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화. 서투르지만 조금씩
나르여앙은 마왕의 장갑 때문에 마족의 모습이 애매하게 섞여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왕 점까지 생긴 표식까지 생기니 영락없는 몬스터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앙피의 수하에 들어갔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싫어. 흐어엉. 저딴 놈 소환수로 살긴 싫다고.”
나르여앙이 너무 대놓고 싫어하자 앙피도 영 마음이 찝찝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한시라도 빨리 보내주기로 했다.
오른섬이나 복구하러 말이다. 그녀가 부순 영토니까 복구도 직접 해야지.
“뭐..? 그걸 나 혼자 어떻게 해! 그럼 장갑, 장갑이라도 돌려줘!”
“아... 그거 이미 마왕님 드렸는데요..?”
앙피 뒤에는 어느새 마왕이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럼 그렇지 죽음을 앞둔 자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렇게나 태평했던 이유가 다 있었다. 그 옆에는 여전히 환한 표정의 고브가 같이 서 있었다.
마왕 역시도 마계를 다스리는 자리였기에 앙피의 계획이 꽤 흥미로웠다. 일부러 모든 인질을 없애며 자신의 약점을 없애고 상대를 당황시키다니.
게다가 그 수많은 목숨을 없애는 버튼을 별 고민도 없이 누르는 모습.
마왕은 앙피를 바라보며 참 탐나는 인재라고 생각했다.
물론 앙피는 정작 그런 계획 따위 없었단 걸 안다면 마계에도 담을 수 없는 순수악이 느껴지겠지만 말이다.
앙피는 딱히 그런 치밀한 계획은 없었고 그냥 마왕이 진짜 죽으면 자신의 소환술로 마왕이 나올 때까지 뽑기나 할 생각이었다. 심리적으로 압박받던 앙피의 무식한 계획이었다.
“됐고! 그럼 나 못 해! 어떻게 나 혼자 섬을 복구해! 나보고 맨손으로 흙이나 퍼 나르라는 거야?”
나르여앙은 팔짱을 끼고 완고한 자세를 보였다.
앙피도 맨손으로 그 넓은 오른섬의 손가락을 다 복구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주변을 살펴봤다. 그리고는 옆에 남아있던 쓰레기 산에서 삽 하나를 꺼내서 그녀에게 건넸다.
“뭔데. 이걸 왜 날 줘?”
“ㄱ.. 그걸로 흙 퍼내면...”
그녀가 복구해야 하는 곳은 마을 5개 분량의 대지. 맨손과 삽의 차이가 무색할 정도였다.
앙피는 그녀가 더 투덜대기 전에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나르여앙은 얼떨결에 삽을 품에 꼭 안고 오른섬의 엄지 쪽으로 몸을 돌렸다.
“ㅈ.. 잠시만! 이 삽 망가졌잖아! 가운데 구멍 뚫려 있다고!! 야···!”
앙피를 향한 원망의 목소리는 점차 멀어지더니 이내 들리지 않았다.
“장갑이 있으니 힘이 돌아온다! 힘을 미리 옮겨두길 잘했구나.”
뿔이 사라진 마왕이 기쁜 듯 고브에게 장갑을 자랑하고 있었다. 고브는 옆에서 그저 웃으며 그를 사랑스럽게 쳐다볼 뿐이었다.
주변에는 뭔지 몰라도 큰일을 해냈다는 뿌듯한 모습의 소환수들이 줄지어 있었다. 딱 봐도 세상을 구한 일에 동조한 기분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이를 흡족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후후후. 이 몸 덕에 잘 해결되었군. 역시 난 영웅이 될 몸이었는가...”
나영웅, 그래 그는 정말 이름대로. 이름대로... 뭘 했더라?
“...병....ㅅ....”
비비가 누구한테서 배웠는지 모를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누구가 이제야 생각났는지 나영웅이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카힐 양은 어딨나? 아까부터 안 보이는군.”
“모라....”
비비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 역시도 카힐을 보지 못했다.
한편, 그건 안중에도 없는 앙피는 마왕과 대화를 나누더니 나영웅에게 다가왔다.
