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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拳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시문아
작품등록일 :
2018.12.12 19:10
최근연재일 :
2019.05.08 16:42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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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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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글자수 :
73,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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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30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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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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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9쪽

팽가

DUMMY

14


팽아미는 어기신풍을 시전하면서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뒤돌아 살필 겨를도 없을뿐더러, 진설이 따라오는지 구파일방이 칼 들고 쫓아오는지 확인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아, 진짜."


단지, 옆구리에 낀 사내의 입김이 간지럽다는 생각밖에 없는 것이다. 허리가 델 정도로 뜨거운 신체. 더군다나 이상하리만치 기분을 건드리는 꼼지락거림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짜증 나네."


정신을 잃었으면 잠자코나 있지, 왜 이리 성가시게 하는지. 미간이 한껏 일그러진 아미가 속마음을 대신했다.


"그냥 뒈지게 버리고 갈까."


선뜻 행하지 못할 상상이지만, 뭐 어떠랴. 고의가 아니라고 밀어붙이면 될 일.

그러나 이어지는 전음에 생각을 바꿔야 했다.


'안전하다. 어서 와라.'

'알아요! 가고 있다고요. 이제 거의. 어머!'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의 다급한 목소리. 팽아미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자, 팽지환의 전음이 귓속에 파고들었다.


'무슨 일이냐! 혹시 그가 죽었느냐.'

'아, 아니에요. 괘, 괜찮아요.'


침착한 대답과는 달리, 팽아미의 얼굴이 사과처럼 빨개졌다. 눈초리가 철신에게 향했지만, 옆구리의 사내는 축 처져 사지에 힘이 빠진 상태였다.


'내가 오해했나. 분명 뭔가 단단한 게 꿈틀거렸는데. 잘못 느꼈나. 아니겠지.'


팽아미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하북팽가의 설치된 진이 보이자 마음 한켠에 궁금증이 일어났다.


'이 자를 뭐해 쓰려 함일까. 혹시 매화검수에게 붙여 시간을 벌어볼 심산인가.'


그러나 팽아미는 보지 못했다. 눈을 감은 철신의 입가의 미소가 한층 드리워져 있었음을.


*


"수고했다."

"예. 오라버니, 아니 소가주님."

"그자를 내려두고, 진을 구축해라. 경계도 세워 두고."

"예."


팽아미는 대답하고도 물러서지 않고, 유심히 철신을 바라봤다. 팔과 다리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살피는 모습에서 팽지환은 의구심이 생겼다. 평소 사내에겐 관심조차 주지 않는 누이가 잠깐 본 철신을 주시한다?

희한한 일이었으나, 지금은 경계가 우선.


"뭐 하는 게냐! 어서 진을 구축하지 않고."

"아, 예예. 그런데 소가주님. 이 자 정신 잃은 거 맞죠?"

"그럼 네 눈에는 멀쩡히 보이는 게냐?"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음. 알겠습니다. 당장 진 설치하러 가볼게요."


못내 아쉬워 자꾸만 돌아보는 팽아미.

팽지환은 처음부터 누이를 데려올 생각이 없었으나, 하도 졸라대길래 데려온 것이 후회되었다. 더구나 작금의 상황도 그리 좋지 못했다. 목숨까지 걸어야 할 싸움. 그렇기에 철신의 힘이 탐났던 것이다.


"일단 치료부터 해야겠군."


상처를 보기 위해 손을 대려는 순간, 일그러진 철신의 표정이 드러났다. 이에 누이의 이상스러운 행동이 신경 쓰였다.

팽아미.

아무리 왈가닥이라곤 하지만, 결코 허튼 행동을 할 아이가 아니었다. 이곳은 전장이며, 단숨에 목숨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은 곳. 철신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던 것이 분명한데, 그것이 무슨 느낌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쨌든 살아있으니 다행이군. 무리하지 않는다면 일어나는 게 어떤가."

"크흠."


철신은 못내 마지못해 눈을 떴다. 어깨에 통증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또한 이곳으로 오면서 상처는 더욱 벌어졌다. 한시바삐 치료를 해야 하나, 머릿속엔 오직 풀 내음이 가득했던 향기만이 가득 메웠다.


'그것이 여인의 향기.'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촉감. 포근하면서도 따스함. 마치 어머니 품이 그러했을까.

처음 느껴본 체취였기에 철신은 그 순간을 되새기며 음미했다.


"힘들지만 일어나게. 지혈이 필요하네. 아미가 좀 우악스럽게 데려왔지만, 원망 말게나. 그리 여유 있는 형편이 아니었으니."

"아니오. 구해준 것만도 감지덕지요. 으으윽."


철신이 몸을 일으키자, 팽지환은 준비했던 푸른색 단약을 무심히 건넸다. 이것이 무엇인지 묻는 무언의 눈빛에 팽지환은 고개만 끄덕였다.


"고맙소."

"이곳은 당분간 안심해도 좋을걸세. 물론 잠시겠지만. 난 이만 진을 보강해야겠네. 쉬고 있게."


