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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1980 밴드천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최근연재일 :
2023.09.29 19:20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29,935
추천수 :
3,724
글자수 :
171,704

작성
23.09.13 18:30
조회
3,862
추천
107
글자
10쪽

우린 한 팀이잖아

DUMMY

도로롱-


새 기타의 울림이 아주 정중하게 공명했다. D코드를 잡고 천천히 줄을 뜯었다.


“크으으-”

“키야아-”

“이거지, 이거-”

“소리가, 아주 그냥 기똥차요. 그쵸?”


대중음악연구회 멤버들은 별것 아닌 소리임에도, 단순히 새 기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지러지게 좋아해주고 있었다.


“소리가 그냥 미쳤다, 미쳤어.”


미선은 박수를 치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역시 돈이 좋구나, 좋아. 이게 그 사십만 원이 넘는 기타···.”


한술 더 떠, 무슨 하나밖에 없는 아주 아주 귀한 물건 보는 듯 보고 있었다.


“너는 내 두 배는 되는 무그 신디사이저랑 오르간 쓰면서 뭘···.”


기현은 그런 미선이 웃기고 어이없을 뿐이다.


처음에는 아무런 자초지종 없이 갑자기 기현이 고가의 기타인 길드 F512를 들고 오자, 동아리실이 한 차례 180도 뒤집어졌다.

장기현 이 형도 사실 숨겨진 대통령의 아들이 아니냐는 의문이 불같이 제기되었지만, 기현의 빠른 진압과 성현의 증언, 그리고 기현의 2차 예선곡 연주로 의문은 금세 종식되었다.


기현의 2차 예선곡 연주를 들은 성호는 연신 감탄을 흘렸다. 이대로라면 본선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나저나 와, 우리 본선 올라가는 거 아녜요?”

“이렇게만 하면 우리 본선 진출이지.”


하지만 거의 모든 게 완성된 시점, 아직 남아있는 것 하나.

미선은 아주 아주 조심스럽게 기현에게 물었다.


“그런데 있잖아, 오빠. 우리 가사··· 는?”

“아··· 가사···.”


그렇지 않아도 내내 턱 밑까지 걸려있었던 거다. 기현은 정말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는 게 미안하기만 했다.


“아직이에요? 2차 예선이 일주일 남았어요.”

“아··· 직은 아닌데, 완성된 것도 아니라···.”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그게 뭔 말이야, 대체. 미선은 크고 동그란 눈으로 기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직도 아니고 완성된 것도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사실 기현은 혁철에게 작사 과외를 받은 이후, 혼자 머리를 싸매며 몇 자 적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제 가사에 자신이 없었다.

특히 이렇게 멤버들에게 가사를 보여주는 날이면, 예전 생각이 나 더더욱.


“오빠, 우리 빨리 연습해야죠. 지금 며칠 안 남았잖아요.”

“···일주일 남았지.”


기현은 자꾸만 딴청을 부렸다.


'내 눈을 똑바로 못 보는 게, 뭔가 있단 말이지.'


미선의 촉이 발동되었다.


이 남자 이상하다.

뭔가 꿍꿍이가 있다.

뭘까?


미선이 보기에 기현, 분명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작사에 자신 없어 하는 모습도 그렇고, 1차 예선곡 가사 주며 눈치 보던 것도 그렇고.

저 뭐 마려운 얼굴 하며.

뭔가 할 말이 있긴 있다는 행동도 그렇고.


모든 걸 종합해보면 의심스러운 가설이 하나 도출되었다.


‘혹시 완성하긴 한 거 아니야?’


미선은 혼과의 술자리에서 있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옛날에 뭔 말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옛날 일 때문에 작사에 자신이 없다고 그랬지.’


미선의 촉이 올바른 답을 향해 질주했다.


“···기현 오빠. 다 쓰긴 썼죠?”

“어, 어떻게 알았···.”


이런, 알아챌 줄 몰랐는데.


기현은 본인 얼굴에 정답이 다 적힌 줄도 모르고 고개만 끄덕끄덕 주억거렸다.

