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새로운 섬 모양이 참 뭐 같네
쏴아아-.
앙피를 태운 배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오랜만이군. 오른섬으로 가는 사람이라니.”
“엥. 최근에 대마법사인가 뭔가 갔었지 않아?”
“맞소. 그냥 이런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나르여앙이 말한 항구에는 조그만 배 한 척이 있었다. 앙피 일행이 들어가면 몇 자리 안 남을 정도의 작은 배였다. 아마 오른섬과의 왕래가 적은 결과일 것이다.
배의 선장도 오른섬 사람으로 앙피 일행을 데리러 건너왔다고 했다.
“오른섬까지는 얼마나 걸리냐?”
“한 3시간 내로 도착할 거요. 아마.”
“좀 걸리겠네.
야, 나영웅! 앙피는 아직도 그대로야?”
“그렇다네. 그래도 토는 멈췄군.”
앙피는 배를 탄 지 고작 10분 만에 멀미를 하며 뻗었다. 딱히 파도가 세지 않았는데도 멀미가 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잠을 잘 수도 없는 지옥과 같은 시간 속에 앙피는 흐물흐물해졌다.
“ㅇ.... 오지 말걸......”
그런 주인을 놔두고 카힐은 바다나 구경하고 있었다. 어느 방향을 봐도 끝없는 수평선만 펼쳐졌다. 카힐은 그런 탁 트인 풍경이 왠지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런 그녀 옆으로 선장이 뭔가를 주섬주섬 가지고 다가왔다. 잡동사니 같은 것과 무기를 이것저것 가져온 것 같았다.
“이거 들고 계시게. 그리고 웬만하면 선박 밖으로는 안 나오는 게 좋을 거요.”
“아 나 수영할 줄 알아.”
“그 소리가 아니요. 원래 이쪽엔 늘 나타나는 바다 괴물이 있어서 그러네. 근데 이상하군. 원래 나타나도 한참 전부터 나타났어야 하는데.”
바다 괴물이라, 카힐은 왠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검지에도 털북숭이 호수 괴물이 있었다. 그놈도 알고 보니 앙피의 소환수였지.
카힐은 혹시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그 괴물 몸에 혹시 양파처럼 생긴 문양이 있냐?”
“어떻게 안 거요? 맞소. 그놈 오른쪽 눈 옆에 그려져 있지. 생긴 것도 이상하더니, 역시 마왕군이요?”
“아니야. 왠지 그럴 것 같더라. 아마 그 바다 괴물인가 뭔가 하는 놈 저 녀석꺼야.”
카힐은 드러누운 앙피를 가리켰다.
선장은 앙피를 슬쩍 보고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그 바다 괴물이란 녀석은 앙피의 소환수가 맞았다.
아마 앙피가 멀미를 하며 신경이 날카로워진 덕에 가까이 오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지금 앙피를 건드렸다가는 앙피가 소환 해제를 시켜버렸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선장은 카힐 옆에 무기를 내려뒀다.
“근데 당신들은 왜 오른섬으로 가는 거요?”
그가 향긋한 향이 나는 주스를 건네며 물었다.
“아, 대마법사 찾으려고. 저 골골대는 새끼가 꼭 만나야겠다고 하더라고.
근데 오른섬은 왼섬이랑 생긴 게 똑같다던데 진짜야?”
“맞소.”
“그럼 오른섬도 엄청나게 돌아다녀야겠네. 대마법사가 어딨는지 찾으려면 또 손가락 다섯 개를 다 가야 하나.”
카힐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왠지 기쁜 표정이었다. 그녀가 이 여정이 끝나길 바라지 않는 것처럼.
“그. 이건 여왕도 모르는 이야긴데 오른섬은 엿됐소. 오른섬 사람밖에 모를 텐데 그렇게 된 지 조금 됐지.”
“그렇겠지. 마왕이 있으니까.”
“아니 그 말이 아니요. 이 지도를 보게.”
선장은 그렇게 말하며 지도를 펼쳐줬다.
근데 무슨 지도 대신에 거의 헐벗은 여자가 그려져 있었다.
“오른섬은 여자처럼 생겼냐? 엿 같긴 하네.”
“어? 아니, 이게 아니요.”
선장은 급하게 펼친 그림을 다시 집어넣고 제대로 된 지도를 펼쳤다.
“이건 그. 긴 항해를 하는 사람들에겐 꼭 필요한 거요. 오해 마소.”
“뭔 3시간만 걸린다면서.”
“크흠.”
