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본선이다 (3)
“와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객석에서 터져 나왔다.
이 아름다운 축제를 선사한 장기현과 멤버들에게 향하는 헌사다. 아들을 향해 어마어마한 찬사가 쏟아지자,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탁 터져버렸다.
“아니, 엄마 왜 울어요? 슬픈 무대도 아닌데.”
“슬픈 무대도 아닌데 자꾸 눈물이 난다. 이상하게. 혼자 얼마나 마음고생 심했을지 짐작이 가서···. 저렇게 음악에 소질 많은 줄 알았으면 진즉 하게 해줄 걸 싶었어.”
기현의 누나는 허둥지둥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어머니에게 건네주었다. 기현의 어머니는 젖은 눈을 찍어 누르며 차오르는 감정을 갈무리했다.
“그래도 그렇지, 주책이셔.”
우연히 아버지 쪽을 바라보면, 아버지 역시 젖은 눈을 하고 있었다. 눈물을 흘린 게 분명했다. 아버지가 눈물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기현의 누나는 황당한 나머지, 웃음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아니, 도대체 아버지는 왜 우시는 거예요?”
“눈에 먼지가···.”
손수건으로 눈물까지 닦으면서, 끝끝내 울지 않았다 주장하고 나섰다. 기철은 기현이 기특했다. 이렇게까지 자랐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리고 기현이 너무나도 음악 속에서 행복해 보여서, 이제 더는 빈말로라도 음악 한다는 걸 반대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한편 정희는 대중음악연구회의 연주가 끝난 이후 계속 손바닥에 고개를 파묻고 울고 있었다.
감동을 받아서도, 대견해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미선이에게 너무 미안한 이유가 가장 컸다.
‘저게 저렇게 하고 싶었구나···.’
정희는 태선 때문에 미선이의 바람을 외면했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당신, 우나?”
태선은 막 귀가했을 때였다. 그가 귀가하자마자 본 건, 고개를 파묻고 울고 있는 정희의 모습이다. 태선은 조심스럽게 정희의 옆에 가 앉아, 어깨를 토닥였다.
남편의 기척이 느껴지자, 정희는 태선을 한 번 흘끗 쳐다보고는, 그녀의 모든 힘을 다해 태선에게 말했다.
“···미선이 하고 싶은 거 하게 둬요. 네?”
태선은 정희를 묵묵히 토닥이다 정희의 요구에 고개만 끄덕였다.
*
“기현이 형··· 나 물 좀 줘요···.”
“나 힘없다···. 네가 가져다 마셔라.”
“오빠, 나도 담요···.”
기현은 제 위에 놓인 무릎담요를 미선에게 가져다주고는 그대로 소파에 엎드려 누웠다.
“아, 형! 나는!”
“성호 넌 알아서 마셔···.”
무대를 뜨겁게 달궈놓은 장본인인 대중음악연구회 멤버들은 정작 무대가 끝난 뒤, 기가 다 빠져 뭘 할 수가 없었다.
‘끝났다···.’
시상식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끝났다는 해방감만이 가득했다.
대기실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널브러진 채 보는 둥, 마는 둥, 텔레비전으로 다른 팀 무대를 모니터링 했다. 그렇게 얼마를 뭉갰을까.
어느새 마지막 팀 무대도 끝나고 심사의 시간이 다가왔다.
*
모든 무대가 끝났다. 비로소 심사위원들의 차례가 되었다. 심사위원들이 분주해지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모든 무대가 끝났으니, 이 결판의 최종 승자를 정해야만 했다.
모두가 기다리는 승자다. 다수가 납득할 만한 합당한 결과를 내야만 했다.
“다들 대상으로 마음에 둔 참가자, 있습니까?”
“대상이야, 뭐··· 뻔하지 않겠습니까.”
심사위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다들 생각하는 것이 비슷했다. 열 명의 심사위원들의 시선은 다 한 곳을 향해 있었다.
“이변이 없는 한, 이 팀이겠죠.”
김성룡 피디는 볼펜 끝으로 참가자 한 팀을 가리켰다. 그는 일찍부터 대상은 정해져 있었다고 생각했다.
