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오?류
모두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딱 하나였다.
103명의 도전자.
100명의 몬스터.
현재 남은 횃불, 그러니까 최대 탈락할 수 있는 사람이 50명. 꺼진 촛불에 다시 불을 붙이는 짓이 통할 정도로 무른 곳이 아니었으니까 이 숫자가 변할 리는 없다.
그렇다면 이게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 이해해야 한다.
현재 총알이 50개 장전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사냥감이 정해지지 않았다. 그 사냥감 후보에서 탈출할 방법이 바로 몬스터를 1개 잡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당 1마리의 몬스터만 잡는다면 100명이 탈출하기 때문에 사냥감으론 남은 3명만 들어가게 된다.
총알이 50개라 하더라도 사냥감이 3명뿐이면, 죽는 자도 3명밖에 없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이 게임에서 확정적으로 죽는 건 단 3명뿐이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심각한 문제가 생겨버렸다. 앙피 일행이 이미 22마리를 잡아버렸기에 이 수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미 몬스터를 잡은 자가 또 몬스터를 잡는 것은 다른 자들의 구명줄을 끊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지금, 이 사실을 모르는 카힐이 24번째 슬라임을 잡고 있었다.
“카힐 양! 그걸 잡으면 안 되네!”
“앙? 왜?”
카힐이 슬라임을 공기 방울 터뜨리듯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 터뜨렸다. 저 정도 충격에도 죽는 것을 보면, 슬라임 위에서 구르기만 해도 몰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촛불이 50개나 꺼져있단 말일세! 슬라임을 최대한 1개씩만 잡아야만 하네. 자네 혼자 그 슬라임을 다 잡아버리면 저 도전자들 중에 50명이 죽게 될 거란 말이네!”
그러나 카힐은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퀘스트에서는 그냥 슬라임만 막으면 된댔는데, 뭐가 저리 머리 아픈 소리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일단 슬라임 잡기는 멈췄다. 나영웅이 대체로 똑똑한 소리를 하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횃불 주변에 모여있던 도전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잠시만, 횃불 50개가 이미 꺼졌다고?”
“에이. 거짓말 아니야? 횃불은 여기 멀쩡히 다 있는데.”
하지만 도전자들이 이곳의 횃불 개수가 50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슬라임을 단 하나도 잡지 않은 자신들이 탈락 후보에 들었다는 사실도 눈치챘다.
이 상황을 기다린 시스템 창도 이때다 싶어 중간 공지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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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현재 당신은 탈락 후보입니다.
몬스터를 하나 이상 처치 시 탈락 후보에서 제외됩니다.
현재 남은 몬스터 : 71마리
현재 탈락 후보 : 99명
현재 탈락할 최대 인원: 5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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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슬라임을 잡은 앙피 일행에겐 내용만 조금 다르게 떴다.
‘... 횃불 개수는 아예 말 안 하네...’
앙피는 시스템이 노골적으로 무언가를 노린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해당 메시지가 전달하는 바는 하나였다.
‘빨리 몬스터 안 잡으면 너 죽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도전자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미궁의 탑의 계략이었다.
일부러 꼬아서. 의도적으로 어렵게. 이해하는데 시간이 지체되도록.
“야. 슬라임 하나만 줘봐!”
하지만 애초에 머리로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도전자들은 횃불을 내팽개치고 슬라임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습이 곧 군중심리로 작용했다.
옆의 사람이 횃불을 버리고 슬라임을 잡으러 뛰어가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없었다.
‘대다수가 옳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에 지금까지 횃불 옆을 가만히 지켰던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렇게 슬라임을 향해 뛴 도전자들로 인해 1층은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아! 꺼져!”
“야호! 난 잡았다!”
“어딨지... 슬라임... 어딨어..!!”
도전자들이 슬라임에게 달려들어 서로 엉겨 붙었다.
그리고 이 난장판이 곧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슬라임은 너무나도 약한 존재. 그들이 뒤엉키며 밟고 짓누르는 것만으로도 슬라임들은 비눗방울처럼 펑펑 터져나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몫인 1마리를 넘기는 사람들이 떼거리로 나타났다.
“아! 왜 밟아! 잡는 거였는데!”
