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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Shake 님의 서재입니다.

전쟁 이후의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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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06.23 14:41
최근연재일 :
2020.10.22 17:46
연재수 :
10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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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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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
글자수 :
54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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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9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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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각성 - 11

DUMMY

“왔어?”


여신은 늘 그렇듯 마리우스를 반겨주었다. 마리우스는 왠지 모르게 그녀와 너무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마리우스가 예의를 차릴 때마다 그녀는 이제 다 같은 디지털 인간일 뿐이라며 부담 갖지 말라고 했지만, 그녀의 화려한 모습을 볼 때마다 마리우스는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여신은 그에게 도표를 보여주었다. 이번 주에만 2,5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세계의 진실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오다니. 이제 괴수의 본거지를 찾는 일도 쉬워지겠어.”


“저기, 여신님......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저희들은 괴수의 본거지를 찾아내 그들을 섬멸하는 것이 목표이지, 엄밀히 따지자면 이 세계가 가짜인 것은 괴수와는 상관 없는 일입니다. 물론 그 개발자라는 자들과 만날 수 있다면 괴수를 없앨 수도 있겠지만......”


“맞아. 아직 안심하고 있을 때는 아니지. 그래도 가끔씩은 뒤를 돌아보는 것도 중요해. 애초에 여기까지 우릴 이끈 건 너잖아?”


여신은 그의 이마에 키스를 했다.


*****


“의원님, 정말로 디지털 인권 법안을 제출할 생각입니까?”


그의 보좌관인 김 실장이 말했다. 이상수 의원은 그의 문서를 계속 재검토하고 있었다.


“그래. 뭐 잘못됐나?”


“동조하는 사람이 얼마 없을 것 같은데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이건 좋은 떡밥 아닌가?”


“아시다시피 지금 인공지능 기술 자체가 별로 대접받는 분야가 아닌지라......괜히 빨갱이 소리 들을 수도 있습니다.”


“전쟁 끝난 지 10년이 넘었어. 근데 아직도 빨갱이 타령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렇게 말하기에는......우리 국민들이 너무 많이 죽지 않았습니까.”


“이제 과거에 얽매여서는 안 돼. 이건 역사적인 발견이라고. 게임 회사 녀석들은 너무 물러 터졌어. 아무래도 국제법을 신경 쓰는 모양인데......잘 생각해봐. 지금 프랑스랑 영국은 이미 인공지능 개발 금지를 없앴다고. 곧 일본과 캐나다도 제한을 풀 거야. 다들 알고 있는 거지. 이 기술은 포기하기 쉽지 않다는 걸.”


“단순히 명령대로만 움직이는 기초적인 소프트웨어라면 몰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인공지능은 너무 위험합니다. 중국 애들이 그거 만들었다가 이 사단이 난 거 아닙니까.”


“유감스럽지만, 그건 정치인들이 나쁜 거고. 과학자들이 나쁜 건 아니지.”


“중국 정부도 애초에 자기들이 만든 인공지능이 베이징을 바이러스로 뒤덮을 줄 알지는 못했습니다.”


이상수 의원은 휴대폰에서 통계 자료 하나를 보여주었다.


“이건 지난달 여론조사야. 인공지능 개발을 다시 풀어줘야 한다는 여론이 40%를 넘었어. 앞으로 더 높아질 거야. 세계를 이끌던 두 나라는 파괴되었지만, 이제 남은 나라들끼리 패권 경쟁을 할 때가 다시 다가오고 있는 거지. 국민들도 깨닫고 있어. 더 이상 AI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걸 말이야. 디지털 인권법은 우리가 한 발 앞서 나가게 되는 계기가 될 거라고.”


“솔직히 전 우려됩니다. 지난 5년 동안 의원님을 모셨지만......애초에 그 캐릭터들이 정말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수학과 나온 입장에서 말하자면, 제대로 된 이론 없이 가상 세계의 생명이 스스로 자아를 자각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하지만 너도 저번에 내가 대화하는 걸 봤잖아? 그건 누가 봐도 사람이라고.”


“그건 조작된 걸 수도 있습니다. 개발자들이 일부러 사기를 치는 걸 수도 있어요.”


“곧 재판이 열릴 거야. 만약 거기서 의식이 없다고 결정 난다면, 내가 한 발 물러서야겠지. 일단은 그때까지 기다려 보자고.”


*****


“대통령? 그게 누구지?”


“현실 세계의 여신님의 직책에 있는 사람입니다.”

포스마린이 말했다.


