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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拳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시문아
작품등록일 :
2018.12.12 19:10
최근연재일 :
2019.05.08 16:42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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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38
추천수 :
150
글자수 :
73,897

작성
18.12.14 05:05
조회
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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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1쪽

철신 4

DUMMY

4


"문주님께서 지시 하셨습니다. 반드시 먼저 쟁취해야 한다고요"


상대를 노려보는 이들 둘을 제외한 나머지 인영들은 엉거주춤하며, 쉬려던 몸을 잽싸게 바로 잡았다. 자칫 분위기가 험악하게 변할지도 모를 일. 물론, 대사형의 의도가 드러난 상태라 상황이 바뀔 일은 없겠지만, 그걸 막은 이가 사매라면 달랐다.

유일하게 대사형을 제지할 수 있는 신물을 가진 사매. 더구나 이곳은 중원이 아닌 머나먼 타국이었다.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 중 하나가 낯선 곳에서 매화검수인 대사형과 사매가 서로 대치한다면, 오직 주변을 경계하여 저들이 원만한 해결점을 찾게 해주는 것일 뿐. 간섭은 그들의 권한 밖이었다.


"하지만 전 대사형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해요."


헌데 매혹적인 미소와 함께 살포시 입꼬리가 올라가는 여인의 모습에서 칠흑 같던 사내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제겐 문주님의 말보다는 대사형의 말이 더 먼저라는 뜻이죠."


웃고 싶은데, 웃을 수 없는 느낌? 울고 싶은데 뺨이 간지러운 상황? 아무리 남녀관계가 모호하다지만, 얼음이라도 녹여버릴 복사꽃 같은 미소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알겠다. 사매도 그만 쉬도록 하거라."

"예. 대사형도요."


말을 끝으로 사내는 자리에서 벗어났다. 아니, 우거진 나무 위로 올라선 게 정확했다.

이를 바라만 보는 여인에게 동료가 넌지시 말을 건네려 다가섰지만, 좀처럼 그녀는 움직이려는 생각이 없었다.


"좀 쉬라고."

"아닙니다. 삼사형. 제가 뭘 했다고요. 전 아직 일이 남아 있어서 그럼 이만."


하지만 대사형이 떠나자 그녀 역시 매몰차게 신속히 자리에서 벗어났다.


"에혀, 누가 대사형과 사매 아니랄까 봐. 하여튼 저 고집쟁이들을 누가 말려."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희까지 숨 막혀 죽을 거 같다니까요. 며칠간 잠도 못 자고, 씻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저리 쌩쌩하지?"

"궁금해할 필요 없어. 저 괴물들 좇아 가다간 가랑이 찢어지는 수가 있어. 대사형 말씀대로, 얼른 운기나 하자고."

"지당한 말씀입니다. 사형. 얼른 쉬자구요. 에고고."


귓속을 열어두었는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들 자리에 앉아 속내에 감춰둔 깊은숨을 힘껏 내쉬었다. 이 얼마나 달콤한 휴식일까. 대부분 화산의 검수들은 곧바로 운기조식에 들어가, 한껏 찌든 피로를 풀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 중 절반이 일대제자이지만, 모두가 덤벼도 대사형이란 자에게 비할 수 없었다.


화산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최고의 검수.

가장 찬란하고도 짙은 자색의 향기. 매화가 짙어질수록 검은 더욱 상대의 살을 파고든다.

그것이 바로 매화검수.

영호진이라 불리는 사나이였으니까.


*


"그러니까. 네 말은 불로초라는 영약 때문에 구대문파. 아니 강호인이라 불리는 놈들이 몽땅 이 고려의 땅으로 몰려든다는 뜻이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스승님. 당연한 순서 아니겠습니까. 어느 누가 한평생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영약을 마다하겠냐고요. 멍청하게 아무 생각 없이 사막을 목숨 걸고 건너오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요?"

"예끼. 한심한 놈. 놈들이 바보천치도 아니고. 그따위 헛소문에 집안을 내팽겨치고 올리가 있겠느냐."


미심쩍어하는 것도 유분수지. 당장 엉덩이 쳐들고 영약이 있는 산에 올라가야 할 판국인데. 혀만 끌끌차시다니, 역시 너무 오래 사셨다. 쇠고집을 넘어 아주 철벽을 치는 저 고집불통.