이번에는 제대로 오른섬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왼섬을 데칼코마니처럼 찍어 누른 듯 생긴 모양. 그런데 어린아이가 그은 것 같은 굵은 선이 손가락마다 직직 그어져 있었다.
엄지, 검지, 약지, 소지.
네 개의 손가락이 검은 선으로 지워져 남은 건 중지뿐이었다.
그래. 진짜 모양이 ‘ㅗ’같다.
“진짜 엿됐네.”
“이유도 없이 손가락이 하나하나 파괴되더니 지금은 중지밖에 남지 않았지. 분명 마왕의 짓일 거요. 대신 당신들이 찾는 대마법사를 찾는 길은 쉽겠군.”
마왕이 오른섬에 나타났는지도 꽤 되었으니 피해가 없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그런데 섬 자체를 파괴하고 있었다니, 이래선 오른섬이 아니라 빠큐섬이잖아.
그때 저 멀리 육지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런데 가는 방향이 아닌 측면 쪽이었다.
“야, 저기가 오른섬 아니야? 방향 틀어!”
“뭐요? 벌써 도착할 리가 있나. 어디어디... 안 보이는구먼.”
선장은 카힐이 가리킨 방향을 유심히 봤지만 보이는 건 똑같은 수평선뿐이었다. 카힐이 봤던 육지는 이미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 후였다.
“뭐야. 분명 있었는데? 뭔가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고!”
“당신도 멀미하는군. 가서 저 말랑한 놈 옆에 누우시게.”
“아니 진짜 있었다고. 비비, 너도 봤지!?”
카힐은 옆에 있던 비비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런데 비비의 머리통이 온데간데없었다.
“으악! 깜짝이야. 너 머리 어디 갔어?”
비비는 손으로 바다 저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돌고래처럼 생긴 것들이 비비의 머리통을 갖고 놀고 있었다.
“후후. 개판이군.”
늘 그렇듯 우왕좌왕한 분위기 속에 배는 열심히 나아갔다.
그렇게 3시간 후.
배는 무사히 오른섬에 도착했다.
“야, 일어나. 야!”
카힐은 비몽사몽한 앙피의 뺨을 짝 때렸다.
앙피는 거의 사경을 헤맨 사람처럼 정신을 못 차렸다.
“마스터, 일어나게.”
“으아아악!”
앙피는 실눈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나영웅의 얼굴에 급하게 일어났다.
그가 멀미에 허덕이는 사이 선장은 이미 간 이후였다. 앙피 일행 넷만 남아 그가 언제 깨어나나 기다리다 카힐이 참지 못하고 깨운 것이었다.
“ㅎ... 죽을 것 같아요... 속이 너무 안 좋아요....”
“야, 나영웅. 니가 얼굴 들이밀어서 속 안 좋다잖아.”
“후후후. 마스터가 그럴 리가.”
“ㅈ... 조금은 영향이...”
그리고 그때, 항구 쪽으로 웬 조그만 사람 하나가 걸어왔다.
온몸이 초록색에 생긴 것도 고블린처럼 생겨서 꼭 몬스터 같았다.
“왼섬의 여왕이 보낸 사람들 맞냐.”
목소리도 가래가 들끓듯 걸걸했다. 그는 자신이 나르여앙이 준비한 안내원이라고 소개했다. 오른섬에서 대마법사를 찾는 걸 도와주기로 했단다.
“아. 그러니까.. 니가 우리 도와준다는 거지?”
카힐이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그냥 고블린같이 생긴 놈이 여왕의 부탁으로 우릴 안내해? 차라리 마왕군에서 보낸 병사라면 믿겠다.
“ㅇ... 오른섬 사람은 고블린이에요...?”
“야이씨.... 근데 확실히 마왕군 최측근 같이 생기긴 했어.”
앙피가 은근 궁금했던 걸 물어봐서 카힐은 적극적으로 그를 막지 못했다.
“상처주지 마라. 난 저주에 걸려서 이런 모습인 거다. 절대 마왕군이 아니다.
내 이름은 고브. 유일하게 남은 ‘고고 마을’ 사람이다.”
“아, 그러니까 이름이 고브? 저주에 걸려서 고블린이 되었다고.”
“... 이름부터 수상해요.....”
“절대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너. 너는 진짜 마족 아니냐! 마왕군이 왜 왼섬에서 오는 거냐!”
고브가 카힐을 보며 버럭버럭 화냈다.
“왼섬은 다 이렇게 생겼는데?”