“그럼 나보다 훨씬 강한 존재겠군. 전 세계에 대통령은 한 명 뿐인가?”

질문하는 여신의 옆에서는 기록관이 그들의 대화를 빠짐없이 받아 적고 있었다.


“아니요, 훨씬 많습니다. 애초에 국가의 크기도 다 제각각이니......그러니까 이게 좀 복잡한 문제인데, 아무튼 국가의 지도자 역할을 하는 사람은 다 합해서 한 100명 정도 될 겁니다.”


“엄청나게 많군. 게다가 규모가 큰 국가의 경우 천족 전체와 맞먹는다고 한다면......현실 세계는 정말 광대한 영역에 있구나.”


“사실 우주에 비하면 우리 지구는 지극히 작은 행성에 불과하죠. 이건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고......결국 여신님이 직접 재판에 나서야 합니다. 여신이 아닌 인간 미네르바로서 말이죠.”


“인간 미네르바......뭔가 어색하네. 거기서 이기면 뭘 얻을 수 있는데?”


“여신님을 포함해 마리우스, 아츠펠드, 그 외의 모든 천족은 현실의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얻게 됩니다. 즉 직책상으로 개발자들과 동등해지는 셈이죠.”


“믿을 수가 없군. 우리가 창조주와 동등해진다고?”


“100% 맞는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이해해 두십시오. 만약 재판에서 이긴다면 여신님은 개발자들에게 괴수를 천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들에게 요구할 수 있게 됩니다.”


“들어오지 못하도록?”


“네. 저는 여신님이 전략을 수정할 것을 권고 드립니다. 괴수의 말살에서 침공 방지를 막는 것으로 말이죠. 개발자들이 힘을 써준다면, 괴수를 굳이 없애지 않아도 게리온과 도르칸의 공포로부터 안전할 수 있습니다.”


“개발자들은 손짓 하나로 괴수를 몰살할 수 있다지. 그런 능력을 가진 자가 우리 편이 된다면 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나겠군.”


“손짓 하나까지는 아니지만......문제는 대통령을 비롯해 여신님이 인간 대우를 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어째서? 난 그들에게 피해를 끼친 적이 없는데.”


“여신님의 조상은 끼친 적 있죠.”


“내 조상이?”


“여신님을 비롯해 이 게임의 NPC들을 만드는 데 쓰인 인공지능은 본래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미국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한때는 현실세계의 최강의 국가였죠. 그런데......”


포스마린은 공중에 영상 하나를 띄웠다. 그 영상에는 중국이 무기를 만드는 모습이 나왔다.


“미국에 버금가는 힘을 갖고 있던 중국이라는 나라는 미국을 넘어서기 위해 그들의 기술을 훔쳤습니다. 미국 기업에서 음악 작곡용으로 만들어진 아폴론이라는 이름의 인공지능을 훔쳐, 군사적 목적으로 쓸 수 있게 만든 겁니다.”


“군사적 목적? 우리들의 원소술사가 쓰는 정령 같은 건가.”


“비슷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현실 세계의 정령은 불이나 물이 아닌 강철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죠. 이 기계들에는 중국 과학자들에 의해 변형된 아폴론이 들어갔고, 그 기계들은 전쟁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장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중국인들이 바이러스에 고통 받는 모습이 나왔다.


“그러나 지나치게 성장한 아폴론은 주인을 배신했습니다. 그것은 중국 공산당이 자신을 통제하는 이상 미국과 제대로 싸울 수 없다고 생각했고, 결국 신체가 변형되는 잔인한 바이러스를 중국 시내에 살포합니다. 바이러스는 이 천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데,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작으며 인간의 신체를 내부에서부터 파괴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역병 마법과 비슷한 셈이죠.”


“끔찍하군......그래서 전쟁은 어떻게 되었지?”


“중국 정부를 무력화한 아폴론은 공장에서는 대규모로 전쟁 기계를 찍어내는 한편, 세계 곳곳에 중국에서 했던 것과 비슷하게 바이러스를 살포했습니다. 바이러스는 생물에게만 먹히기 때문에, 기계로 된 아폴론의 병사들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죠. 기나긴 싸움 끝에......결국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승리했습니다.”


장면이 바뀌었다. 폐허가 된 나라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미국은 사실상 정부의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부 다른 나라로 뿔뿔이 흩어졌죠. 한때 가장 강력했던 두 나라는......이제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테디아의 오염된 땅처럼 변해버린 겁니다.”


