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손님 주제에 나대지 마(?)
맨 앞에 줄을 선 진상들은 ‘먹’을 파는 가게 사장들이었다.
유일하게 음식을 파는 식당이니만큼 매출도 엄청났다. 그런데 뭔 처음 보는 녀석들이 음식을 만든다고 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처음 보는 것들을 가져오더니 이상한 요리를 판매한다고 한다. 혹여라도 자신들의 매출에 타격을 줄까 친히 방문해본 것이었다.
“꺼져. 다음 손놈~”
“ㅅ.. 손놈이 아니라 손님이에요...”
“아씨. 그게 그거지. 넌 가서 슾밥이나 끓여!”
그런데 오자마자 웬 매서운 여자가 욕을 퍼붓는다.
“크흠. 손님에게 예의가 없군. 자리나 안내해!”
먹 가게 사장들이 말을 걸어도 카힐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음 손님을 맞이했다.
“우어어어...”
결국 비비의 안내를 따라 식당 안으로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도저히 식당으로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의자는 없이 식탁만 잔뜩 놓여있었다. 손님들은 전부 자리에 서서 음식을 주문하거나 먹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지금 음식을 서서 먹으라는 거야?”
“당장 의자를 가져와!”
“꾸어어어...”
“뭐라는 거야! 여기 점원은 제대로 된 녀석이 없나!?”
먹 가게 사장들이 아무리 난리를 피워도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결국 그들은 궁시렁대며 자리에 앉···. 아니 섰다.
그들 건너편에는 이미 음식을 먹고 있는 여자가 있었는데, 표정이 엄청나게 밝았다. 자신들의 가게에서는 본 적이 없던 표정이었다.
“으흥. 맛있어!”
“이런 맛은 처음이야! 이런 게 음식인가!?”
식당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엄지인을 저격한 슾밥이 통한 모양이었다.
먹 가게 사장들은 조바심이 났는지 식탁을 둘러봤다. 하지만 어디에도 메뉴판은 보이지 않았다. 벽면에도 걸려있지 않았다.
“이봐! 음식이 뭐뭐 있는지는 알려줘야지! 메뉴판 가져와!”
“원래도 ‘먹’ 하나만 먹던 놈들이 뭔 메뉴 타령이야. 닥치고 곧 갖다줄 테니까 처먹어. 우리 슾밥 하나밖에 안 팔아.”
“슾밥? 슾밥이 뭐지?”
“나도 몰라. 어감은 별로인데.”
먹 가게 사장들은 음식을 기다리며 다른 손님들 반응을 더 살폈다.
손님들은 신세계를 경험하기라도 한 듯 접시에 코를 박고 먹고 있었다. 두세 번 더 주문하는 손님이 넘쳐났다.
카힐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욕을 박았지만, 손님들은 벌써 익숙해진 듯 슾밥이 어서 다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먹 가게 사장들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입에 침이 고였다.
그들 중 하나가 상한 자존심을 회복이라도 하려는 듯 더 무례하게 굴었다.
“야, 빵댕이 년아. 우리 거 언제 나오냐!?”
철썩-. 빡-!
슾밥을 가져오던 카힐이 그대로 먹 가게 사장 얼굴에 접시를 던졌다. 막 끓여서 뜨거운 슾밥이 얼굴에 달라붙자 으아악 소리를 치며 펄쩍 날뛰었다.
“시발 싸가지없는 벌레 새끼가. 넌 나가!”
카힐은 날뛰는 그를 그대로 잡아 식당 밖으로 내던졌다. 그는 잔뜩 화가 나서 따지려 들었지만, 카힐의 눈빛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입만 들썩거렸다.
“시발. 내가 꼭 여기 망하게 한다!”
그는 악담을 퍼붓고 도망갔다.
“어디가 임마. 돈은 내고 가!”
물론 제대로 도망가기도 전에 카힐에게 잡혔다. 그는 또 얻어맞을라 지갑을 던지고 다시 도망쳤다.
그가 던진 지갑에서 약 1,000골드가 떨어져 바닥에 흩뿌려졌다.
“우와... 돈이다...”
“야! 너 나오지 말고 음식이나 하라고! 내가 주울게.”
그를 내쫓은 카힐은 다시 돌아와 남아 있는 다른 먹 가게 사장을 쳐다봤다.
“ㅈ... 저는 얌전히 기다리겠습니다!”
“음. 그래. 비비가 곧 갖다줄 거야.”
“넵!”
혼자 남은 먹 가게 사장은 조용히 음식을 기다렸다.
