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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1980 밴드천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최근연재일 :
2023.09.29 19:20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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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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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해체는 나중에 생각하자, 우선은 무대부터 즐기고

DUMMY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밴드를 꼽으라면 항상 빠지지 않고 나오는 밴드가 있다.


혼 HORN.


지금까지 낸 다섯 장의 앨범 중 무려 세 장이 명반의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 밴드의 전설.

헤비메탈의 전설.


베이시스트 겸 보컬 김종운, 기타리스트 박찬원, 드럼 신혁철, 3명으로 이루어진 밴드.

이 밴드는 훗날 뛰어난 기타, 베이스 테크니션과 격렬한 메탈 사운드, 그와 반대로 서정적이고 유려한 가사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 모종의 이유로 밴드는 해체하게 되고, 혼의 작곡을 맡았던 기타리스트 박찬원은 잠정 은퇴 선언까지 한다.


그야말로 말 그대로 전설로만 남은 밴드다.


하지만 훗날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긋는 밴드도 언더그라운드 시절에는 고민이 많았다.


“야, 우리가 암만 연주해도 들어주지를 않는데, 우리 이거 계속 해야겠냐?”


드럼 혁철과 베이스 종운이 불평을 토로했다. 찬원은 충분히 이해했다.

밴드를 결성한 스물다섯 살 이후로,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3년간 그들은 각자의 악기에만 매몰된 채 살았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장르였기 때문이었다. 메탈이라는 장르는.


‘씹, 이러다 서른 되겠네.’


3년이라는 세월도 금방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남은 2년도 금방일 테다.


“우리도 딴 놈들처럼 장르 얼른 틀자. 우리도 돈 되는 음악 하자. 밴드로 먹고 살려면.”


종운이 얘기했다.

당연히 종운도 메탈을 사랑했다. 메탈은 그에게 꿈이기도 했다.

하지만, 꿈과 현실을 타협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계속 밴드를 하기 위해선.


뛰어난 실력으로 세션 등으로 먹고 사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들은 밴드로 먹고 살고 싶은 거지, 세션으로 먹고 살고 싶지는 않았다.

결코 세션 활동이 밴드 활동을 잡아먹도록 두고 보고 싶지는 않았다.


'메탈을 포기하자고?'


찬원은 현실에 타협하자는 종운에게 순간 욱하는 감정이 울컥거렸다.

우리가 왜 모였는데?

죽을 때까지 메탈 하자고 모인 거 아냐?

그런데 넌 왜 이렇게 정체성을 바꾸자는 말을 쉽게 해? 곡은 내가 쓰는데?


“혼의 정체성은 헤비메탈인데, 어떻게 넌 정체성을 바꾸자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냐? 돈 되면 씹, 나가서 춤이라도 추겠다?”

“이 새끼가 쳐 지껄이면 다 말인 줄 알아. 내가 언제 그딴 말을 했어?”


종운과 찬원 사이가 격해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서로 멱살을 드잡았다. 서울락밴드연합회 공연에 올라가기 직전의 일이었다.


“그 말이 그 말 아냐? 너 지금 메탈 관두자는 게 다 돈 때문이잖아. 돈 되는 음악 하자며!”

“아니, 시발 누가 듣는 시늉은 해야 메탈을 하든 말든 하지!”

“그래, 시발. 갈라 서. 이 공연 끝나고 해체해. 해체하고 난 나 하고 싶은 메탈 할 테니까, 넌 너 하고 싶은 돈 되는 음악 해.”

“야, 찬원아! 넌 무슨 해체 소리가···!”


감정이 격해져, 결국 해체 소리까지 나왔다.

원래 감정 격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싸우는 놈들이었지만, 해체 소리는 한 적 없었다.

가장 감정적으로 차분하고 이성적인 혁철이 중재를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말 해체인가···?’


중간에 낀 혁철만 안절부절못했다. 이 녀석들, 도저히 말릴 수 없었다.


‘그래, 이 공연만 하고 해체야. 팀은 다른 애들 찾으면 돼.’


찬원은 결심했다.

저 녀석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초를 치는 것도 아니고, 공연을 앞둔 이런 중요한 때에 저딴 소리를 하는 저 새끼를 이해할 수 없었다.


“밴드 혼! 그다음 순서입니다! 대기하세요!”


대기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젠장, 이런 기분으로 공연에 올라가야 한다니.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이 상황에 공연하고 싶은 마음은 영 들지 않았지만, 해체는 해체고 공연은 공연이다. 하기로 한 공연은 해야 한다.

아무리 언더그라운드 인생이라도 자신들은 프로니까. 그게 관객과의 약속이니까.


*


모든 준비가 끝났다.

스포트라이트가 켜지면 무대 위 대중음악연구회를 바라보는 관객들이 보였다.


그들은 무대 중앙에 선 기현이 입을 떼어내기만을 기다렸다.


“안녕하세요, 대중음악연구회입니다. 사실 저희가 땜빵이긴 한데, 즐겁게 연주할 테니, 열심히 들어주세요.”


기대감에 찬 눈빛 반, 갑자기 추가 된 땜빵이라던데, 과연 잘할까? 하는 의심이 섞인 눈빛이 반이다.


‘그 의심 다 묵살시켜주지.’


기현은 호승심이 들었다.

관객들의 눈빛 안에 서린 의심이 모두 그가 이겨내야 할 존재로 보였다.


적막 속 미선의 또렷한 건반 연주가 흘렀다.

결코 축축 처지거나 무겁지 않은 멜로디. 털고 일어설 수 있을 만큼 가볍고 시원하다.


