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이 사람들은 쌀이 뭔지 모른다
다행히 젤리를 넣은 슾밥은 카힐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대신 평범한 슾밥으로 만들기로 했다. 아무래도 ‘먹’ 같은 거나 먹던 엄지인에게는 조금의 맛만 첨가되어도 획기적일 것이다. 괜히 파격적인 요리를 만드는 모험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렇기에 결정된 슾밥의 종류도 단출했다.
쌀과 대파, 돼지고기.
3종류가 전부였다.
대파와 돼지고기를 다져 넣은 스프에 걸쭉하게 쌀을 끓여낼 생각이다. 그리고 나영웅의 의견대로 마지막에 비법 양념을 넣기로 했다.
“ㄱ.. 그래서 그게 뭐였죠..?”
“걱정 말게. 그건 내가 구해올 테니. 그보다 어서 다른 재료나 구하러 가게.”
다른 마을 같았으면 시장이나 가게로 가서 식자재를 구매하면 됐었다. 하지만, 음식이 없는 엄지에서 식자재를 팔 이유가 없었다.
그 때문에 앙피 일행은 도시를 나와 식자재를 수출하는 농장과 직접 거래를 하기로 했다. 우선 첫 번째로 향한 곳은 슾밥의 메인 재료와도 같은 쌀 농장이었다.
벼가 가득 자란 쌀 농장은 사시사철 황금빛 파도가 일렁였다. 1년에 한 번 수확하는 것으로는 수출량을 감당할 수 없었고 엄지인들은 사시사철 벼를 재배하는 연구에 성공했다. 이외에 다른 농작물이나 가축 역시도 생산량을 위해 개량되었다.
쌀을 주식으로 삼는 마을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기에 쌀 농장도 딱 한 곳뿐이었다.
[쌀쌀한 농장]
이름부터 싸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앙피가 식당 관련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차가운 반응이 돌아왔다.
“우리가 그걸 왜 하죠.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외지인+낯선 식당의 조합이라 거절당할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하지만 농장주는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농장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게 막고 선 채 말이다.
“ㄴ... 나중에 돈 드릴게요....”
“됐어요. 무슨 외상으로 납품을 해달라 하지 않나, 식당에 쓴다고 하지를 않나. 딱 봐도 이상한 사람들 같은데 절대 거래 못 해요.”
농장주가 어서 떠나라는 듯 손짓했다.
이상한 사람들. 앙피 일행은 딱히 반박하지 못했다. 생긴 것부터 의도까지 이상하지 않은 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하면 다른 방법이 없다.
“그냥 다른 곡식으로 거래하면 되잖아.”
다른 방법은 없다.
앙피는 꼭 쌀로 넣고 싶었다. 왠지 그러고 싶다는 고집이 생겼다.
“꼭 쌀을 쓰고 싶어요....”
앙피는 연민에 호소했다.
그러자 농장주는 조금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아들이 꼭 앙피와 닮았기에 왠지 아들을 보는 기분이었다. 물론 실제로 그의 아들과 앙피는 5살 차이가 난다.
농장주는 완강했던 손을 내리고 마지못해 여지를 주었다.
“식당에 쓴다고 했죠.”
“ㄴ... 느에..”
“어디에 쓰는데요.”
“........? 에..?”
“식당 어디에 쓰냐고요.”
앙피와 농장주는 서로 눈만 마주친 채 말을 멈췄다. 서로 이해가 안 되는 듯 소통이 되지 않았다.
쌀을 식당 어디에 쓰냐니, 당연히 요리에 쓰지. 아니면 어떤 요리에 쓰냐고 물어본 것일까?
“슾밥에요...”
“음. 처음 들어보는데.”
농장주는 여전히 긍정의 신호는 보내지 않았다. 그래도 자세는 많이 누그러진 것 보면 가능성은 보였다.
“녹진하게 끓인 스프에 곡식을 말은 음식이네. 마스터가 예전부터 해온 일이니, 맛은 보장할 수 있네. 원한다면 요리를 해와서 증명해주지.”
나영웅은 이때다 싶어 치고 들어왔다. 원래 이런 상황에서는 요리 맛을 보여주며 농장주의 마음을 돌리는 게 포인트라고 배웠다. 이세계물을 보며 배웠다.
그러자 농장주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잠깐 기다리라며 농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포댓자루 하나를 지고 돌아왔다.
