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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1980 밴드천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최근연재일 :
2023.09.29 19:20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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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639
추천수 :
3,722
글자수 :
171,704

작성
23.09.19 19:20
조회
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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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글자
12쪽

우리 하모닉스한테 절대 안 져

DUMMY

“미선아, 공연은 잘 봤어? 객석에서 네 얼굴 보니까 야, 반갑더라.”


겨울이 미선을 붙잡았다. 불청객의 등장에 미선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앞서가던 멤버들도 뒤에서 돌연 미선을 부르자, 따라 멈춰 섰다.


방금 전까지 무대 위에서 건반 악기를 연주하던 한겨울이 왜?


“누나, 뭐예요?”

“뭐야, 너 하모닉스랑 아는 사이야?”


성호와 병철, 성현이 웅성거렸다.

기현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미선 쪽으로 걸음했다.


“어, 옛날 친구.”


당돌한 대답만 남기며 미선은 겨울 가까이로 한 발짝, 두 발짝 다가갔다.


“그쪽은 친구들?”

“어, 친구들. 같이 왔어. 하모닉스 공연 잘 봤어. 좋더라.”

“뻔뻔하네.”


겨울이 중얼거리며 얕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뭔 낯짝이 얼마나 두껍길래, 공연 잘 봤다는 말을 눈 깜빡 하나 안 하고 하는 건지.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멤버들은 입만 꾹 닫고 미선을 응원했다.

뭔지는 몰라도 두 사람 사이, 원수 사이가 틀림없다.


“그런가? 낯짝 두꺼운 게 죄는 아니잖아?”

“그나저나 ‘네가 왜 여기 있어?’라는 말은 내가 물어봐야 하는 말이었네, 그치? 미선아. 네가 어떻게 클래식 공연장이 아니라, 이런 곳에 다 오고.”


겨울은 제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고 있었다.

약 한 번 제대로 올랐는지, 미선은 귀 끝까지 얼굴이 붉어졌다.


“니, 니가······.”


화가 나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시원하게 욕 한 사발 부어주고 싶은데, 여기서 욕을 했다간 자신이 진다는 것을 빤히 안다. 안간힘을 다해 참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맞다, 하모닉스 본선 축하드려요.”


화를 갈무리하지 못하는 미선과 겨울 사이로 기현이 끼어들었다.

기현은 미선의 어깨에 손을 떡하니 올린 채 웃으며 하모닉스의 본선 진출을 축하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아주 뻔뻔한 웃음이었다.


“네?”


제3 자의 개입에 겨울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대학가요제 같은 데에는 눈길도 안 줄 것 같았는데, 나오셨더라고요. 뭐, 본선이야 식은 죽 먹기였죠?”

“그쪽은 누군데요? 남자친군가? 아- 아니면 미선이 약혼자? 맞선남?”


겨울은 미선의 어깨 위에 얹힌 기현의 손을 빤히 응시했다.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가 한쪽 입꼬리에서 새어 나왔다.


“남자친구건, 약혼자건, 맞선남이건, 알아서 마음껏 생각하세요.”

“그런데 왜 끼어드세요? 짜증 나게.”


기현이 물꼬를 트자, 미선은 제 편이 있다는 자신감에 받았던 열이 조금 누그러졌다.

나머지 멤버들은 입으로 각개전투를 벌이는 두 사람을 응원했다.


자신감을 얻은 미선은 회심의 한 방을 날렸다. 이번 공연 관람의 목적? 한겨울의 등장으로 상관없어진 지 오래였으니까.


“그러니까, 본선에서 보자는 얘기야. 겨울아. 개 같지만 또 보겠네, 본선에서.”


미선은 웃으며 몸을 돌렸다.

미선이 그룹사운드를 한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겨울은 얼이 빠진 얼굴로 미선을 붙잡았다.


“뭐? 뭔 소리인지 자세히 얘기해.”


예나 지금이나 공부 못하는 건 똑같은 모양이다.


“잘 있어. 그렇게 궁금한 채로 살다가 보자.”


대중음악연구회 멤버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유유히 사라졌다.


공연이 끝난 후 향한 곳은 합주실이었다.

