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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1980 밴드천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최근연재일 :
2023.09.29 19:2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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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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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이제 네 차례

DUMMY

요즘 밴드 혼은 아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다 기현 덕이었다.

‘박원웅과 함께’에 ‘무소의 뿔처럼 가라’가 나온 뒤로, 여러 레코드사에서 달콤한 러브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러 라디오에 혼의 노래가 등장한 것도 놀라워 죽겠는데, 음반 계약까지 했다. 이게 다 며칠 새에 일어난 일이었다.


‘꿈인가···.’


혁철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 마치 미국 로맨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었으니까.


딸랑.

혁철이 일하는 서문악기사 문이 열리며 익숙한 청년 한 명이 들어왔다.

기현이었다.


“형, 안녕하세요.”

“어어, 어쩐 일이야?”

“저번에 도와주시기로 했던 거, 오늘 도움 받을 수 있나 해서요.”

“어, 오늘 딱히 일도 없고 시간 괜찮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여기가 그 서문악기사라니···.”


기현은 황홀한 눈으로 서문악기사 곳곳을 바라보았다. 서문악기사는 부활, 시나위 등 걸출한 밴드들이 한 번쯤 거쳐간 한국 밴드의 성지 중 하나였다.


‘여기가 그 서문악기사···. 그런 성지를 내가 지금···.’


기현은 성지 순례하는 오타쿠마냥 눈을 빛냈다. 기현에게 서문악기사는 전설의 밴드를 배출해 낸 산실이다.


‘역시 혼도 예외가 아니었구나. 여기서 혁철이 형이 일하셨다니.’


그런 곳에 자신이 방문한 것이다. 2차 예선 기를 받는다는 느낌으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런데 네 덕에 우리 진짜 큰일 났다, 어떡하냐.”


큰일?

무슨 큰일?


기현은 당황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네?”

“네가 라디오국에 테이프 돌리라고 했던 거, 그대로 따라서 했는데, 우리 음악이 박원웅과 함께에 나온 거 있지!”

“정말요?!”


‘박원웅과 함께’라니!


‘박원웅과 함께’라 하면 이 당시 최고 인기의 라디오 프로그램 아닌가!

거기에 형님들의 노래가 나왔었다고?

라디오로 인해 형님들 노래가 알려지게 되는 건 알았지만, 그게 당대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인 ‘박원웅과 함께’인 줄은 몰랐다.


“언제요? 언제?”

“6월 1일! 너희 예선 전날이었을 걸?”

“아···. 연습하느라 못 들었구나.”

“괜찮아. 네 덕에 나왔다는 게 더 중요하니까. 그리고 또 있어. 우리 신라레코드랑 음반 계약까지 했어. 다 네 덕이야.”


혁철은 정말로, 정말로 기현에게 고마워했다. 당장이라도 해체해도 무방한 그룹이었다.

그렇게 해체를 논하던 그룹에서 라디오, 음반 계약까지. 그 누가 알았을까.


“정말요? 진짜요? 형님들 음반 나와요? 이거 서클 친구들한테도 알려줄게요.”


몇 년 뒤에나 나올 혼의 음반 발매가 이렇게 빨라지다니.

기현은 제 일인 것처럼 기뻐했다. 혼 멤버들과 친해진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기현은 이 당시의 혼을 보면 예전의 자신이 떠올랐다.


‘그래서 더 기뻐. 나는 비록 해체했지만, 형들은 잘 된 것 같아서.’


“여튼 네 덕에 이렇게 잘 됐으니까, 뭐든 도와줄게. 작사 잘하는 법이 궁금하다고 했지?”

“네. 작사 때문에 지금 애 먹고 있어요.”

“2차 예선곡 때문이야?”

“네. 2차 예선곡은 다 만들었는데, 작사가 문제네요.”


혁철은 고민에 잠겼다. 곡은 다 만들었다, 라···.

사실 그렇다면 그 방법을 쓰는 게 딱이다. 다만, 그 방법이 기현에게 잘 맞을지는 미지수의 일이다.


“혹시 곡 녹음한 테이프 같은 거 있어?”

“테이프는 없는데, 곡은 다 기억하고 있으니, 기타로 멜로디 라인 치면 돼요.”