그는 앙피 일행 앞에 포댓자루를 털썩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막 수확을 마친 생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빛깔을 보니 상태는 최상급이었다.
“그니까 이걸 요리에 쓰겠다고요?”
“그래! 너도 앙피마냥 자존감 없냐? 딱 봐도 좋아 보이는데 우리가 잘 쓸게.”
“ㅈ... 저 자존감 있는데....”
“흠. 이걸 대체 왜.”
농장주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포댓자루에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생쌀을 주먹 한가득 쥔 후 입에 욱여넣었다.
으드득- 으득-.
농장주의 입에서 마치 돌을 씹는듯한 소리가 났다. 저렇게 한가득 생쌀을 씹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조금 저작 운동을 하고는 우수수 생쌀을 뱉어냈다.
“으퉤퉤. 이런 걸 어떻게 먹어요? 음식에 쓰기는 무슨. 순 사기꾼이었네.”
이게 농장주가 할 말인가? 본인이 키우는 작물이 음식으로 쓰이는 것조차 모른다는 눈치였다.
사실 그뿐만 아니라 엄지인은 다 똑같았다. 자신이 수출하는 식자재가 음식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몰랐다.
어차피 엄지인은 음식을 먹지 않으니 당연히 식자재에 대한 지식도 없었다. 그냥 다른 마을에서 비싼 값에 사가길래 키우는 것이다. 엄지인의 입장에서는 식자재가 그냥 말 그대로 수출품에 지나지 않는 물건이었다.
“ㄱ... 그거 먹는 건데요... 어.... 저거 쌀이 아닌가...?”
덕분에 앙피 일행과 농장주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농장주는 자신이 파는 쌀이 ‘장식품’ 정도로 쓰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딱딱하고 새하야니까 장신구나 가구에 보석처럼 쓰이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걸 음식으로 먹는다니까 의구심이 들어 한입 가득 먹어본 것이었다. 하지만 말랑하고 무맛인 ‘먹’이나 먹던 농장주에게 생쌀 한 주먹은 모래 알갱이를 씹는 것과 같았다.
“음식에 대해 무지한 마을이라니. 이 몸에겐 최악의 마을이군.”
“물가만 생각해도 충분히 최악이야.”
“ㅆ.. 쌀이 없으면 뭘 넣지....”
앙피 일행은 빠르게 쌀 농장을 손절치려 했다. 본인이 뭘 파는지도 모르는 곳이라면 상품에도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상품 자체는 최상급이 정말 맞았다. 농장주가 쌀을 보석이라고 생각한 만큼 정성스럽게 키웠으니까.
그런 노력을 무시당하는 걸 느낀 농장주는 갑자기 태도를 돌변했다.
“드리죠. 몇 포대 필요해요?”
앙피 일행과 소통이 조금도 되지 않으니 오히려 궁금해진 것이었다. 자신이 키우는 쌀이 요리로 쓰이는 게 정말 가능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ㅁ... 몇 포대... 어.... ㅁ... 많이요...?”
농장주는 몇 가지 제안과 함께 1포대를 주었다.
우선, 개업하면 자신에게 음식을 제공할 것. 이때 쌀이 정말로 음식으로서 완벽하다면 앞으로 쌀 납품을 해주겠다.
단, 쌀로 장난을 친 것이라면 납품은 물론 지금 지급한 1포대의 외상값을 10배로 받겠다. 참고로 1포대의 값은 1,000골드였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쌀은 구했다. 다음으로는 대파와 돼지고기다.
두 농장의 주인도 별 다를 바 없는 반응이었다.
“이걸 어떻게 먹어?”
식자재를 수출한다는 놈들이 할 말인가.
대파를 파는 농장주는 흙이 가득 묻은 파 뿌리를 그대로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매운 파 진액에 섞여 진흙이 된 흙을 뱉으며 의심했다. 이딴 맛도 없는 걸 어떻게 먹냐며 말이다.
그는 대파는 무기에 바르는 독약과도 같은 재료라고 설명했다. 색깔부터 초록색인 게 독약 계열이 확실하다고 한다.
결국 대파 농장주와도 비슷한 내용으로 계약을 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이 대파로 만든 요리로 누군가 죽어도 자신은 책임이 없다.’였다.
돼지농장은 말도 안 하겠다. 돼지고기를 먹는다고 하니 정말 야만인 보듯 쳐다봤다.
‘그럼 돼지고기를 어디다 써....’