"스승님. 저 철신. 스승님이 염려하는 바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 불로초가 어디 있고. 찾아냈으면 혼자 먹지. 일부러 소문을 퍼뜨린 것처럼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느냐는 말씀이시죠?"

"허어. 이놈. 다행히 석두는 아니구나. 하긴, 내가 돌대가리를 제자로 거둔 적은 없지. 그런데 왜 요즘 하는 짓은 돌대가리 같지. 어이. 제자. 너 요즘 왜 그러냐. 혹시 늦깎이 사춘기니?"


고려권가고 나발이고 미친 척하고 한번 들이 받어?

아니다.

이런 온전치 못한 생각은 버려야 했다. 분노조절 장애라도 오는 날에 이 바닥에서 급사한다고 말해주신 분이 바로 앞에 계신 장본인이니 참아야 한다. 암. 오래 사려면 참아야지.

그리고 내게는 아직 비장의 수가 남아있었다.


"어흠. 어흠."

"이게 왜 노인네처럼 어흠거려? 돌대가리 제자야. 더 할 말 없느냐?"

"이 똑똑한 제자가 한마디 더 올리겠습니다."


숨을 가다듬고, 목소리를 간결하게.

허리는 대나무처럼 곧게 핀 뒤, 눈빛을 아주 또렷하게 치켜떴다.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인지시키려는 기본적인 자세.

바로 설득의 필수 요건.


"요놈. 또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스승님. 이번엔 진짜 진짜 진실입니다. 들어보십시오. 자고로 소문의 종류란 것은 뜬소문. 헛소문. 그리고 사람을 모으기 위한 사기!"

"호오. 이제야 내가 알고 있는 철신이로군. 좋아. 계속해 봐."


스승님 눈빛이 잠시지만, 진중해졌다. 이는 경청할 마음이 동했다는 뜻.


"그렇습니다. 작금에 이르러 이 불로초라는 매력적인 영약은 이번에 처음 퍼진 소문이 아니었습니다. 옛 선조들의 기록에 의하면 당다라당당당. 당나라 시절! 아주 부유한 나라의 그들이! 아주 많이. 그것도 아주 자주! 고려의 땅을 침범했습니다. 이 역사가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어릴 적, 장내에서 돌아다닌 서적을 읽은 것이 지금에서야 도움이 된다. 하긴, 읽었을 때 진심 반, 허구 반이라 생각했는데. 묘하게 요즘 추세와 맞아들어가니, 절로 입이 나불거리며 신이 났다.


"놈들의 탐욕이었다. 우리 땅을 침범하는 떼놈들. 이 적들을 모조리 부숴야 하는 게 우리의 도리이자 고려의 후손이 할 일이지."

"그렇습니다. 선조들께서 지킨 이 땅. 우리가 지키는 것이 맞지요. 헌데, 당나라에서 온 저들의 의도가 과연 땅만을 원했을까요?"

"그럼 또 뭐가 있단 말이냐. 네가 말하고 싶은 그 불로초. 그것이라도 노렸단 말이냐?"

"역시 냉철하신 스승님이십니다. 당나라 황제가 그토록 원했던 불로초. 그 신비의 영약. 지금 강호인들이 벌떼처럼 들이닥치는 이 시기. 이 상황이 이해가 안되십니까? 상인마저도 눈에 불을 켜고 정보를 캐려는 이 시기에 왜! 스승님께서는 요런 산거지, 아니 생 거지처럼 지내시느냔 말이지요! 당장 그 불로초를 찾아 나서......"


뜨악.


불타오르는 정강이. 참을 수 없는 화끈거림에 집 나갔던 정신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진도를 너무 단번에 뺐나.


"허허. 요놈. 장단 좀 맞춰주었더니, 허무맹랑함이 도가 지나치구나. 철신아."

"예에."


낮은 음색에 너털웃음.

제길. 내가 또 사부님께 놀아난 건가. 이번엔 진짠 통했을 줄 알았건만.

절로 목소리에 힘이 빠진다.


"네 놈이 좀이 쑤시다 못해, 근질거렸나 보구나. 그런 얘기를 아주 입에 기름칠도 안 하고 내뱉는 걸 보니까."

"아닌데요. 저 안 근지러운데요."

"허허. 이놈. 삐친 게냐? 내 네놈 말을 안 믿어줘서?"

"아닌데요. 저 안 삐졌는데요."


쳇.

이제 또 어르고 달래주려는 거겠지.