하모닉스의 공연을 염탐하고 나니 너나 할 것 없이 의욕이 마구 샘솟았다. 저 재수없는 녀석들을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한 번 더!”

“아냐, 아냐. 그 부분 다시 하자.”


오늘의 악마 조교는 기현이 아니라 미선이었다.


“누나, 좀 쉬엄쉬엄해요. 우리 많이 했어요.”

“이 정도로는 안 돼. 더 해야 돼, 더···.”


미선은 공연에서 돌아온 이후 뭔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듯이 멤버들을 재촉해가며 연습에 몰두했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발전한 거지?'


미선의 머릿속에는 온통 한겨울, 지긋지긋한 한겨울의 연주뿐이었다.


*


강미선과 한겨울은 어렸을 때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같은 중학교를 나왔기 때문이다.

미선과 겨울이 틀어지게 된 건 미선을 향한 겨울의 시샘에 있었다.


단초는 국내 유명 악기 회사이자 재단인 동방예술에서 여는 동방예술주니어콩쿠르. 미선과 겨울 두 사람 모두 지원했지만, 본선에 올라간 건 미선 한 사람밖에 없었다.


압도적인 성적으로 진출한 본선.

미선은 모두가 예상하는 유력 대상 후보였다.

참여하는 모든 콩쿠르가 그랬지만, 미선은 이번 콩쿠르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오늘 연습 몇 시까지 해?”

“글쎄, 늦지 않게 가기는 할 거야. 너는?”

“뭐, 오늘 연습 내키는 날도 아니기도 하고. 선생님 강습만 받고 가려고.”


강미선과 한겨울은 완전히 다른 타입이었다.

미선의 경우에는 뼛속까지 노력파인 편이라면, 겨울은 완전히 정반대였다. 겨울은 무언가 꽂히는 게 없는 한, 노력하지 않는 편이었다.


“미선이 진짜 대단하다. 연습 안 질려? 그렇게 상 많이 탔는데 또 타고 싶어?”

“부모님 좋아하시니까 그냥 하는 거지, 뭐.”


겨울의 말에 뼈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겨울은 미선이 항상 싫었다.

집안 잘 사는 미선이, 피아노에 재능 있는 미선이, 그러면서도 피아노에 미련 없는 미선이 항상 싫었다.


‘이번에도 또···.’


젠장. 또 콩쿠르 본선에 진출도 못 해보고 고꾸라졌다.

이번에는 그래도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세상은 강미선의 편만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이 하는 게 못난 것인 줄은 알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강미선만 저 멀리 훨훨 날아가버릴 것만 같았다.

잡을 수 없으면, 그래. 끌어내리자.


‘또 강미선만 상 타는 꼴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


그래서 겨울은 은밀하게 학우들에게 소문 한 가지를 퍼트렸다.


“보통 촌지를 두 개씩이나 주나?”

“촌지? 촌지를 왜 두 개씩이나 줘?”

“글쎄, 이건 비밀인데 ···미선이 어머니가 우리 피아노 선생님한테 촌지 주는 거 봤거든. 콩쿠르 관련해서 얘기하시던데.”

“뭔지 알겠다. 너네 선생님, 콩쿠르 심사위원 쪽에 연줄 있나 봐. 강미선 엄마는 그거 안 거고. 이번에 강미선 상 타면 다 촌지덕인 거지.”

“미선이가 그럴 줄 몰랐는데.”


촌지에 대한 건 물론 완전히 새빨간 거짓말이다.

은근히 흘리니, 알아서들 물꼬를 훌훌 틀었다.

겨울은 비집어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한창 이슈에 민감한 사춘기 때의 청소년들에게는 늘 물고 뜯고 씹을 희생양이 필요했고,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그 희생양이 교내에서 가장 유명한 미선이 되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말처럼, 한겨울의 자극적인 거짓말은 알게 모르게 퍼져 강미선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뭐? 그게 무슨, 나는 그런 거 한 적이 없는데.’


그저 헛소리로 치부해보려고 했지만, 동급생들은 진실이라 철썩같이 믿고 있는 분위기였다.

한 번 그런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자, 지금까지 미선이 받았던 모든 상과, 지금까지 쌓아 올린 미선의 실력에 대해 의심했다.

우스운 건, 한 번도 미선의 피아노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미선의 실력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을 끌어들이면 분명 쉽게 끝날 일이다.

