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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1980 밴드천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최근연재일 :
2023.09.2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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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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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번호 99번 대중음악! 연구회입니다!

DUMMY

해가 슬그머니 질 시간, 모두가 집으로, 술집으로, 그 외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할 때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문이 활짝 열린 전파사에서 거리로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왔다.


-박원웅과 함께, 흐드러지게 벚꽃 피던 때가 그제 같은데 벌써 6월의 첫째 날이 밝았습니다. 요즘 여기 정동 문화방송 사옥은 대학가요제 예선 열기로 뜨겁습니다. 벌써 1차 예선이 내일로 다가왔는데요, 박원웅과 함께 가족분들 중에서도 대학가요제 예선에 참가하시는 분이 계시는지요? 모쪼록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6월의 첫날, 첫 곡은 신청곡이 아니라 저희 박원웅과 함께 피디가 직접 고른 곡입니다. 그룹사운드 혼의 ‘무소의 뿔처럼 가라’.


라디오 진행자의 인트로가 끝나자마자, 첫 곡으로 그들의 곡이 흘러나왔다.

박자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던 전파사 주인이 라디오 불륨을 키웠다.


수준급의 강렬한 밴드 사운드에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용기를 북돋는 가사.

현란한 기타 리프.

가슴을 울리는 드럼과 베이스의 소리.

아무리 들어봐도 익숙한, 그들이 만든 그들의 노래였다.


“야, 우리 노래···!”

“쉿! 쉿!”


합주실에 한데 모인 혼의 멤버들은 붐박스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지금 혼의 음악이 전파를 타고 있는 프로그램은 오후 8시의 터줏대감 라디오 프로그램, ‘박원웅과 함께’였다.


*


한편 대중음악연구회는 혼의 음악이 ‘박원웅과 함께’를 타고 퍼지는지도 모르고 연습에 매진했다.


‘다시 할까요? 또 할까요?’ 레파토리로 시작된 연습. 이번에도 여지없이 이른 아침부터 진행해서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끝났다.


대학가요제가 바로 내일로 성큼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제 드디어 대학가요제 예선이 내일이다.”

“내일 드디어 시작이네요.”


처음 준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감회가 새롭다. 곡을 처음 준비하던 과정부터, 가사를 쓰겠다고 애쓰던 때, 모든 게 지난 일이 되어버렸다.


“야, 넌 왜 벌써 울려고 그러냐.”

“감동적이잖아요. 예전 일도 막 생각나고.”


감수성 넘치고 마음 여린 성호는 뭐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울컥하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사는 성호가 써야 했다.


“여튼, 오늘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일찍 자고 내일 아침에 보자고. 특히 성호 너, 긴장하지 말고.”


미선은 제 연습실을 나서는 멤버들의 뒤를 쫓으며 종알거렸다. 미선도 내색하지 않을 뿐이지, 적잖게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얘들아, 저녁이라도 먹고 가지 그러니.”


미선의 엄마, 정희가 물었다. 대학가요제 참가한다고 연습하느라 요 며칠간 뻔질나게 드나들다 보니, 처음에는 마냥 시커먼 남자애들 같았던 이 애들도 자기 자식 같고 그랬다.

사실 정희도 첫째 아이가 남자인 부모라, 남자애들이라고 벽이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니에요, 폐 끼치는 것 같아요. 점심도 챙겨주셨는데.”


예의 바른 병철이 깍듯하게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직 많이 늦지도 않았는데, 저녁 먹고 가렴. 너희들 몫까지 다 해놨어.”

“이미 차려놓으셨다는데, 이걸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까···.”


성호가 주저하다 냉큼 정희 쪽으로 붙었다.


“그럼, 어머님! 잘 먹겠습니다!”


성호가 먼저 정희에게로 향하자, 혹여나 민폐일까, 집에 서둘러 가려던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 자리에 앉았다.

계란말이, 분홍 햄 부침의 유혹이 너무 강했다.


“잘 먹겠습니다!”


상다리 부러질 듯 풍성한 한 상이다. 계란을 얼만큼 쓴 건지, 두께가 두툼한 계란말이에, 햄 부침, 경양식 식당에서나 볼 건더기 큼직한 카레라이스까지.


오랜 연습으로 배가 고팠던 멤버들은 전투적으로 식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 분홍색 햄!’


기현이 분홍색 햄 부침을 한 입 먹으려던 차였다.

정희가 뭔가를 깜빡했던 건지, 우아하게 움직이던 숟가락이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기현 군한테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네? 말씀하세요."

