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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Shake 님의 서재입니다.

전쟁 이후의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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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06.23 14:41
최근연재일 :
2020.10.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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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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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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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각성 - 8

DUMMY

미네르바는 다시 옷매무새를 다듬고 의자 위에 앉았다. 세 계승자는 잔뜩 긴장한 채로 그녀 주위에 서 있었다.


“다음 추측......우릴 만든 창조주가 우릴 죽이기 위해 괴수를 만든 거야?”


“그건 아닙니다.”


마리우스가 대답했다.


“아니......정확히는 모른다고 해야 맞겠군요. 하지만 괴수를 의도적으로 천계에 풀어놓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음만 먹으면 우리 모두를 죽일 수 있기 때문이지. 내 말이 맞나?”


“그렇습니다.”


“창조주는 여러 명인 건가?”


“네.”


“몇 명쯤?”


“추측해 보십시오.”


“음.....한 10명?”


“아닙니다.”


“10명보다 적어? 많아?”


“여신님, 지금 눈이 빨갛게 충혈 되었습니다. 일단 좀 쉬시는 게......”


미네르바의 몸에서 강렬한 마력이 느껴졌다. 그녀는 단 한 번에 체력을 모두 회복했다.


“난 괜찮아. 그들의 수는 10명이 넘어?”


“네.”


“한 100명?”“그거보다 훨씬 더......”


“한 만 명 쯤 되나?”


“그 정도 됩니다.”


“엄청나게 많구나......그 사람들은 뭘 하면서 사는 걸까. 그들도 우리처럼 감정을 느낄까?”


“느낍니다. 창조의 권능을 가졌다는 걸 제외하면 우리와 다를 건 없습니다.”


“좋아, 다음 추측. 그 창조주들은 우릴 실험체로 쓰기 위해 창조한 거다. 맞지?”


“아닙니다.”


“그럼 뭔데?”


“그것도 스스로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여신님은 진실을 깨우치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여신님이 스스로의 힘으로 각성할 수 있다면, 휘하의 계승자와 인간들도 진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여신님이 무언가를 창조한다면, 왜 그것들을 만들겠습니까?”


“무기나 마차 같은 건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지. 하지만......굳이 우리가 그 창조주란 자들의 인생에 어떤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혹시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엄밀히 따지면 아닙니다. 더 세부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왜 창조주가 우리들을 만들었는지, 그렇게 해서 그들에게 어떤 이득이 되는지......”


미네르바는 자신이 신이 되기 이전에, 그러니까 아직 인간이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녀는 엘리시온이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에서 살았는데, 그 마을의 광장에서는 한 인형사가 자신이 만든 인형을 가지고 인형극을 보여주곤 했다. 그는 그 행동을 하는 대가로 돈이나 식량을 받곤 했다. 만약 바깥 세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알 것 같아! 창조주 외에도 바깥 세계에는 다른 인간들이 있는 거지?”


“맞습니다. 이제 여신님도 저와 같은 시야를 갖게 된 겁니다.”


“그리고 창조주들은 다른 인간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이 세계를 만든 거고......”


여신은 마침내 진실을 깨우쳤으나, 표정은 그리 기뻐 보이지 않았다.


“이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알기 위해 지난 수백 년 동안 싸워 왔던 건가.”


“그것도 사실은 수백 년이 아닙니다.”


마리우스가 말했다.


“포스마린......우리가 원정대장으로 알고 있는 그는 현실 세계, 즉 바깥 세계의 사람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여신님이 100년이라고 알고 있던 시간은 기껏해야 1년 남짓한 시간에 불과합니다.”


“그런가. 나중에 그를 직접 만나 물어봐야겠군. 헌데 너와 케이다스 역시 같은 방식으로 각성하게 된 건가?”


“그건 아닙니다. 저희들은 그냥 처음부터 진실을 들어도 별다른 이상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케이다스가 말했다.


“이른바 특이체질이라는 거군. 모든 사람이 너희같지는 않을 텐데.”


“그래서 여신님과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하는 겁니다. 여신님의 방법이 일반인들에게 먹히는 지 이제 확인해 봐야죠.”


*****


미네르바와 마리우스는 가까스로 포스마린을 다시 만나는 데 성공했다. 유진을 비롯해 디지털 인간의 인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포스마린은 최대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전해 주었다. 미네르바가 게임 속의 캐릭터이며, 현실의 인간들은 컴퓨터라는 기계를 통해 천계와 마계를 비롯한 수많은 세계를 만든다는 것까지. 미네르바는 프로그램이라는 개념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했다.


