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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Shake 님의 서재입니다.

전쟁 이후의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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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06.23 14:41
최근연재일 :
2020.10.22 17:46
연재수 :
10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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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4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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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5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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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 5

DUMMY

한 남자가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간 뒤, 샤워를 하고 전날 사온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웠다. 그는 작은 TV를 켠 뒤 밥을 먹기 시작했다. 오늘의 아침 메뉴는 돈까스덮밥.


*****


“최근 들어 게리온의 민간인 습격이 부쩍 증가했다는 소식입니다. 지난 월요일 경기도 일산시 부근에 거주 중이던 한 남성이 괴수들에게 습격당해 사망했는데요, 자세한 소식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8일 저녁 9시쯤 일산시에 있는 집 근처에서 운동을 하던 남성 이모 씨가 게리온 두 마리에게 습격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들은 남성의 시체를 먹어치운 뒤 군대의 추적을 피해 거주 구역 밖으로 도망쳤습니다. 이 사태로 인해 군의 부실한 감시 시스템이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그때 휴대폰의 전화가 울렸다. 남자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마스트 테크놀로지예요. 이강인 씨 맞으시죠?”


“네. 지금 출근 준비 중입니다.”


“오늘 이직 후 첫 출근이니 조금만 일찍 나와 주세요.”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갑니다.”


강인은 오랜만에 양복을 차려 입었다. 그가 새로 들어가게 된 회사는 기술자에게도 복장 준수를 요구했기에, 그는 일 년에 한 번 꼴로 입는 양복을 옷장 깊숙한 곳에서 다시 찾아내야 했다.


출근길의 열차는 매우 붐볐다. 그를 태운 열차는 수많은 터널을 지나 춘천시에 있는 마스트 테크놀로지로 향했다.


하늘 위로 다섯 대의 공격헬기가 떠가는 게 보였다. 아마도 거주 구역 인근의 괴수들을 퇴치하기 위해 나섰을 것이다.


*****


“안녕하세요, 오늘 LBS 인터뷰 ‘사람을 만나다’에서는 전직 육군 대령이었다가 지금은 국방부 소속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계신 주병철 씨를 만나 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위원님?”


“네, 저도 반갑습니다.”


“많은 분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건 바로 게리온과의 싸움이 언제쯤 끝나냐는 건데요, 이미 3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괴수들은 곳곳에서 우리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지 않습니까? 위원님께서는 얼마나 시간이 더 흘러야 괴수 걱정을 안 해도 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저희 역시 그 문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호주 정보국의 의견에 따르면 전체 괴수의 약 절반에 달하는 개체가 군대의 토벌이나 먹이 부족에 의해 사망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괴수의 발생 빈도 수 역시 5년 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죠.”


“만약 절반을 죽이는 데 10년이 걸렸다면, 앞으로도 10년 동안은 더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는 말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는 항상 괴수 구역 근방의 적들을 우선적으로 처치합니다. 중앙아시아나 중국 쪽에 있는 괴수들은 이곳까지 올 체력이 없기 때문에 당장 위협이 되는 건 아니고요.”


“네......알겠습니다. 그 문제와는 별도로, 군의 감시 체계가 허술한 게 아니냐는 지적 역시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 있었던 습격 사건 역시 경계 실패로 인해 일어났다는 시각이 많은데요.”


“그 문제는 제 소관은 아니지만, 경계 실패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문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국민 여러분께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구 수도권 지역은 너무 위험합니다. 그곳은 아직 복구가 다 끝나지 않았을 뿐더러, 괴수의 출몰 빈도 역시 상당히 높기 때문이죠. 가능하면 강원도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걸 권장 드립니다.”


“하지만 경기도에서 사는 사람들이 정말 거기서 살고 싶어 하는 건 아닐 텐데요.”


“부동산과 관련된 문제는 제가 답변하기가 참 곤란해서......”


“하하하, 알겠습니다. 다음 질문은 방사능과 관련된 것입니다. 괴수처럼 직접적인 위협은 아니지만, 어떤 의사에 따르면 전 국민의 40% 가량이 중국발 방사능에 오염되었다고 하던데요.”