"여자친구는 있니?"


갑작스러운 질문에 미선을 포함한 멤버 모두에게서 동시다발적으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어머니, 갑자기요? 여기서요?


저요? 왜 하필 저요?


“저, 저요? 제가요?”

“어머, 뭘 그렇게 놀라나? 꼭 누구 있기라도 한 것처럼.”


정희는 눈웃음을 치며 웃었다.

정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오히려 고통받는 건 미선이다. 아버지도 그렇고 대체 뭘 보고 느꼈길래 왜 하필 기현을 걸고 넘어지는 건지.

미선은 엄마가 콕 집어 기현에게 여자친구의 유무를 묻자, 발끈했다.


“엄마! 기현 오빠 여자친구는 무슨! 저 오빠 아무것도 없어!”

“어머, 미선이 네가 왜 열을 내니? 없으면 없는 건데.”

“내, 내가 언제 그랬어요!”


그녀가 생각해도 자신이 왜 그랬는지 모양새가 좀 이상했다.

부모님이 자꾸 기현과 자신 사이를 의심해서?

장기현이 여자친구 없는 걸 알아서?

글쎄···. 둘 다 아니다.


“···아뇨, 미선이 말대로 저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 우리 딸은 어때?"


정희는 태선과 살짝 달랐다. 최대한 적령기 맞춰 일찍 결혼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 태선과 다르게, 정희는 미선이 청춘 시절 즐길 것 다 즐기고 결혼했으면 했다.


떫은 짝사랑도 해보고.

소개도 받아보고.

뜨거운 사랑, 미지근한 사랑, 씁쓸한 사랑, 모두 해보고 결혼하길 바랐다.


비록 자신은 일찍 결혼해 장남과 미선을 낳았지만, 딸은 그러지 않길 바랐다.


결혼생활이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행복했다. 행복하지만, 조금 일찍 져버린 청춘이 아까울 뿐이다.


"딸이라 함은, 미선이요?"


미선이 아버님만 무서운 줄 알았는데, 미선이 어머님이 더 무서운 존재였다.

미선이 어머님이 떨어트린 폭탄선언에 대중음악연구회는 순식간에 초토화되었다.


“푸웁!”


기현 양옆에 앉아 있던 성호와 병철은 마시던 물을 뿜으려던 것을 애써 참아내고 있었다.


말 진짜 잘해야 한다. 말실수라도 하면 여기서 당장 효수당할 것이다.


기현은 두피에 식은땀이 송글하게 맺히는 걸 느끼며 어색하게 웃었다.


“미선이는···.”

“미선이는?”

“좋은 서클 회장이고 정말 예쁘고 귀여운 동생이자 친구죠.”

“그래?”

“하지만 당분간은 딱히 생각은 없습니다···. 학교 공부도 있고, 서클 일도 있고요.”

“기현 군이 딱히 생각이 없으면 어쩔 수 없지.”


정희는 눈에 띄게 아쉬워하는 눈치다.

기현은 대체 뭐가 아쉽고 대체 뭐가 어쩔 수 없는지 알아채지 못한 채 찝찝한 상태로 밥을 먹었다.


*


대학가요제 1차 예선의 날이 밝았다.


해가 가면 갈수록 대학가요제 인기가 높아져, 올해는 부쩍 참가자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그 많은 참가자들을 모두 심사하기 위한 심사위원도 따라서 늘어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힘든 건 매한가지다.

참가자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심사위원들이 봐야 할 수준 이하 참가자들도 늘어난다는 얘기니까.


메인 피디인 김성룡 피디는 지역별로 나뉘는 예선을 모두 수용하기 위해 음악 분야 각계각층에서 전문가를 끌어모아 심사위원으로 섭외했다.

거기에 한양레코드에서는 대중음악 칼럼과 평론 경험이 있는 나승연 팀장과 조철우 팀장이 포함되었다.

조철우 팀장과 나승연 팀장은 나뉘어 심사를 보게 되었다.


‘왜 갑자기 대학가요제에 뛰어들어선, 귀찮게.’


조철우 팀장은 오늘 이 자리에 불만이 많았다. 원래 한양레코드는 대학가요제 쪽으로 기웃대지도 않았다. 나승연 때문에 갑자기 떨어진 사업이라 짜증 나 죽겠는데, 본선 심사까지 해야만 했다.


‘어떤 미친년 하나 때문에 이런 귀찮은 사업을 해선···.’