“그러니까 0과 1의 두 가지 정보를 결합해서 움직이는 그림을 만든다고?”


“굳이 설명하자면 그렇지만......그냥 지금은 그런 게 있구나 하고 넘어가십시오. 이걸 설명하려면 일주일이 넘게 걸릴 겁니다.”


“그래......아무튼 내가 각성하게 되어서 다행이야. 자네가 현실 세계의 사람이라고 했지. 가까이 보고서도 몰라보다니.”


“이데아에 갈 수 있는 계승자들은 모두 현실 세계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포스마린이 말했다.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아주 많아. 이곳에서는 바깥에 비해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게 사실인가?”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믿게 만든 것입니다. 실제로 이 세계는 창조된 지 약 15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15년? 그러면 우리가 마족과 천 년 넘게 싸운 건 다 뭐야?”


“실제로는 10년 동안 싸워온 거죠. 그 전의 역사는......일종의 설정입니다. 그냥 이런 게 있었다, 하는 식으로 정해놓은 겁니다.”


“뭐라고? 말도 안 돼......난 분명 마족과 싸운 걸 기억하고 있어.”


“기억하고 있다고 해서 그게 실제로 일어난 건 아닙니다. 여신님은 마족의 마신 데브칸과 꽤나 가까운 사이였죠. 이상하지 않습니까? 천 년 동안 적으로 싸워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친해진다는 게......실제로 여신님과 마신이 알고 지낸 시간은 1년 남짓입니다. 즉 현실의 연인들과 비슷한 기간만큼 알고 지낸 셈이죠.”


“그래......지금 중요한 건 괴수를 퇴치하는 거니까, 내 개인적인 얘기는 나중에 하지. 이미 엘리시온 곳곳에서 균열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억제기 덕분에 괴수가 튀어나올 만큼 충분히 넓은 구멍이 생기지는 않지만, 이대로 가다간 분명 일이 또 터질 거야. 미리 대책을 세워 놔야 해. 포스마린, 너를 비롯해 우리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 너희가 아니었다면 마리우스도, 나도 아무것도 모른 채 살다가 죽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기뻐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괴수의 본거지를 찾아내 박살내지 않으면 언젠가 같은 일을 또 겪을 것이다. 우리가 본 게리온들은 현실 세계의 괴수를 디지털 세계에 구현한 거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괴수를 죽이는 게임들은 꽤나 많습니다. 아마 그 괴수들 중 몇몇이 세계 간의 경계를 넘어 이곳으로 쳐들어 오는 게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마리우스, 넌 균열 밖으로 나갔다가 왔다고 했지? 그곳에서 뭘 발견했나?”


“제가 균열 밖으로 나갔을 때는......우주가 있었습니다.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전 그 우주를 통해 다른 세계 몇 군데를 둘러보았습니다.”


“우주?”


“로딩 시간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포스마린이 그림을 그려 설명해주었다.


“우리 같은 현실의 인간들은 각 세계를 옮겨 다닐 때마다 수십 초에서 길면 수 분 까지 대기 시간이 걸립니다. 마리우스 역시 유저와 같은 권한을 얻었으니 세계를 옮겨다닐 수 있는 것이죠.”


“그게 괴수와 무슨 연관이 있는 건가?”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마리우스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괴수들이 세계를 잇는 통로 사이에 침투했다는 겁니다.”


“만약 괴수를 만든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 역시 괴수가 멋대로 날뛰는 걸 원할 것 같지는 않은데.”


“저희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괴수가 왜 천계를 침공했는지는......”


“어쩌면 그들 역시 지성을 가진 게 아닐까요?”


마리우스가 말했다.


“우리도 처음에는 단순한 프로그램이었을 뿐이지만, 지금은 지능이 생겼죠. 그 괴수들 역시 마찬가지 아닙니까?”


“나 역시 그럴 가능성을 무시하지는 않아. 하지만 괴수가 조직적으로 다른 세계를 침공한다고 보는 건 너무 무리한 가정이야. 이런......시간이 다 됐어.”


“벌써요? 아직 2시간도 안 된 것 같은데......”


