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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1980 밴드천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최근연재일 :
2023.09.29 19:20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29,792
추천수 :
3,723
글자수 :
171,704

작성
23.09.12 18:30
조회
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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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글자
9쪽

돈보다 값진 연주

DUMMY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맞죠? 당연히 알죠. 봄마다 텔레비전에서 단골로 나오는 곡인데.”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유명한 곡이다. '봄날은 간다'는 이 시대 와서 기현이 가장 많이 듣게 된 곡 중 하나였다.

꽃 피는 4, 5월이면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에서 가장 많이 흘러나오는 곡 중 하나라, 자연히 외우게 되었다.


“들려드릴게요. 이 곡이 사장님 18번이신가 봐요.”

“18번?”

“애창곡이요.”


기현은 해사하게 웃으며 봄날은 간다의 첫 소절을 짚었다. 기현이 살던 시대에는 장사익, 정훈희 등 많은 가수가 부르기도 한 명곡.


‘이런 곡을 부르는 건 오랜만이네.’


포크도 아니고 록도 아닌 옛날 가요를 부르는 건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것도 아주 옛날 노래다.


꽃이 피고 지는 동안 함께 했던 그 맹세 뒤로 봄 날이 저문다는 내용이 기현의 입을 통해 흘렀다.

울며 나누던 기약 없는 맹세도 봄 흘러가듯 흘러가고.

정성껏 적어 내린 꽃 편지도 봄 흘러가듯 흘러간다.

우리네 인생 모두 봄 흘러가듯, 스쳐가듯 지나가는 것.

사랑도 봄 지나가듯 희미해지는 것.


50년대에 쓰인 덧없는 봄노래가 81년 6월의 오늘 위로 다시 펼쳐진다.


기현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F512의 크고 다채로운 소리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낙원악기의 노사장을 위해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노래를 불러본다.

한 음, 한 음이 명료하고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시냇물 흘러가듯 부드럽게 음이 이어진다.


‘정말 잘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어쿠스틱 기타 테크닉까지 좋을 줄이야.’


성현은 기현이 자아내는 기타의 음색에 푹 빠져 있었다.

비교적 담백한 곡이지만, 기현은 기현만의 해석을 섞어 연주했다.

다단조의 슬픈 곡을 더 슬프게 만드는 느린 비브라토, 피아노 건반을 치는 것 같은 아름다운 태핑. 블루지한 느낌을 주는 퍼커시브.


아름답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하다.


“아···.”


경식의 입에서 비탄이 작게 튀어나왔다.


저 청년의 실력은 아들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월등한데, 왜 자꾸 아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일까.

경식은 기현에게서 아들의 모습을 보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음 하나하나가 커다란 몸체를 타고 멀리 퍼져나간다.


점보 기타의 중후하고 따듯한 음색이 낙원상가의 복도를 타고 흘렀다.

한 달간 꼭꼭 문 닫혀있던 곳에서 별안간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니, 인근 가게 사람들이 홀린 듯이 낙원악기로 모여들었다.


“낙원악기, 드디어 문 열었나?”

“영감님 드디어 문 여셨나본데?”


낙원상가의 상인들이 문을 열어젖히고 낙원악기 쪽으로 고개를 쭉 뺀다.


‘이건 낙원악기 영감님네 아들이 부르던 노랜데?’


익숙한 멜로디, 익숙한 출처에 순간 영감님 아들이 부르는 건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출처의 주인공을 확인하면, 방금 전 생각은 단순히 착각이었음을 깨닫는다.


낙원악기사로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로 기현의 주변은 작은 콘서트가 열렸다.

‘봄날은 간다’ 한 곡이 다 끝날 때까지 관객들은 자리를 지키고 그렇게 서 있었다.

몇 년간 여기에서 악기를 판매한 만큼, 듣는 데에는 도가 튼 사람들이다.

지금 낙원악기에서 들려오는 연주는 얼핏 듣기만 해도 굉장한 실력자의 솜씨였다.


기현은 어떠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곡이 가진 힘을 증폭시키는 어떠한 마력.


‘내가 지금···.’


경식 그 자신도 모르게 한줄기 눈물이 주름진 눈물 고랑을 타고 흘렀다. 눈 주변이 물기로 축축하게 젖었다.


경식은 순간 기현에게서 살아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

경식은 그런 자신이 이해가 안 됐다.


‘아들보다 훨씬 어린 청년인데, 왜···.’


손님이 없는 늦은 오후, 모두가 나른한 시간에 제멋대로 자유롭게 기타를 치는 아들을.

고장 난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아 오래된 기타를 치던 아들을.

꿈엔들 잊힐까 생생하다.

살아있는 듯 생생하다.


하지만 환상은 쉽게 깨어진다. 언젠간 필히 깨어진다.

기현에게서 아들의 모습을 엿보았던 경식의 환상도 노래가 끝나자, 주변 상인들에게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지자, 흔적도 없이 산산이 조각나 부서지고 말았다.

상(像)이 무너지자 경식도 무너졌다.

이것이 아들과의 마지막임을, 경식은 은연중에 절감했다.


기현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채, 일어나 문 바깥의 관객을 향해 예의 바르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박수를 받고 관객들이 흩어지고 나서야 뒤늦게 경식이 울고 있음을 알아챘다.


“···왜, 왜 우세요?”


기현은 당황스러웠다.

울다니, 제 노래를 듣고 울다니.

