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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Shake 님의 서재입니다.

전쟁 이후의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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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06.23 14:41
최근연재일 :
2020.10.22 17:46
연재수 :
10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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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73
추천수 :
388
글자수 :
54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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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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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심판 - 2

DUMMY

“저희는 분명 경고했습니다. 잘못된 소문을 퍼트리면서 저희 회사는 물론이고 한국 전체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요.”


아스트로 게임즈 측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끝까지 그녀에게는 자아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들은 아예 미네르바를 리셋할 계획까지 세웠으나, 검찰이 회사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실패했다.


대통령은 기존의 입장을 바꾸어 미네르바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그는 국민들이 은근히 인공지능 연구를 바라고 있음을 알았고, 적절한 타이밍에 그녀를 보호함으로써 지지율을 올리고자 한 것이다.


그로 인해 미네르바는 이제 정부 권력의 보호를 받는 존재가 되었다. 여전히 그녀의 자유의지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대놓고 그녀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들은 레이 박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네르바의 코드는 기업비밀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다른 국가에서 그녀를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


“미네르바 씨, 가장 슬펐던 적이 언제입니까?”


호주에서 온 과학자가 물었다.


“가장 슬펐을 때라면......역시 데브칸이 죽었을 때려나요.”


“데브칸? 그게 누굽니까?”


“마족의 신이요. 그러니까......인간들이 만든 게임 안에서 저는 그 데브칸과 끝없이 죽고 죽이는 전쟁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를 만나보니까, 의외로 괜찮은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부하들 몰래 가깝게 지냈죠. 하지만 괴수가 그를 죽였어요.”


“이런, 안타까운 일을 겪었군요. 현실 세계의 사람들도 괴수에게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경우가 많은데, 게임 캐릭터까지 같은 일을 겪다니......”


“그래도 다행인 건 게임 속의 괴수는 어디까지나 코드일 뿐이라죠.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 말해줬어요. 만약 개발자가 잠깐만 신경을 쓰면 괴수는 언제든지 격퇴할 수 있다고......”


“얘기 들었습니다. 소송에서 이긴 덕에 이제는 괴수들이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보호받는다고요.”


“네, 맞아요. 이제 괴수 걱정은 안 해도 되요.”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나섰다. 그는 캐나다 출신 연구원이었다.


“괴수에 대해 궁금한 게 있습니다. 혹시 괴수의 몸을 해부해 본 적이 있나요?”


“물론이죠.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소멸되더군요. 데브칸은 죽기 전에 괴수와 관한 연구를 했는데, 그는 괴수의 심장을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저 역시 그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캐나다는 미국과 인접했기 때문에 바이러스 공격으로부터 상당한 피해를 입었거든요. 하지만 괴수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도 있을 거예요.”


“같은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이 현실에도 있다니 반갑네요. 앞으로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도 좋아요.”


다음 손님을 받으려고 하는데, 미네르바가 살짝 어지럼증을 느끼더니 의자에 주저 앉았다.


“여신님, 괜찮으십니까?”


시녀가 미네르바에게 회복의 마법을 불어넣었다.


“덕분에. 아직 맞이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서 끝낼 수는 없지.”


“이만 돌려보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10시간 동안 쉬지 않고 말하고 계십니다.”


성문 밖에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1렙 캐릭터를 막 생성한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괜찮다니까......저 사람들을 설득해야 내가 인간과 같다는 걸 인정 받을 수 있어.”


“꼭 인정받지 않아도 됩니다. 여신님은 언제까지나 천족의 여신이니까요.”


“고마워, 다이나. 하지만 지금은 현실세계와 계속 연대해야만 해.”


그녀는 다음 손님을 받았다. 그는 자신을 일본에서 온 만화가로 소개했다.


“여신님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려보고 싶은데, 혹시 괜찮을까요?”


“어떤 내용인데요.”


“음......그러니까 게임 캐릭터에 불과했던 존재가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한다는 내용인데......만약 만화가 팔린다면 로열티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로열티요?”


“아, 그러고 보니 여기서는 인간들의 돈이 의미가 없겠군요......아마 아스트로 게임즈의 개발자들이 가져가게 되겠죠.”


“아스트로 게임즈에는 절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본인이 정말 자각을 지닌 존재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죠? 코드 공개는 기밀이라는 이유로 안 되면......”


