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HoneyShake 님의 서재입니다.

전쟁 이후의 판타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06.23 14:41
최근연재일 :
2020.10.22 17:46
연재수 :
103 회
조회수 :
11,975
추천수 :
388
글자수 :
549,913

작성
20.09.29 11:52
조회
95
추천
1
글자
12쪽

심판 - 1

DUMMY

아스트로 게임즈 측의 변호사들은 재판 시작에 앞서 작전을 논의하고 있었다.


“굳이 이걸로 재판을 해야 되요?”


한 변호사가 불만을 표시했다.


“애초에 누가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코드를 공개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정부에서 싸울 거면 이렇게 싸우라고 했으니 어쩔 수 없지.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것보다 훨씬 문명적이잖아. 게다가 일을 벌린 덕에 우리에게 일거리가 생겼고. 우리는 그냥 개발자들 장단만 맞춰주면 돼.”


“그분들도 정보를 공유하지를 않으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아, 시간이 됐네요.”


양측의 인원들은 모두 재판장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뒤이어 미네르바를 살펴볼 기술 판사가 들어왔다. 그들의 가운데에는 페어리 월드를 작동 중인 컴퓨터가 있었다.


“그러면 디지털 인간의 인권 침해에 관한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원고 측 변론해주십시오.”


판사가 말했다. 헤스티넘 멤버들 중 변호사 경력이 있는 사람이 이번 재판의 주연을 맡았다.


“이미 뉴스를 통해 다들 보셨겠지만, 이 컴퓨터 안에 있는 여자는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처럼 말하고, 듣고, 생각할 줄 압니다. 즉 그녀는 대한민국 국민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아스트로 게임즈는 그녀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그녀가 살고 있는 세계가 파괴되도록 방치했습니다. 이는 명백한 살인 방조죄 및 인권 침해에 해당됩니다.”


“일단 그녀가 하는 말을 들어보고 싶군요.”


미네르바는 홀로그램 앞에 서서 오른손을 들었다.


“......저는 양심에 따라 숨기거나 보태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말하며, 만약 거짓말을 하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미네르바 씨, 본래는 스스로 게임 캐릭터라는 자각이 없었다고요?”


“그렇습니다. 전 저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진짜 현실인 줄 알았습니다.”


“자신이 캐릭터라는 걸 언제 깨달았죠?”


“게리온이라 불리는 괴수들이 제가 살고 있는 곳을 침공했을 때, 그들과 맞서던 몇몇 전사들은 괴수의 본거지를 찾으러 이 세계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들은 괴수의 본거지를 찾지는 못했지만, 괴수들을 만든 것이 개발자라 불리는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더 나아가 이 세계가 가짜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괴수......?”


“재판장님, 잠시만......”


합의부원 한 명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괴수들이 저 디지털 세계에도 나타난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괴수를 소재로 한 게임을 개발하는 도중에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음......알았다. 그럼 질문을 계속하죠, 미네르바 씨. 그렇다면 당신은 괴수의 침공과 자아의 각성이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단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괴수의 침공이 막기 어려울 정도로 심해진 건 그라쿠스라는 이름의 한 여인 때문입니다.”


“그 여인에 대해 설명해 주시죠.”


“그녀는 이 세계가 가짜라고 생각했고, 세계를 멸망시킨 뒤 창조주에게 간섭받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현실 세계와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마나’라 불리는 특수한 에너지를 다루며, 인간의 영혼에도 마나가 존재합니다. 만약 인간이 죽을 경우에 영혼에서 상당한 양의 마나가 빠져나가는데, 그라쿠스는 그 에너지를 수집한 뒤, 한순간에 세계를 재창조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녀의 계획을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우리는 조사 끝에 제가 살고 있는 천계가 가짜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 외에 그 세계가 가짜라는 것을 인지한 사람은 몇 명입니까?”


“오늘 아침에 보고받은 바에 따르면 약 35,000명이 자아를 자각했습니다.”

재판장 안이 술렁거렸다.


“3만 명이 넘다니......”


“이러다가 우리나라 국민 중에 살아있는 인간보다 디지털 캐릭터가 더 많아지는 거 아냐?”


“조용, 재판 중에는 정숙하십시오. 증언 잘 들었습니다. 이제 피고 측 변론하십시오.”


아스트로 게임즈의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재판장님도 아시겠지만 이것만 가지고 그녀에게 자아가 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이건 일종의 일라이자 효과입니다. 그녀에게 자아가 있다고 우리 모두 착각하고 있는 것이죠. 저 정도로 말하는 인공지능은 대학생도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즉 헤스티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건가요?”