이 사업의 원흉인 나승연을 씹으며 불평했다.

이 모든 게 이 대학가요제 사업을 끌어온 나승연, 나승연 때문이다.

회사가 지금 잠깐 매출이 떨어진 건 이해가 간다. 회사 일이라는 게 뭐 어떻게 항상 좋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거 메꾸자고 갑자기 대학가요제 끌어오는 건 이해가 안 갔다.

항상 언제고 매출이 좋으면 그게 회사가 아니고 신화지.


오전부터 시작된 강행군은 벌써 오후를 넘어가고 있었다.

몸은 힘들어도, 귀는 즐거웠다, 뭐 그런 희망찬 상황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하아···.”

“후우···.”


땅속까지 파고들 깊은 한숨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강행군이 이 정도의 강행군이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외부 심사위원들은 피곤이 피곤대로 쌓여 눈이 반쯤 감긴 채였다.


“하하, 선생님들. 많이 고단하셨죠? 이제 마지막 팀 남았으니까 조금만 힘내주세요.”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함께 심사를 보게 된 피디와 작가만 심사위원들의 눈치만 슬슬 보며 웃었다.


“김 피디님. 요즘 대학가요제 간판이 많이 죽었나 봐요? 아니, 개나 소나 다 대학가요제 나간다고 설치네-”


조철우 팀장이 의자에 등을 쭈욱 기대며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수준 이하도 어지간히 수준 이하여야지,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은 놈들이 수두룩 빽빽이었다.


“하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김성룡 피디가 어색하게 웃었다. 나승연 팀장은 왜 하필 저런 인간을 붙여준 건지.

시종일관 불만 불평에, 짜증에.

그렇지 않아도 자작곡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곡과 여러 가지 곡을 절묘하게 짜깁기한 표절곡들의 향연에 지칠대로 지친 상황인데, 저 인간까지 저렇게 대놓고 눈치를 주니, 피곤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게 고문이지 뭐가 고문이냐.’


“후우··· 다음 팀, 참가번호 99번 대중음악연구회 안으로 불러주세요.”


김성룡 피디는 길게 한숨을 푹 내쉬며 마지막 예선 참가 팀을 불렀다. 조철우 저 인간은 이번 팀만 하면 오늘로 1차 예선 심사는 끝이었지만, 자신은 아직 예선이 줄기차게 남아있었다.


*


“우리 들어가면 인사를 ‘안녕하세요. 참가번호 99번 대중음악연구회입니다!’로 맞추는 걸로 하자고요. 알았죠?”


차례를 앞두고 미선이 속삭였다.

긴긴 대기도 결국 끝이 보였다. 오른쪽 가슴팍에 ‘참가번호 99번’이라 적힌 명표를 붙인 채 다섯 명이 쪼르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대학가요제의 예선이지 않은가. 자리가 자리인지라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팀! 참가번호 99번 입장해주세요!”


복도 저편에서 대학가요제 스테프가 오늘의 마지막 팀, 대중음악연구회를 호출했다.


이제 갈 시간이다.


“알았죠? 안녕하세요, 참가번호 99번 대중음악연구회입니다, 하는 거예요?”


미선이 다시 한번 주입시켰다. 멤버들은 긴장해서는 뭐가 뭔지도 모른 채 경직된 고개만 세차게 끄덕거렸다.


마지막 팀, 대중음악연구회가 심사장으로 들어와 냉큼 허리를 90도로 굽혀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참가번호 99번 대중음악연구회입니다··· 참가번호 99번 대중음악연구회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참가번호 99번···.’


미선이 주입해준 문장을 계속 중얼거리다, 긴장 탓으로 이내 그만 고장이 나버리고 말았다.

걸음걸이나 인사도 자연스럽지가 않고 부자연스럽게 뚝딱거렸다.


‘쟤네는 뭐 저렇게 삐걱거려?’


김성룡 피디는 삐걱삐걱, 양철 로봇마냥 일렬로 느릿느릿 들어오는 마지막 팀을 보며 미간을 설핏 찌푸렸다.


“안녕하! 십니까! 참가번호 99번! 대중음악! 연구회입니다!”

“참가번호 99번! 대중음악연구회입니다! 안녕하세요!”

“참가번호 99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대중음악연구회?’


조철우 팀장은 어디서 들은 듯한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작가의말

오늘의 곡

무한궤도-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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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번호 99번 대중음악! 연구회입니다! +6 23.09.08 3,976 10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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