“저.. 이제 가볼게요.. 마왕님이 대마법사가 있는 중섬까지 보내주신대요. 그 혼자 가려는 건 이제 아무래도 제 일은 제가 마무리를... 그러니까 어차피 다 끝났으니까 마무리라도 저 혼자... 절대 공을 가로채려거나 하는 건 아니고...”
앙피는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지 횡설수설했다.
“여전히 능력을 없앨 생각인가.”
“네.. 아무래도 소환수라는 게 목줄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앙피는 말끝을 흐렸다. 원체 시원하게 말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평소보다 더 답답했다.
“알았네. 조심히 갔다 오게나.”
나영웅은 그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앙피도 힘겹게 선택하고 있단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소환수의 자리를 답답하게 여기는 이는 없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다들 밝은 모습으로 떠들고 있었다. 누가 소환수고 누가 주인인지 구별이 안 가게.
“준비는 됐나?”
마왕이 다가와 장갑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제는 잠시 소환수들과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시간이었다.
앙피는 잠시 소환수들을 바라봤다. 다들 별 걱정 없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나 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나영웅과 비비에게 인사를 할까 하다가 말았다.
“그럼 조심히 가라.”
마왕은 장갑에서 검은 먹구름을 만들어내 그대로 앙피를 태워 중섬으로 날렸다.
“조심히 갔다 오게 마스터!”
“아으피...!”
나영웅과 비비가 먹구름을 향해 손을 흔들었지만, 앙피는 얼굴을 파묻은 채 그들을 내려다보지도 않았다.
어차피 다시 만날 거고 그때는 소환수와 소환술사의 관계가 아닐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간지러웠으니까.
그렇게 앙피는 무사히 바다를 건너 왼섬과 오른섬의 정중앙, 중섬에 도착하게 된다.
***
대마법사가 만들어낸 섬, 중섬. 마치 심장을 본뜬 모양의 이곳은 오른섬의 모든 사람을 대피시킨 곳인 만큼 그 크기도 작지 않았다.
오른섬의 사람들은 새로운 터전을 닦느라 바빴고 대마법사 역시도 그들을 돕느라 하루하루 바쁘게 살고 있었다.
왼섬으로 돌아가기로 한 날이 한참 지났음에도 차마 이들을 버리고 갈 수 없었다.
그렇게 부산스럽고 정신없는 중섬에 앙피가 홀연히 나타났다.
먹구름 위에서 바라본 중섬은 생각보다 더 넓었다. 대마법사가 대단하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 규모의 섬도 만들어낼 수 있다니. 중섬을 다 뒤지려면 왼섬에서 돌아다녔던 발자국 수로도 모자라 보였다.
“... 여기서 대마법사를 어떻게 찾지....? 으아...”
그러나 마왕과 대마법사는 그의 생각보다 더 대단한 자들이었다. 마왕은 중섬 안에서도 정확하게 대마법사가 있는 곳으로 앙피를 날려 보냈고 대마법사 여기 하늘에 나타난 앙피를 단숨에 감지했다.
대마법사는 앙피가 타고 있던 먹구름을 즉시 없애버리고는 앙피를 자신의 앞으로 이동시켰다.
“마왕의 힘이구나. 마왕군이느냐?”
대마법사의 목소리는 의외로 평범한 노인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흔들림 하나 없는 올곧은 목소리였다.
앙피는 우물쭈물 지금까지의 여정을 그에게 낱낱이 설명했다.
대마법사는 매서운 눈빛으로 이야기를 듣다가 점점 표정이 풀리더니 이내 경계심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그런 모험을 했다니. 대단하구나. 그래, 그렇게까지 하며 나에게 부탁할 소원이란 게 뭐냐?”
“소환술...”
앙피는 목에서 무언가 걸린 듯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는 마른침을 연신 삼키고는 다시 말했다.
“소환술이란 능력을 없애고 싶어요...”
“흠.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네... 그거면 돼요...”
“참 특이한 아이구나. 본디 지금까지의 녀석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려 했거늘, 오히려 자신의 것을 내려놓으려 하다니. 끌끌. 따라와라.”
