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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1980 밴드천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최근연재일 :
2023.09.29 19:20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29,796
추천수 :
3,723
글자수 :
171,704

작성
23.09.11 18:30
조회
3,941
추천
104
글자
10쪽

봄날은 간다, 아나?

DUMMY

“이제 네 차례.”


혁철의 소절이 끝나고 기현의 차례가 되었다.


“······.”


하지만 거기까지.

그뿐이다.


‘밴드하기 쪽팔리게 그딴 가사 좀 쓰지 마.’

‘다른 밴드 있잖아, 좀 보고 배워. 주변에 작사하는 친구 없냐?’

‘좀 그럴듯하게 영어로, 어? 네 가사는 뭐가 이렇게 촌스러워? 죄다 멋도 없고. 기현아, 우리 같은 멤버들 없다. 그런 가사 그냥 계속 쓰게 해주고.’


뭘 좀 생각하려 하면 과거의 일이 떠올라 금세 허물어졌다.

어쩌지.


‘자신이 없다.’


기현은 자신의 가사에 자신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낸 이걸 그대로 뱉어도, 비난 받지 않을 수 있을까?

부정적인 평가를 견딜 수 있을까?


“형, 죄송해요.”


모르겠다.

아직은.


“괜찮아, 첫술에 배부른 사람이 어디 있겠어.”


조금 더 작사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뜻.

나는 현재 작사 능력에 대한 내 한계를 절감했다.

작사 공부가 켜켜이 쌓이면 분명 혁철 형처럼 나도 작사할 수 있겠지.


*


디잉-


밝고 쨍하게 울리던 어쿠스틱 기타의 소리가 뚝 끊겼다. 기현은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며 못마땅한 듯이 입술을 쩝쩝 다셨다. 이 소리가 아니다.

이런 쨍한 고음 말고, 중후하게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음색을 가진 기타가 필요했다.


“하, 이 맛이 아닌데.”


기타 소리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기현의 집에 원래 있었던 기타는 이 몸의 원 주인이 사용하던 기타다.

음악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원 주인이 전문가용 고급 기타를 샀을 리는 없다.

당연하게도 저렴한 연습용 기타로, 용도 그대로에 아주 충실했다. 완전히 공연용은 아니었다.


“기타를 역시 새로 한 대 사야 하나.”


울림도, 소리도 묵직하고 우렁찬 맛 없이 밍숭맹숭했다.

앞으로도 어쿠스틱 기타를 사용하는 일이 많을 텐데, 이런 소리를 가진 기타로는 무대에 나설 수 없었다.


‘저금한 게 얼마나 있더라.’


기현은 제 수중에 돈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셈 해보았다.

80년 장기현은 딱히 사교적인 사람도 아니었거니와, 보통 집, 학교, 도서관, 딱 세 곳만 오가던 사람이라, 소비가 크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80년 장기현은 부업으로 번 돈에 용돈까지 저금해두었다는 뜻이다.


“남이 번 돈 쓰는 것 같아서 기분은 찜찜하긴 하지만··· 다시 한번 더 실례 좀 하겠습니다-”


기현은 기타를 사기 위해 정말 있는 돈, 없는 돈을 모조리 싹싹 긁었다.

일렉 기타를 사고 남은 돈에 그동안 두 차례의 공연으로 받은 돈을 합치면 완전 고급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쓸 만한 기타를 살 수 있는 돈은 나왔다.


악기 하면 예나 지금이나 낙원상가가 최고였다.

기현은 낙원상가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성현과 함께 낙원상가를 방문했다.

어쿠스틱 기타를 산다하니, 성현이 먼저 잘 아는 가게를 소개해 주겠다며 자원하고 나선 거였다.


“여기가 낙원악기사라는 곳인데, 낙원상가에서 제일 오래된 악기사에요. 낙원상가 처음 지었을 때부터 있었다고 했었나.”


그러나.


[주인장의 사정으로 잠시 쉽니다.]


성현의 안내로 간 악기사 문 앞에는 사정으로 쉰다는 말만 한 줄 적혀있었다.


“어? 사장님 왜 문을 닫으셨지?”