“그렇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헤스티넘 멤버들은 그저 순진할 뿐입니다. 그들은 속고 있다고 봐야겠죠. 그들을 속이는 이 모든 일의 원흉은 바로 레이 박사입니다.”


“레이?”


“그는 아스트로 게임즈의 주요 임원 중 한 명으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로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회사 전체를 지배하길 원했죠. 그래서 게임 캐릭터에게 인간성이 있는 것처럼 꾸민 겁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술을 선도하는 사람인 마냥 꾸민 뒤, 재판을 통해 아스트로 게임즈의 손발을 묶은 다음, 자신이 회사를 집어삼키려 한 것입니다.”


“손발을 묶는다는 게 뭡니까? 만약 재판에서 진다면 게임 개발이 중단되나요?”


“아시다시피 저희들은 국제 인터넷 협회에 속해 있는데......이곳에서는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만약 재판에서 패배한다면 당연히 그 협회에서 나와야 하고, 그곳에서 개발한 각종 오픈소스를 사용할 수도 없게 됩니다. 그러면 게임 개발은 여러모로 어려워지겠죠. 반면 레이 박사는 인공지능 전문가이며 게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게임을 없앤 뒤 과거 중국 공산당이 했던 것과 같은 일을 하려고 합니다.”


“공산당이라니 말이 심하시군요.”


헤스티넘 측 변호사가 맞받아쳤다.


“엄밀히 따지자면 피고 측의 발언 역시 어디까지나 증언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있나요?”


“NPC들의 인공지능을 공개하면 됩니다. 그 인공지능을 구성하는 코드를 직접 확인한 뒤 분석하면 됩니다.”


“헤스티넘, 이에 대해 할 말이 있습니까?”


“레이 박사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재판장의 문이 열리고 레이가 들어왔다. 그는 장난기를 최대한 감춘 채 무대 위에 섰다.


“저는 양심에 따라......만약 거짓말을 하면 위증의 처벌을 받겠습니다.”


“레이 씨, 피고 측은 당신이 헤스티넘의 팀원들을 속였다고 하는군요.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함이라면, 미네르바를 비롯해 NPC들의 정신을 구성하는 코드를 공개해야 합니다.”


“완전한 공개는 무리입니다. 이건 회사 기밀이기 이전에 제 기밀입니다. 장차 한국의 발전에 중요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공개하는 건 매국이나 다름없죠. 물론 판사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도 압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USB메모리 하나를 꺼냈다.


“이 안에 재판장님이 원하시는 모든 게 담겨 있습니다. 이 메모리를 증거물로 제출합니다. 단 절대로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됩니다.”


“이 코드의 양이 얼마나 되죠?”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다만 혼자서 분석하기에는 좀 버거울 겁니다.”


“디지털 인간이 인권을 보장받으려면 이 코드를 살펴보는 수밖에 없겠군요. 일단 오늘의 재판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헤스티넘과 아스트로 게임즈는 둘 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 불안해하고 있었다. 헤스티넘의 몇몇 멤버들은 혹시 정말로 레이 박사가 자신들을 속인 게 아닐까 불안해했다. 물론 그들 역시 숙련된 프로그래머이긴 했으나, 레이 박사가 설명하는 인공지능의 개념을 이해할 만큼 똑똑하지는 못했다. 즉 그들은 그저 믿는 수밖에 없었다.


아스트로 게임즈의 변호사와 개발자들 역시 미네르바의 코드를 열어본 적은 없었다. 핵심 기술들은 모두 레이 박사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박사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아스트로 게임즈는 대량 학살자가 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일 골치가 아팠던 것은 바로 판사였다. 왜냐하면......


*****


“도저히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이 코드를 전부 살펴보는 건 불가능합니다.”


재판장이 말했다.


“저랑 두 합의부원 판사, 그리고 인공지능 전문가 10명을 동원해 일주일 동안 살펴봤지만, 분량이 너무 거대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이걸 이해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재판장에 모인 사람들은 몹시 당황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재판장님, 원칙적으로 증거의 진위 여부를 판별할 수 없을 때에는 무시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아스트로 게임즈의 변호사가 말했다.


“재판장님, 독일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내놓겠습니다. 이 문서를 증거 자료로 제출할 것을 허가해 주십시오.”