대마법사는 앙피를 데리고 자신의 거처로 갔다.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그도 신은 아니었기에 결국 마법으로 소원을 이루어줘야 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없었지만, 애초에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인 대마법사였다. 그 덕분에 이것저것을 다 들어주다 보니 대마법사가 되었다. 대마법사는 앙피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해줄까 하다 말았다. 저번에도 오른섬에서 온 어린애한테 이 이야기를 했다가 ‘노잼 할부지’라는 별명을 얻어버렸으니까.
그의 거처는 조촐한 천막으로 지어졌는데 안에는 온갖 양피지가 가득 있었다. 그는 양피지 이것저것을 펼쳐보며 적당한 주문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자신의 능력을 없애는 주문은 없었다. ‘돈을 주세요!’ 같은 소원이면 미리 작성해둔 마법 주문으로 10골드 정도 손에 쥐여주면 끝인데.
“10골드로는 만족 못 하느냐? 내 지금 오른섬의 사람들을 돕느라 바쁘단다.”
“느에...”
“그럼 주문을 아예 새로 써야겠구나. 밖으로 나오거라. 바로 시작하지.”
대마법사는 빈 양피지 하나와 깃펜을 챙겨 천막 밖으로 나갔다. 앙피는 마법의 정점으로 가득한 그곳을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바쁜 그를 방해할 수는 없었기에 고개를 털고 따라 나갔다.
앙피는 대마법사의 말을 따라 그와 마주 보고 섰다. 대마법사는 발밑에 하도 복잡해서 정신이 아득해질 수준의 마법진을 그렸다. 지금까지 없던 마법 주문이니 그도 공들여 그렸다.
“그럼 시작하마. 내 집중해야 하니 주문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얌전히 마법진 안에서 기다리거라.”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마법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양피지를 공중에 펼쳤다. 손에 들고 있던 깃펜은 두둥실 떠오르더니 마치 공연을 준비하듯 양피지 위에 사뿐히 착지했다.
“현계의 어머니여 그대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대마법사가 앙피의 소환술 주문과 비슷한 느낌의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ㄴ.. 난 저런 말 절대 못 하겠던데... 역시 다르다...’
앙피는 별 이상한 곳에 존경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대가 내려준 축복을 저주로 받아들이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계의 어머니시여, 그대의 축복을 다시 걷어주소서. 또한···.”
대마법사의 말을 따라 깃펜이 양피지를 달리며 주문을 써 내려갔다. 양피지를 가득 채우려면 아직 멀었다. 이 양피지가 가득 찰 때까지 정해진 주문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계속해서 읊어야 하는 중노동이었다.
점점 채워져 가는 양피지를 보고 있자니 앙피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분명 그토록 고대했던 일인데 왜 이렇게 가슴이 떨릴까. 아 그래...
“ㄷ... 돈은 얼마까지 가능해요...?”
돈을 무한으로 받는 소원이 더 가치 있지 않나 생각한 앙피였다. 덕분에 대마법사는 잠시 주문을 읊는 것을 멈추고 앙피를 노려봤다.
앙피는 그 눈빛에 깨갱 꼬리를 내렸다.
“ㅇ..아.. 죄송해요... 계속해주세요...”
“흠. 어디까지 말했더라. 그래, 여기부터군.”
다행히 대마법사는 주문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그리고 이내 발밑의 마법진이 진동하며 빛났다. 모든 걸 지워버릴 듯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주변의 빛을 모두 삼키고는 사라졌다.
몇 초가 흐르고 나서야 주변의 빛이 서서히 돌아오며 앞이 보였다. 대마법사의 조금 지친 얼굴이 보였다.
“소원은 들어줬다.”
“그럼.. 이제 걔네는 자유죠..?”
“걔네라니. 누구 말이냐.”
“제 소환수들이요..”
“무슨 소리느냐. 소환술과 소환수는 한 몸과 같다. 소환술이 사라졌으면 응당 소환수도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게다.”
앙피는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소원은 능력을 없애는 거지 소환수까지 없애달라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너무 빨리 대마법사를 만나고 일이 척척 진행되던 탓에 그런 세부 사항을 말할 틈이 없었다.
“ㅇ.. 아...”
앙피는 신음에 가까운 탄식이 목을 비집고 나왔다.