제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아 울었든, 슬퍼서 울었든, 아니면 너무 못 불러서 울었든, 기현 인생에 제 노래를 듣고 우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좋아서, 좋아서···.”


성현이 손수건을 건네자, 경식이 사각 안경 밑으로 흐른 눈물을 찍어 눌렀다. 왜 주책맞게 눈물이 나는지. 감정이 갈무리가 안 됐다.


경식은 기현이 신청곡을 물었을 때,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는 아들이 자주 부르곤 했던 곡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에는 경식의 애창곡이기도 했다.


다만, 그 곡을 신청할 용기가 없어, 주저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결국 기현에게 그 곡을 꺼내 놓은 선택은 옳은 선택이었다.


환상이지만, 헛것이지만 아들을 보았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는 아들을 보았다.


비록 내 환상이지만.


‘그거면 됐다.’


마지막으로 보았으니 되었다.

저 청년은 제게 얼마나 위안을 주었는지 모를 테다.


“사실, 아들놈이랑 내 애창곡이야. 다시는 여기서 이 곡을 못 들을 줄 알았는데, 들려줘서 정말 고마워. 정말 많은 위안이 됐어.”

“어떻게, 제가 잘 불렀는지 잘 모르겠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잘 부를걸.

지금 와서 후회해봐도 소용없었다. 기현은 머쓱하게 뒷목을 매만지며 어색하게 웃었다.


“정말, 정말 고마워. 내가 들었던 노래 중 최고였어.”

“저야말로 감사해요. 제 꿈의 기타 중 하나인데, 시연해볼 수 있게 해주셔서요.”

“그런가? 자네, 이 기타랑 정말 잘 어울려. 목소리도 그렇고.”


경식이 촉촉한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마틴, 깁슨에 밀려, 가격에 밀려, 팔리지 않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제 진짜 주인을 만나려고 안 팔렸던 모양이다. 기타가 주인을 지금까지 기다렸던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예산이 넉넉하지가 않아서요. 이것도 한번 연주해보면 미련이라도 사라질까 싶어서 말씀드렸던 거예요.”


기현은 주저하며 말했다. 이 기타는 이 예산으로는 턱도 없을 기타였다.


“예산이 얼마나 되나?”

“이십만 원 좀 넘습니다.”


대기업 회사원 초봉이 약 오십만 원, 아르바이트 한 달 월급 약 십만 원, 깁슨의 몇몇 라인이 약 사백 달러를 호가하던 시절이다. 기현이 모은 이십만 원은 정말 아등바등 모은 결과물이었다.


‘이십만 원밖에 없는데. 어쩌시려고 그러나?’


길드의 F512가 사십 년 뒤에는 오백만 원대를 호가하니, 못해도 사십만 원은 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십만 원 주고 그냥 가져가게.”

“···네?”

“이십만 원만 주고 그냥 가져가라니까? 내가 보기에 그거 자네 기타야.”


경식은 선심 쓰듯 얘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기타는 기현 것이라는 게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이 기타가 일, 이십만 원 하는 게 아닐 텐데?

기현이나 성현이나 모두 잠시 충격에 빠졌다.

아무리 좋은 가격에 좋은 기타를 판다고 하는 사장님이지만, 그래도 제 값은 꼭 받았다.


“이게 이십만 원은 아니잖아요.”

“사십만 원은 줘야 살 수 있지.”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지만, 들어도 놀라게 되는 금액인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왜 이십만 원만···.”

“나머지 이십만 원은 노랫값이라 치지.”


기현에게는 좋은 일이었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슈퍼스타도 아니고, 데뷔도 안 한 무명, 그것도 학생에게 지불하는 노랫값이라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다.


“하지만 이십만 원인데요···.”


이거 폐 끼치는 거 아닌가.

기현은 걱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한두 푼도 아니고 가격의 절반, 아르바이트 월급 두 달분을 깎아준다는 게 받는 사람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부담스러우면 나중에 갚게. 그럼 됐잖나.”

“네?”

“나중에 갚으라고. 앞으로 종종 들러서 노인네 말 동무 좀 해주고.”

"그래도 되나요?"

"성현이 친구면 언제든 환영이야."


오늘 기현의 연주는 이십만 원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값졌다. 사실 애초에 남은 돈은 받을 생각 추호도 없었다. 자신은 돈보다도 더 귀한 것을 받았으니.

단지 저 어린 청년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 나중에 갚으라고 둘러댄 것 뿐이다.


“감사합니다!”


기현은 허리를 90도로 바짝 숙였다.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좋은 기타였다.


작가의말

오늘의 곡

새소년- 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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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23 [탈퇴계정]
    작성일
    23.09.12 21:25
    No. 1

    18번이란 표현은 일제 강점기때부터 쓰던 말이에요. 기현보다 윗연배인 사람이 낯설어하는건..

    찬성: 3 | 반대: 1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9.14 21:19
    No. 2

    잘 보고 있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소비아...
    작성일
    23.09.16 13:07
    No. 3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1 정치검
    작성일
    23.09.22 15:14
    No. 4

    댓글 보고서 처음 알았네요.
    왜 18번이라 하나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일본 가부키의 가장 재밌는데 18선이란 말이 일본에서 17세기에 사용되면서 가장 뛰어난 기교 18가지 중 하나란 의미로 일제시대에 일본인에게서 전해지며 18번 곡이란 말이 생겼군요.

    찬성: 2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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