성현은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리자, 문 바깥에 나와있던 옆 가게 사장님이 한 마디 거들었다.


“아, 낙원악기 영감님네 문 닫은 지 한 달 정도 됐어요.”

“한 달이요? 연휴 빼고는 꼬박꼬박 문 여시는 분이 웬일이시지? 건강에 문제라도 생기셨나? 이런 일 있는 분이 아닌데.”


성현은 연신 좌우로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때 옆 가게 사장님이 불쑥 끼어들었다.


“거기 영감님네 아들이 죽었잖아. 갑자기, 사고로. 쯧, 그래서 그런가···. 안 됐지.”


성현은 급속도로 사장님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낙원악기사 사장님의 아들이라면 성현도 잘 아는 분이다. 그런 분이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시다니.


“잘 아는 분이었어?”

“저 처음 기타 배운 것도 보셨던 분이에요. 지금까지 기타 배우기까지 항상 그분이 계셨어요. 기타 배우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주시기도 한 분이고요.”


뒤늦게 들은 부고로 성현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그런 일 있으시다니까 어쩔 수 없지. 난 다른 곳에서 사도 돼.”

“여기가 말도 안 되게 제일 싸요. 가지고 있는 악기도 제일 많고요. 제 기타도 여기서 샀어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네요. 하루 이틀 기다린다고 오실 것 같지도 않고.”


걸음은 다른 곳을 향하면서도 성현은 미련이 남은 듯 계속 낙원악기사 쪽을 돌아봤다.


“사장님이 걱정되지?”

“···네, 할아버지 같은 분이라. 형, 미안한데 사장님 댁 한 번만 가봐도 될까요?”

“그래, 가보자.”


*


성현과 기현 두 사람은 낙원악기사 사장님 댁에 방문했다.

벨을 누르자, 대문 안에서 나이 지긋한 노인 한 명이 나왔다. 그동안의 마음 고생으로 파리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느닷없는 성현의 방문에 사장님은 놀란 얼굴을 했다. 성현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아니, 성현이 네가 웬일이냐?”

“기타 사러 갔다가 소식 듣고 사장님 걱정돼서 찾아왔어요. 좀 괜찮으세요?”

“아아, 기타 사러 왔었구나. 미안하다. 내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가지고··· 그런 일을 겪으니까 가게에 있기 힘들더구나. 그러지 말고 들어오렴.”

“아뇨, 아뇨. 괜찮아요. 사장님 걱정돼서, 그것만 확인하러 온 거예요.”


사장님은 희미하게 웃었다.


“가게에 가면 자꾸 아들 생각이 나서··· 성현이 너도 알잖냐. 그놈도 기타 쳤었던 거. 가게에서 기타 치던 게 떠오르지 뭐냐.”


괜찮은 것처럼 너스레 떨어도, 속은 말이 아닐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해해요. 아저씨가 자주 가게 봐주셨잖아요.”


성현의 아버지뻘이었던 낙원악기 사장님의 아들은 종종 사장님 대신 가게를 보고는 했다.


“미안하다. 훌렁 털고 일어나야 하는데, 아직 실감이 잘 안 나네. 하여튼, 내일은 가게 열 테니까, 내일 와.”

“안 좋은 일 겪으셨는데 괜히 와서 제가 재촉한 것 같아서 죄송해요. 내일 가게 여시는 거, 괜찮으시겠어요?”

“아니야, 잘 왔어. 너야 어렸을 때부터 본 내 손자 같은 녀석인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잖냐. 나도 이제 움직여야지.”


성현은 여전히 걸리는 구석이 있었지만, 사장님 쪽에서 오히려 계속 괜찮다 얘기하는 통에, 제대로 말릴 수도 없었다.


“정 그러시다면··· 내일 뵈어요.”

“그래, 내일 보자꾸나. 기다리고 있으마.”


*


낙원악기사의 사장, 최경식은 얼마 전 아들을 잃었다. 아직 젊고 한창 때이기에,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아들이 몰고 온 죽음의 파도는 그래서 더 거대했다.