하지만 상대는 같은 중학생.

중학생 사이의 지지부진한 일에 부모님까지 끌어들이긴 싫었다. 그렇지 않아도 바쁘신 분들인데, 이런 일로 더 바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콩쿠르에서 상을 타면, 촌지 덕 봤다는 기정사실이 다시 나돌게 될 것이다.


‘···이건 한겨울이 다 뺏어간 거야.’


미선은 콩쿠르 본선 무대에서 차마 피아노를 칠 수 없었다.


*


학생회관 복도 저 멀리서부터 미선의 연주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설마 누나 쉬지도 않고 계속 저러고 있었던 건 아니겠죠.”


미선을 제외한 멤버들은 저녁을 먹고 다시 합주실로 향하던 참이었다. 몇 번의 식사 권유에도 미선은 끝끝내 거부해 혼자 두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먹이지 않는 건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으로서 용납할 수 없어, 기현의 한쪽 손에는 포장한 햄버거가 들려 있었다.


“그런 것 같은데.”


벌써 몇십 번째 같은 구간만 연주하고 있었다. 도돌이표도 없는데 연주는 미친 것처럼 계속 반복된다.


‘하모닉스 공연 이후로 계속···.’


기현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합주실 문을 열었다. 어떻게 보나, 미선의 상태는 썩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강미선 씨.”


미선이 걱정스러웠다. 기현은 멤버들이 들어온 줄도 모르고 계속 연주에만 빠져 있는 미선을 불렀다.


“······.”


어떤 구간이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불러도 답이 없었다.


하지만 생각을 갖고 한 구간을 계속 친다기에는 소리도 평소와 다르게 무미건조하고, 표정도 없다.

마치 멍을 때리는 것 같다.


기현의 목소리는 신디사이저의 우렁찬 멜로디 사이로 섞여들었다.


‘정신은 있는 거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하모닉스 공연을 다녀오고 난 미선의 생각을 도무지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기현은 더 미선을 보챘다.


“강미선.”

“······.”


묵묵부답이다.


“강미선!”


기현은 미선의 어깨를 툭툭 치며 힘주어 불렀다. 미선은 화들짝 놀라며 기현을 돌아보았다. 그제야 멤버들이 돌아온 걸 깨달은 미선이었다.


“대체 왜 그래? 뭐가 문제야?”

“에? 제가? 내가 뭔 일 했나?”


미선은 그동안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얼굴이었다.


“그냥 단지 계속 연습했을 뿐이에요.”

“그냥 연습? 그게 그냥 연습이야? 방금 네 연주는 ‘연주’가 아니라 그냥 ‘소리를 내는’ 것에 불과했잖아.”

“그건···.”


미선의 눈앞에 콩쿠르 때의 일이 스쳤다.

억지로 콩쿠르 완주를 그만두어야 했던 일이, 자신을 두고 온갖 소문을 만들어내던 동급생들이, 자신을 비겁자 보듯 쳐다보던 시선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웃음기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흘끗 응시하던 한겨울의 눈까지.


불쑥 좋지 않은 생각이 떠올랐다.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아는데도, 좋지 않은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게 다 한겨울을 마주쳤기 때문이다.


미선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진 게 아닌가.


“미선아.”

“···네, 네?”


과거에 잠겨있던 미선을 기현이 꺼내올렸다. 기현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뒤에도 여전히 미선은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하모닉스한테 절대 안 져.”

“···정말 하모닉스에게 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직도 눈을 감으면 하모닉스의 음악이 들린다.

그들의 음악을 뛰어넘어야만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탈 수 있다.

우리, 할 수 있을까? 미선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내가 보장할게.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음악을 하자.”


끝없는 의문이 들 때쯤 들려오는 기현의 목소리. 숙였던 고개를 들자, 속에 있던 울음이 울컥 비집고 나왔다. 그래, 내게는 멤버들도 있고, 든든한 부모님도 있다.


“흐, 으으, 오빠···!”


북받치는 서러움에 미선은 기현을 껴안고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대성통곡이다.


“어, 어···?”


당황한 기현은 덤이었다.


작가의말

오늘의 곡

장기하- 뭘 잘못한 걸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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