그러자 곧 비비가 슾밥을 하나 가지고 그에게 갖다주었다.
“ㄱ.. 감사합니다.”
그는 눈치를 보며 접시를 건네받았다. 근데 생각보다 양이 조금 적었다. 다른 손님이 먹던 걸 보면 그렇게 적어 보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비비의 입가에 묽은 액체가 묻어 있는 게 보였다.
“혹시 이걸 먹었···.”
“꾸어?”
비비가 추궁하지 말라는 듯 기괴한 웃음을 지었다.
“먹···. ‘먹’보다 맛있겠다~ 하하...”
먹 가게 사장은 얌전히 반밖에 남지 않은 슾밥을 먹었다.
묽고 녹진하면서도 감칠맛이 도는 스프. 쌀과 어우러지는 대파와 고기의 식감. ‘먹’을 먹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진짜 포만감.
그는 순식간에 정신을 잃고 슾밥을 먹어 치웠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추가로 3그릇을 더 해치운 후였다.
만족한 듯 배를 쓰다듬는 그를 본 카힐이 다가왔다.
“잘 먹네. 더 먹게?”
아까까지 매섭게 쏘아붙이던 여자가 갑자기 살갑게 물으니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막 그녀에게 인정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그였다.
“아.. 아니 괜찮아.”
“그래. 돈은 저 앞에 내고 가. 삥땅치면 알지?”
“어.. 가격은 얼마야?”
“가면 적혀있어.”
“아. 응. 고마워.”
“응? 고맙? 그래.”
철저히 조련이 잘 된 그였다.
그러나 4그릇이나 먹은 그는 불안함이 밀려왔다.
‘이렇게나 많이 먹었으니 돈 엄청 깨지겠네. 그렇다고 안 내고 도망갈 수도 없고.’
먹 가게 사장은 최근 수입이 줄고 있어 고민이었다. 이상하게도 최근 들어 다른 마을에서 오는 상인의 수가 줄었다. 이는 엄지인의 수입에 지장을 주었고 자연스럽게 엄지인의 주식인 ‘먹’ 가게 사장도 타격을 입었다.
뭐, 다른 마을에서 왜 사람이 안 오는지 앙피 일행을 지켜봤다면 잘 알았을 텐데 말이다.
먹 가게 사장은 한숨을 쉬며 돈을 내는 바구니 앞에 섰다.
[슾밥 : 10골드]
“엥? 10골드?”
먹 가게 사장은 믿기지 않다는 듯 글씨를 연신 읽었다.
그가 파는 ‘먹’의 가격이 500골드인데 이 맛있는 슾밥이 고작 10골드라니.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나 저렴하게 판매한다고?
하지만 앙피 딴에는 기존 가격인 1골드에서 무려 10배나 올린 것이었다.
“젠장. 이 맛에 이 가격이라니. 분명 망할 거야... 우린 망할 거라고...”
먹 가게 사장은 싼 가격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착잡했다. 이곳이 자신의 ‘먹’ 가게보다 못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돈 냈으면 빨리 가! 다음 얘 들어오게.”
“... 저 직원만 빼면...”
“뭐!?”
“ㅇ... 안녕히 계세요!”
그는 슾밥 값보다 더 많은 돈을 돈통에 집어넣고는 급하게 식당을 떠났다. 그렇게 떠나가는 그의 얼굴에는 어째서인지 즐거움이 가득했다. 어찌 되었든 맛있는 음식을 먹었기에 행복함을 느낀 모양이다.
[장래 식당]은 여러 단점이 있었다.
의자도 없는 식당, 입이 험하고 손님을 막 다루는 카힐과 이상하게 비비가 갖다주는 음식은 양이 적었다.
게다가 사장이라는 자는 얼굴을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다. 대체 어떤 재료로 요리를 하는지도 손님들은 모르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영업이 끝난 첫날, 그들은 결과로 증명했다.
“얼마야 이게...?”
“ㅇ... 우와.....”
앙피는 돈통에 쌓인 골드를 전부 세봤다.
그 금액은 무려 5만 골드. 그야말로 대성한 것이었다.
단순히 오픈 날이라 손님이 많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다음 날도 장사는 대박을 터뜨렸다.
식당 안이 바글바글하다 못해 미어터졌고 식당 앞 거리도 대기 줄로 가득 찼다. 나르의 외각에 이렇게까지 사람이 모인 게 처음이었다. 게다가 대다수가 외부 상인이 아닌 엄지인이라는 것도 좋은 광경이었다.
