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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1980 밴드천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최근연재일 :
2023.09.29 19:2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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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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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드디어 본선이다 (1)

DUMMY

“우리 이만하면 후회 없이 준비했어. 어떤 결과가 나와도 실망하지 않기로 해.”


대학가요제 전날 밤.

각자 집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전, 모여 결의를 다졌다.

요 몇 달간 정말 후회 없이 전력을 다해 준비했다.

미선은 크게 숨을 내쉬며 정말 후련하다는 투로 얘기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본선만 바라보며 달려왔던가.

이렇게 쉼 없이 달리는 것도 이제는 이것이 마지막이다. 더는 우리 인생에 대학가요제라는 것은 없으니까.


미선은 성호와 병철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만만한 성호는 쉽게 팔이 둘러졌지만, 병철은 달랐다. 대신 키가 큰 병철이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여주었다.


“이렇게 늦게까지 연습하는 것도 마지막이네요.”


성호는 시원섭섭했다. 늦게까지 연습하는 것,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멤버들과 같이 있을 수 있어 좋았다.


“마지막은 무슨, 우리 음반도 내야 해. 잊었어? 돌아와서 또 연습해야 한다고.”

“아아··· 지금 연습이랑 아름다운 이별하려고 했는데, 좀 김 다 샜어요. 알아요?”

“여튼, 나는 그렇게 마지막처럼 굴 필요는 없다, 이거지.”

“감정 딱 좋았는데, 형이 다 망쳤거든요.”


기현의 핀잔에 시원섭섭한 감정이 모두 사라지는 기분이다.

최대한 아름답게 연습을 보내주려고 했지만, 그것도 또 당분간 못하게 생겼다. 음반을 내려면 또 그에 대비해 연습을 해야 했으니···.


“하아···. 또 와서 연습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야, 땅 꺼진다, 꺼져.”

“아! 진짜 아파요!”


기현이 성호의 등을 찰싹 때렸다. 성호는 등을 바짝 움츠리며 옅게 앓았다.


“그런데 정말 어떤 결과가 나와도 실망하지 않을 자신들 있어?”


앓는 성호를 뒤로 하고 기현이 물었다. 기현은 자신이 없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실망하지 않을 자신이.


아마 실망할 것이다.

상을 타지 못하면 실망할 것이다.


‘상을 타지 못하면 음악을 관두라고 할 테니까.’


아버지와의 약속이 떠올랐다.

그래서 기현은 실망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나는··· 받아들이려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미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서클을 이끌고 온 것도 자신에게는 기적이었다.

분명 올해 초까지는 보컬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던 서클이었다.

그런 서클이 장기현이라는 목소리를 만나게 된 이후의 행보는 모두 꿈과도 같았다.

공연을 하고, 다른 밴드와도 만나고, 음반 계약을 하고, 대학가요제 본선에 나가고.


‘솔직히 여기까지 온 것도 믿기지 않아.’


만약 자신의 밴드 생활이 여기서 멈추더라도, 음반 한 장에서 멈추더라도, 자신은 그 기억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갈 거였다.


“그렇다고 해서 본선, 전심전력으로 안 한다는 얘기 아니야. 정말로 내 인생 다 걸고 전력을 다해서 할 테니까. 알지?”

“누가 모르겠어. 알지.”


기현이 미선의 머리카락을 마구 매만지며 웃었다.


“우리 가기 전 파이팅하자.”


기현, 미선, 성호, 성현, 병철은 손을 한데 모았다.

미선이 선창했다.


“대중!”


그들은 켜켜이 모인 손에 쌓인 온기에서 오는 충만함을 느꼈다.


“음악!”

“연구회!”

“파이팅!”


*


81년 9월 11일.

대학가요제 본선 당일.


본선은 여지없이 다가왔고, 눈 깜빡할 사이에 본선 당일 아침을 맞이했다. 기현은 긴장 때문에 뜬 눈으로 거의 밤을 새고 말았다. 두 시간 정도 잔 것 같았다. 그래도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기현이 인생에 중요한 날인데, 너무 식사가 조촐한가?”