‘가뿐한 시작이다.’


성현은 미선의 음을 따라 기타를 슬라이드 하며 곡에 시동을 걸었다.

곡이 서서히 달궈지기 시작하면, 관객 분위기도 응고점에서 끓는점을 향해 달렸다.

리드 기타인 성현은 묵묵히 지도를 그리고, 병철의 드럼은 성격처럼 우직하게 기현에게 길을 안내한다.


그 위에서 기현은 몸을 온전히 맡긴다.


퉁퉁 튀는 성호의 베이스와 드럼의 그루브한 분위기.


멜로디에 몸을 맡기며 발을 박자대로 구른다.


그리고 시작되는 첫 소절.


이 날이 지나도

기억은 남아

되뇌이겠지만.


기현은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마이크에 가사를 읊조렸다.


미선의 집에서 밤새웠던 일.

처음 학교 앞 전집에서 회식했던 일.

함께 얼큰하게 취해 별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하늘을 보았던 일.


모든 기억이 떠오르고 또 사라진다.


기현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지하 극장을 꿰뚫었다.

생김새와 다른 제법 원숙한 목소리에 의외라는 듯, 관객들 눈이 커진다.


‘대체, 저 녀석 뭐야?’


첫 소절을 들었을 때는 음색에 의외였고.

두 번째 소절을 들었을 때는 특이하고 제멋대로인 연주가 놀라웠으며.

세 번째 소절을 들었을 때는 그럼에도 미치도록 좋아 섬찟했다.


관객들은 괜히 팔뚝을 쓸어 만지며 오소소 돋은 소름을 갈무리했다.


그건 다른 밴드도 마찬가지였다. 밴드 위스키의 땜빵인 대중음악연구회를 내심 깔보던 다른 밴드들도 그들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밴드 A 마이너의 형기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완전히 자기네들 단독 공연장 같잖아.’


즐겁게 연주한다는 게 그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저렇게 긴장한 구석 하나 없이 즐기는 모습이라니.


“하!”


무대 바로 뒤에서 대기하던 밴드 혼은 헛웃음을 뱉었다. 어이가 없었다. 너무 좋아서. 너무 좋아서 어이가 없었다.


장르 상관없이 뛰어난 저 테크닉 하며, 노래하며.

포크 락인가 싶으면서도 그루브하고 훵크한 분위기. 장르를 종잡을 수가 없는 게, 저 보컬 놈의 연주와도 같았다.

흠잡을 데 없었다. 특이하면서도 균형은 기막히게 맞는 밴드였다.


‘저 녀석들은 땜빵인데도 저렇게 공연을 즐기면서 하는구나.’


모두의 무대를 자신만의 무대로 만들어버린 저 밴드가 혼은 샘이 났다.

자신들도 객석을 저렇게 달구고 싶었다. 무대 앞에서 모든 갈등은 서서히 사그라들고 갈무리되기 시작했다. 감정의 골도 소용없었다.


그저, 즐기고 싶을 뿐.


찬원은 흘끗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통했는지, 시선이 마주쳤다.


“있잖아, 해체는 나중에 생각하자.”

“어. 일단은 무대 즐기고.”


빨리 무대에 뛰어들고 싶었다. 저 녀석들보다 더 무대를 즐기고 싶었다.


'저 녀석들한테 무대를 순순히 넘겨줄 수 없지.'


극장이 떠나갈 듯 객석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대중음악연구회의 무대가 성공리에 끝났다.

작은 공연장. 분명 관객 수는 적다. 하지만 환호성은 대형 공연장 못지않았다.


“진짜 재밌었다. 그치?”


너나 할 것 없이 개운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성공리에 끝냈고, 재미있게 즐겼다. 관객들도 만족한 듯했다.

어둠 속에서 불쑥 누군가 악수를 청했다.


“정말 잘 봤어요. 덕분에요.”


누군가 하니, 우리 바로 뒷순서였던 혼 멤버들이다.

그동안 아무리 고개를 좌우로 돌려봐도 보이지 않았던 형님들이 나타나, 불쑥 대중음악연구회에게 악수를 청했다.


“우리 공연을요?”

“그쪽 공연 말고 또 있겠어요?”


어깨를 으쓱이며 기현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응원의 표시였다.


“우리 무대 이렇게 망할 줄 알았는데, 덕분에 살았어요. 덕분에 무대 즐길 수 있겠어요. 좋은 기 받아갑니다.”


이 락밴드 특유의 수염, 장발 하나 없이 멀끔한 얼굴은 분명 찬원 형님이다.

찬원 형님은 은은히 웃으며 얘기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 우리 덕이란다.


‘이게 계 탄 건가?’


훗날 거장이 될 남자에게 칭찬을 받는 셈이니,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이따가 괜찮으면 우리 밴드랑 같이 술 한 잔 해요. 어때요?”


거기다 술 요청까지.

당연히 같이 해야죠. 못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전설이 되실 형님들인데.


“아, 당연하죠. 무슨 일이 있어도 갑니다!”


기현은 음흉한 웃음이 비죽여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이미 기현의 머릿속으로는 혼 멤버들과 호형호제까지 마친 뒤였다.


“다음 밴드 혼 무대 설게요!”


혼의 무대를 알리는 스테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밴드 혼이 무대에 입장할 차례였다.


“무대가 어떻게 되든 즐기기로 해. 저 친구들처럼.”

“좋지.”


이제 그들이 무대를 접수할 차례였다.


작가의말

오늘의 곡

트랜스픽션- 내게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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