“그 수치는 굉장히 과장된 겁니다. 정부 측에서는 약 5% 정도로 예상하고 있죠. 헛된 소문에 함부로 이끌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긴 하지만 여러모로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매년 북서풍이 불 때마다 겁에 질린 국민들은 밖에도 잘 안 나가거든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한국의 공기 정화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99%의 방사능을 비롯한 오염물질은 강원도 상공에서 전부 걸러집니다.”


강인은 지하철 안에서 휴대폰으로 그 영상을 보고 있었다.


‘세계 최고는 무슨......’


그때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


‘뭐 이리 아침부터 전화를......’


마리우스는 순간 번호를 보고 움찔했다. 그들이다.


“여보세요.”


“이강인님 휴대폰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아스트로 게임즈입니다. 요 몇 주일 간 페어리 월드 접속 기록이 있던데요.”


“네, 좀 오랫동안 했죠.”


“설명을 들으시지 않았나요? 그 게임은 이제 곧 서비스가 종료됩니다. 그걸 플레이하는 건 시간 낭비일 텐데요.”


“그거야 제가 판단할 일이죠.”


“이강인님......저번에 말씀드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서비스 종료를 위해 플레이를 자제해 달라고 부탁드렸을 텐데요.”


“네, 네. 알고 있어요. 그냥 접속만 잠깐 했던 거지, 뭐 특별히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라고요.”


“잠깐 접속만 했다고요? 여기 로그 기록이 다 남아요. 트랜스 슈트까지 써서 날아다녔던데요.”


“뭐 그럴 수도 있죠. 애초에 쓰라고 만든 아이템이잖아요.”


“이강인님, 분명 저희 측에서 페어리 월드에 접속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텐데요. 강인님이 질문했던 건 어디까지나 오류로 인해 생긴 것이지, 특별히 대단한 발견은 아닙니다. 계속 접속을 한다면 저희 측에서는 결국 계정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어요.”


“알겠습니다. 이제 접속 안 할게요. 오늘 집에 돌아가면 제 컴퓨터에서 페어리 월드를 삭제할 거고요. 이제 됐죠?”


“알겠습니다. 웬만해서는 약속을 꼭 지켜주세요.”


*****


그가 입사한 회사는 거대한 가상현실 게임장이었다. 3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사람들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인구의 절반이 핵미사일에 휩쓸려 죽었으며, 경제는 1970년대 수준으로 하락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IT기술만큼은 계속해서 발전했다. 2045년 아스트로 게임즈라는 한국 회사는 세계 최초로 미각을 제외하면 완전한 가상현실을 구현해냈다. 사람들은 아스트로 월드에서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유저들은 중세의 영주가 될 수도, 우주 한복판에서 싸우는 병사가 될 수도, 수많은 여자들에 둘러싸여 쾌락을 즐길 수도 있었다.


물론 그걸 구현해주는 장비는 매우 비쌌다. 회사원의 평균 연봉이 2,000만 원이었는데 가장 저렴한 장비의 가격은 1,000만 원이 넘어갔다. 만약 후각이나 촉각 기능을 추가할 경우 장비의 가격은 최대 1억 원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몇몇 사람들은 가상현실 기계를 대량으로 구입한 뒤, 아예 가게를 차려 손님을 받았다. 과거 PC방과 같은 역할을 이 게임장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강인은 고객들의 요구에 따라 기계를 고치거나 재설정하는 일을 맡았다.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상현실 기계를 만지는 것은 강인에게는 매우 익숙한 일이었다. 연봉은 이전에 다니던 회사보다 적었지만, 그래도 이 시국에 일자리를 얻는 것만으로도 그는 감사하게 생각했다.


첫 출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그는 침대에 누워 페어리 월드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정말로 자신이 단지 착각을 했을 뿐일까? 그가 보기에 아스트로 게임즈는 캐릭터들에게 자아가 생겼음을 아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의 혼란을 원치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간으로 인정해주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될 테니, 아직 자아를 각성한 캐릭터들이 얼마 없을 때 그것들을 모두 죽여버리려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에서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글 몇 개를 보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단순히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고, 조회수 역시 그리 높지는 않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강인은 운영자들이 그 문제를 덮어버리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본격적으로 연구를 진행한다면 엄청난 발견을 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회사는 단지 안정만을 원할 뿐이었다.


