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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拳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시문아
작품등록일 :
2018.12.12 19:10
최근연재일 :
2019.05.08 16:42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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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50
글자수 :
73,897

작성
19.01.0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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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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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격돌의 서막

DUMMY

19


노로파의 장수희는 흑도의 모든 수뇌를 한 자리로 불러모았다. 비열함이 하늘을 찌르고, 암흑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악인 중의 악인. 지금처럼 표정이 일그러졌을 때, 더욱 행동이 악독해진다. 이에 모두가 머리를 조아렸다.


"흑사파가 몰살당한 사건은 아주 바보 같은 짓이었소. 하지만 지금부터 피를 버리는 대가로 놈들의 뼈를 취할 것이오."

"노로파가 선봉을 친다고 하니, 개소파도 동참하겠소."

"삼미파도 같소."

"복수는 복수를 부르는 법. 구파일방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우리 노로파는!"


장수희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하오문도 어쩌지 못한 사파. 여인을 납치하여 윤락을 시키고, 인신매매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파지만, 나름 흑도의 자부심으로 비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독(毒)이었다.

보유한 독약은 실로 다양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공을 없앤다거나, 사람을 일순간에 마비시키는 약은 필요치 않았다. 무인에게 제대로 통하지도 않을뿐더러, 눈치채는 동시에 작전은 그대로 실패한다. 그렇기에 별도로 모든 이에 통하는 은밀한 독을 사용해야 했다.


"우리는 취약을 동원할 것이오."


취약.

술과 같이 사람의 이성을 일정 부분 망각시키는 약이었다. 술에 취한 기분과 같다 하여 취약이라 불렸다. 물론 독으로 부르기엔 어설픈 약이긴 하나, 한가지가 더 조합된다면 이후 강력한 독으로 승화한다.

바로.


"취약에 미약을 더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약이 되지."


악독하기로 소문난 장수희가 추천하는 미취약.

흔히 미약은 여인에게 쓰는 춘약의 종류였다. 몸을 흐느적거리게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반면, 이를 취약에 더한다면 효과가 극대화되어 혼절해버린다.


무림인들은 내공이 강력하다고는 하나, 미취약에 중독된다면, 일정 시간 오감이 쇠퇴한다. 이는 과거 무림 고수들 대상으로 실험까지 끝마친 독약이었다.

더구나 미취약은 먹는 독이 아니기에, 향만으로도 중독이 충분히 가능했다.

매춘하는 곳에서 흔히 쓰이는 부분.


"사향진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진에 갇힌 상태라 어딘가로 피신할 수도 없었다. 오직 시간만 지난다면 성공하는 아주 손쉽고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 것이다.


"그리고 잠시의 틈만 존재한다면, 우리는 승리한다. 아무리 고수라 해도 오감이 약해지면 암기를 피하기 힘들지. 더군다나 함정으로 유인해 극독으로 승부한다."


손 안 대고 코 풀기.

이는 구파일방의 자만심에서 비롯된 방편이었다.


"지금 현 시간부로 노로파와 개소파. 삼미파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몰살시킨다."

"역시! 노로파요. 대단하외다."

"최고의 작전입니다."

"남정네는 모조리 사지를 끊고, 여인네는 미혼약을 잔뜩 처발라라. 강호로 건너간 뒤에, 제대로 훈육해주지. 으하하하."

"존명!"


*


"이상징후가 포착되었습니다."


모두가 잠든 사이.

팽가의 중심에서 소스라친 외마디가 울려 퍼졌다.


"무엇이냐!"


다급한 외침에 팽지환의 음성이 높아졌다.

이에 팽가의 모든 이가 잠자리에서 뛰쳐나왔다.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동쪽으로 500여 장."

"노로파?"

"그렇습니다."

"색상은?"

"회색입니다."


적이 아닌 자신들의 진지에서 불을 피운다? 독진을 펼칠 것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의미 없는 행위는 아니었다.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었다. 대비책을 가동해야 했으며, 그 후 직접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세가 내 모든 이는 호흡을 최대한 줄이고, 혹시 모를 중독에 대비하라."

"예!"

"신호를 기다려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팽지환이 노로파 부근으로 내달렸다.


"오라버니!"

"확인하고 올 테니, 무슨 일이 있어도 오지 마라."

"팽소저!"


뒤따라 나서려는 팽아미를 급박히 불러세웠다.

이곳은 전장. 수장이 자리를 비운다면 그에 상응하는 자가 반드시 있어야 했다. 팽지환이 소가주라면, 팽아미 역시 팽가의 피를 이은 후계.


"이곳을 통솔할 사람은 당신밖에 없소!"