오랜만이다. 멀쩡한 사람인 척하기.
“거짓말 마라! 어떻게 네 명이 다 다르게 생길 수 있냐!”
“후후후. 이보게, 마스터와 나는 같은 인간이네.”
“원래 왼섬은 다양성을 존중해~. 오른섬은 다르게 생기면 차별하나 보지?”
“으윽!”
역시나 이 방법은 잘 통했다. 고브는 그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
“맞다... 여기 사람들은 생긴 걸로 차별한다. 나도 고블린의 모습이 된 이후로 혼자가 되었다. 벌써 몇 주 전의 일이다. 평소처럼 과일을···.”
“저... 대마법사는 어딨어요...?”
고브가 상심한 표정으로 옛이야기를 꺼내려던 찰나, 앙피가 끼어들었다. 그에게 고브의 과거 따위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빨리 대마법사한테나 데려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놈은 싸패냐.”
“뭐, 조금? 질문에나 대답해.”
“... 여왕이 보냈다는 자들이 뭐 이렇냐. 대마법사는 마왕이 데려갔다.”
아무리 인간 사이에서 대단한 대마법사라 한들 결국에는 인간. 마왕을 쉽게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분명 마왕에게 잡혀 모진 고문이라도 받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럼 마왕한테 가야.....?”
“그래. 그래서 내가 온 거 아니냐. 마왕 성까지의 길은 누구보다 잘 아니까.”
고브가 켈켈켈 웃었다.
“진짜 대놓고 존나 수상하게 구네.”
“켈켈. 걱정 마라. 그런 의심도 마왕 성에 가고 나면···.”
“아오! 자꾸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길 안내나 해! 여긴 어딘데.”
카힐이 고브의 머리를 깡 내리쳤다.
“으갸갹. 아프다.
여기가 바로 고고 마을이다. 너희 왼섬에서 중지라 부르는 곳의 끝이다.”
“엥.... 저희는 엄지로 간다고 들었는데요...”
“아, 넌 누워있어서 못 들었구나. 오른섬 지금 중지 빼고 다 파괴당했데.”
“맞다. 우리 마을만 겨우 남았다.
아무튼 마왕을 잡기 위해 마을에 다 준비해뒀으니 가자.”
고브는 그들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앙피는 대마법사를 찾는 것과 마왕을 잡는 게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감옥 같은 데에 잡혀 있으면 몰래 숨어 들어가 부탁만 하고 도망치면 안 되나 싶었다.
“뭐하냐. 빨리 와라.”
“그... 마왕 성에는 지금 바로 가요...?”
“멍청하긴. 최소 일주일은 작전을 짜야 한다. 시간이 아까우니 빨리 가자.”
“ㅈ... 진작 짜두지....”
앙피가 궁시렁대자 고브가 뒤를 휙 돌아봤다.
그리고 그의 발밑으로 보란 빛이 흘러나오더니 이내 땅이 우르르 흔들리기 시작했다.
“ㅇ... 으어...?”
“뭐야. 야, 고블린! 갑자기 뭐야!”
고브는 마치 화가 난 듯 입을 다물고 앙피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까 본인도 당황한 것 같다.
“뭐냐! 이거 뭐냐!!”
아무래도 고브가 한 짓이 아닌 모양이었다.
바닥의 보란 빛이 순식간에 뻗어나가더니 이내 오른섬의 중지를 전부 휘감았다.
이 현상은 이전에도 네 번이나 이미 벌어졌었다. 다른 손가락들이 파괴될 때 전부 이런 현상이 일어났었다.
“ㅁ... 마법의 기운이 느껴져요...”
“기운은 지랄. 바닥에 이거 대놓고 마법진이잖아!”
불길함을 느낀 카힐은 금방 들어온 항구 쪽을 바라봤다.
우르르르. 쿠구구궁-!
지축이 흔들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저 끝의 항구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치 땅으로 꺼진 듯이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그 모양새가 썩 부자연스러웠다.
단순히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로 소멸하는 듯한 움직임. 마법에 그려진 이 마법진이 그 이유일 터.
“ㄷ... 도망...”
제일 먼저 도망가기 시작한 앙피는 금세 카힐에게 따라잡혔다. 카힐은 앙피를 업고 소멸을 피해 손바닥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으갸갹!”
손바닥에 발을 들이자마자 뒤를 돌아봤을 때. 보이는 건 배에서 지겹게 봤던 수평선뿐이었다.
오른섬의 모든 손가락이 이로써 전부 소멸해버렸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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