[대중음악연구회]
“역시 그렇군요.”
“그렇다면 대상은 이 팀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벌써 그렇게 정리가 되나요?”
김성룡 피디의 생각에 동의한 다른 심사위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중음악연구회 팀이 대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원래 대상팀 정하기가 가장 어려운 법인데, 이거, 이렇게 쉽게 정해도 됩니까?”
심사위원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심사를 이어갔다. 심사장 분위기는 더없이 좋았다.
“하모닉스도 정말 좋았지만, 대학가요제의 취지와는 이 팀이 좀 더 맞는 듯하더군요.”
“하모닉스는 최우수상 주는 것으로 합시다.”
“그럼 이렇게 순조롭게 대상 정했으니, 이제 남은 시간에 다른 수상자 정하면 되겠군요.”
그렇게 대상의 주인공은 대중음악연구회가 되는 것으로 판가름 나는 듯했다.
“···하지만, 이변이 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그때, 조철우 팀장이 다 된 판에 끼어들었다.
“이변··· 이요?”
이변이라는 변수에 모두의 시선이 조철우 팀장 쪽으로 쏠렸다.
이변? 이대로 대중음악연구회를 대상으로 올리려던 김성룡 피디는 미간을 좁혔다.
자신이 모르는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대중음악연구회, 이미 음반 계약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나승연 심사위원님?”
“아니, 그걸 왜 여기서···! 이곳이랑은 일정 상관없는 얘기 아닙니까?”
“상관없는지, 있는지는 이곳에 있는 다른 심사위원 분들께서 판가름 내주시겠죠.”
조철우 팀장은 명백히 불순한 저의를 가진 채로 나승연을 바라보았다.
“······?”
조철우 팀장이 음반 계약에 대한 화두를 던지자, 장내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대중음악연구회 팀은 우리 한양레코드와 이전에 음반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음반 계약이라뇨, 무슨 말씀이십니까? 더 자세히 말씀해보시죠, 조철우 심사위원님.”
김성룡 피디는 안경을 고쳐 쓰며 조철우 팀장에게 물었다. 분명 이 친구들이 대학가요제의 자격 요건을 모르고 뛰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중음악연구회 팀, 미리 음반 계약을 했더군요. 제가 알기론, 아마추어 팀만 가능하다고 알고 있는데, 아닙니까?”
“그게 뭐가 문제입니까? 미리 계약한 것뿐이고, 아직 음반은 만들어지기도 전입니다.”
어이가 없어서. 나승연 팀장은 열을 올리며 조철우 팀장에게 바락바락 소리쳤다.
“나승연 심사위원님, 열 내지 마십시다. 왜 그러십니까? 꼭 거기에 연관된 사람처럼···. 계약한 것만으로도 추후에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런 뜻이지요.”
조철우 팀장은 진심으로 대중음악연구회를 걱정한다는 얼굴로 얘기했다. 나승연 팀장은 저 저의가 무엇인지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역겨웠다.
“그건 그렇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미 계약한 것만으로도 프로라고 생각합니다.”
“저도요. 계약했으면, 프로죠.”
조철우에 동조하는 심사위원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뭐 그런 억지가 다 어디 있습니까? 데뷔도 안 했는데, 프로라뇨! 그렇다 치면, 하모닉스도 프로 아닙니까? 하모닉스도 세션 활동하지 않았습니까?!”
“일개 세션이랑 음반 데뷔 계약이랑 같습니까?”
“일개 세션이라뇨! 지금 저도 세션이라고 무시하시는 겁니까?!”
“제가 언제 당신보고 그랬습니까?”
“방금 일개 세션이라고···!”
대중음악연구회의 데뷔 계약 논란으로 심사위원들 사이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김성룡 피디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답에 이마를 짚었다.
‘이걸 어째야 하나···.’
그대로 대상을 진행하기에는 조철우 팀장의 말처럼 후에 기자들에게 물어뜯길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대상을 또 주지 않기에는 심사 논란이 일 것이 뻔했으니, 완전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꼴이었다.
“거, 싸우지들 마십시다.”
“아니, 계약만 한 게 어떻게 프로가 된 게 되느냐 이 말이야!”