“들어봐도 될까? 곡의 분위기를 알아야 작사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안 될 게 뭐 있겠어요.”

“기타는 여기 있는 거 써.”

“이번 곡은 어쿠스틱 기타가 멜로디를 연주할 거예요.”


기현은 일렉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 중 어쿠스틱 기타를 집었다.


“그럼 성현이가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는 거야?”

“아뇨, 이번에는 제가 리드할 거예요.”


기현은 기타를 조심스럽게 들고 자리를 잡았다. 야마하에서 나온 드레드넛 스타일의 기타. 연습실에서 포멀하게 쓰기 좋은 스타일의 기타다.

하지만 뭔가 조금 아쉽다. 원래 쓰던 기타가 아니라 그런가.


기현은 점보 사이즈 기타의 자세를 잡으면 품에 가득 차는 부피감과 낮고 큰 울림이 그리웠다.

첫 음이 울림통을 타고 합주실 안을 퍼져나갔다.

합주실 곳곳에 스며드는 음을 느끼며 기현은 연주를 시작했다.


‘이쪽 시대 와서 다른 사람한테 들려주는 건 처음이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시작하는 기분이다. 처음 누군가에게 제 곡을 들려줬었던 그때가 떠오른다.

두근거리는 기분도, 설레는 기분도, 불안한 기분도 여전하다.


반항기 가득한 사운드 사이 곳곳에 곡을 만든 작곡가의 장난기 가득한 위트가 어려있다.

뭐 이런 곡이 다 있어? 싶으면서도, 이게 기현의 매력이라는 생각에 곧 납득하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재밌다.’


재밌고 즐거운 곡이다.

어깨를 잔뜩 추켜세우고 무리 지어 거리를 활보하는 치기 어린 청년들이 떠오른다.


해머링, 풀링 오프, 태핑의 현란한 주법.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고난이도의 연주를 이어 나간다.


‘그나저나 얘 기타 왜 이렇게 잘 쳐?’


잘은 몰라도, 그동안 어깨 너머로 멤버들 기타 치는 모습을 줄곧 본 그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그래도 누가 잘하고 못하는 거나, 어렵고 어렵지 않고는 분간해낼 수 있었다.


평온한 얼굴과 대조되는 리드미컬한 연주.

여럿이 연주하는 것 같은 착각에 들게끔 하는 풍부한 소리.

처음 들었던 곡과 다르게 좋았다.

첫 곡은 사이키델릭한 무드가 묻어나오는 곡이라면, 이번 곡은 좀 더 포크라는 본질에 다가가는 곡이다.


‘노래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기타까지 수준급이잖아.’


병철은 어느새 기현의 기타 멜로디에 맞춰 발을 구르며 박자를 타고 있었다. 작사 생각은 완전히 까맣게 잊은 채 음악을 온전히 즐기고 있는 혁철이었다.


“형, 어때요?”


기현이 연주한 기타의 울림, 떨림이 계속 피부에 남아있었다.


“······.”


기현의 연주가 끝나고 나서도 혁철은 곡의 여운에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런 게 정말 천재라는 건가.’


아폴론 예술극장에서 대중음악연구회의 자작곡을 처음 들었을 때에도 느꼈던 감상이 반추하듯 울컥 밀려왔다.


“형?”

“아? 어. 미안, 미안. 생각 좀 하느라.”


여운에 잠겨 있느라, 한 박자 늦게 정신을 차렸다.


“어떨 것 같아요?”

“정말, 좋던데.”


혁철은 작사 생각은 잊고 곡의 감상만을 얘기했다.

‘정말 좋다’라는 말 외에는 나오지 않았다.

더한 말이 불필요할 정도로 정말 좋았으니까.


“감상 말고 작사요, 작사.”

“곡이 너무 좋아서 작사 생각은 깜빡 잊고 있었지 뭐냐.”


*


혁철은 가방에서 자신의 노트를 꺼냈다. 일종의 작사 노트다.

밴드 혼의 곡 가사부터, 자작곡 가사, 이것저것 떠오르는 시상까지 모든 게 총집합된 노트라고 할 수 있었다.


“이건 내 작사 과정이 담긴 수첩이야. 그때 그때 떠오르는 걸 적고 있어.”

“이런 귀한 걸 저한테 보여줘도 돼요?”