헤스티넘의 변호사가 말했다. 판사는 그 문서를 받아보았다. 문서의 제목에는 “미네르바의 자아 연구 결과”라고 쓰여 있었다.


“그 문서에는 미네르바가 명백하게 자아를 갖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어 있습니다.”


“외국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재판장님, 애초에 그 코드만 가지고 인격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럴 줄 알고 다른 증거 자료를 준비해왔습니다. 제가 USB로 제출한 코드와 같은 코드를 이용해 인공지능을 만든 결과입니다.”


“단순히 시키는 일만 하는 인공지능과 정말로 생각하는 존재는 다릅니다!”


“정숙, 둘 다 정숙하세요. 재판은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


“그래서 아직 판결이 안 났다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헤스티넘에서는 지속적으로 여신님이 자아가 있는 존재임을 어필하고 있고, 점점 더 많은 배심원들이 여신님의 편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포스마린이 대답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나한테 접촉해오는 사람들이 있어. 레벨이 높지 않은 걸로 보아 이 게임에 접속한 지 오래되지는 않아 보이는데, 뭔가 좀 특이해보여.”


“어떤 부분에서 특이합니까?”


“그건 나도 잘......”


“제가 대신 설명하겠습니다.”


옆에 있던 마리우스가 나섰다.


“전 그들의 채팅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제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대화했습니다. 그 말들을 소라고둥에 녹음했다가 검색을 해봤는데,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언어로 나타났습니다.”


“베트남......? 이런, 예상보다 빨리 움직인 건가.”


“뭐가 문제입니까?”


“너도, 여신님도, 모두 잘 들으십시오. 아마 여론에 떠밀려 머지않아 여러분은 인간으로 인정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닙니다. 세계 각국에서는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을 반드시 걸고넘어질 겁니다. 어쩌면 각국의 대사들이 여러분을 심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에 대비해야만 합니다.”


“어떤 식으로?”


“최대한 평화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십시오. 그리고......”


*****


포스마린의 말은 사실이 되었다. 지리멸렬한 재판에서 결국 미네르바는 인간으로 인정받았으며, 아스트로 게임즈는 재판 비용을 모두 내는 것은 물론 미네르바의 지시에 따라 괴수 제거 작업을 해야만 했다. 아스트로 게임즈는 당분간 괴수가 등장하는 게임은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괴수가 천계를 침공하는 원인 중 하나로 괴수를 죽이는 게임이 꼽혔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들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이런 걸 만들었다는 것에 내심 자부심을 느꼈다. 전쟁 이전의 시대에서,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가장 높은 기술적 가치를 지녔다. 한동안 그것은 무시당해왔으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전쟁 이후의 판타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3 후기 20.10.22 62 2 1쪽
102 마지막화 20.10.22 76 2 12쪽
101 결전 - 5 20.10.21 48 1 11쪽
100 결전 - 4 20.10.20 39 1 12쪽
99 결전 - 3 20.10.19 44 1 11쪽
98 결전 - 2 20.10.16 35 1 11쪽
97 결전 - 1 20.10.15 40 1 12쪽
96 새로운 세계 - 7 20.10.14 43 1 11쪽
95 새로운 세계 - 6 20.10.12 42 1 11쪽
94 새로운 세계 - 5 +1 20.10.09 45 2 11쪽
93 새로운 세계 - 4 20.10.08 43 1 12쪽
92 새로운 세계 - 3 20.10.07 50 1 12쪽
91 새로운 세계 - 2 20.10.06 53 1 11쪽
90 새로운 세계 - 1 20.10.05 58 1 11쪽
89 심판 - 4 20.10.02 51 1 11쪽
88 심판 - 3 20.10.01 55 1 11쪽
87 심판 - 2 20.10.01 56 1 12쪽
» 심판 - 1 20.09.29 96 1 12쪽
85 각성 - 11 20.09.29 60 2 12쪽
84 각성 - 10 20.09.24 69 2 12쪽
83 각성 - 9 20.09.23 68 2 12쪽
82 각성 - 8 +1 20.09.21 61 3 12쪽
81 각성 - 7 20.09.18 61 2 12쪽
80 각성 - 6 20.09.17 67 2 11쪽
79 각성 - 5 20.09.15 61 1 12쪽
78 각성 - 4 20.09.14 59 2 12쪽
77 각성 - 3 20.09.11 61 1 11쪽
76 각성 - 2 20.09.10 64 1 11쪽
75 각성 - 1 20.09.09 73 2 10쪽
74 엘리시온 탈환 작전 - 12 20.09.08 58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