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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拳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시문아
작품등록일 :
2018.12.12 19:10
최근연재일 :
2019.05.08 16:42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3,537
추천수 :
150
글자수 :
73,897

작성
18.12.29 11:22
조회
476
추천
6
글자
8쪽

명품의 권(拳)

DUMMY

12


무공이 강하다고 해서 이룰 경지가 아니었다. 무미건조한 칼질. 손속에 자비가 없는 궤적. 손짓 한 번에 머리통이 부서졌다. 손짓 한 번에 팔이 잘려나가고, 회전 한번에 두 다리가 종잇장처럼 썰려 나갔다.


"야차와 같다."


흑사파라 칭한 이들이 수수 베어지듯 단숨에 쓰러졌다. 선봉에 나선 이들은 벽처럼 쌓여갔으며, 후발 주자들은 앞이 보이지 않아, 언제 검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죽어 나갔다.

도살장과 같은 모습.

허나, 보는 내내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이곳은 고려의 땅.

대지의 주인은 바로 고려인이었다.

이들이 여기서 이리 나댈 정도로 국력의 힘이 약해진 것인가? 진정 두 눈으로 보이는 이 침략적인 모습을 보고도 참는 자가 고려인인가?


"스승님의 가르침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


엄연히 땅의 주인이 있는 곳에서 이렇게 중원인이 설쳐대는 꼴을 보아하니.


"괜히 배알이 꼴리는군."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대지에 박힌 다리가 굳건해졌고, 올려다보는 하늘이 점차 회색빛으로 보여간다.

이들은 결코 살아 돌아가선 아니 된다.

침략에 맞서려면, 살생의 길로 들어서야 했다.


"후우."


손등에 힘줄이 터질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머리는 최대한 차갑게. 이제 더는 사정을 두지 않는다. 이놈들은 오직 침략자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이들이다.


"후우우웁, 하아아아."


독맥경(督脈經)에 속한 이마 위 발제(髮際). 위쪽으로 5치, 후발제(後髮際)에서 7치.


막아두었던 백회혈을 풀었다.

이제 최대한 시야를 확보하자, 모든 것이 느려졌다. 손속이 빨랐던 매화검수의 검이 그러했고, 주변에 있던 대머리 중들도 그러했다.


"좋아."


사파가 절반가량 줄어들었던가.

매화검수를 피해 전진했던 이들이 차츰 줄어들었다. 2대8에서 2대 5정도.

구파 쪽도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으나, 경미한 찰과상. 시간이 해결해 줄 정도의 부상이었다.


".......눈치챈 건가."


백회혈을 풀고, 기를 순회하자 매화검수의 시선과 강하게 마주쳤다. 손짓이 주춤거리는 모습에서 느껴졌다. 놈은 이제 이리로 온다.


"후웁, 하아아."


매화검수가 즉시 방향을 바꿨다. 목표는 바로 나.


이곳 주변 5장 내 엄폐물이 없었다.

즉, 누구나 지켜볼 수 있는 장소다. 여기서 제대로 보여준다. 놈들이 우물 안 무림인이라는 걸 인식시킨다.

여기는 바로 고려의 땅.

고려권가인이 있는 곳이 곧 고려다.


"오라고!"


역겨우리만치 흠뻑 젖은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점차 다가오는 살기. 놈의 눈빛이 붉게 물들어있다. 피 향기에 찌든 광기.


"매화검 십이식. 철조비(鐵造比)."

"고려의 권 제4식. 상향(上向)."


날카로운 자색의 강기에 대놓고 부딪친다.

얼마만큼의 힘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피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수법이나, 내 생각은 언제나 같다. 기왕 살생의 길로 들어섰다면, 정면으로 부딪힌다. 모든 것에 대한 정면돌파.


찔러오는 검에 권갑을 정면으로 들이밀자, 검의 끝인 자그마한 점. 그곳에서부터 권갑의 쇠가 울려 퍼졌다.


쩌저정.


"크으으으."


찌릿함에 권 끝에서 밀려오는 통증.

손목을 타고, 팔꿈치에 걸쳐 어깨까지 파고드는 절절함.


"이놈!"

"되받아라."


감각적으로 검 끝을 흘려낸 뒤, 왼발을 축으로 몸을 회전시켰다. 등을 잠시 보였으나, 어차피 찰나의 시간. 손등으로 놈의 얼굴을 먼저 가격한다.

손은 언제나 모든 것에 빠르다.

눈보다 빠르고, 검보다도 빠르다.

그런데.


`허전하다.`


손등에 느껴져야 할 마찰이 없다. 놈의 안면이 있어야 할 곳이 비었다. 허공을 가로지른 권.

