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하하호호 대작전...?
앙피의 원래 계획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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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가 친절히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하이드로 님을 찾고 있어요.”
그러면 상대가 답하겠지.
“네. 어서 오세요. 이쪽에 계십니다.”
그리고는 즐거운 파티 분위기 속에서 하이드로와 대화하는 거야.
“하하. 대마법사요? 여기 저랑 같이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대마법사입니다. 당장 능력을 없애 드리죠. 뿅”
그럼 감사 인사를 하는 거지.
“감사해요. 복 많이 받으세요.”
“하하.”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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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이게 뭐야....’
파티장에 등장한 앙피 일행은 어느새 포박되어 무릎을 꿇고 있다. 앙피의 완벽한(?) ‘하하호호 대작전’은 시작부터 망해버렸다.
“으아아.. 우린 혁명군이 아니에요..!”
손발이 밧줄로 꽁꽁 묶인 앙피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너희가 ‘혁명 여관’ 같은 곳에서 나왔다는 정보를 들었다. 어딜 발뺌을!”
(글쎄, 여관 이름은 그냥 멋있어 보이게 지은 겁니다 판사님 - 혁명 여관의 히키 올림)
랭킹 1위의 남자, 게르봇치가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감히 이 신성한 파티를 망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오른섬에 마왕이 태어났다더니. 이 마족과 좀비를 보니 거짓이 아니었군.”
“으아아... 얘넨 그냥 하급 소환수들이에요...”
“거짓말 마라. 피부도 하얀 게 마치···.”
“으아악! 그 발언은 안 돼요!”
포박당한 앙피가 게르봇치와 열심히 티키타카를 하는 사이 카힐은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봤다.
이미 구속구를 하고 살던 카힐을 포박해도 아무 차이가 없다. 덕분에 카힐도 익숙한 듯 앉아 주변을 살폈다.
분명 파티라고 했는데 조명도 어둡고 방 안에는 푹신한 쿠션과 소파가 가득 차 있다. 음식과 노래 하나 없는 이곳이 정말 파티장이라고?
카힐이 포박되어 꼬꾸라져 있는 비비를 툭툭 치며 말했다.
“비비. 뭔가 이상하지 않아?”
“꾸엉?”
누가 비비를 묶었는지 몰라도 비비 팔꿈치가 거꾸로 돌아가 있다. 좀비라고 막 다루다니, 못된 사람들 같으니.
“쟤네. 너 친구 아니냐?”
카힐이 파티장 여기저기 널브러진 랭커들을 가리켰다. 정말 그녀의 말대로 하나 같이 좀비처럼 움직였다.
“쿠에에엙!!”
그 모습에 흥분한 비비가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좀비 친구라니. 드디어 대화가 통할 상대가 나타났다!
그녀에게도 나름의 좀비어가 있다. 다 비슷한 것 같아도 억양이 다르단 말이다. 마치 “어.” 한 글자로 모든 대답이 가능한 한국어와 비슷한 결이다.
“어딜 가! 이 더러운 좀비 녀석!”
게르봇치가 좀비 비하 발언을 하며 파티객들에게 달려들려는 비비를 막아섰다. 카힐이 다시 한번 인종차별 드립을 치기도 전에 비비가 참지 못하고 그를 물어버렸다.
누가 봐도 좀비처럼 게르봇치의 팔뚝을 입에 가득 물은 것이다.
“쿠에에엙!”
하지만 사실 좀비는 썩은 살점을 갖고 있기에 치악력이 인간의 살을 뜯을 정도로 세지 않다. 그렇다고 날카로운 이빨도 아니고.
“으아악! 더러운 침이 내 팔에 묻었어!! 어서 닦···.”
삐이-
게르봇치가 그대로 기절했다.
그러자 헬퍼들이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온갖 약을 투여했다. 덕분에 게르봇치는 정신을 되찾았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비비를 노려봤다.
“이 징그러운 계집애를 죽여!”
그 말에 헬퍼 하나가 즉시 비비의 머리통을 깨버렸다. 물론 머리가 깨진다고 비비가 죽진 않지만 말이다.
“너희의 혁명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보여주지. 우린 왼섬의 통치에서 독립할 거다. 바로 이 엄청난 신문물을 통해!!”
‘...! 안 궁금해...’
“그보다 하이드로 님은 어딨어요..?”
“보여주마!! 우리의 궁극의 약물을!!! 쿨럭···.”
삐이-
게르봇치가 지나치게 흥분했는지 피가 쏠려 또 기절했다.
“...한심하다....”
“다시. 보여주마! 이 궁극의 약물을!”
게르봇치가 텐션을 조절하며 작은 포션병을 꺼내 들었다. 그 병에는 검은색의 기름진 액체가 담겨 있다.
그는 그 기분 나쁜 액체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가 앞에서 마시는 것만으로도 악취가 코를 찔렀다.
“으엑.. 저런 걸 어떻게 먹어...”
이상, 토마토 딸기 개불 스프를 만든 자의 감상평이다.
“흐흐흐흫.”
한편 약물을 들이마신 게르봇치의 상태가 이상했다. 동공이 풀리면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난 강해졌다.” 같은 소리나 하고 있다.
앙피 일행의 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다른 헬퍼나 파티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 눈에는 정말로 게르봇치의 모습이 변한 것처럼 보이는 건가.
그래. 이곳은 약한 마을. 진짜로 약한(drug) 마을이다.
어느 샌가부터 약물을 들어와서는 그 맛에 취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랭킹이 높을수록 많은 약물을 받게 되니 약한 마을인들은 하나같이 더 약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근육이 생기지 않게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영양이고 나발이고 끼니도 제때 챙겨 먹지 않는다.