그런데 어째 다음 이어질

'고놈. 이제 수련하러 가자. 네 놈이랑 허우적거리며 놀아줬으니, 너도 나랑 좀 놀아줘야지.'

라는 말이 들리질 않지?


슬그머니 고개를 들자, 뒤돌아선 스승님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익숙지 않은 느낌. 내가 그토록 원했던 하산이라도 하라는 말씀이실까. 헌데 사뭇 기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다리가 저려온다.


"네놈 속을 내 모를 줄 알겠느냐. 답답하겠지. 십수 년동안 내 밑에서 수없이 많은 갈굼을 버틴 것도 상당히 용했어. 아암. 그렇고말고."

"헛. 스승님. 갑자기 안 하시던 말씀을. 이거 동동주가 오래돼서 상한 건가."


냄새를 맡아봤지만, 퀘퀘한 향기가 어째 긴가민가하다. 조금 맛이 간 거 같기도 하고.


"예끼. 이놈. 농은 그만치거라. 내 네놈을 언제까지 잡아둘 수만도 없는 노릇이고, 너도 다 컸고."

"에이, 스승님.저도 장난 좀 쳤습니다. 갑자기 왜 이러세요. 사람 설레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과 다르게 가슴 한켠이 왠지 찡해졌다. 스승의 등이 저리 협소했던가. 물론 꼿꼿한 자세로 말미암아 왜소하단 느낌은 없었다. 항상 다부지고, 꼰대 같은 모습이지만, 왜 오늘따라 계속 보고 싶어질까.


"네 말을 모두 믿는 건 아니다만, 나도 들은 게 있어 어느 정도 촉이 온다. 철신아. 너도 이제 한번 날아올라 봐야지?"

"지, 진정이시죠? 예? 스승님. 진짜냐고요!"


날아오르라니.

그럼 이제 진짜 하산하라는 건가.


"어릴 적 매일 수련시키고, 항상 저녁에 글을 가르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움은 어디서나 항상 게을리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어디서건 항시 배울 게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당연히 몸에 단단히 새겨놨습니다."

"고놈. 급하긴 하구나. 적을 아는 것도 중요하기에 주변 변방의 나라말을 익히게 하였다. 그뜻은?"

"상대에게서 배울 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드디어 이곳을 벗어나는구나.


"그렇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한 가지. 네놈은 이제 절대 어리지 않다. 나이가 아주아주 많아. 그러니 어디 가서 아해처럼 좀 질척거리지 말고, 그만 좀 촐싹거려라. 나니까 받아주는 거지. 어디 가서 그러면 내가 진짜 동네 챙피하단 말이다. 너도 알다시피 쪽 팔릴 때는 고려권가 출신이라고 절대 말하지 말고. 어우 이런 말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너 그럴때마다 진짜 챙피해. 어우."


뭐, 이런 개떡 같은 뒤통수를.

아쉽고 짠한 마음이 훨훨 날아가 버리고, 아주 마음이 후련하게 바뀌는 순간이었다.


"제가 할 말을 먼저 하시네요. 저야말로 스승님의 그 쪼잔함에 물들까 봐 겁이 납니다. 나이도 잡수실 만큼 드신 분이 어찌 나대시는지. 제발 동네에서 추파 좀 던지지 마세요. 다 들었어요. 옆 동네 이씨 할매랑 그 뭣이냐. 그......"

"뭐? 추파? 그건 또 어디서 주워들었어! 그리고 내가 먼저 추파를 던진 게 아니라고. 네 이놈. 어디 오늘 푸닥거리 제대로 하고, 내일 나가 볼래!"

"그게 아니라, 스승님께서 먼저 시작하셨잖아요! 아, 왜 나만 갖고 그래요."

"네이노옴."


작가의말

성격은 다시 바꿔야겠네...촐싹이 심하구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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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팽가 2 19.01.01 378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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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명품의 권(拳) 18.12.29 477 6 8쪽
11 칠십 명 4 18.12.28 507 7 8쪽
10 칠십 명 3 18.12.25 511 7 9쪽
9 칠십 명 2 +1 18.12.23 549 6 8쪽
8 칠십 명 18.12.23 590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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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철신 6 +1 18.12.18 676 8 8쪽
5 철신 5 +1 18.12.16 768 7 8쪽
» 철신 4 +1 18.12.14 883 10 11쪽
3 철신 3 +1 18.12.13 1,135 9 8쪽
2 철신 2 +1 18.12.13 1,511 1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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