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 축하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참가번호 99번 대중음악연구회입니다!”
기현이 선창하며 인사하면, 그 뒤를 멤버들이 따랐다.
오늘 그들이 사로잡아야 할 심사위원은 총 일곱 명.
1차 예선 때보다 많은 심사위원이 그들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나승연과 조철우 팀장이 있었다.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
나승연 팀장은 대중음악연구회를 보자마자 쾌재를 불렀다.
마음 같아서는 양팔을 마구 흔들며 인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녀는 무언의 눈빛으로 대중음악연구회 멤버들에게 모종의 신호를 보냈다.
'어, 나 팀장님이 여기에?'
의외의 장소에서 나승연 팀장을 만나게 된 대중음악연구회 멤버들도 눈에 띄게 반가워하는 얼굴이다.
‘쟤 뭐야?’
그녀 바로 옆에 앉은 조철우 팀장은 저 팀의 멤버들과 무언의 눈빛을 나누는 나승연 팀장을 수상하게 바라보았다. 대중음악연구회 멤버들도 뭔가 나승연을 아는 눈치였다.
‘1차 예선 때에는 얘네 심사도 안 봤으면서, 뭘 저렇게 반가워하는 거야? 팀 안에 아는 놈이라도 있나?’
나승연이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도 눈꼴사나운데, 서로 알 수 있는 사이라니까 더 꼴 보기가 싫었다.
“2차 예선을 위해 열심히 만든 곡입니다! 즐겁게 연주하겠습니다!”
기현의 말에 순간 장내가 술렁였다.
2차 예선을 위해 곡을 만들었다고? 그 짧은 시간 동안?
그 말인 즉슨, 이 팀의 자작곡은 1차 예선에서 선보였던 그 곡 외에는 없다는 뜻과 같았다.
2차 예선에 올라올 정도의 실력을 가진 팀이라면 대학가요제에 내볼 만한 자작곡 두어 개 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팀은?
2차 예선을 위해 ‘굳이’ 곡을 새로 만들었다.
설마, 자작곡이 한 곡밖에 없었을 리가. 원래 있던 곡이 성에 차지 않았나?
‘고작 2주 정도밖에 없었을 텐데, 그 안에 모든 걸 다 했다, 이 말이야?’
2차 예선곡도 1차 예선곡만큼이나 완성도가 높다면 이 팀은 당연히 본선까지 진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주어졌던 시간이 문제였다.
‘2주 만에 그 정도 곡을 가지고 올 확률은···? 많이 쳐줘도 20퍼센트? 30퍼센트?’
김성룡 피디는 속으로 대중음악연구회가 1차 예선곡처럼 완성도 높은 곡을 가져왔을 확률을 점쳤다.
주어진 시간을 가늠했을 때, 그만큼 좋은 곡이 나왔을 확률은 20-30퍼센트 가량밖에 되지 않았다.
‘그 확률을 뚫는다면 분명 천재이거나, 편법을 썼거나, 둘 중에 하나겠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대된다. 기대 이하를 보여줄지, 기대만큼을 보여줄지, 아니면···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지.’
기대됐다. 저 팀에게서 어떤 저력이 나올지.
“준비되셨으면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프론트맨의 발 박자가 신호라도 된 듯, 연주가 시작되었다.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되는 연주.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듯한 분위기.
분명히 포크는 포크다. 익숙한 포크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왔는지 이 영문 알 수 없는 반항적 사운드는···.
‘섹스피스톨즈?’
펑크다.
‘그러면 장르를 대체 뭐라 규정해야 하는 거야, 이 곡은?’
포크록? 펑크? 뭐가 뭔지는 몰라도 좋다. 재밌다.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이 팀은 분명히 본선까지 올라갈 것이다.
나승연 팀장은 자꾸만 웃음이 비죽여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역시 그날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래, 이 팀은 분명 뭔가가 있다.
신중현, 나훈아, 심수봉 같은 불세출의 천재에게만 있는 뭔가가.
‘내가 이 팀이랑 계약을 했다고? 와, 나승연 장한 년.’
믿기지 않는 현실에 웃음이 나오려는 걸 하도 참느라 깨문 입술에서 피가 나올 지경이었다.
‘얘들아,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 내 나이에 이런 거 보여주면 죽는다고.’
서른 중반이 훌쩍 넘은 나이.
많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완전히 적은 나이는 아니다.
출퇴근하는 것도 겨우 골골대며 하는 판인데, 갑자기 이런 엄청난 걸 보여주면 어쩌자는 건지.
‘얘들아 살살 해라, 아줌마 죽는다···.’
승연은 뛸 듯이 좋으면서도 제 예상보다도 더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자 난감했다.
김성룡 피디는 물밀듯 들이치는 대중음악연구회가 만들어내는 사운드의 향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1차 곡이랑은 장르가 조금 달라···?’
1차 예선곡과는 다른 분위기에 홀린 듯 빠져든다. 분명 비슷한 곡을 가져왔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이 팀에 빠져드는 기분이다.
반면 조철우 팀장은 이미 예상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1차 예선곡보다 좋은 평가 받기 위해 일부러 장르 비틀기를 한 건가?’
사실 이번 수는 조철우 팀장의 예상 내에 있었던 수였다.
‘나승연이랑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마음에 더럽게 안 들지만, 연주력이랑 가창력 하나는 좋으니 어쩔 수 없겠네.’
