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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拳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시문아
작품등록일 :
2018.12.12 19:10
최근연재일 :
2019.05.08 16:42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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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36
추천수 :
150
글자수 :
73,897

작성
18.12.23 19:24
조회
548
추천
6
글자
8쪽

칠십 명 2

DUMMY

9


좌중에 혼란을 일으킨 웅태환의 외침.

같은 편끼리 검을 맞댄 뒤, 칠십 명만 살아남는다?


"말도 안 되는 계략이야. 저걸 믿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하나같이 말을 아꼈다. 허나, 무림맹으로부터 터져 나온 고성에 잠시나마 정신을 차린 군중들.


"차도지계!"

"비급은 환상이다. 다들 마교의 술수에 놀아나지 말라!"

"아무리 봐도 허공에 비급이 떠 있을 수는 없는 법. 진이 만들어낸 환각이다!"


가능성 있는 발언이었다.


"허상으로 보이느냐? 네놈들의 눈에나 그렇게 보이겠지. 내 직접 확인시켜주지. 자!"


현란함 속에 가려진 신출 기묘한 신법.

웅태환의 검은 기가 뿌연 운무를 통과한 뒤, 손에 들려진 비급에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이제 보이느냐! 진실과 허상 중 어느 것이 진실인지!"

"진짜 비급이라니. 어찌 저럴 수가."

"시험한 네놈들을 탓하거라. 고얀 놈들."


화르륵.

한눈에 봐도 전대고서로 보이는 서책이 타버렸다.

누군가에게는 목숨보다 귀한 비급이었을진대.

그것도 흔적도 없이 아주 깨끗하게 타버렸다.


"의심이란 상대방을 난처하게 만드는 몹시 나쁜 습관이지. 안 그런가? 무림맹의 강아지들."

"저, 저 악랄한 놈!"

"누, 누가 방금 타버린 비급의 이름을 봤소?"


웅태환의 몸짓 한 번에 또다시 변해버린 분위기. 겁박이란 실천이 받쳐줘야만 제대로 먹히는 법이다. 만일, 누군가의 엉뚱한 행동으로 비급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그렇기에 함부로 움직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마디로 모두 쫄았다.


"저 노인네. 세게 나가네."


철신의 눈에는 약쟁이 장수가 원숭이를 빌미로 장터에서 파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물욕이 없으니 당연한 일.

허나, 진실은 때로는 무서운 법이었다. 비급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웅태환이 말한 칠십 명이란 뜻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 계속 이야기를 들을 자세가 되어있어서, 이 노부는 아주 고맙게 생각하네. 말을 잇지. 자랑스럽진 않다만, 사향진은 우리 신교의 작품이 아니라 바로 네놈들이 치켜세우던 제갈가의 비전이다."

"뭐? 제갈세가?"


너도 나도 고개를 돌리며, 제갈세가를 찾기 시작했다. 이는 마교와 한통속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 구석에 위치한 제갈세가의 식솔들은 단숨에 겁에 질려 사색으로 변해버렸다. 한순간에 무림공적과 동일시되니, 당황스럽지 않다면 거짓이리라.


"무림맹 소속으로 마교와 연을 맺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우, 우린 모르는 일이오!"

"시치미 떼지 마라. 목숨으로 죗값을 치러야 할 일."

"다시 생각해보오. 절대 아니오. 만일 저들과 협조했다면, 우리가 여기 있을 이유가 있겠소? 저 마교인의 세 치 혀에 절대 놀아나선 아니 되오!"


진정성이 가득 담긴 외침에 검수들의 도검이 멈춰 섰다. 곰곰이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교의 수장 한 마디에 갈대처럼,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본인들의 위신만 뭉개질 뿐. 이를 깨닫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순하고, 성격도 급하고. 구파일방에서 제일로 손꼽는 후기지수가 이 모양이라니. 이거 그냥 확 다 때려죽일까? 아쉬운 건 그나마 여인들이로고."


웅태환의 혀가 위아래로 날름거리자, 구대문파의 여인들의 손에 도검이 흔들렸다. 그만큼 동요하는 모습이었다.


"저, 저 괴물 같은 놈!"

"반드시 저 색마를 죽여야 한다."


대다수 무인이 발검 자세를 즉시 갖추었다. 피바람이 불 싸움이 당장 일어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전조. 하지만 어차피 칼집은 웅태환에게 있었다.


"대체 뭐 하는 수작이냐!"

"수작은 무슨. 아주 한심해서 하는 말이다. 사내들이 어찌 비리비리한지. 쯧. 제갈세가의 비전이라 했지. 제갈세가 놈들이 직접 관여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들이 매우 궁금해할 진식이지. 잃어버린 그들의 비전 수법이니까."