“아침 식사부터 거하게 할 필요 있나요.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죠.”


기현은 자리에 앉았다. 가족들끼리 단란하게 모여 먹는 아침.

아버지까지 자리에 앉으면 식사가 시작되었다. 오늘의 아침은 바지락 미역국과 계란찜, 햄 부침과 항상 집에 있는 조촐한 밑반찬 몇 가지.

계란찜과 햄 부침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식사다.


“그래서 오늘 아침부터 가 있는 거야? 옷은 뭐 입고 가게?”

“어, 방송국에서 아침부터 오라네. 리허설 몇 번 돌릴 건가봐. 옷은··· 음, 최대한 깔끔하게 입고 가야지.”


누나와 두런두런 얘기하며 여느 때와 똑같이 식사했다. 정말로 별다른 것 없이 평범한 아침이었다.

그렇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준비까지 끝낸 뒤, 정동문화체육관으로 향하기 위해 집을 떠나려던 때다.


“기현아.”


넥타이를 매고 출근 준비를 하고 계시던 아버지가 기현을 붙잡았다.


“예?”

“데려다주마.”


기현은 기타 가방 하나를 들고 아버지 차에 올라탔다. 기타를 들고 아버지 차에 타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오늘 좀 출근 준비를 일찍 하신다 했더니, 이래서였나?'


기현은 괜히 어색해져서는 잔뜩 뻣뻣한 자세로 조수석에 올라탔다.


“준비는 잘했지?”

“예, 뭐. 열심히 했죠. 밤낮 할 것 없이.”

“열심히 했으면 된 거야, 열심히 했으면.”

“그래도 상 하나는 탔으면 좋겠어요.”


기현은 아버지도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하며, 굳이 아버지와의 내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처음에는 내심 어색했지만, 이제는 같이 산 지 이제 9개월. 아버지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다. 정말로 가족이라 느껴졌다.


“떨리지는 않고?”

“밤에는 긴장 돼서 잠을 못 잤는데, 지금은 또 안 떨려요. 그런데 가면 또 모르죠.”

"그러면 운전할 동안 좀 자 둬."

"아니에요. 이대로 잠들면 정말로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잘 것 같아요."


‘그다지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항상 날 걱정 하셨지.’


아버지가 이 장기현이라는 사람에게 주는 걱정은 진짜 걱정이다.

기현은 아버지의 진심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23년 장기현의 아버지와도 겹쳐 보이기도 했다.


‘가끔은 같은 사람 같기도 해.’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돌았다.

기현은 잠시 돈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몸을 틀며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기현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현과 아버지가 침묵 사이로 말을 불쑥 꺼냈다.


“아, 아버지 먼저 말씀하세요.”


기철은 앞만 바라보며 운전했다. 별 얘기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말하는 투다.


“상 못 타도 너 하고 싶은대로 해라.”


기철도 기현이 지금까지 대학가요제를 위해 달려오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여러 가지를 많이 느꼈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건 처음 봤어.’


아들이 저렇게 전심전력으로, 뒤로 내빼는 것 없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나서는 건 음악이 유일했다.

시를 좋아하고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 걸 은연중에 알고 있긴 했지만, 그때는 이렇게까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때의 아들은, 뭐랄까··· 연약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태어났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단단해져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만들지 않았으니, 음악이 아들을 이렇게 만들었을 터.


“아버지 저는··· 지금까지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열심히 할게요.”


기현은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말을 쏟아내듯 토해냈다. 이건 진짜 아버지에게도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기현의 말에 계속 전방주시만 하고 있었던 기철이 고개를 돌려 기현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네가 어쩐 일이냐는 얼굴이다.


“너는 무슨 군대 갈 때도 안 하던 얘기를 지금···.”


차는 어느새 대학가요제가 열리는 정동문화체육관에 도착해 있었다.


“얼른 가라.”

“이따 오시죠?”