그는 나승연과 이 팀 사이에 뭔가가 있음을 이미 눈치챈 상태.
‘분명히 다들 합격 줄 텐데, 나만 불합격 주면 말 나오겠지.’
눈엣가시 나승연과 관련된 모든 거라면 엑스맨을 자처하고 싶은 게 그의 속내였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이 팀은 그럴 수 있는 팀이 아니었다.
조철우는 모두가 ‘네’ 할 때 자기 소신껏 ‘아닌데요’ 하는 사람이었으나, 이번만큼은 차마 아니라고 하지 못했다.
그가 듣기에도 이 팀은 아주 훌륭했다.
‘이 곡은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까.’
기현은 설레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처음으로 평가 받는 제 곡.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까, 설렌다.
카세트 플레이어, 음악에 맞춰 춤을 춰, 춤을 춰
새벽 안개부터 저녁 노을까지 춤을 춰, 춤을 춰
사람들은 말해. 젊음은 유한하다, 청춘을 재촉하라고.
먼 길을 떠나는 젊은이는 낡은 운동화 한 켤레와 카세트 플레이어, 더플백이 다인 단출한 짐을 챙겨, 발 닿는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잠시 방황해도 돼, 청춘의 방황은 여행일 뿐이야.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지라도, 즐기자 지금은.
춤추자.
청춘의 낭만 가득한 가사. 긍정적인 메시지가 곡의 분위기와도 잘 섞어 들었다.
‘살짝 서툴긴 한데, 풋풋한 맛이 살아있는 가사야. 하지만 그래서 더 이 대회의 취지에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어.’
승연은 설핏 웃으며 펜을 굴렸다. 이게 청춘이지, 가슴이 몽글몽글 벅차올랐다.
기현의 우렁찬 목소리가 소강당을 채웠다.
시원한 맛이 있는 목소리가 원래부터 하나인 것처럼 멜로디와 합일된다.
‘즐거워하고 있어.’
기현은 얼굴에 웃음이 감돈 심사위원들의 얼굴을 보곤, 어렴풋이 직감했다.
아, 2차 예선도 통과구나.
우리 정말로 본선 가는구나.
그렇게 연주는 진한 여운만 남긴 채 끝나버렸다.
‘1차 예선곡만큼 좋은 곡을 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보기 좋게 뭉개버렸어···.’
김성룡 피디는 심사를 끝마치지도 못하고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멍하니 어물거리기만 했다. 2차 예선은 심사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결과를 발표했다.
당장 결과를 발표해야 할 김성룡 피디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다른 심사위원들이 술렁였다.
“······.”
“피디님, 피디님!”
기현은 당황스러웠다. 좀 전까지만 해도 생글생글 웃던 사람들이 갑자기 왜 아무런 말도 없는 건지.
멋지게 끝냈다고 생각하는데, 뭔가 문제가 있었나?
“그래서 결과는요? 저희 탈락인가요?”
김성룡 피디의 맹한 정신을 깨운 건 기현이었다.
다그치는 것 같은 기현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김성룡 피디는 정신을 되찾아, 허둥지둥 2차 예선 발표를 시작했다.
“본선··· 축하드립니다.”
김성룡 피디의 입에서 ‘축’ 소리가 튀어나오자마자 대중음악연구회 멤버들은 서로 얼싸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더 볼 필요도 없었다. 압도적인 만장일치였다.
*
심사가 끝난 시간, 조철우는 집으로 돌아가려던 나승연을 붙잡았다.
“99번 애들, 어땠어?”
나승연은 갑자기 이런 걸 물어보는 조철우가 의아했다. 대체 저 놈이 왜 날 붙잡고 이런 걸 묻는 거지? 견원지간인 두 사람이기에, 당연히 의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왜 물어보는데?”
조철우는 웃음을 옅게 터트렸다. 양손을 들어 보이며 나는 너와 전혀 싸울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그는 그녀에게 정보만 캐내고 싶은 것일 뿐이다. 굳이 힘 빠지게 불필요한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았다.
“왜 물어보느냐니. 궁금해서 그렇지. 난 걔네가 특히 잘하더라.”
음흉한 속내는 잠시 숨겨두었다. 뻔뻔할 정도로 천연스러운 말투가 조철우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잔뜩 경계 세웠던 나승연이 조철우에게 경계를 허물게 된 건 한순간이었다.
저 녀석도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얼굴만 봐도 싸우는 사이지만, 그래도 같은 회사 동료라, 이건가?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했지?”
나승연은 뭐가 좋은지 생글생글 웃으며 조철우를 바라보았다.
조철우는 나승연이 저렇게 뭘 좋아하는 건 처음 봤다.
‘분명 뭐가 있기 때문에 저렇게 지 일인 것처럼 좋아하는 것일 테지.’
조철우의 음험한 촉은 나승연을 향하고 있었다.
“어, 데뷔시키고 싶을 정도로.”
나승연은 조철우도 인정할 자신의 그 혜안에 감탄했다.
‘역시 나승연, 감 안 죽었다니까. 저 녀석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그녀는 혼자 쾌재를 불렀다.
“야, 조철우. 이거 비밀인데, 안 그래도 쟤네 내가 무조건 데뷔시킬 거야. 미쳤지?”
나승연은 작은 목소리로 조철우에게 속삭였다.
‘역시나 뭔가 있긴 했구만?’
조철우는 비릿하게 웃었다.
- 작가의말
오늘의 곡
마그마- 알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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