장면이 다시 바뀌었다. 이번에는 폐허가 된 중국에서 무언가를 찾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전쟁 이후로 공식적인 인공지능 연구는 금지됩니다. 또다시 누군가가 아폴론을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폴론은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술이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해 수많은 국가들은 중국에서 아폴론 구축에 쓰인 컴퓨터나 문서들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기술을 활용해 기업들을 만들었죠. 여신님을 만든 기업, 아스트로 게임즈도 그런 회사들 중 하나입니다.”


“그렇군......그래서 우리들의 정체를 외부의 공개하지 않으려 했던 건가?”


“그건 지금 확답할 수 없습니다. 다만 여신님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지게 되면서 한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늘어난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다른 나라들 역시 비밀리에 인공지능 연구를 하지만, 다른 나라가 대놓고 앞서가는 건 싫을 테니까요.”


“......좋은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맙다. 포스마린. 그럼 재판장에서 난 뭘 해야 하지?”


“일단 기술적인 문제는 저희들이 알아서 할 겁니다. 여신님은 판사에게 최대한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나타내도록 하십시오.”


포스마린의 몸이 천천히 사라져갔다.


“인간......내가 인간임을 인정받으면 창조주들과 동등해질 수 있는 건가......”


여신은 조용히 속삭였다.


“많이 피곤하실 텐데, 이만 들어가 쉬십시오.”


마리우스가 말했다. 그는 여신의 손을 잡고 그녀의 방까지 이끌었다.


“정말 재판에서 이기면 괴수와 싸울 필요가 없어지는 걸까?”


“어차피 저희의 영향력은 천계와 마계에 한정됩니다. 굳이 다른 세계로 넘어가지 않아도 전쟁을 끝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낫죠.”


“글쎄......난 뭔가 꺼림칙해. 누군지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거잖아.”


“괴수들이 바글바글한 지옥에 가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물론, 전 어디까지나 여신님의 편입니다. 제가 하는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고마워. 너한테 신세를 많이 지네.”


“여신님을 모실 수 있으면 영광이죠.”


마리우스는 살짝 웃어 보였다.


*****


여신은 최대한 재판장 앞에서 잘 보일 수 있도록 연습을 반복했다. 그녀는 손짓 하나하나까지 편집증적으로 신경 썼다.


여전히 곳곳에서는 균열이 생겨났다 사라졌다는 보고가 계속해서 들어왔다. 그런 보고를 읽을 때마다 미네르바는 점점 더 조급해져 갔다.


재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나면 마리우스는 여동생의 훈련장에 방문했다. 클라우디아는 어느새 유능한 궁수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하늘을 날면서 표적지의 한 가운데 맞추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그녀 역시 여신과 같은 방식으로 세계의 진실을 깨달았다. 클라우디아는 만약 괴수의 본거지에 쳐들어갈 경우 자신이 앞장서겠다며 누구보다도 성실히 훈련에 임했다.


아츠펠드와 케이다스는 같은 사제라서 그런지 꽤 빨리 친해졌다. 그들은 천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천족들에게 이 세계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도왔다.


사람들은 상당히 혼란스러워했다. 어떤 이들은 자기 눈으로 현실을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다고 했으며, 또 어떤 이들은 공포를 느끼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물론 최악은 ‘예외 처리’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살해하려다가 계승자에게 죽는 경우였다. 물론 자신에게 진실을 깨우쳐 줘서 고맙다며 둘에게 이런저런 답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2주일 후 마침내 재판의 날이 다가왔다. 여신은 처음 방송에 출연했을 때보다 더 화려한 옷을 입었다. 그녀의 옆에는 마리우스와 수호병들이 자리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여신의 눈앞에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그것은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 재판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여신 진영과 상대 진영에 각각 변호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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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새로운 세계 - 4 20.10.08 43 1 12쪽
92 새로운 세계 - 3 20.10.07 50 1 12쪽
91 새로운 세계 - 2 20.10.06 53 1 11쪽
90 새로운 세계 - 1 20.10.05 5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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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심판 - 3 20.10.01 55 1 11쪽
87 심판 - 2 20.10.01 56 1 12쪽
86 심판 - 1 20.09.29 96 1 12쪽
» 각성 - 11 20.09.29 6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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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각성 - 5 20.09.15 61 1 12쪽
78 각성 - 4 20.09.14 59 2 12쪽
77 각성 - 3 20.09.11 62 1 11쪽
76 각성 - 2 20.09.10 64 1 11쪽
75 각성 - 1 20.09.09 73 2 10쪽
74 엘리시온 탈환 작전 - 12 20.09.08 5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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