최경식의 인생 예정에 없었던 것이라, 예상치 못했던 것이라.


“이걸 어쩌면 좋나.”


경식은 악기사의 문을 열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아들의 유품에 그만 털썩 주저앉았다. 다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의 기타가 떡하니 남아있던 게 아닌가.


딸랑.


“사장님, 저희 왔어요.”


그때 문이 열리며 기현과 성현이 들어왔다. 두 사람은 불도 안 켠 채 앉아만 있는 경식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아직 불도 안 켜시고.”


달칵, 성현은 경식 대신 가게 불을 켰다.

가게 불을 켜자 벽에 빼곡히 디피된 각종 기타가 드러났다. 성현이 말한 것처럼 확실히 다른 가게보다 가지고 있는 기타가 많았다.


“나이 먹으니 힘들더구나. 이것도 그만할 때가 됐나.”


일부러 나이 탓인 양 내색하지 않았다.


“무슨 말씀을. 낙원상가 처음 세워졌을 때부터 장사하셨으면, 낙원상가 없어질 때까지 쭉 하셔야죠.”

“이놈아, 난 쉬지도 말라는 거냐? 여튼, 어떤 기타 사러 온 거냐? 성현이 네 기타가 아니라, 이 친구 기타 본다고 했었지?”

“네, 장기현이라고 합니다. 어쿠스틱 기타 사러 왔어요.”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골라보거라. 직접 쳐봐도 좋고.”


기현은 기타를 주욱 훑었다. 국내 브랜드와 야마하, 깁슨, 어쿠스틱 3 대장인 마틴 등 취급하고 있는 가짓수가 굉장히 다양했다.


그 중 기현의 시선을 잡아끄는 건, 길드와 야마하의 점보 사이즈 기타였다.


‘길드의 점보 기타가 갖고 싶긴 한데··· 그건 예전에도 침만 흘렸던 기타니까. 이래저래 금액 생각하면 야마하가 좋겠지.’


이것저것 따져보면 야마하의 점보 기타를 사는 게 맞았다. 하지만 자꾸만 생기는 미련은 기현도 어쩔 수 없었다.


‘딱, 한 번만 연주해보자.’


연주라도 해보면 미련이라도 잊혀지겠지, 싶었다.


“저기 걸린 길드 점보 기타 연주 한 번 해봐도 될까요.”

“그래. 길드 F512 제품이야. 존 덴버가 쓰는 기타지. 기본 색상이고, 바디는 장미목을 썼어. 보는 눈이 있구먼. 다만, 가격대가 부담스러워서 제일 안 팔리던 놈이야.”


길드의 F512는 훗날 90년대에 나올 JF100과 함께 기현의 드림 기타 중 하나였다.

기현은 조심스럽게 기타 몸체를 한 손으로 받치고 넥을 잡아 받아들었다.

넓고 거대한 길드의 존재감이 품에 가득 안겼다.


기현은 D코드를 짚고 기타 현을 천천히 뜯었다.


도로롱.


묵직하고 커다란 울림. 기현이 원하던 울림과 소리가 아담한 가게 안을 오랫동안 공명하다 사라졌다.


“무슨 곡을 할까요. 듣고 싶은 곡 있으세요?”


기현이 물었다. 귀한 기타인 만큼, 아무거나 연주하고 싶지 않았다.

신청곡을 받으려 했지만, 경식도, 성현도 조용했다.


“형이 연주하는 거면 뭐든요.”

“원하시는 곡 없으시면 제 마음 가는 대로 칩니다.”


기현은 성현을 한 번, 경식을 한 번 둘러보았다. 마땅히 좋다, 싶은 곡은 없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곡을 칠 생각이었다.


‘레일라를 언플러그드 버전으로 칠까?’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은 에릭 클랩튼의 레일라였다. 레일라의 첫 음을 떠올리며 연주를 시작하려던 그때, 경식이 한참을 주저하다 운을 떼었다.


“···봄날은 간다, 아나?”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아들이 가게에서 자주 연주하곤 했던 곡이었다.


작가의말

오늘의 곡

언니네 이발관- 가장 보통의 존재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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