그리고는 때마다 찾아오는 약물을 받아서는 이렇게 파티를 여는 것이다.
특히 오늘 파티는 하이드로의 역작, 즉 약물의 최종본, ‘바르바닥god’이 풀어졌다.
“이 약. 이 약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누구든 강해지는 거라고.”
“...약함을 원하는 게 아니었어요....?”
앙피가 정곡을 찔렀다.
“그래. 이 약은 약할수록 더 강한 힘을 줘. 랭킹 1위의 내가 정말 1위가 되는 거다. 게다가 이런 응용도 가능하지.”
게르봇치의 손짓에 헬퍼들이 웬 근육맨 하나를 데려왔다.
“크흑. 나영웅 님...”
말하는 걸 보니 혁명군인 듯하다. 아니, 자세히 보니 문박이다. 앙피 일행을 기차로 태우고 나서 바로 잡혀 왔다.
게르봇치는 그 약물을 꺼내고는 문박에게 강제로 들이밀었다.
“윽! 뭐얏 이 꼬순내는!”
문박은 헬퍼 여러 명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약물을 강제로 마셨다. 약물을 들이마신 그는 “의외로 딸기맛!”이라는 감탄사만 뱉고는 정신이 멍하니 나가버렸다.
“봤느냐! 약하면 강해지지만 강하면 약해지지! 이런 멍청한 근육을 달고 있는 놈들을 뇌까지 근육으로 만드는 약이다!”
헬퍼가 하나같이 멍하니 명령만 따르는 게 바로 이 때문이었다.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니.
“문박. 가고 싶은 데로 간다.”
한편 머리가 터진 비비 쪽.
“우어어어.”
어느새 머리를 복구한 비비가 파티객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녀가 열심히 좀비어로 말을 걸었지만 아무도 응답해주지 않았다.
“우어어?”
“쿠에엑.”
“꾸어어어!”
위 대화는 비비가 인사를 건넸지만, 상대가 얼떨결에 좀비어로 욕을 했고 화가 난 비비가 달려들어 물어뜯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때. 파티장 한구석에 수상하게 생긴 문 하나가 서서히 열렸다.
스윽-. 기름칠이 아주 잘되어 부드럽게 열린 문. 그리고 그 사이로 남자 하나가 걸어 나온다.
커다란 늑대 가죽을 통째로 둘러쓴 모습이 마치 늑대가 걸어 나오는 듯했다.
“아까부터 시끄럽다. 갸르륵.”
말끝에 그르렁대는 소리를 내는 이 남자가 바로 하이드로다.
그는 짐승 사이에서 살아남아 이젠 짐승의 체취를 마음대로 구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체취를 이용해 만든 것이 바로 ‘바르바닥god’. 마약처럼 강력한 중독성을 풍기는 꼬순내를 가득 담아 만든 것이다.
하이드로는 이를 이용해 암시장과 뒷세계를 제패했다.
현재 손바닥을 점령한 ‘자믄뵈아크’ 또한 그의 휘하에 있다. 도끼를 들고 앙피를 인질로 삼았던 그 무리가 소속된 곳 말이다.
그 때문에 그는 뒷세계에서 이렇게 불린다.
광견병 하이드로.
“아이고! 하이드로 님. 별일 아닙니다. 반란군들이 생겨서 말입니다.”
혹여나 그의 심기를 건들까 게르봇치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이드로는 날카로운 눈으로 앙피 일행을 훑었다. 그의 차가운 시선에 파티장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초대받지 않는 녀석들이로군. 내가 처리하지. 갸르릉.”
하이드로가 마치 진짜 짐승처럼 몸을 부풀렸다. 그의 몸에 달린 늑대 가죽의 털도 바짝 세워졌다.
그는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두 손을 바닥에 짚고는 앙피를 곧장 노려봤다.
그리고 앙피는 눈물을 한껏 머금은 채 벌벌 떨고 있다. 하지만 두 손발이 묶인 앙피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다친 토끼를 늑대가 놓칠 확률은 없다는 소리다.
‘...카힐 님이 항상 이런 기분이었나...?’
앙피는 손에 묶인 줄을 풀려 두 손목을 비벼댔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전투 준비. 그르렁.”
하이드로의 명령에 헬퍼뿐만 아니라 약에 취해있던 랭커들까지도 앙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이드로의 약물을 마신 자는 하이드로의 노예가 된다. 그는 정말로 뒷세계의 왕, 그 자체다.
그리고 그 순간.
하이드로가 엄청난 속도로 도약해 앙피에게 달려들었고 그 뒤로 파티장 안의 모두가 따라 달려왔다.
“죽어라! 갸르르륵!”
온다. 시작되었다. 하이드로의 사냥이.
그가 어떻게 뒷세계의 왕이 되었는지 그 이유가 밝혀질 시간이다.
지금,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잔혹한 사냥이 시작···.
“앉아.”
쿠당탕-
앙피의 단호한 명령에 하이드로가 그대로 자빠져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 하이드로의 가슴팍에서 앙피의 소환수 문양이 웅웅 빛나고 있다.
그가 멈춰서자 뒤따라오던 인물들도 전부 목적을 잃은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앙피는 떨리는 숨을 가늘게 뱉었다.
‘안 싸우면 되지. 뭐만 하면 싸움, 싸움. 전투에 미친 마을이 분명해.’
전투, 갈등, 고민.
이런 건 앙피와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면 앙피는···.
“..불 좀 켜주세요... 어두워서 눈 아파요...”
자신밖에 모르는 사회성 제로니까.
- 작가의말
선호작과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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