허나, 믿어야 한다.


`믿는다.`


놈의 의도가 머릿속으로 느껴진다.

그 즉시, 몸을 전방향으로 들이밀었다. 놈의 반격이 예상되는 공격은 우측. 놈의 칼자루가 아래에서 사선으로 올라온다.


"매화 17식. 검매(劍梅)."

"권 5식. 귀(龜)."


일직선으로 공간을 가로지르는 검.


쩌어엉.


거북이 등껍질마저 단숨에 부실 귀(龜)권과 부딪히자, 놈의 검이 제자리에 멈췄다.

권갑 역시 검과 맞댄 곳에서 정지.


"고려인."

"매화검수라."


모든 것이 느려졌다.

마주한 검의 떨림이 진동했고, 강하게 밀어 넣는 놈의 힘이 느껴졌다.

힘과 힘의 대결.


"꽤 하는군."

"네놈이야말로."


말만 번지르르한 놈은 아니었다.

매화검수 역시 나와 유사한 성격.


"흐으읍."

"으읍."


어금니가 깨질 정도로 온몸에 힘을 쏟았다.

놈 역시 다리가 땅에 박힐 정도로 밀고 있다.

검과 권갑의 힘겨루기. 밀리는 즉시, 검이 목으로 치닫는다. 반대로 놈이 밀리면 머리가 그대로 부서진다.


"하압."

"후아합."


놈의 눈빛이 다시 한번 세차게 힘을 낸다는 건, 그만큼 힘을 보탠다는 뜻. 질 수 없었다.


*


매화검수와 고려인.

둘의 싸움으로 인해, 모든 이의 동작이 일순간 정지됐다. 잠시 정적이 감돈 후, 정파 사파 할 것 없이 물러선 상태.


정파는 그야말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 유심히 관찰했다. 화산파에서도 제일 뛰어난 이에게 주어진 매화검수의 칭호. 하물며 화산파의 절기인 자하신공을 익히는 이였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변방의 고려인이 마주 섰다?

헌데 매화검수와 쌍벽을 이룬다?

보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구파의 피해는?"

"미약한 찰과상들이라 이후 싸움에 영향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되고, 사파는 거의 절반이 궤멸된 상태입니다. 소가주님. 저기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보고 있다. 화산파의 영호진이 저리 고전할 만한 무공이라니. 철신이라 했지?"

"예. 겉보기엔 별 볼 일 없었는데. 매화검과 쌍벽을 이루다니, 고려인이 맞긴 한지 궁금하네요."

"지켜볼 뿐이다. 변수가 있겠지만, 크게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볼 일. 우선 구파와 개방이 진을 어디에 펼쳤는지 확인하라."

"예. 확인했습니다. 화산파는 고려인 말대로 궤에 근처에 주둔하였으며, 나머지 파는 화산파를 주시하기 쉬운 근방으로 자리했습니다."


팽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철신을 주시했다. 그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으며, 구파는 오대세가마저 죽이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일 것이다. 분명 사파 다음 목표로 오대세가가 확실했다.


"세가의 연합이 중요해졌다. 제갈가는 확실히 구파와 함께하려는 건가?"

"그게. 좀 이상합니다."

"음."

"주장이 나눠진 듯합니다. 제갈진은 구파에 붙길 원하지만, 수하들 일부가 오대세가와 뜻을 같이 하려 합니다."

"당연한 일. 소심한 제갈진이라 하면, 그리할 것이다."


*


"사매. 대사형을 도와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닙니다. 우린 이곳을 지킵니다. 대사형의 명입니다."

"그래도 합세한다면, 금방 처리할 듯싶은데."

"매화검수와 합격술을 펼친다고요? 삼사형. 제정신이 아니시죠?"


진설은 고려인을 유심히. 그리고 날카롭게 주시했다. 영호진은 화산파를 이을 유일한 사내다. 가장 강하고, 아버지의 믿음이 항상 실려있는 남자. 답답하고, 말주변이 없기도 하나 언제나 믿음직한 대사형.

그런 이가 고려의 한낱 필부(匹夫)에게 질 수도, 질 이유도 없는 일이다.


`대사형. 얼른 끝내시고, 오세요. 기다립니다.`


*


이런 시벌.

이 자식, 이거.

내가 백회혈을 깠는데도 세다.

더럽게 세다.

이제 좀 떨어지라고! 이 자식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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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명품의 권(拳) 2 18.12.29 480 7 9쪽
» 명품의 권(拳) 18.12.29 477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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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칠십 명 18.12.23 590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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