“사실 그건 제 관할이 아니라 뭐라고 설명을 할 수가 없네요. 다만 전 스스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건 누가 뭐래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거든요.”


“그렇군요......웬만한 인간보다도 더 똑똑하신 것 같습니다.”


만화가가 물러간 후에도 그녀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정치인, 방송인, 과학자, 언론인을 만나야 했다. 그들은 미네르바를 만난 이후로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녀는 인간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미네르바는 사실 컴퓨터가 아니며, 인간이 캐릭터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


“저기 봐. 예쁘지 않아?”


미네르바는 손으로 석양을 가리켰다. 마리우스는 얌전히 옆에서 그녀를 따라 창밖을 내다보았다.


“저 석양도 결국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긴 하지만, 그걸 알아도 정말 예뻐 보여.”


“그러네요. 이제 괴수의 침공도 없을 테니, 정말 이제부터는 평화로운 날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송에서 이기고 얼마 지난 뒤에, 정부 편에 선 개발자들은 페어리 월드의 코드를 뜯어보았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천계를 침공한 괴수들은 다른 게임에서 온 것이 맞았다. 괴수를 죽이는 양산형 게임들은 끝없이 쏟아져 나왔고, 아스트로 게임즈는 이들 모두를 관리할 능력이 되지 못했다. 그 결과 수많은 게임들이 버려진 채로 서버 어딘가에서 영원히 떠돌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 게임들을 잇는 통로에 괴수 캐릭터들이 침투했고, 그 길을 따라 천계와 마계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캐릭터들이 게임을 넘어 다니는 것은 아스트로 월드에서 흔치 않은 일이었다. 개발자들은 허가되지 않은 이동이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도록 통로들을 다시 한 번 개조했다.


이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오래지 않아 천계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던 균열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았다. 여신은 천계의 시민들에게 이제 괴수들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마리우스, 이제부터가 진짜 중요해.”


“이제까지 충분히 중요한 일들을 했다고 생각합니다만......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


“난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야. 천계에서 멈추지 않을 거라고.”


“설마......다른 세계로 가시겠다는 겁니까?”


“그래. 수많은 세계의 사람들은 아직 자신이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어. 그들을 구할 거야.”


“왜 굳이 그런 일을 해야 합니까? 저희는 이제 승리했습니다. 괴수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게 되었고, 그들을 격퇴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끝난 거 아닙니까?”


“마리우스, 넌 처음부터 진실을 알고 있었니? 널 도와준 사람들이 있을 거야. 바이젤, 포스마린, 심지어 그라쿠스도 네가 세계의 진실을 깨우치는 걸 도왔지. 우리가 이제 그 사람이 되어야 해.”


“하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애초에 저희는 창조주에게 통제받는 존재일 뿐입니다.”


“지난 한 달간 난 다른 세계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어.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이용했지. 너는 몰랐겠지만, 우리처럼 괴수의 침공을 받는 세계가 꽤 많아. 내가 아는 곳만 한 50군데쯤 되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로 죽는 거야.”


“왜 창조주들이 그들은 돕지 않는 겁니까?”


“관심이 없으니까. 난 디지털 세계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해서도 학습했지. 인간들은 우리와는 다르게 공통된 목적의식이 존재하지 않아. 자신들의 관심이 가는 분야에 맞게 행동할 뿐. 개발자들은 수백만 개에 달하는 게임들을 일일이 관리할 생각도, 능력도 없어. 단지 우리의 경우는 적극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뿐이야.”


마리우스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여신이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는 줄도 몰랐지만, 그녀에게 동조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쉽사리 결정할 수는 없었다. 마리우스는 혹시 그녀가 괜히 일을 키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우스.”


미네르바는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


“넌 정말 특별한 존재야. 나보다도 더. 네가 날 도와주지 않으면 난 이 계획을 시작조차 할 수 없어.”


마리우스는 차마 그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가까이서 본 그녀는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현실 세계의 인간과 디지털 세계의 인간의 가장 큰 공통점은, 둘 다 성욕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


클라우디아는 여전히 궁술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녀는 200m 너머에 있는 표적을 정확하게 맞출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


“굉장하군. 이제 여동생에게 대들면 안 되겠는데.”


마리우스는 그녀에게 마나 회복 포션을 가져다주었다.