“당신, 언제부터 작곡가 소리 들었어! 계약한 이후부터 들었잖아! 그럼 계약한 이후부터 프로 아니야?!”
“지금 나한테 반말했어?!”
“당신이 먼저 반말했잖아!”
심사장은 완전히 개판이 되어버렸다.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김성룡 피디의 시름은 더 깊어져만 갔다.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최후의 보루, 다수결로 정할 수밖에.
“자자, 그럼 다수결로 정합시다. 눈 감고 손 드시는 겁니다. 대중음악연구회 대상 찬성한다, 손.”
정확히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이 손을 들었다.
김성룡 피디는 골이 당겼다. 이런 제기랄. 어떻게 손을 들어도 다섯 명이···.
하지만 마무리는 지어야 했으니.
“···대중음악연구회의 대상 수상 반대한다. 손 들어주세요.”
찬성 외 다섯 명의 심사위원이 손을 들었다. 너무나도 칼로 자른 듯 깔끔한 결과에 김성룡 피디는 곤란해 죽을 맛이었다.
축하 공연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심사 결과를 전달해야만 했다.
“피디님, 심사 결과는···.”
“아직, MC들 데리고 좀 더 시간 끌어봐.”
“예, 알겠습니다.”
조연출도 때마침 들어오니, 김성룡 피디는 사방에서 자신을 옥죄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
축하 공연도 끝이 났다. 하지만 심사가 끝났다거나, 하는 전언은 들려오지 않았다. 기현은 초조함에 입술만 씹으며 시계와 텔레비전 화면을 번갈아 보았다.
"심사, 아직이래요. 좀 늦어지나 봐요."
바깥에서 심사의 행방을 물어보고 온 성현이 말했다. 뭘 그렇게 논의하는 건지.
'대상이 그렇게 박빙인가.'
심사가 길어질수록 더 초조해져만 갔다.
*
“5대 5네요. 공교롭게도.”
김성룡 피디는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심사위원들은 제 속도 모르고 쌈박질만 해대고 있었다.
“잠깐, 그렇다면 제가 제안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누군가 손을 들고 물었다.
저명한 작곡가 최용섭이다.
내내 묵묵부답으로 있었던 최용섭의 등장에, 시끌벅적하던 장내도 일순 조용하게 잦아들었다.
“작, 작곡가님? 제안이라는 게···.”
김성룡 피디는 이 상황이 제발 악화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상을 하나 더 만듭시다.”
“예?”
최용섭 작곡가의 황당한 제안에 모두가 귀를 의심했다. 방금 상을 하나 더 만들자고 하신 거야? 내가 들은 게 맞아?
“이 팀은 대상도, 탈락도 안 되니, 없는 상을 하나 더 만들어 주자고요. 특별상, 어떻습니까.”
“하지만, 그건··· 전례가 없는 일인데요.”
“맞아요. 그럴 바에는 하모닉스를 대상으로, 대중음악연구회를 최우수상 주면 되는 일 아닙니까.”
마땅한 의견이었다. 대상이 안 된다면? 최우수상을 주면 되는 일이다.
“방금전까지 우리 열 명 모두 어떤 팀을 대상감으로 지목했습니까? 대중음악연구회입니다. 관객들도 똑같은 생각 하고 있을 겁니다. 대중음악연구회는 압도적인 대상 후보예요. 저 팀은 대상이 아니면 분명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거라면 특별상도 똑같지 않습니까.”
“최우수상은 명백히 대상보다 밑 상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대학가요제에서 전례가 없는 상인 특별상은요? 특별상은 과연 대상보다 밑일까요, 위일까요?”
“그건···.”
“그게 제가 특별상을 주자는 이유입니다. 대중들은 하모닉스와 대중음악연구회 중 대상을 가르지 못해 대상을 두 팀에게 준 것이라고 생각하겠죠.”
최용섭 작곡가의 작전은 제법 그럴듯했다. 없는 상을 추가로 만들어 주는 거야,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래요. 그렇게 합시다. 특별상.”
상의 행방이 결정되었다.
- 작가의말
오늘의 곡
김창완 밴드- 모자와 스파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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