이 우리들의 얘기를 들을 것 같지는 않다. 심지어 들리는 바에 의하면 몇몇 천족의 관리들은 그 괴수가 자신들 편이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한심한 착각이다. 그 괴수는 머지않아 공공의 적이 될 것이다.


난 한평생을 오직 복수만을 위해 살아왔다. 지금 내 옆에서 불을 피우고 있는 여자가 어쩌면 날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993년 6월 7일

우리들은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테디아 영토 전체를 돌아다니며 그 괴수들의 흔적을 쫓았다. 바이젤은 발할라가 점령당하기 직전 그곳의 대장간 안에서 특이한 기계 하나를 만들어 냈는데, 그 기계는 괴수가 남기는 마력을 쫓을 수 있게 해주는 굉장한 추적 장치였다.


괴수의 흔적을 쫓은 결과, 마침내 그들 중 하나와 만나게 되었다. 바이젤의 말대로, 그것의 생김새는 뭐라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언뜻 보면 단지 거대한 구울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기하학적인 신체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생물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천계와 마계 곳곳에서 서식하는 수인이나 야생 동물들도 저렇게 기이하게 생기지는 않았다.


그 괴물은 몇몇 천족 사람들을 사냥해 자신의 영역 안에 그 시체들을 쌓아두었다. 정황상 그들은 인간을 먹이로 삼는 듯하다. 우리는 결국 괴수 한 마리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내가 팔에 약간의 부상을 입은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괴수에게서는 특이하게도 어떠한 악취도 나지 않았다. 이는 매우 이상한 일이다. 어떻게 냄새가 나지 않을 수 있을까? 바이젤은 이 괴수들이 바깥 세계에서 왔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별다른 근거는 없지만, 왠지 신뢰가 가는 주장이다.


993년 7월 15일

저번에 부상을 입은 왼쪽 팔이 뭔가 이상하다. 크게 아프거나 한 건 아닌데, 점점 감각이 둔해지는 것 같다. 독에 중독된 게 아닌가 싶었지만, 육체적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바이젤은 내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착각을 한다고 말하지만, 분명히 내 몸에는 어딘가 문제가 있다.


바이젤은 괴수에 대해 계속해서 조사하고 있다. 괴수들은 특정한 원소 속성을 가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불 속성 마법이든 물 속성 마법이든 그냥 두들겨 패면 죽일 수 있었다. 또한 괴수들의 얼굴이 항상 인간인 것은 아니다. 개나 거대 도마뱀의 얼굴을 한 괴수도 존재한다. 그 괴수들이 이 세계의 생물을 모방하는 것일까?


그녀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또 알아냈는데, 괴수들은 항상 차원의 균열을 타고 넘어온다는 것이다. 그 균열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는 아직은 모른다. 이 균열을 틀어막는다면 괴수의 침공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993년 7월 28일

왼쪽 팔의 감각이 거의 없다. 바이젤 역시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내 팔을 치료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지만, 차도가 없다. 요즘 들어 기억력도 점점 감퇴하는 것 같다.


일기는 몇 장 더 이어져 나갔지만, 마리우스는 그 글들을 해석할 수 없었다. 마치 정신적으로 어딘가 아픈 사람이 쓴 것 같았다. 종국에는 이것이 글인지 그림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게 되었다.


“당신, 대체 누구야?”


등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저번에 만났던 그 여자였다. 바이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전쟁 이후의 판타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3 후기 20.10.22 62 2 1쪽
102 마지막화 20.10.22 76 2 12쪽
101 결전 - 5 20.10.21 48 1 11쪽
100 결전 - 4 20.10.20 39 1 12쪽
99 결전 - 3 20.10.19 45 1 11쪽
98 결전 - 2 20.10.16 35 1 11쪽
97 결전 - 1 20.10.15 40 1 12쪽
96 새로운 세계 - 7 20.10.14 43 1 11쪽
95 새로운 세계 - 6 20.10.12 42 1 11쪽
94 새로운 세계 - 5 +1 20.10.09 46 2 11쪽
93 새로운 세계 - 4 20.10.08 43 1 12쪽
92 새로운 세계 - 3 20.10.07 50 1 12쪽
91 새로운 세계 - 2 20.10.06 53 1 11쪽
90 새로운 세계 - 1 20.10.05 59 1 11쪽
89 심판 - 4 20.10.02 52 1 11쪽
88 심판 - 3 20.10.01 56 1 11쪽
87 심판 - 2 20.10.01 56 1 12쪽
86 심판 - 1 20.09.29 96 1 12쪽
85 각성 - 11 20.09.29 61 2 12쪽
84 각성 - 10 20.09.24 70 2 12쪽
83 각성 - 9 20.09.23 68 2 12쪽
82 각성 - 8 +1 20.09.21 62 3 12쪽
81 각성 - 7 20.09.18 62 2 12쪽
80 각성 - 6 20.09.17 67 2 11쪽
79 각성 - 5 20.09.15 61 1 12쪽
78 각성 - 4 20.09.14 59 2 12쪽
77 각성 - 3 20.09.11 62 1 11쪽
76 각성 - 2 20.09.10 64 1 11쪽
75 각성 - 1 20.09.09 74 2 10쪽
74 엘리시온 탈환 작전 - 12 20.09.08 59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