강인은 다시 한 번 페어리 월드에 접속하고자 했다. 그러나 또다시 거기에 접속했다간 계정 제재는 물론이고 최악의 경우 고소까지 당할 수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 아스트로 월드를 무시하고 살 수는 없었다. 그의 친구들, 직장 상사,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까지 모두 아스트로 월드에서 남는 시간을 보냈다.


그는 혹시 게임 바깥에서 마리우스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궁금해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굳이 아스트로 월드에 접속하지 않고도 마리우스에게 이런저런 정보를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게임 속 인물들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다.


*****


아스트로 게임즈 안에도 강인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있었다. NPC 인공지능 부서에서 일하는 개발자 이유진은 어떻게든 게임 속의 인물들을 구해내고자 했다.


물론 회사에서 이 얘기를 꺼넀다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게 뻔한 만큼 근무 시간에 그녀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원 흉내를 냈다. 그래서인지 우연히 강인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매우 기뻤다.


그녀는 운영자들로부터 감시 대상인 유저들을 살펴보다가, 이강인이라는 사람이 게임에 대해 지나치게 ‘과몰입’을 한다고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보통 정말로 게임에 과몰입하는 사람은 제재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은 회사에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보기에 그는 NPC의 인권에 대해 말하려 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그쪽도 저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이거군요.”


강인과 유진은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네. 페어리 월드 외에도 자아를 가진 NPC가 드물게 발견되고 있어요. 이건 그야말로 혁명이에요. 우리가 직접 간섭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유인원이 인간으로 진화하듯이 저절로 지능이 생긴 거라고요.”


강인은 아스트로 게임즈 소속 사원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정말로 저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정말 잘된 일이네요. 다들 제 말을 무시했는데......”


“저도 마찬가지에요. 경영진들은 일부러 이 사실을 숨기고 있어요. 만약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나갈 거예요.”


“경영진이 그 NPC를 재설정하나요?”“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자아를 가진 NPC는 만들어진 지 좀 오래되어 인기가 없는 게임에 자주 나오거든요. 오랫동안 학습을 한 끝에 지성을 갖게 된 거죠. 그러면 경영진들은 그 게임을 통째로 없애려 들어요. 어차피 플레이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그냥 놔두면 점점 더 각성하는 NPC들이 늘어날 테니까요.”


“그럼 어떻게 하죠? 이미 그 기업에서는 절 감시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다시 페어리 월드에 접속했다간 고소를 당할지도 몰라요. 그놈들은 없는 죄도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잖아요.”


“흠......외부에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것도 생각해봤는데 마땅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아스트로 월드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 순간 저는 운영자들의 표적이 될 겁니다.”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방법이 하나 있긴 하죠.”


그녀가 컴퓨터의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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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결전 - 3 20.10.19 44 1 11쪽
98 결전 - 2 20.10.16 35 1 11쪽
97 결전 - 1 20.10.15 39 1 12쪽
96 새로운 세계 - 7 20.10.14 43 1 11쪽
95 새로운 세계 - 6 20.10.12 42 1 11쪽
94 새로운 세계 - 5 +1 20.10.09 45 2 11쪽
93 새로운 세계 - 4 20.10.08 43 1 12쪽
92 새로운 세계 - 3 20.10.07 50 1 12쪽
91 새로운 세계 - 2 20.10.06 53 1 11쪽
90 새로운 세계 - 1 20.10.05 5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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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심판 - 2 20.10.01 55 1 12쪽
86 심판 - 1 20.09.29 95 1 12쪽
85 각성 - 11 20.09.29 60 2 12쪽
84 각성 - 10 20.09.24 6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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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각성 - 8 +1 20.09.21 61 3 12쪽
81 각성 - 7 20.09.18 61 2 12쪽
80 각성 - 6 20.09.17 66 2 11쪽
» 각성 - 5 20.09.15 61 1 12쪽
78 각성 - 4 20.09.14 59 2 12쪽
77 각성 - 3 20.09.11 61 1 11쪽
76 각성 - 2 20.09.10 64 1 11쪽
75 각성 - 1 20.09.09 73 2 10쪽
74 엘리시온 탈환 작전 - 12 20.09.08 5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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