미선은 피식 웃으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표정 보면 나와요. 가사 줘보세요. 문제 있으면 뭐 어때요. 같이 고치면 되죠. 안 그래요? 미완성이면 같이 공동 작사하면 되고.”


미선이 생각하기에 이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자신이 없으면 곁에서 자신을 북돋아주면 되고, 문제가 있으면 같이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일 아닌가.

그래서 팀인 거고 밴드인 거 아닌가.


기현은 미선의 말에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같이, 라···.’


기현은 2차 예선곡의 가사가 적힌 수첩을 꺼냈다. 혁철 형이 써먹어도 된다던 가사 뒤를 이은 가사였다.

중간중간 마땅한 가사가 떠오르지 않아, 그대로 둔 빈 공간이 눈에 띄었다.


“형이 작사한 거예요? 아직 완성은 아니네요?”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길 떠나는 내게 지금 필요한 건

운동화 한 켤레와 카세트 플레이어

그리고 더플백 하나.

그거면 돼.

우- 그래, 그거면 돼.


우린 우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아무도 모르지

몽롱한 미래여, 차가운 젊음이여

잠시만 안녕 잠시만 안녕


“오, 가사 좋은데요?”

“응, 곡 분위기랑도 맞고 전 좋아요.”

“이런 거 보면 대체 누가 오빠보고 쪽팔리다고 한 건지, 좀 잡아 왔으면 좋겠다니까.”


예상 외로 칭찬이 쏟아졌다. 기현은 의외의 칭찬에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좋아해서 다행이다.’


자신도 모르게 제법 긴장했던 모양이다.

성호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가사를 흥얼거리다, 물었다.


“여행 가는 가사예요? 더플백이랑 카세트 플레이어, 이런 게 나오네.”

“아, 그 부분은 혁철 형이 쓰라고 준 가사. 일단 청춘의 방황을 여행으로 표현하긴 했는데, 어떻게 잘 됐는지는 모르겠네.”


기현은 머쓱하게 웃으면서도 능숙하게 가사 설명을 이었다. 미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저는 괜찮은데요? 나머지 부분만 채우면 되겠어요.”

“그럼 나머지 부분이 문제네.”

“저 부분이 안 떠올라서 그런 거죠?”

“어, 어···.”


제 가사에 이렇게 관심이 쏟아진 적은 처음이라, 기현은 얼떨떨했다.


“그리고 형은 좀 작사에 자신감 좀 가져도 돼요.”

“응, 응. 혁철 오빠가 작사한 부분 말고도 정말 가사 멋진데요, 뭘.”


미선은 멜로디에 맞춰 가사를 흥얼거렸다. 미완성인 부분은 허밍으로 흥얼거렸다. 미선의 작은 목소리에 모두가 집중했다. 작지만 예쁜 목소리다.


“어··· 나 좋은 가사 한 줄 생각난 것 같아!”


계속 가사를 흥얼거리다 보니, 미선은 문득 좋은 가사가 한 줄 떠올랐다.

가사 한 줄 떠올랐다는 게 이렇게 신이 날 일일까?

미선은 잔뜩 신이 난 채로 노래하며 공란으로 비워져 있던 곳을 채웠다.


“카세트 플레이어, 음악에 맞춰 춤을 춰, 춤을 춰! 어때요?”

“좋다! 앞 내용이랑도 이어지잖아!”

“또, 또 해봐요.”

“음··· 새벽안개부터 저녁 노을까지 춤을 춰, 춤을 춰!”

“그것도 좋다!!”


한 줄을 완성시켰으니, 또 한 줄 더 완성시킬 수 있으리라. 멤버들은 막혔던 둑이 터진 것처럼 너나 할 것 없이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춤···? 디스코 춤···?”

“존 트라볼타처럼 춤을 추자고?”

“그게 뭐야! '토요일 밤의 열기'가 언제 적 영화인데!”


병철의 알 수 없는 가사 센스에 성현은 배를 잡고 웃었다.