“장례식장? 여기가 식당이라고?”
“가게 이름은 이상한데 여기가 맞아!”
“애들이 얘기하던 곳이 여기구나. 안에 엄청 이쁜 직원이 있다는데...”
“분위기 지린다.”
“눈나..”
앙피의 슾밥을 맛본 이들이 주변에 전파를 하며 더이상 홍보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무슨 슾밥의 신도라도 된 듯이 슾밥을 찬양하고 다녔다. 심하면 스스로 슾밥을 만들어보려다 집을 불태우는 엄지인까지 나왔다.
게다가 그 영향인지 ‘먹’ 가게 중 하나가 문을 닫았다. 앙피 식당이 오픈한지 단 2일째 되던 날 말이다. 이 말인즉슨 앙피의 매출은 상승세를 탈 것이 분명했다.
둘째 날은 앙피 일행 전부가 녹초가 될 정도로 바빴다.
둘째 날의 매출은 첫날을 뛰어넘는 10만 골드. 이로써 벌써 15만 골드를 모았다. 목표인 100만 골드까지 벌써 15%나 달성했다. 앞으로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만 이렇게 지속된다면 인장을 위한 돈은 이미 모은 거나 다름없었다.
“이렇게나 잘 된다고? 미쳤어! 우린 부자야!!”
카힐이 바닥에 드러누운 채 기쁨에 소리쳤다. 이제 앞으로의 여정에 돈 걱정은 없었다.
“꾸에에엙!”
“후후후. 모두 이 몸의 아이디어 덕분일세.”
“한 달만 힘내자! 뒤질 것 같아도 버텨!”
셋은 몸은 녹초가 되었어도 힘차게 외쳤다. 한편, 앙피는 10만 골드 어치의 슾밥을 만드느라 그사이에 낄 기운도 없었다. 그렇게나 몸이 힘들었는데도 여전히 잠을 푹 잘 수 없었다.
힘내라, 앙피! 조금만 더 버티면 100만 골드를 벌 수 있어.
그리고 다음 날, 앙피는 100만 골드를 모았다.
“?”
“꾸어?”
“100만 골드를 어떻게 벌써 모았냐?”
“ㅍ... 팔았어요...”
앙피는 100만 골드가 담긴 커다란 포댓자루를 가리켰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앙피 일행이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장래 식당]이 영업 중이었다.
“ㄴ... 너... 설마...”
앙피는 장래 식당을 팔았다.
‘이 새끼들아! 팔지 말라니까!’라는 장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했다. 그의 추억(?)이 담긴 식당이 단 이틀 만에 팔려버렸다.
식당을 산 사람은 먹 가게 사장이었다. 그때 먼저 쫓겨났던 자였다. 그는 다른 먹 가게 사장에게서 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솔깃해졌다. 카힐에게 얻어맞은 것은 아직도 화가 났지만, 돈이 벌리는 일이라면 그 정도 수모는 참을 수 있었다.
결국 앙피의 식당이 대성한 것을 확인한 그는 다음날 바로 먹 가게를 처분하더니 곧장 앙피에게 가게를 팔아달라고 사정했다.
그는 당연히 거절 받으리라 생각하고 1,000만 골드를 준비해갔다. 이는 왼섬에서 손에 꼽는 인물만 소유할 만한 금액의 돈이었다. 엄지의 모든 식사를 책임지던 그도 전 재산을 끌어모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 돈을 보여주기도 전에 앙피가 넙죽 수락한 것이었다. 고작 100만 골드만 받고 말이다.
“ㅎ... 헤헤... 다 모았다...”
앙피는 이 고된 노동을 바로 끝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00만 골드보다 더 벌 텐데 이 병신아!”
“인장 100만 골드잖아요.... 더 필요 없는데...”
“아오. 돈은 많을수록 좋은 거야!”
“......”
카힐은 앙피가 사기를 당한 것만 같아 화가 났다. 하루에 10만 골드를 버는 식당을 고작 100만 골드에 팔았다고? 그것도 그때 그 성희롱하던 쓰레기한테? 카힐은 식당이 너무 아까워 죽을 지경이었다.
“아... 근데... 생각해보니까 슾밥 만드는 법은 안 알려줬는데...”
“......? 꾸어?”
“뭘 판 건데 그럼.”
“ㄱ... 건물...?”
장래 식당을 인수해간 그놈은 슾밥을 만드는 법을 배워가지 않았다. 그리고 앙피 일행이 엄지를 떠난 3일 만에 장래 식당은 문을 닫았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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