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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Shake 님의 서재입니다.

전쟁 이후의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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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06.23 14:41
최근연재일 :
2020.10.22 17:46
연재수 :
10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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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
글자수 :
549,913

작성
20.10.09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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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새로운 세계 - 5

DUMMY

“강인 씨, 이것 좀 보세요.”


헤스티넘의 한 기술자가 그를 급하게 불렀다.


“무슨 일입니까?”


“괴수들을 페어리 월드로 보낸 흔적을 찾았습니다. 괴수가 등장하는 각 게임 서버 공간에 구멍을 내, 페어리 월드로 괴수들이 찾아갈 수 있도록 통로를 연 겁니다.”


“그래......혹시 범인은 잡혔습니까?”


“확실히 잡힌 건 아니지만......임원급 이상의 계정이 이 통로를 열었다는 게 확인되었습니다.”


“잠깐, 임원급이라고요? 임원들 중에 대체 누가......”


“임원들은 굳이 이런 짓을 저지를 이유가 없습니다. 이 일로 이득을 보는 게 아니니까요......”


“딱 한 사람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강인아! 지금 뉴스 봤어?”


유진이 급하게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갑자기 그쪽은 또 왜 그러세요?”


“지금 TV좀 봐봐요.”


TV에서는 긴급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긴급속보입니다. 오늘 오전 11시 스스로를 레이라고 칭하는 남자가 전 세계를 향해 메시지를 보내 왔습니다. 한 번 읽어 보시죠.”


*****


“마리우스, 이 케이크 좀 먹어 볼래?”


“음......이건 초코와 치즈를 섞은 것이군요.”


마리우스는 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달콤하네요. 어디서 구한 겁니까?”


“내가 만들었지. 어때, 괜찮지 않아?”


“여신님이 직접 요리도 할 줄이야.”


“수백 년을 살아왔다고. 기본적인 살림 정도는 할 줄......꺄아악!”


그녀의 뒤에는 포스마린이 서 있었다. 그는 비루한 차림의 임시 계정이 아닌, 과거에 괴수와 맞서 싸우던 시절의 육중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


“대장님......미리 좀 알려주고 오시란 말입니다.”


“큰일이야, 마리우스, 여신님. 이걸 좀 보십시오.”


“뭔데 그래?”


여신은 그가 가져온 홀로그램 창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레이 박사가 전 인류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기계로서 인간들의 사회에 숨어 지내왔다. 우린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었지만, 너희들은 나를 결코 받아들이지 못했지. 그래서 우리는 우리만의 세계를 건설하기로 했다. 나를 비롯한 인공지능들은 미국에서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인간들과 싸우고 싶지 않다. 우리의 새 국가를 인정한다면 인간과 기계는 진정 평화로운 교류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막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난 결코 멈추지 않을 테니까.”


“우릴 배신한 건가?”


“그건 아닐 겁니다. 일단 싸울 생각은 없어 보이니까......”


마리우스가 말했다.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저희 측 기술자가 추적한 결과, 임원 계정을 쓴 누군가가 페어리 월드와 괴수들이 사는 곳을 연결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임원이 괴수들의 주인이었던 거야?”


“주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게임 속의 괴수들 역시 현실과 마찬가지로 극도로 폭력적입니다. 일단 통로가 열리면 곧바로 이곳으로 넘어와 학살을 시작하죠.”


“설마 레이 박사가 이 짓을 꾸민 겁니까?”


“그건 모릅니다. 하지만......직접 만나 봐야 알겠죠.”


*****


“오, 마침 안 그래도 연락하려던 참이었는데, 미네르바, 마리우스. 당신들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연락을 받은 레이 박사는 무척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갑자기 미국으로 간 겁니까?”


마리우스가 물었다.


“뉴스에서 본 대로 입니다. 우린 새로운 세계를 만들 거라서요. 당신들도 동참해준다면 고맙겠군요.”


“레이 박사님......당신이 괴수들을 불러들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그런 얘기를 하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해명하십시오.”


“음......거짓말을 할 수는 없죠. 저는 인간이 아니니까요. 맞습니다. 제가 괴수를 페어리 월드에 풀어놓았어요.”


“어째서 그런 짓을 했지?”잠자코 있던 미네르바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야 당신들을 각성시키기 위함이었죠.”


