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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1980 밴드천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최근연재일 :
2023.09.29 19:20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29,788
추천수 :
3,723
글자수 :
171,704

작성
23.09.20 19:20
조회
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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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글자
11쪽

시연

DUMMY

“끅··· 흑, 끄윽···! 그래서 그 한겨울 그 기집애가!”


미선은 햄버거를 입에 문 채 오열 중이었다.

볼썽사납기도 했고, 아주 조금은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오열하니 물 먹은 만두 같은 얼굴이 되는구만. 기현은 생각했다.


“그, 다 먹고 울어. 먹고.”

“하지만 화나잖아요···.”


그야말로 눈물 젖은 햄버거다.


'저러면 안 짠가?'


미선은 그런 짭조름하고 슬픈 맛의 햄버거를 먹으며 한겨울과 있었던 이야기를 다 말해주었다. 그녀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이 왜 그랬는지,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는지, 모든 것을 쏟아냈다.


“그러니까, 한겨울이 네 안 좋은 소문을 퍼트렸다고? 그것 때문에 너는 콩쿠르를 포기하고?”

“와, 쓰레기네!”


멤버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욕을 흠씬 퍼부었다. 다섯이 한겨울을 질근질근 흔적도 없이 씹었다. 이래서 친구가 좋았다.


“하모닉스는 나의 적, 타도 하모닉스!”


성호가 선창하자, 다른 멤버들이 따라 외쳤다.

볼썽사나운 광경에 미선이 눈에 눈물이 달린 채로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그게.”

“아, 누나 엉덩이에 털 나겠다. 여튼, 빨리 누나도 타도 하모닉스 해요.”

“아, 웃겨- 타도 하모닉스! 우리가 하모닉스 이긴다!”


그들에게 어느새 하모닉스는 적이고 타파해야 할 적폐가 되어 있었다.


“아, 기분 한결 낫다.”


미선은 기현의 어깨를 빌려 한참 울었다.

비록 기현은 어깨 한쪽이 축축했지만, 미선의 기분이 나아졌다니 상관없었다.

또 햄버거 먹으며 과거 일을 하소연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진 건 덤이었다.


“좀 괜찮아?”

“네. 연습 다시 해요.”


기현이 미선에게 티슈 뭉치를 건넸다.

미선은 맹맹한 코를 팽, 풀고는 하도 울어 짓무른 눈두덩이를 손등으로 쓱쓱 문질렀다.


미선은 다시 건반 앞에 앉았다.

더 연습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한겨울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미선은 전처럼 가뿐한 기분으로 연습에 다시 몰두했다.


‘마음이 많이 풀렸나 보네.’


음악가는 연주로 얘기한다. 연주를 들어보면 알았다. 좀 전의 기계 같던 연주는 사라진 채였으니까.


‘다시 생기 있는 연주로 돌아왔어.’


멤버들은 의욕 가득한 마음으로 다시 연습에 돌입했다.


*


대학가요제는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본 방송이 차질 없이 진행되기 위해 방송 전 사전 연습을 진행했다.


“오늘부터 연습이라니.”


대중음악연구회는 아침부터 정동에 위치한 문화방송으로 향했다.

우리가 방송에 나온다니. 방송국이라니. 대학가요제라니!

설렘 반, 긴장 반, 묘한 감정이 그들 사이를 지배하고 있었다.


“오늘 다른 본선 진출자들 처음 보게 되겠네요.”


신문 기사로 본선 진출자 명단을 본 것과, 개인적으로 하모닉스를 본 것 말고는 이제껏 다른 본선 진출자들을 본 적 없었다.


방송국은 아직 어수선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음향 설치가 채 되지 않아, 당장 시연을 할 수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이건 진짜 무대에 비해 쨉도 안 되겠지.’


정동문화체육관은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객석을 가진 공연장이다. 그곳을 우리 다섯 명이 가득 장악해야 한다. 그곳을 우리가 제패해야만 한다.


‘데뷔 무대부터 조금 빡센데?’


방송 첫 무대부터 제법 판이 큰 무대다.