물론 좋은 가사가 나올 때도, 웃긴 가사가 나올 때도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작사에는 자신 하나 없었던 멤버들이다.

이상하고 우스운 의견이라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던지기 시작하니, 기현은 모종의 용기가 북받쳐 올랐다.


“사람들은 말해. 젊음은 유한하다, 청춘을 재촉하라고. ···어때?”


기현의 가사로 마지막 빈 퍼즐 하나가 맞춰졌다.

지금까지 별말 없이 묵묵히 멤버들을 바라보던 기현이 기어이 입을 떼어내니, 환호가 쏟아졌다.


“와! 진짜 좋다!! 오빠, 그렇게 잘하면서 왜 그랬어요!”

“잘하잖아요? 저 병철이 놈 철 지난 디스코 춤보다 천 배는 더 좋다!”

“그리고 다시 첫 번째 가사로 돌아가는 거지!”


멤버들은 손뼉을 치며 좋다, 좋다, 쾌재를 불렀다. 멜로디에 맞춰 새로 만든 가사를 소리 내 함께 흥얼거렸다.

멜로디에 가사가 절묘하게 맞자, 어떤 희열마저 느껴졌다.


*


대학가요제 2차 예선 당일.

2차 예선인 만큼 1차 예선에서 느껴졌던 오합지졸의 느낌은 없었다.


‘괴물같은 팀이 많이 올라왔다.’


곡의 완성도는 차지하더라도, 연주력만큼은 프로 못지 않은 팀들이 많았다.

미선은 1차 예선 때에는 긴장하지 않았지만, 앞 팀들의 무시무시한 합주를 듣고 난 이후로 눈에 띄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다 잘하지?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병철은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먼저 심사장에 입장한 팀들의 합주 소리를 엿들었다.


“이번에는 긴장해서 저번같이 바보 같은 실수 하지 말자고. 인사 딱딱 맞게, 알지? 알죠?”


다섯 명의 멤버들이 한데 모인 자리, 미선은 멤버들에게 저번 같은 실수는 없음을 선언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손은 미선이 제일 많이 떨고 있었다.


“긴장하지 말자면서, 손은 본인이 제일 많이 떠네. 건반 바이브레이션 생기는 거 아냐?”

“조용히 해. 지금 해외 콩쿨 나갔던 것보다 더 떨리니까.”

“들어가자마자 안녕하세요, 참가번호 99번 대중음악연구회입니다! 하고 인사하는 거 맞지?”


성현과 미선이 서로 투닥거리는 사이, 기현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첫 1차 예선 때만큼 떨리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놀랍도록 차분했다.


“다음 팀! 99번 입장할게요!”


마침 앞 팀의 심사가 끝난 모양이다. 스태프가 심사장 쪽에서 우리를 장 안으로 안내했다.


“우리 긴장하지 말고 멋지게 찢고 오자고요.”


미선의 손 위로 네 사람의 손바닥이 모였다.

내 옆에 네 사람이 있다. 손등과 손바닥이 서로 맞닿자,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우리는 완전한 한 팀이니까.


“대중!”

“음악!”

“연구회!”

“파이팅!”


미선의 선창을 필두로 누가 짜기라도 한 듯, 기현, 성호, 성현, 병철이 파이팅 콜을 이었다. 복도를 쩌렁쩌렁 채웠다.


“가자!”


지금 이 파이팅 콜이 마지막이 되지 않길 바라면서.


작가의말

오늘의 곡

Foals-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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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돈보다 값진 연주 +4 23.09.12 3,913 111 9쪽
18 봄날은 간다, 아나? +4 23.09.11 3,944 10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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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만장일치 +2 23.09.09 3,968 103 10쪽
15 참가번호 99번 대중음악! 연구회입니다! +6 23.09.08 3,982 10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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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가자, 무대로 +5 23.09.05 3,985 112 10쪽
11 서울락밴드연합회 +2 23.09.04 4,077 116 11쪽
10 아버지의 마음 +7 23.09.03 4,095 1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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