놀랍게도 돼지고기를 먹는 데에다 쓰기는 한다고 한다. 다만, 사람이 아닌 반려동물용으로 수출한다고 한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걸 먹냐면서 생고기를 먹으려던 걸 카힐이 겨우 막았다.
어찌어찌 식자재 3개는 전부 구하였다. 거래처의 농장주들은 하나 같이 앙피 일행을 믿지 않았지만, 나중에 음식 맛을 본다면 분명 인정해줄 것이다.
‘그럼... 다음은....’
“카힐 님은 하는 게 뭐지....”
“이 새끼가?”
다음으로는 각자 개업했을 때 할 일을 정하기로 했다.
당연히 앙피는 요리를 담당했고 의외로 나영웅이 그를 보조하기로 했다.
“요리할 줄 아세요....?”
앙피가 전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눈으로 물었다.
“후후후. 이 몸은 라면, 볶음밥, 찌개, 파스타 등. 한식 일식 양식 전부 다 가능하네.”
전부 기성품이었다. 데우거나 끓이면 끝인 요리.
근데 생각해보면 앙피도 그냥 다 때려박고 끓이는 거라 별 차이 없었다.
앙피는 나영웅이 자신보다 할 줄 아는 게 더 많은 것 같아서 은근 신경 쓰였다. 혹여나 자신의 자리를 뺏기지 않게 조심하기로 했다.
그보다 카힐과 비비에게 시킬 일이 딱히 없었다. 그나마 서빙과 홀 관리 정도가 있었다.
‘.... 저 둘한테 시켜도 될까...’
카힐과 비비는 홀에 앉아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왕군 간부 둘이서 악랄한 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보였다. 실상 대화 내용은 “꾸에엙!”과 “아씨 전혀 모르겠어!” 하며 카힐이 비비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카힐과 비비는 점원 역할을 맡았다. 손님 응대나 음식 전달과 같이 간단한 일만 하면 됐다. 이 둘과는 거리가 많이 먼 일이었지만, 어차피 다른 방안도 없었다.
“그럼 이제.... 다 됐나....?”
약 5일에 걸쳐 영업 준비가 끝났다. 식당도 나름대로 구색을 갖췄고 요리할 준비도 완료다. 남은 건 홍보 및 영업.
다행히 홍보 쪽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카힐과 비비가 엄지를 돌아다니며 홍보를 하니 이목이 안 끌리려야 안 끌릴 수가 없었다. 가게 컨셉에 맞는 편한 점원복을 입은 덕에 사람들의 경계심도 낮아졌다.
‘장래 식당’의 목표는 손님이 불편한 식당.
앙피 일행은 각자 입고 싶은 옷을 입고 편하게 일을 하기로 했다. 겉보기에는 편안한 분위기라 쉽게 들어오게 만들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무엇보다 불편한 식당이 목적이었다.
나영웅의 의견이 바로 이것이었는데, ‘불편함’을 모르는 돈 많은 엄지인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자는 것이었다.
들어오는 문턱은 낮추고 나갈 땐 기억에 박히게 하는 전략이었다.
“ㄱ... 그냥 저희만 편한 거 아닌가요...?”
“손님이 왕이면 우리는 황제일세.”
“왕은 나르여앙 님인데....”
앙피는 그의 말이 잘 이해는 안 갔지만, 워낙 자신 있어 보이니 따르기로 했다.
“됐고. 준비는 끝났지?”
“아마...요..?”
“영업 시작이다!”
“꾸에에엙!”
그렇게 영업 첫날의 아침이 밝았다.
홍보 덕분인지 식당 앞에는 벌써 사람들이 몇몇 줄 서 있었다.
아마, 새로운 음식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끌은듯했다. 하지만 일부는 불순한 의도로 줄을 서기도 했다.
“킥. 음식이라고? 뭐 얼마나 대단하면 그렇게 홍보했는지 보자고.”
“병신아. 맛이 있겠냐? 식당 직원들도 존나 편하게 입었네. 보나 마나 맛도 형편없겠지.”
줄 맨 앞에 선 남자들이 식당에 망신을 줄 생각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이내 식당 문이 열렸고 카힐이 걸어 나왔다.
“아이씨. 손님을 이렇게나 기다리게···.”
“뭐 병신아. 안 들어올 거면 꺼져.”
“....?”
엄지 최초 손님이 불편한 식당, 잘못 건들면 죽여주마.
[장래 식당] 오픈 완료!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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