그렇게 규모가 큰 무대는 당연히 예전에도 해본 적 없어, 자연히 몸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뜨지 못한 인디밴드 나부랭이가 그런 큰 공연장에서 공연을 해봤을 리가.


“대중음악연구회 팀?”


막내 피디가 우리를 알아보며 대기실로 안내했다.


“대중음악연구회 분들이시죠? 이거 목걸이 매고 들어가세요. 본인 차례 때까지 대기실에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음향 설치는 언제쯤 끝나나요?”

“지금 마무리 중이니까, 그래도 삼십 분 내에 끝날 것 같아요. 저쪽 출연자 대기실에서 쉬면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막내 피디는 그것 말고도 일이 또 많은지 쏜살같이 현장으로 뛰어나갔다.

음향 설치에 여념이 없는 스태프들을 보니 뭔가 실감이 나는 듯도 했다.


“우리가 정말 본선 진출하긴 했나 봐.”

“우리 저런 데서 공연하는 거야, 형? 와, 벌써 부담스럽다.”

“넌 벌써부터 긴장하냐? 저것보다 훨씬 클 걸.”


성호, 성현 형제가 무대를 보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한편 아침 일찍 일어나 멤버들을 차에 태워 정동 문화방송까지 운전한 미선은 그저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시연이고 나발이고 잠이 급했다.


“삼십 분 대기?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늦게 도착하는 건데.”


미선은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했다. 방송은 대기 또 대기 그리고 대기의 연속이라더니, 그게 맞았다.


“대기실 가서 잠 좀 자.”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그렇게 출연자 대기실로 설렁설렁 향하던 중, 익숙하고도 반갑지 않은 얼굴과 맞닥뜨렸다.

하모닉스다.


“하! 아아, 그래서···.”


한겨울은 입을 가리고 한창 하품을 하던 강미선을 발견하고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명동 소극장에서 했던 강미선의 말을 이제야 이해한 모양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바보 같고 멍청한 건 똑같았다.


“겨울아, 왜 그래?”


한겨울의 얼굴이 구겨지자, 하모닉스의 다른 세 멤버들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아, 그닥 달갑지 않은 관계구나. 짐작 가능했다.


“아니, 가다가 똥을 밟아서.”

“아아···.”


한겨울은 강미선을 빤히 뚫어져라 바라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목소리는 산뜻해도 얼굴은 험악했다.

미선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한겨울을 응시했다.


다른 하모닉스 멤버들도 미선의 시선을 느꼈는지, 멤버들도 미선을 흘끗 바라보았다. 하모닉스 멤버들의 시선이 ‘대중음악연구회’라 쓰인 명표에 꽂혔다.


“아, 안녕하세요. 대중음악연구회? 서울 팀이세요?”


불유쾌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네, 한국대학교 팀입니다. 하모닉스 팀이죠?”

“네, 한국예전 하모닉스입니다. 잘해보세요.”


‘잘해봅시다’도 아니고 ‘잘해보세요?’ 이게 말이야, 방구야? 좋게 봐주려 해도 알면 알수록 재수 없는 팀이다.


“아, 네. 하모닉스도 수고하시고요.”


기현은 상쾌하게 웃으며 하모닉스를 쌩하니 지나쳤다.


*


“하모닉스 팀 다음 대중음악연구회 팀 시연 들어갈게요!”


대기실에서 시간을 계속 뭉개다 보면 어느새 시연 시간은 다가왔다. 하모닉스가 먼저, 그 다음 팀이 대중음악연구회 순서로, 대중음악연구회는 전체 두 번째 순서였다.


‘하모닉스 시연? 땡기는데.’


얼마나 할지 보고 싶다.

무슨 곡을 할까? 명동 소극장 공연에서는 다른 가수의 곡을 주로 연주했으니, 어떤 곡을 보여줄지 궁금증이 가득 일었다.


“미리 뒤에서 대기하면서 하모닉스 시연 보러 갈까?”


기현이 눈짓하며 다른 멤버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다른 멤버들의 눈빛도 기현의 눈빛과 같았다.

그야 안 보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었으니. 뭐, 어떤가?


“가요, 가요.”


소파에서 몽롱하게 뭉개던 민성호는 어디 가고, 똘망한 눈으로 대기실 문 앞에 서 있는 민성호만 존재했다.


