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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1980 밴드천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최근연재일 :
2023.09.29 19:20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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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3
글자수 :
171,704

작성
23.09.03 18:4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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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아버지의 마음

DUMMY

연습실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노랫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처음 들어보는 멜로디.’


정말로 감미로웠다.

뼛속까지 짜릿하기도 했다.


아내 정희의 말대로 보컬 남자애의 실력이 정말 대단했다.


‘아내 말이 사실이었군.’


태선은 분명 연습실 앞에 음식만 놓고 돌아가려고 했었다.


'사람을 홀리는 목소리야.'


그러나 연습실에서 들려오는 사람을 홀리는 목소리에 어느새 태선은 우두커니 서서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


노래가 태선의 두 발을 붙잡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태선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기현이 아닌, 미선만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유독 아내를 많이 닮은 막내 딸아이.

다정한 아버지처럼 살갑게 키우지는 못했어도, 물질적으로 하고 싶다는 거, 갖고 싶다는 건 다 해줬다.


‘저렇게 행복해했던 적이 있었었나?’


태선은 곰곰이 미선의 어릴 적을 떠올려보았다.

정말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 태선과 정희의 의지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이후부터 저렇게 행복해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딸아이의 피아노라면 누구보다도 잘 안다.

수도 없이 딸의 피아노를 보았다.

미선의 아버지이면서, 미선의 첫 번째 팬이기도 했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군.'


집에서, 콩쿠르에서, 15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딸의 피아노를 보았지만, 이렇게까지 행복해했던 모습은 본 적 없었다.

태선이 알기론, 미선은 피아노를 치며 행복해하지는 않았다. 미소 짓지는 않았다.


‘그런데, 웃고 있구나. 연주하면서.’


드뷔시의 기쁨의 섬이나,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같은 곡을 연주할 때도 볼 수 없었던 딸의 미소.

자신이 모르는 딸의 모습에 태선은 알게 모르게 충격을 받았다.

저 행복이 얼마나 거대한지, 태선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흔들렸다.


연주하면서 미소를 지을 정도로, 저렇게 즐거워하는 것을 처음 봐서.

딸이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저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처음 봐서.


‘내가 무엇 때문에 미선이에게 클래식을 시켰더라?’


태선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미선에게 피아노를 시켰는지 떠올려보았다.

아마 결혼 때문이었던 것 같다.

좋은 짝을 지어주기 위해서.

태선과 수준이 맞는 집안에 시집을 보내기 위해서.


태선에게 미선은 금지옥엽 하나 뿐인 딸이다.

좋은 신붓감을 만들기 위해 피아노를 시켰던 것도, 다 미선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정희가 그랬던 것처럼, 좋은 신붓감이 되어 좋은 집안에 시집을 가면 분명 어려움 없이 행복하게 살 테니까.


‘미선이 제 엄마처럼 살려면 좋은 집안에서 귀하게 자라, 좋은 집안에 시집을 가야 하는 게 맞지.’


좋은 집안에 시집을 가야 행복하게 살 거라는 생각은 여전했다.


‘하지만 과연 행복할까?’


글쎄.

하지만 그게 최선이라는 것은 안다.

미선이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때 인기척을 느낀 미선이 문 바깥에서 우두커니 서 대중음악연구회를 지켜보고 있던 태선을 발견하고는 미간을 좁혔다.


“아버지?”


미선이 알기로, 분명 태선은 여기에 올 사람이 아니었다. 미선은 당황했다.


“저녁이라도 먹고 해라.”

“감사합니다, 아버님!”


기현과 멤버들은 허리를 90도로 굽혀 꾸벅 인사했다. 눈치는 없어도 인사성 하나는 바른 놈들이었다.

정신없이 연습을 하다 보니, 시간은 벌써 10시를 넘기고 있었다.


“얼른 하고 보낼게요. 죄송해요.”


금지옥엽 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미선은 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됐다. 곧 있으면 통금이니까, 전화하고 자고 가도록 해라.”


원래 같았으면 피도 눈물도 없이 퇴근하자마자 내보냈을 텐데, 아버지가 이상했다. 미선은 의아한 얼굴로 방으로 향하는 태선을 바라보았다.


*


달그락··· 달그락.


적막 속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만 울렸다. 오랜만에 아침 식탁이 명절 아침처럼 북적였다.

대중음악연구회 멤버들은 이 상황이 어색해 정말로 죽을 맛이었다.

결국 미선이네 집에서 하룻밤 묵은 멤버들은 그렇게 아침까지 먹는 중이었다.


“그래서, 서클 친구들이라고?”


태선의 목소리에 멤버 모두가 일제히 얼어붙었다.

어제부터 느끼는 바였지만, 아버님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미선의 기개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네, 넵!”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처럼 다들 허리가 바짝 곧추섰다.


“그래, 그리고 자네··· 이름이?”


태선은 기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제부터 계속 눈에 걸리던 놈이었다.


'딸애가 계속 저놈만 보고 있었지. 혹시...?'


어제 딸아이의 시선이 계속 저놈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놈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버지 된 사람으로서, 됨됨이가 어떤지 캐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기현입니다, 아버님.”

“그래, 기현 군···. 기현 군도 음악 전공인가?”


태선은 기현이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일 거라고 생각했다. 원래 노래하는 학생이 아니고서야, 그런 노래 실력이 나올 리 없었다.