"그, 그렇소이다. 우리 제갈가에서 이런 진식을 알고 있다면, 왜 무림맹에게 알리지 않았겠소. 이는 필시 저 마교인이 벌인 차도지계가 분명하오. 우리를 믿어주시오."


숨구멍이 트이자, 대변하는 제갈가. 하지만 웅태환의 말 한마디에 그들의 존재는 또다시 묵살되었다.


"얘기가 길어졌군. 이곳으로부터 약 5리 간에 걸쳐 사향진이 펼쳐져 있다. 한계선을 넘어선다면, 경험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지."

"칠십 명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지?"

"그나마 말을 섞을 만한 놈이 이제야 나타났군."


자색의 향기.

매화향이 짙게 퍼져 나가자, 누구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돌렸다.


"선문답할 마음은 없소. 화산파의 영호진이라고 하오."

"오오. 저런 짙은 매화향이라니."

"매화검수."

"역시 화산파의 제자들이다. 기세가 대단해."


마교의 수장 앞에서도 꼿꼿이 자세 잡은 매화. 마치 화산파의 문주라도 나선 것처럼 사제들이 그의 뒤에서 기세를 보태고 있었다.

이에 더욱더 짙어진 향기.


"매화검수라. 허헛. 문주가 사람 제대로 골라서 보냈구만."

"선문답은 이제 그만 하자고 했소. 당신이 말 한 칠십 명은 무슨 의미이고. 왜 무림맹이 서로 싸워야 하는지. 약조는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간략하게 말하시오."


요점만 콕 찝어 말하는 영호진에게서 모두의 시선이 웅태환에게로 향했다. 그들 역시 궁금해 한 사항들.


"사향진의 여덟 문(門) 중, 생문(生門)을 제외한 휴문(休門), 상문(傷門), 두문(杜門), 경문(景門), 사문(死門), 경문(驚門), 개문(開門)등이 열려있다. 그곳엔 각종 함정이 도사리고 있지. 나조차도 발을 헛디딘다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아주 무시무시한 진법. 생문(生門)은 24시진 이후에나 열린다......"

"칠십 명만이 그 문을 나설 수 있다는 건가."

"아주 똑똑하군. 뭐, 단 오 분지 일각이면 얼추 그 정도로 되지 않겠나."


약 3분 동안 생문이 열린다면, 70여 명이란 것도 납득할 수 있었다.


"또한 구대문파와 한 약조는 이미 완료되었다. 일방적인 약조일 수 있겠으나, 보낸 이들이 없는 곳은 비급을 태운다고 했지. 어차피 애초에 비급을 태울 생각도 없었지만, 이젠 상관이 없는 일. 너희들은 오직 살아남아......"

"죄악의 굴레를 씌우는 거군!"

"아주 좋아. 명석한 두뇌야말로 이럴 때 써먹는 것이지. 화산파가 그나마 무림에서 날뛴 이유가 있었구나."


하지만 입가에 띄운 미소와 달리 웅태환의 내심은 이내 다급해졌다. 작은 틈이라도 기회를 주게 된다면, 일의 성사는 무너질 수 있는 일.


이내, 커다란 손짓 한 번에 운무가 매우 진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웅태환 전면 상공에서 서서히 행방을 감춘 비급. 정확히 말하자면, 구름에 가려 흐릿해졌다 볼 수 있었다.


"비급이......사라졌어?"

"이제 됐군. 책자는 진법에 의해 가리어졌을 뿐. 그대로다. 지금부터 생문이 열리는 동시, 책자의 궤도 같이 열릴 것이다. 단, 가지고 나가야만 세상에 빛을 보겠지."

"설마......"

"물론, 너희들 마음대로 손대는 것도 좋다. 대환단도 하나 있던 거 같은데 말이야. 잘해보라고. 비급과 영약이 없어지길 바란다면 말이지. 크하하하."


웅태환은 말끝과 동시에 사라졌다.


*


"오올."


멋진 뒤통수였다.

철신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마교의 수장이라 하더니, 천여 명에게 아주 커다란 엿을 선사한 웅태환에게 감복한 것이다.


"말 한마디로 수백 명을 농락당하다니. 스승님과 오십보백보구만."


사태가 심각하게 변할 만도 하건만, 철신은 이 상황이 재미있었다. 아주 놀랍도록 즐거운 경험.


"이것이 중원 무림인의 술수. 강호라는 말이지?"


사악하게 걸린 미소가 웅태환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은 건 착각이었을까.


"즐겨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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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명품의 권(拳) 2 18.12.29 480 7 9쪽
12 명품의 권(拳) 18.12.29 476 6 8쪽
11 칠십 명 4 18.12.28 507 7 8쪽
10 칠십 명 3 18.12.25 511 7 9쪽
» 칠십 명 2 +1 18.12.23 549 6 8쪽
8 칠십 명 18.12.23 590 8 9쪽
7 철신 7 +1 18.12.19 660 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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