그러나 기껏 시간을 내서 도와준 대마법사에게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앙피는 감사 인사만 흐지부지하고는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그래. 원래부터 소환술을 없애려고 출발한 여정이었다. 그사이 소환수와 잘 지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지만, 그들도 어쨌든 원래 세계로 돌아갔다면 잘 된 것이다.
겉으로는 이곳에 적응한 것 같이 보여도 그들도 고향이 그리웠을 것이다. 정 보고 싶으면 나중에 대마법사한테 부탁하면 된다.
“그러면... 되겠....”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며 걷다 보니 앙피는 어느새 바다가 보이는 절벽까지 걸어왔다.
쏴아-.
잔잔한 바람과 조용한 파도 소리.
텅 빈 바다를 보며 앙피는 절벽 끝에 걸터앉았다.
바다의 수평선 끝에 왼섬과 오른섬이 걸려 있었다. 멀리서 보니 그저 작은 점에 불과했다.
그런 곳에서 우당탕 그 자체였던 여정을 끝마쳤다. 이제는 능력도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 오랜만에 푹 잠에 들 수도 있었다.
“헤... 헤헤...”
앙피는 일부러 웃어봤다.
분명 능력을 없앴으니 두통과 불면증은 사라졌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지끈거림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사실 앙피는 이미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에 인사를 하고 오지 않았음이 후회되었다.
“나영ㅇ... 비ㅂ...”
절벽의 끝에는 그들을 닮은 꽃이 피어 있었다. 양분을 잔뜩 머금듯 두터운 꽃과 시들시들해 보이면서도 밝은색의 꽃.
그리고 그 옆에는 줄기가 꺾인 채 시든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카힐의 피부처럼 하얗디하얀.
“카힐 님.... 죄송해요....”
앙피는 왜 카힐만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지 짐작이 갔다.
이곳에서 죽으면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 그러나 돌아간 원래 세계에서 죽었다면, 이곳에 다시 소환될 수도 없었다.
카힐은 본디 마계에서 살았으니 그곳에서 무슨 일을 당했을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앙피는 시든 하얀 꽃을 끌어안았다.
“카힐 님. 평생···.”
“뭐 진짜 뒤진 줄 알겠네 임마.”
“...? 훌쩍....?”
앙피는 환청마냥 들려온 카힐의 목소리에 급하게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카힐이 떡하니 팔짱을 끼고 앙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얗던 피부도, 매혹적으로 날카로운 눈매도 그대로였다.
“마계에서 죽으신 거 아니에요...?”
“뭔 개소리야. 마계 여기보다 살기 좋다니까!? 그보다 넌 왜 울고 있냐?”
카힐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앙피의 볼을 쓸었다. 사실 그녀 역시 오른섬에 소환되었지만, 죽었다 다시 소환된 탓인가 구속구가 사라져 자신의 속도를 주체하지 못했다. 덕분에 이리저리 뛰다니며 힘을 제어하고 나서야 뒤따라온 것이었다.
그리고 카힐을 따라 당연히 그들도 왔다.
“후후후. 마스터도 어엿한 어른이 되어간다는 증거일세.”
“아응피... 싸이코는 안 우러...”
“어...? 두 분까지... 어떻게... 대마법사가 분명 소환수는 다 없어졌다고...”
앙피는 환각을 보나 싶어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그때 대마법사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는 나영웅과 비비 사이를 비집고 나와 아까 그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이야, 미안하구나. 아까 주문이 잘못됐구나. 여기 이 부분에 네가 쓸데없는 돈 이야기로 끼어드는 바람에 말이다.”
대마법사가 꺼내든 양피지 중간에 앙피의 잡담이 섞여 있었다. 그도 소환술사던 탓에 주문에 혼선을 줬던 모양이다.
대마법사는 삐질 흘러나오는 땀을 소매로 닦고는 망친 주문이 적힌 양피지를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새 양피지를 꺼냈다.
“그러니 지금 다시 해주마. 기다려봐라.
현계의 어머니여 그대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대가···.”
“잠시만.. 잠시만요!!”
앙피는 급하게 대마법사의 양피지를 손으로 가리며 또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지금 앙피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거 아닌가? 그래서 저 셋을 포함한 소환수도 사라지지 않은 것이고.