“미선이는? 갈래? 어때?”


가장 신경 쓰였던 건 미선이다. 한겨울과의 그런 일도 있었고, 하모닉스를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니.


“···어, 갈래.”


미선이 결단을 내렸다.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기현을 올려다보았다.


무대 뒤가 수많은 스태프로 분주했다. 막 시연을 시작하려고 하는 모양인지, A음을 잡으며 음을 조율했다.


“구경하러 왔나 봐.”

“궁금하겠지.”

“보여주자고, 우리 실력.”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곳에 대중음악연구회 멤버들이 있었다.

애송이들, 우습기는. 하모닉스 멤버들은 비릿하게 웃었다.


“하나, 둘! 하나, 둘, 셋, 넷!”


파워풀한 남자 보컬 멤버의 선창.

모든 걸 잡아먹을 듯한 압도적인 사운드가 마이크를 통해 터져 나왔다.


‘시연인데 이정도 파워라고?’


시연임에도 실전과 같은 파워.

방송국 무대라는 공간감이 주는 압박감 탓일까, 명동 소극장에서 들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음률의 파도가 밀려온다.


겹겹이 또 치밀하게 쌓아 올린 음.

묵직하고 날카로운 사운드.


하모닉스의 하드록이 대중음악연구회를 비웃듯 뒤흔든다.


‘대단하다.’


기현은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분명 대단했다. 하모닉스의 음악은 정말로 대단했다.


하지만.


‘할 수 있다.’


그보다 더 좋은 음악을.

그보다 더 대단한 음악을 할 수 있다.


기현은 주눅 들거나, 하모닉스의 음악에 깔아뭉개지지 않았다.

그건 다른 멤버들도 매한가지였다.

대중음악연구회는 그들의 음악에 자신이 있었다.


하모닉스의 시연은 저릿할 정도로 고압적인 여운만 남기고 사라졌다.

고압적인 여운은 얼얼하게 피부에 남아 있었다.


“어떻게 잘 봤는지 모르겠네.”


한겨울이 강미선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좋더라. 잘 봤어.”


그럼에도 미선은 쿨하게 웃었다.

실전처럼 한 시연에 그저 압도된 줄만 알았는데, 미선은 겨울의 생각과는 다르게 의기양양했다.


마치 자신은 자신이 있다는 듯이.

하모닉스를 이길 수 있다는 듯이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쟤는 뭐가 그렇게 혼자 고고하고 깨끗해?’


겨울은 항상, 늘 강미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보다 훨씬 집안도 잘 살면서 요행 따위는 바라지 않는 그 태도가, 매사 열심히인 그 태도가 짜증이 났다.

함께 피아노를 사사 받던 중학생 때부터 강미선은 한겨울에게는 눈엣가시인 존재였다.


‘그래, 얼마나 하나 보자고.’


클래식 피아노는 비록 너에게 졌어도, 건반만큼은 너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건반은, 나도 진심으로 마주했으니까.

진심으로 노력했으니까.


*


“대중음악연구회 시연 들어갈게요!”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분주한 스태프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치며 무대로 향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줄 차례다.


미선은 겨울을 흘끗 쳐다보았다. 한겨울과 하모닉스 멤버들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무대 뒤편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현은 멤버들을 한 번 휘 둘러보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별다른 구호나 신호 없이 담백하게 시작하는 연주.


시작은 가볍고 신선하게.

연주는 선선한 봄바람 같이 끝없이 밀려오다가.

기현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터져 나오자, 모든 걸 휘감아버리는 돌풍으로 변한다.


무대 아래에서 회의를 하던 스태프들도.

무대 뒤에서 음향 설비를 손보던 스태프들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기현을 한참 바라보았다.


만약 세이렌이 있다면 이런 목소리일 것이리라고, 넋을 놓은 채 생각한다.


‘강미선···.’


한겨울은 치밀어 오르는 열을 삭혔다. 젠장, 젠장, 젠장. 당장 담배 한 대가 고팠다.


대중음악연구회의 연주를 지켜보던 하모닉스는 연주 중간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작가의말

오늘의 곡

산울림-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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