간이 천막을 나간 팽지환을 우두커니 지켜본 철신은 그제야 손안에 든 단약을 바라봤다. 처음과는 색다른 느낌.

무조건 무림인을 죽여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도리어 이들에게 구조를 받으니 마음 한 쪽이 찔려왔다.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호의를 받아야 하나.'


매화검수에게서 목숨을 부지했다. 만약 영호진을 죽였더라면, 이들 역시 권에 의해 죽었을 사람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철신아. 사내로서 줏대가 없다.'


단순하게 이것이면 이것.

저것이면 저것. 딱 정해서 살면 좋으련만.


"은혜를 입고, 망덕하면 인간이 아닌 금수겠지."

"뭐라는 거예요!"

"어?"


팽지환이 나간 그곳엔 또 다른 인물이 자리했다. 낯익은 음성. 비록 어두웠다곤 하지만 분명 그녀였다. 풀 향기가 가득했던 여인.


"저기 뉘신지."

"흥. 뒈지게 내버려 둘 걸. 어찌 자신을 구해준 사람을 못 알아보는지."

"아, 미안하오. 아까는 정신을 잃어서."

"정말 그런 거 맞아요?"

"뭐가 말이오."

"정신을 잃은 거 말이에요. 확실히. 정신을 잃었던 거 맞냐고요."

"기억이 잘 나지 않소. 그런 것도 아닌 것도 같고. 그런데 소저는 왜 이곳에."

"아! 맞다. 오라, 아니. 소가주님께서 단약을 이것과 함께 드시라고 하셨어요."


내민 호리병 안에서 시큼하고도 향긋한 냄새가 퍼져 나왔다.


"산삼이에요. 그 단약은 우리 하북팽가에서 단 세 알밖에 없는 환이고요."

"아. 그렇군요."

"단! 세.알.이.라.고.요."

"알아들었소. 단 세 알."


냉큼 받아 들어 환과 함께 복용하자, 뜨끈한 느낌이 몸 안에서 맴돌았다.


"호위해줄게요. 운기 하세요. 아! 입 벌리지 말고! 무슨 무림인 기본도 몰라. 흥."


스승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무림인은 특정한 운기법을 이용하여, 내력을 쌓는다고 했다. 허나, 고려권가는 다르다. 오직 수양과 단련. 그리고 자연의 기를 받아들이는 순환.


'그냥 기의 순환이라 하면 될 것을.'


뚫어놨던 백회혈부터 단중을 막아버렸다. 혈이 뚫려 기가 지속적으로 빨려 나간 터. 이에 환과 산삼의 뜨거운 기를 우선하여 보충하고, 남은 곳은 상처로 내돌렸다.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곪아 터지기 일보 직전. 다행스럽게도 뜨거운 기가 어깨치유를 시작했다.

산삼이 좋아서였을까. 세 개밖에 남지 않은 환의 효능이 뛰어나서일까. 일 다경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상처를 치유하자 더는 아프지 않았다.


"후우우."

"끝났어요?"

"그렇소."

"그렇군요. 그런데 그게 고려의 운기법인가요?"

"그렇소만."

"색다르네요. 아무리 환의 효능과 산삼일지라도 저렇게 빨리 상처가 치유되다니."


냉큼 들어온 여인의 돌출행동에 철신은 화들짝 놀라버렸다. 좌정을 풀 정도로 뒤로 젖혀진 상태.


"이봐요. 뭘 그리 기겁을 해요. 사람 무안하게."

"가, 갑자기 들이미니 그렇지 않소."


눕다시피 한 철신의 곁에서 팽아미가 섬섬옥수를 품 안으로 가져갔다. 이에 얼굴이 시뻘게진 철신이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뭐 이런 사내가 다 있어. 화섭자처럼 얼굴이 요상하게 변해버렸네. 기다려봐요. 붕대로 감지 않으면 상처가 덧나니까. 어허. 이리 오라니까요!"

"괘, 괜찮다잖소!"


철신은 팽아미의 말처럼 시뻘건 홍당무가 되어버렸다. 팽아미가 가슴팍에서 꺼내 든 것은 새하얀 붕대. 딴 짓거리를 생각한 것은 철신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소. 내가 할 거요. 그러니."

"아, 예에에. 그러시겠죠. 지켜봐 드리죠. 하세요."

"그리하지요. 험험."


붕대. 붕대.

철신은 아무리 곱씹어봐도 붕대를 어떻게 감았는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눈앞에 보이는 여인의 붉은 입술.

생긋이 웃는 여인의 얼굴만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아미. 팽아미라 해요."

"철신. 범철신이라 하오. 크허험."

"빨리 붕대 감아요. 저 바빠요."

"에?"

"아, 참 바보 같네. 이리 줘요. 무슨 사내가 붕대 하나 못 감아!"

"으아아아아악!"


묶어도 너무 꽉 묶어버린 팽아미였다.

물론 사심이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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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팽가 18.12.30 459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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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명품의 권(拳) 18.12.29 477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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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칠십 명 3 18.12.25 511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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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칠십 명 18.12.23 591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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