“너니까 보여주는 거지, 인마.”


혁철은 웃으며 작사 노트를 펼쳤다. 펼친 페이지에는 ‘무소의 뿔처럼 가라’의 작사 과정이 담겨 있었다.


“이건 ‘무소의 뿔처럼 가라’네요?”

“가사 변천사가 담겨 있지.”


기현은 혁철의 노트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페이지 페이지가 한 ‘세계’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가사마다 설정과 아이디어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소설이 떠오르기도 했다.


“캐릭터? 캐릭터는 뭐예요? 컨셉트는 뭐고요?”

“내가 만들 곡의 세계와 주인공을 정해놓은 거야. 장소는 어디인지, 주인공의 성별, 나이, 성격은 어떤지, 상황은 어떤 상황인지 상상한 걸 써놓은 거야.”

“한 번도 그런 건 생각해본 적 없는데, 신기하네요.”


지금까지 기현은 작사를 할 때 줄곧 곡의 주제에 대해서만 골몰해왔다.

한 가지 단어, 문장에 대해서 생각을 덧붙여만 보았지, 혁철처럼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그럼 지금 해보자. 여기서 이 곡 가사를 다 하고 가는 거야. 어때?”

“여기서요?”


앉은 자리에서 곡 한 곡 작사를 다?


“내가 도와줄게. 곡을 떠올려봐.”


기현은 혁철이 시키는대로 2차 예선 곡의 멜로디를 떠올렸다.


“이 곡, 뭘 생각하고 쓴 곡이야?”

“방황하는 청년들이요.”

“그렇다기에 우울하지는 않은데.”

“방황을 우울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방황이 뭐, 그런 방황도 있겠지만, 꿈을 찾는 것도 방황이 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우울하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기현은 이 곡을 처음 썼던 20대 중반의 자신을 떠올렸다. 대학 졸업을 앞뒀지만 갈 곳은 없었을 때. 하지만 결코 우울해하거나, 불안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힘차게, 당당하게 방황하고 싶었지.’


그런 염원을 담아, 한음 한음 적어 내려간 곡이었다.


“그럼 그런 방황을 하는 주인공은 어떤 사람일 것 같아? 성별은? 나이는?”

“성별은 남자고 나이는 20대 초반일 것 같아요. 군대를 막 전역했는데, 취직 자리를 못 정했어요. 하지만 슬퍼하거나 걱정하지 않아요. 뭐, 어때? 라는 마음으로 살아가죠.”

“오, 좋아. 그렇게 하면 돼. 그러면 이 곡과 주인공이랑 어떤 상황이 가장 잘 어울릴까?”

“음··· 여행, 여행이요. 주인공은 일상을 잠시 잊기 위해 여행을 떠나요. 부산, 통영, 경주, 어디든 좋아요. 짐가방 하나 매고 건들건들 여행을 떠나는 거죠.”


기현은 계속 떠올렸다.


‘좋은 가사가 있을까?’


“거기까지 떠올렸으면 이제 작사를 시작하는 거야. 어때, 할 수 있겠어?”

“음······.”


주인공도, 세계도, 상황도 만들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가사는 떠오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떠오르다가도 사라졌다.


“나는 지금 막 한 소절 떠올랐는데. 내가 한 소절 운 띄워줄 테니까, 이어볼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해볼게요.”


혁철은 기현이 만든 곡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 흥얼거렸다.


길 떠나는 내게 지금 필요한 건

운동화 한 켤레와 카세트 플레이어

그리고 더플백 하나.

그거면 돼.

우- 그래, 그거면 돼.


컨트리스러운 가사의 분위기가 어쿠스틱 기타와 잘 어울렸다. 기현은 이런 가사를 그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낼 수 있는 혁철이 신기하기만 해, 존경심 가득한 눈으로 혁철을 바라보았다.


“이제 네 차례.”


혁철의 소절이 끝나고 기현의 차례가 되었다.


작가의말

오늘의 곡

실리카겔- realize

*

추천글 써주신 ‘온리영’ 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집에서 추천글 보고 강아지랑 고양이랑 기쁨의 탭댄스 췄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힘들 때마다 그 글을 자주 꺼내보게 될 것 같아요. 
앞으로 더 건필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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