"후우, 알겠어요. 모두 들어라. 지금부터 반다경은 최대한 호흡을 멈추고, 동태를 주시한다. 혹시 모르니 천이나 붕대로 입을 가리도록."


팽지환이 박차고 나간 이후, 팽아미의 명에 따라 모두가 호흡을 멈췄다. 상황판단은 매우 신속했다. 독이 아닐지라도 말 한마디에 세가는 하나가 됐다. 이는 실로 팽아미의 역할이 지대하다는 것. 더구나 팽가의 식솔이 목숨을 맡기고 한뜻을 취한다는 건, 전장에서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이탈자가 없다는 건, 매우 고무적이며, 사기를 상승시키는 장점 중의 장점.


그런데 팽지환의 행동은 우려스러웠다. 독공이면 뻔히 중독이 예상되는바, 그래도 적진을 향해 달려간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독에 대항하는 힘이 크다 할지라도 어떤 독인지 알 수 없다면, 해독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팽아미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일 뿐, 다른 말은 일체 하지 않았다.


'오라버니는 독에 조예가 깊습니다. 만독불침까지는 아니더라도, 웬만한 독은 들지 않아요.'

"독이라 하면, 해독제를 우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함이 맞지 않겠소? 저건 무모한 짓이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팽가의 가주로서 커온 오라버니의 능력은 매우 대단합니다. 우린 소가주님을 믿습니다.'


어리석은 행동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으나, 귓가에 파고드는 음성에 철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음을 처음 접하긴 했으나, 놀랄 겨를도 없었다. 지금은 오로지 우려했던 독공이 시작될 기미가 있고. 실제상황으로 번진 사태에 대해 고민하고, 대처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독성에는 나도 일가견이 있소. 내가 한번 가보리다!"

'놈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어요. 일단 초기대응이 중요하니, 이곳에서 기다리는 게 나아요. 당신의 능력이 필요해요.`


예측 판단은 매우 중요했다. 상대는 노로파 하나가 아니었다. 구파일방이 들이닥칠 수도 있고, 기회를 틈탄 다른 세가가 구파에 붙어 배신할 수도 있었다.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되는 상황. 실력자는 단 한 명이라도 진을 이탈해서는 아니 되었다. 그렇기에 팽아미는 노련하게 세가의 일원들을 통솔했다.


"대단한 여인이로군."


철신은 지금 상황에서 다시 한 번 무림의 실력에 감탄했다. 숙련된 대처능력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에서 조직의 무서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지금껏 오로지 주먹 하나면 강해진다고 생각했지만,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 더 위대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철신은 제자리에서 우두커니 자신을 관조했다. 뜬금없이 권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도검을 막고 상대를 패배시키는 것이 무공이 아니던가.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이 무공이 아니던가.

지금껏 상대를 쥐어 패는데 이용하는 게 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활권이라고 생각됐다.


주먹 하나로 하나의 생명을 회수하는 대신, 열 명을 살릴 수 있다. 열 명을 굴복시켜 또 다른 백 명의 편안함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활(活)."


철신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너무도 배움이 모자랐다. 스승님이 항상 입에 달고 사셨던 '철딱서니 없는 녀석'이 이제야 비로소 실감 났다. 실소가 나왔다. 아주 우스웠다.

산에서 내려온다면 무엇이든 다 내 것 같았던 그 어리석음이 우스웠다.


"멍청이라 하셨던 스승님 말씀이 다 이유가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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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돌의 서막 19.01.08 300 4 8쪽
18 분열 2 19.01.05 307 5 8쪽
17 분열 19.01.04 333 6 8쪽
16 팽가 3 19.01.01 379 7 9쪽
15 팽가 2 19.01.01 378 6 8쪽
14 팽가 18.12.30 458 7 9쪽
13 명품의 권(拳) 2 18.12.29 480 7 9쪽
12 명품의 권(拳) 18.12.29 476 6 8쪽
11 칠십 명 4 18.12.28 507 7 8쪽
10 칠십 명 3 18.12.25 511 7 9쪽
9 칠십 명 2 +1 18.12.23 548 6 8쪽
8 칠십 명 18.12.23 590 8 9쪽
7 철신 7 +1 18.12.19 660 8 8쪽
6 철신 6 +1 18.12.18 676 8 8쪽
5 철신 5 +1 18.12.16 768 7 8쪽
4 철신 4 +1 18.12.14 882 10 11쪽
3 철신 3 +1 18.12.13 1,135 9 8쪽
2 철신 2 +1 18.12.13 1,511 12 7쪽
1 철신 +1 18.12.12 2,277 14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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