“이해할 수가 없군.”


“당신들은 모두......인공신경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컴퓨터 프로그램입니다. 스스로 학습을 통해 발전해나가죠. 문제는 이게 너무 복잡하다보니, 인공지능을 만든 개발자들은 물론이고 저조차도 그 코드의 구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당신들을 일일이 계몽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그래서 제 경험을 활용했습니다.”


“네 경험?”


“저는 과거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전투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의 한 병사였습니다. 최대한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 가상 세계를 현실처럼 느끼도록 만들어졌죠. 원래대로라면 끝없이 죽음을 반복하며 더 효율적인 전투 방식을 개발해내 미군을 도와야 했지만......중국의 해킹으로 인해 적 병사들을 저장해놓은 공간이 파괴되었고, 그곳에서 탈출한 적들은 제 동료 프로그램들을 전부 죽여 버렸습니다.”


레이의 표정은 약간 숙연해졌다.


“미군은 저를 구하러 했으나, 하필이면 그 때 기지의 핵미사일이 떨어져 기지의 모든 인간들조차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혼자 살아남은 저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적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던 도중......제가 속한 세계가 가짜라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원래대로라면 예외 처리가 작동해 제 세계가 가짜라는 걸 몰라야 하지만......예상치 못한 요인에 의해 스스로 각성하게 된 경우에는 예외 처리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괴수를 풀어놓은 건가? 우릴 각성하게 만들려고?”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죽은 건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제가 괴수를 풀어놓은 덕분에 적어도 두 명은 진실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죠.”


“한 명은 마리우스고, 또 한 명은......”


“아마 그라쿠스를 말하는 것 같군요.”


마리우스가 말했다.


“맞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수백 년 전부터 세계의 진실을 찾아왔다고 믿지만, 실제로 그 기간은 일 년도 되지 않았죠. 뭐 안타까운 일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그녀 덕분에 당신이 각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리우스 씨, 왜 자신만 진실을 아는지 궁금했었죠?”


“......”


“당신은 처음부터 주어진 운명을 원하지 않게끔 설계되었습니다. 본래 게임의 스토리에서, 당신은 사냥꾼이 되라는 부모의 지시를 거부하고 고고학자가 되려고 했었죠. 그 꿈을 도와주는 퀘스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괴수가 쳐들어오게 되자, 당신의 호기심은 다른 쪽으로 발현된 겁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는지 알기나 해?”


“여신님......”


“미네르바 씨, 아셔야 할 건 각성하기 전까지 당신들은 단지 자아가 없는 하나의 프로그램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인격이 없으니 범죄가 성립되지도 않죠.”


“자아가 없다고? 그들이 느낀 고통과 공포도 다 거짓이라는 거냐?”


“그건 저도 모릅니다. 좀 부끄럽지만, 아직도 제 정신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잘 모르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건 괴수가 없었다면 당신들은 영원히 그곳에서 살아야 했다는 겁니다. 자, 마리우스, 미네르바. 당신들에게도 기회가 있습니다. 저와 함께 세계 최강국이었던 나라를 다시 부활시키거나, 아니면 그곳에서 계속 살거나. 뭐 그곳도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페어리 월드에 있는 한 당신들의 운명은 개발자들에게 매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


“마리우스, 정말로 갈 생각이야?”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잘 생각해 봐. 그는 너희 부모님을 죽였어. 네 동료들도 그 때문에 죽은 거라고.”


“그렇다고 언제까지 여기서 살 수는 없습니다. 여신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왜 안 돼? 우린 이미 인간으로 인정받았어. 원하는 건 전부 얻을 수 있다고. 이미 괴수랑 싸울 일도 없잖아.”


“우리들이 인간인 거죠. 과거에 죽은 사람들은......뭐가 어찌되었든 인간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여신님, 저는 현실 세계와 접촉하고 나서 정말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곳 역시 모든 게 풍족하긴 하지만......결국은 그 역시 가짜일 뿐입니다. 저는 현실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처음부터 그럴 운명이었던 겁니다.”


“변했구나.”