앙피는 잠깐 그들을 바라봤다. 그 외에 대화는 오가지 않았음에도 앙피와 카힐, 비비 그리고 나영웅은 같은 생각을 했다.
“저 괜찮아요. 능력 안 없애주셔도 돼요..!”
앙피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대마법사는 그들을 잠시 바라보고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진작부터 앙피가 이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마법사가 본 앙피는 소원이 필요 없어 보였으니까.
“그렇구나. 알았다.”
“대신 돈 주세요.”
“?”
그래, 앙피를 단숨에 파악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게 아무리 대마법사라 해도 마법으로도 알 수 없는 게 앙피의 생각이었다.
“10골드짜리 말고 100만 골드짜리로 해주세요.”
“이런 영악한 녀석이...”
***
소원으로 돈을 두둑이 받아낸 앙피 일행은 대마법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시발 마을’로 돌아왔다. 앙피 일행을 보내주던 대마법사는 오른섬의 주민 전부를 돕던 것보다 더 피곤한 표정이었다.
마을엔 촌장 취임식이 열린 탓에 외각은 텅텅 비어있었다. 앙피의 식당에도 아무도 없었다.
“근데 너 잠은 어떡하려고? 능력 안 없애면 시야 공유 때문에 못 자잖아. 애초에 그거 때문에 여길 떠났는데 해결 못 하고 돌아와 버렸네.”
카힐은 식당 의자에 드러눕듯이 앉았다.
고모를 찾느라 식당 안을 돌아다니던 앙피가 터덜터덜 걸어와 답해주었다.
“그거요... 사실 중간부터 알았는데... 친해진..? 가까워진..? 소환수의 시야는 공유 안 받아요...”
“후후후. 그렇군. 자신의 소환수에 무지한 마스터였으니. 강제로라도 소환수에 대해 알게 하기 위한 시야 공유였군.”
“엥? 뭐 그런 병신 같은 능력이 다 있냐.
그럼 내 시야는 아직도 공유받겠네? 나 친해지기 어려운 스타일이라.”
“카힐 님은 시야 공유 끊긴 지 꽤 됐어요,..”
“카힐 양도 마스터를 본받아 솔직해질 필요가 있네. 아직도 어린애처럼 구는군.”
“뭐래 돼지. 넌 한국으로 안 돌아가냐!? 이제 다 끝났으니까 갈 사람은 가지 그래.”
카힐이 툴툴대면서도 슬쩍 나영웅의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나영웅은 익숙한 웃음을 지으며 앙피를 바라봤다.
“아직이네. 아무래도 마스터가 아직 모험을 끝내지 않은 모양이라.”
“소풍....!”
비비도 이미 눈치를 챘는지 환하게 웃으며 앙피의 등에 매달렸다. 가장 늦게 눈치챈 카힐이 급하게 의자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뭐야 또 어디 가?”
“네 아무래도... 한 번 더 여정을 떠나려구요... 저 아직 친해지지 못한 수환수가 많아서...”
이전의 여정과 목표는 똑같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혀 다른 과정을 밟게 될 것이다. 본래 인연을 없애는 것보다는 새롭게 만드는 것이 더 어려우니까.
앙피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한 분 한 분 다 찾는 거. 엄청 위험하겠죠...?”
“왜 또 우리만 가라고?”
“아뇨. 위험하니까 같이 가요.”
앙피는 활짝 웃으며 먼저 밖으로 나갔다.
“쟤도 많이 변했네. 처음에는 정신병자인 줄 알았는데.”
“후후후. 카힐 양도 많이 변했네. 그럼 어서 쫓아가지. 우리 마스터는 약하니까.”
나영웅은 그렇게 말하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엥. 나 변했어, 비비?”
“으어.”
“그런가... 뭐, 너도 변했어. 좋은.. 뜻으로!”
카힐은 잠시 생각에 빠지려다 바로 관두고 비비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돈은 많네.”
“아... 그거 고모 방에 두고 왔는데요....”
“아니... 하... 그래 잘했어...”
앙피 일행의 여정은 계속된다. 앙피의 사회성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
- 작가의말
완결까지 읽어주신 독자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자세한 건 <후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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