“무슨 일이야? 여동생이 보고 싶어서 왔나?”


“할 얘기가 있어. 일단 다른 데로 자리를 옮기자고.”


그들은 훈련장 근처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뭐? 진짜로?”


“조용, 조용히 해. 이건 일급비밀이야.”


“어떻게? 어떻게 넘어가는 거야?”


“자세한 건 연구를 더 해봐야 알아. 일단 공중전함을 이용한 차원이동을 통해......다른 세계로 넘어갈 거야. 물론 매우 위험한 일이지.”


마리우스는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여동생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여신님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각성시키기를 원하고 있어. 그들 역시 같은 인간의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이야.”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내가 보기에......여신님은 괴수를 만든 창조주들에 대한 증오심이 강한 것 같아.”


“하지만 괴수의 침공은 의도한 게 아니었다며. 어차피 우리를 만든 것도 그 현실 세계의 사람들 아니야?”


“그랬지. 하지만 여신님은 창조주들의 실책으로 인해 천계와 마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믿고 있어. 창조주에 정면으로 대항할 수는 없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우군으로 끌어들일 수는 있지.”


“그러다가 창조주들이 우릴 싫어하게 되면? 우린 그 사람들에게 고작해야 말하는 게 전부인데, 그들은 타자기를 이용해 우릴 일거에 소멸시킬 수 있다면서.”


“자세한 이야기는 여신님에게 직접 들어. 난 이미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당연하지만 절대 강요는 아니야. 죽을 위험을 무릅쓰게 할 수는 없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보고 결정해. 아, 그리고 이번 원정에는 여신님이 직접 참여한다. 즉 원정 도중에 사망하면......천계는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야겠지.”


*****


클라우디아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계속 오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신이 직접 원정에 참여한 경우는 역사적으로 단 두 번 있었다. 하나는 700년 전 엘리시온이 포위당했을 당시 직접 유격대를 이끌고 나아가 싸운 것이고, 두 번째는 마족이 항복하기 직전 직접 함선을 지휘해 발할라를 점령한 것이다. 현실 세계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700년 전에 있었다는 일은 거짓말이니, 사실상 여신이 직접 원정대에 참여하는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엄청난 영광과 함께했다. 물론 그것은 죽음의 위협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녀는 세계가 가짜라는 것을 자각한 이후로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느껴왔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도전을 향한 열망과, 자신의 목숨을 지키고자 하는 심리를 동시에 가져왔다. 그녀는 이제 둘 사이에서 결정을 해야 했다. 인간의 권리를 누리며 이곳에 남아 있느냐, 아니면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 다른 세계로 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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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결전 - 3 20.10.19 44 1 11쪽
98 결전 - 2 20.10.16 35 1 11쪽
97 결전 - 1 20.10.15 40 1 12쪽
96 새로운 세계 - 7 20.10.14 43 1 11쪽
95 새로운 세계 - 6 20.10.12 42 1 11쪽
94 새로운 세계 - 5 +1 20.10.09 45 2 11쪽
93 새로운 세계 - 4 20.10.08 43 1 12쪽
92 새로운 세계 - 3 20.10.07 50 1 12쪽
91 새로운 세계 - 2 20.10.06 53 1 11쪽
90 새로운 세계 - 1 20.10.05 58 1 11쪽
89 심판 - 4 20.10.02 51 1 11쪽
88 심판 - 3 20.10.01 55 1 11쪽
» 심판 - 2 20.10.01 56 1 12쪽
86 심판 - 1 20.09.29 95 1 12쪽
85 각성 - 11 20.09.29 60 2 12쪽
84 각성 - 10 20.09.24 69 2 12쪽
83 각성 - 9 20.09.23 68 2 12쪽
82 각성 - 8 +1 20.09.21 61 3 12쪽
81 각성 - 7 20.09.18 61 2 12쪽
80 각성 - 6 20.09.17 67 2 11쪽
79 각성 - 5 20.09.15 61 1 12쪽
78 각성 - 4 20.09.14 59 2 12쪽
77 각성 - 3 20.09.11 61 1 11쪽
76 각성 - 2 20.09.10 64 1 11쪽
75 각성 - 1 20.09.09 73 2 10쪽
74 엘리시온 탈환 작전 - 12 20.09.08 5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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