아스트로 게임즈에서 주기적으로 계정 검사를 실시하거든. 거기에 걸리면 난 또 잡혀갈 거야. 여신님,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래, 이렇게라도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


포스마린의 몸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는 이데아로 향해 가고 있었다.


“이데아......나는 정말로 극소수의 계승자들은 마나로 가득 찬 세계에서 쉴 수 있다고 믿었어. 그건 나조차도 도달하지 못한 곳이었기에, 이데아로 가는 계승자들을 동경하고 있었지. 하지만 그들은 현실 세계로 돌아가고 있던 거야.”


“이제 곧 저희도 현실 세계와 마주하게 될 겁니다.”


마리우스가 말했다.


*****


전화번호를 보고 강인은 잔뜩 겁을 먹었다. 아스트로 게임즈였다.


“네, 말씀하세요.”


“아스트로 게임즈입니다. 혹시 내일 오전 11시까지 아스트로 게임즈 옆의 스노우 커피점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저번의 버그 문제와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일단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가지 마세요. 분명 강인 씨를 체포할 겁니다.”


이유진이 말했다. 강인 역시 그들이 무서웠지만, 괜히 만나지 않았다가 그들이 더 화를 낼 수도 있었다. 그랬다간 유진을 비롯해 헤스티넘의 멤버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냥 저 혼자 위험에 처하는 게 더 나아요. 커피숍에서 만나자는 걸 보면 죽이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안심해도 돼요.”


그녀를 안심시키는 강인 역시 심하게 떨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


스노우 커피점에서 강인과 만나기로 한 사람은 나이가 약간 들어 보이는 남자였다. 후줄근한 후드티와 청바지는 그가 개발자임을 매우 명확하게 나타내주고 있었다.


“왔군요, 강인 씨.”


“용건이 뭔지 말하시죠.”


“안심하세요. 전 다른 직원......아니 임원들과는 다르니까요. 전 당신들, 그리고 게임 속의 캐릭터들을 도우려 합니다.”


“그 정도까지 알고 있다면 제가 뭘 하는지도 다 알고 있겠군요.”


“감시를 좀 해서 캐릭터와 접촉하고 있는 것까지는 아는데, 아직 자세한 건 모릅니다. 그 얘기를 듣고 싶어서 강인 씨를 부른 거고요.”


“왜 저희를 도우려는 겁니까? 회사는 저희의 요청을 무시할 뿐더러 협박까지 하던데.”


“그들은 어디까지나 게임을 통해서 이득을 얻는 것에만 집중하니까요. 만약에 캐릭터의 인권을 챙겨야 한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NPC를 죽여서도 안 되겠죠. 경영진들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게임 회사 이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이 역사적인 발견을 묵히고 있는 거라고요.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안 그런가요?”


강인은 그의 말에 깊이 공감되었다. 자신의 이익 때문에 위대한 과학적 성취를 막아서는 안 됐다.


“강인 씨의 열정은 인정하지만, 헤스티넘의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아야지요. 저한테 계획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죠?”


“공론화시키는 겁니다. 대중들이 게임 속의 인물들이 지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것들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생겨날 겁니다. 정치인들도 이 떡밥을 물겠죠. 그러면 그때부터는 꽤 쉽게 해결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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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결전 - 1 20.10.15 4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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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새로운 세계 - 4 20.10.08 43 1 12쪽
92 새로운 세계 - 3 20.10.07 50 1 12쪽
91 새로운 세계 - 2 20.10.06 53 1 11쪽
90 새로운 세계 - 1 20.10.05 5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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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심판 - 3 20.10.01 55 1 11쪽
87 심판 - 2 20.10.01 56 1 12쪽
86 심판 - 1 20.09.29 96 1 12쪽
85 각성 - 11 20.09.29 60 2 12쪽
84 각성 - 10 20.09.24 69 2 12쪽
83 각성 - 9 20.09.23 68 2 12쪽
» 각성 - 8 +1 20.09.21 62 3 12쪽
81 각성 - 7 20.09.18 61 2 12쪽
80 각성 - 6 20.09.17 67 2 11쪽
79 각성 - 5 20.09.15 61 1 12쪽
78 각성 - 4 20.09.14 59 2 12쪽
77 각성 - 3 20.09.11 62 1 11쪽
76 각성 - 2 20.09.10 64 1 11쪽
75 각성 - 1 20.09.09 73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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