“아뇨, 저는 사범대학 학생입니다.”

“사범대?”


태선의 미간이 좁혀졌다. 의외였다. 사범대 학생이 노래를 저렇게 잘하다니.


“국어교육과 다닙니다.”

“아쉽군.”

“당신은 뭐가 아쉽다는 거예요? 기현 군, 너무 괘념치 말아요.”


선생? 공무원? 거대 로펌을 운영하며 거금을 굴리는 사업가이자 변호사로서, 공무원은 사윗감으로 영 성에 차지 않았다.

요모조모 뜯어보면 허여멀겋고 순한 생김새가 영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저래서 우리 미선이랑 어떻게 연애를···.


“부모님은 뭐 하시나?”

“아버지!”


정희가 당신이야말로 뭐 하느냐며 태선의 허벅지를 툭툭 치며 눈치를 주었지만, 태선은 기세를 굽히지 않았다.

오해는 오해를 낳고 오해는 또 오해를 낳고···. 태선의 착각은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황이었다.

태선을 나무라는 미선의 목소리도 그에게는 제 남자친구를 지키는 행동처럼 보였다.

물론 당사자인 기현과 미선은 그저 서로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국은행 다니십니다. 어머니는 평범한 주부시고요.”

“형제는 있나?”

“위로 누나 한 명 있습니다. 서울대학 법학과 나왔고, 사법시험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 법학과면 내 후배인데. 사법시험 떨어지면 미선이 통해 이쪽으로 연락하도록 하게. 한 자리 마련해 줄 수 있으니까.”

“배려 감사합니다.”


그래서 태선 외 다른 사람들은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대체 왜 기현만 콕 집어 호구조사를 하는 것이며, 또 뭐가 대체 아쉽다는 것이며···.

아무리 봐도, 거꾸로 봐도, 새마을호 타고 가면서 봐도 둘은 친구인데? 설마?


‘대체 날 왜···.’


기현은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기분으로 아침을 먹었다.


*


대학가요제 기간동안 공공재가 된 합주실 대신 대중음악연구회는 미선의 연습실에서 연습을 이어갔다.


그리고 어느새 참가 신청 기간이 다가왔다.


참가 신청서를 보낼 우체국 앞에서 대중음악연구회는 한참을 고민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한편, 참가 신청서 같은 건 얼른 털고 연습에 매진해야 할 대중음악연구회가 참가 신청서를 두고 머리를 맞대며 고민하고 있었다.


[ 곡 명 - ]


채워져 있어야 할 곡명이 공란으로 비워져있었기 때문이다.

가사와 어울리는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마지막까지 남겨두고 있었던 칸이다.


‘음··· 뭐가 좋을까.’


뭐든 제목 짓기가 가장 어렵다. 그건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가사를 자신이 만들었으니, 제목도 자신이 만들어야 하는 게 맞는 일이다.


“무슨 좋은 생각 없어?”


기현이 물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재지 않고 당장 그거 쓰자고 할 만큼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글쎄요···.”

“글쎄···.”

“음···.”

“······.”


하지만 이놈들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건 마찬가지인 건지, 다들 기현만 아주 빤히 바라보았다. 노골적으로 제목 짓기를 다들 기현에게 미루고 있었다.


‘아주, 어미 새 바라보는 새끼 새들도 아니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쓸데없이 기분 이상하게 만들었다. 기현은 머리만 벅벅 긁으며 끙끙 앓았다. 조금 있으면 우체국도 문을 닫을 때였다.


‘에라이, 모르겠다.’


기현은 이성보다 제 초인적인 힘을 믿기로 했다. 무릇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과제는 닥쳐서 할 때, 시험공부는 벼락치기 할 때 머리가 가장 잘 돌아간다.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그래, 이게 낫겠다. 시랑도 잘 어울리고, 노래랑도 잘 어울리고.’


기현의 머리가 어느 때보다 재빠르게 돌아갔다. 입시생 때로 돌아간 듯했다.

그렇게 기현은 비어있던 공란을 빼곡히 채웠다.


[ 곡명- 이 날의 끝을 잡고 ]


그는 제법 뿌듯하게 참가 신청서를 바라보다, 늦지 않게 접수를 붙였다. 참가 신청서가 제때, 온전히 도착하기를 바라면서.


“이젠 정말로 연습만 남았다.”


참가 신청서까지 접수했으니, 이제는 정말로 연습뿐.

대학가요제 1차 예선까지 앞으로 한 달. 예선이 정말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기현 오빠··· 이제 그만하고 쉬면 안 될까···.”

“아뇨, 딱 한 번만 더 하자. 우리 따악 한 번만 더. 더 안 시킬게.”


예선이 얼마 남지 않자, 기현은 말 그대로 미친놈으로 돌변했다. 곡이 마음에 들게 나올 때까지 반복, 또 반복이었다.

호랑이 선생님처럼 아예 반복 또 반복이라면 모를까, 기현은 멤버들에게 ‘할 수 있지?’, ‘우리 딱 한 번만 더 하자.’, ‘한 번만 더 하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같은 말로 어르고 달래며 무한 반복을 시켰다.


‘더 악랄해···.’


멤버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을 때까지 계속 연주했다.


“죽··· 여줘···.”


하지만 나갈 수 없었다.


작가의말

오늘의 곡

장기하와 얼굴들- 구두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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