“그래, 이따 회사 끝나고 네 엄마랑 누나랑 보러 갈게. 그러니까 잘해라, 긴장 말고.”


기현은 기타를 챙겨 조수석 문을 열어젖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녀오겠습니다.”


마침 저쪽 멀리서 성호와 성현, 병철이 함께 기현을 발견하고는 양팔을 흔들었다. 방정맞은 놈들. 내가 그렇게 좋은가?


“형!”

“어, 가!”


기현은 세 사람에게 손짓하고는 기철의 차에서 내려 세 사람 쪽으로 기타를 메고 훌훌 뛰어나갔다.


*


정동문화체육관이 대학가요제를 보기 위해 찾아온 관객과 방송을 준비하는 스태프로 분주했다.

곧 대학가요제의 막이 오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기현의 가족은 시작 전 허둥지둥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자칫하면 시작한 후 뒤늦게 들어올 뻔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차가 많이 막힌 탓이다.


“엄마! 이쪽 자리에요. 여긴 아버지 앉으시고요.”


한편 기현의 가족은 기현을 보기 위해 대학가요제가 열리는 정동문화체육관을 찾았다.


“기현이 떨지 않고 잘하겠죠?”

“그러게나 말이다. 그 녀석, 떨어서 실수는 안 하려나 모르겠다.”


기현의 엄마와 누나가 무대를 바라보며 두런거렸다. 두 모녀는 손을 꼭 잡고 떨리는 마음을 서로 매만져주고 있었다.

한편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내내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기현의 아버지 기철이 입술을 달싹이며 중얼거렸다.


“그 녀석··· 잘할 거다.”


미선의 엄마, 정희는 집에서 홀로 텔레비전을 틀었다. 태선은 아직 퇴근 전이었다. 태선은 야근이라기에, 정희는 태선에게 굳이 집으로 오지 말고 회사에서 보고 오라고 일러두었다.

미선이가 있는 대중음악연구회의 순서는 두 번째. 제법 앞 순서에 위치해 있었다.


“미선이는 잘할까···.”


무대 경험이 많은 아이라고 해도, 걱정은 되는 법이다.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대학가요제가 시작할 때까지 정희는 한참을 서성거렸다.


한편 시작이 임박하자 심사위원석에 심사위원들이 하나둘 착석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심사를 볼 열 명의 심사위원들 중에는 조철우와 나승연도 있었다.


‘긴장하지는 않았을까 모르겠네.’


워낙 잘하는 애들이라, 실력이야 걱정되지 않지만, 혹여 긴장했을까 걱정은 되었다.

초조하게 대학가요제의 막이 오르는 걸 지켜보며 대중음악연구회 차례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오히려 긴장한 건 자신일지도 몰랐다.


조철우 팀장은 그런 나승연을 흘끗 바라보았다.


‘쟤 얼굴도 곧 끝이네. 좌천당하거나 스스로 알아서 나가게 될 테니까.’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기현과 대중음악연구회 멤버들은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멤버들은 대기실 안 텔레비전으로 바깥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멤버들 사이로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미선은 다리를 꼰 채로 입술만 뜯고 있었고, 병철은 초조하게 대기실을 왔다 갔다 움직이고 있었다.


“단체로 우황청심환이라도 사 먹을 걸 그랬나 봐. 너무 떨려.”


미선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긴장돼 죽을 것 같았다. 한편 기현은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숨만 골랐다.


“기현 오빠는? 자는 거야?”

“아빠 안 잔다.”


하도 미동 없이 눈 감은 채 있기에 자는 줄 알았다. 기현은 그저 명상하며 긴장을 누르고 있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면, 긴장에 좀 도움이 되었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대학가요제 로고가 뜨며 방송이 시작되었다.


“그럼 이제부터 제 5회, 81년 대학가요제를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대학가요제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작가의말

오늘의 곡

페퍼톤스- Ready, Get Set,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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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아부지 저 정말 열심히 할게요! +6 23.09.15 3,817 1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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