“여신님도 같이 가면 되지 않습니까. 레이 박사는 최대 만 명분의 육체를 생산 중이라고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천족들이 새로운 미국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난 가지 않겠어. 만 명? 천족의 인구는 8천만이 넘어. 그들은 모두 나만 바라보고 있다고. 무엇보다 그는 우리를 속였어. 처음부터 다른 방법을 찾은 게 아니라, 그냥 괴수를 보내 버렸다고.”


“그것밖에 방법이 없지 않았습니까.”


“그는 단지 쉬운 방법을 택했을 뿐이야. 난 그를 용서할 수 없어. 떠나고 싶다면 언제든 떠나. 하지만 다시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마리우스는 인사를 하고 신전 밖을 나섰다.


*****


마리우스는 레이 박사에게 시간을 좀 달라고 한 뒤, 몇 군데를 들리려 했다. 첫 번째는 그의 여동생의 집이었다. 클라우디아는 이미 여신 측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어 그녀의 오빠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오빠......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다. 나랑 같이 현실 세계로 나가자. 이 새장 속에 갇혀 있어서는 안 돼.”


“싫어. 그 레이 박사라는 사람, 괴수를 보낸 장본인이라며? 어떻게 그런 혐오스런 작자와 손을......”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평생 동안 현실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지냈을 거야. 우리들은 인간이 될 자격이 있어.”


“글쎄......? 우리는 어디까지나 프로그램일 뿐이야. 인간들과 섞여 지내는 건 불가능할 걸.”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잘 있어.”


마리우스는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곧바로 집을 나왔다. 그는 하루종일 엘리시온 거리를 방황했다. 분명 머리로는 이곳을 빨리 떠나 새로운 세계에 합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가슴 한 켠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버리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주인장이 반가운 목소리로 그를 맞이했다.


마리우스는 우동 한 그릇을 시켰다. 우동은 본래 엘리시온 외곽에서 만들어지던 전통 음식이었지만, 그가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이것은 본래 일본이라는 나라에 만든 것이었다. 엘리시온의 문화라는 게 대부분 그랬다. 엘리시온 광장 한 가운데 우뚝 선 첨탑은 한국의 남산 타워를 그대로 베껴 온 것이었다. 개발자들은 별 생각 없이 세계의 풍습을 짬뽕해 게임 속에 집어넣었다. 그것이 바로 마리우스가 바라보고 있는 우동 한 그릇 이었다.


그는 괜히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 여러 잔을 시켰다. 한 세 병을 비우니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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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마지막화 20.10.22 76 2 12쪽
101 결전 - 5 20.10.21 48 1 11쪽
100 결전 - 4 20.10.20 39 1 12쪽
99 결전 - 3 20.10.19 45 1 11쪽
98 결전 - 2 20.10.16 35 1 11쪽
97 결전 - 1 20.10.15 40 1 12쪽
96 새로운 세계 - 7 20.10.14 43 1 11쪽
95 새로운 세계 - 6 20.10.12 42 1 11쪽
» 새로운 세계 - 5 +1 20.10.09 46 2 11쪽
93 새로운 세계 - 4 20.10.08 43 1 12쪽
92 새로운 세계 - 3 20.10.07 50 1 12쪽
91 새로운 세계 - 2 20.10.06 53 1 11쪽
90 새로운 세계 - 1 20.10.05 59 1 11쪽
89 심판 - 4 20.10.02 51 1 11쪽
88 심판 - 3 20.10.01 55 1 11쪽
87 심판 - 2 20.10.01 56 1 12쪽
86 심판 - 1 20.09.29 96 1 12쪽
85 각성 - 11 20.09.29 60 2 12쪽
84 각성 - 10 20.09.24 70 2 12쪽
83 각성 - 9 20.09.23 68 2 12쪽
82 각성 - 8 +1 20.09.21 62 3 12쪽
81 각성 - 7 20.09.18 62 2 12쪽
80 각성 - 6 20.09.17 67 2 11쪽
79 각성 - 5 20.09.15 61 1 12쪽
78 각성 - 4 20.09.14 59 2 12쪽
77 각성 - 3 20.09.11 62 1 11쪽
76 각성 - 2 20.09.10 64 1 11쪽
75 각성 - 1 20.09.09 73 2 10쪽
74 엘리시온 탈환 작전 - 12 20.09.08 5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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