“아, 시발. 실수야. 다른 거 찾으라고!”
아수라장이 된 모습이 마치 지옥과 같았다. 슬라임을 공격하려던 인물들은 이내 목표를 사람으로 돌렸다.
슬라임을 잡으려는 걸 방해해서, 슬라임을 못 잡게 막으려고.
그들이 붙이는 추잡한 이유는 넘쳐났다.
그리고 한편. 이를 그저 방관하는 놈들이 있었다.
“이야, 장관이네 장관.”
이 사태의 주범인 카힐이 깔깔 웃었다. 비웃음이 아니라 아직도 자세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었다.
그녀의 눈엔 그냥 슬라임 성애자들이 난투를 부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앙피 일행은 문에서 좀 떨어진 곳에 쪼르르 서서 그 광경을 지켜만 봤다.
이들은 이미 슬라임을 잡았기에 별 위기감도 없었다.
“...으음 검은 점은 너무 기분 나빠요....”
“후후후. 이 몸이 없었다면 우리도 저기 사이에서 난전을 하고 있었을 걸세.”
“꾸어!”
비비가 잘했다는 듯 나영웅의 뱃살을 두드렸다.
그들은 아무도 저 사태를 막거나 중재할 생각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행적만 떠올려도 이상할 건 없다.
“흐아암.. 언제 끝나...”
앙피는 늘어지게 하품이나 했다. 어차피 튜토리얼은 깼으니까, 빨리 끝나서 탈출이나 하고 싶었다.
“야, 앙피. 그 커다란 뱀이랑은 연락되냐?”
카힐이 용의 품격을 떨어트리며 물었다.
안 그래도 앙피가 아까 이미 윈스와 이야기를 나눴었다.
소환수 목록에서 해당 소환수를 누르니 간단한 대화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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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 : 이번엔 그 퀘스트가 떴구나. 그럼 그대들은 이미 통과가 확실하다네.
<앙피> : ㅔ
<윈스> : 아무리 주인이라 하는 자라고 해도 단답은 너무하지 않은가?
<앙피> : 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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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이 아니라 음성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는데 앙피는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게 너무 어색했다. 윈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시스템 창 너머로도 보였다.
앙피는 카힐에게 시스템 창을 보여줬다.
카힐은 소환수와의 대화 시스템이 흥미로웠다. 검은 점을 나가는 순간 이런 기회도 사라지니까 써보고 싶었다.
안 그래도 요즘 이 파티가 너무 지겨운 시점이었다. 소환수 목록에서 괜찮은 녀석이 있으면 불러올 생각이었다.
“오. 뭐야 이런 것도 되냐? 야, 그럼 검은 점 밖에 있는 애한테도 되냐? 아무한테 연락해봐.”
“누구요...? 아는 사람 별로 없는데...”
앙피가 소환수 목록을 쓱쓱 넘겨봤다. 그러다 만만한 한 명을 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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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피> : ㅇ... 어... 안녕핫...
<지저 왕> : 끼갸가각-!
<지저 왕> : 끼갸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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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피가 말을 보내자마자 답이 오기는 했다.
“야. 걔는 이게 답장인지 모르잖아! 하루종일 저러고 있는 앤데.”
앙피는 하는 수 없이 다른 소환수를 탐색했다.
뒷세계의 왕, 하이드로.
중지 감옥의 경비병, 뭉치.
나름 반가운 이름들이 몇 명 보였다. 그러나 누구를 고르기도 전에 다른 시스템 창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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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현재 당신은 탈락 후보에서 벗어났습니다.
현재 남은 몬스터 : 0마리
현재 탈락 후보 : 48명
현재 탈락할 최대 인원: 5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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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정산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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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도전자들이 슬라임을 전부 잡은 모양이었다. 잠시 슬라임이 있던 문 쪽을 바라보니 잠시 소강상태였다.
몇 명은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었는데, 그들이 탈락 후보인지는 알 수 없었다. 슬라임을 뺏고 보복을 당한 사람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시스템 창은 빠르게 퀘스트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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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2 - 의지 증명>
퀘스트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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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정산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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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창이 뜨자 도전자들은 저마다 다른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지만 앙피가 듣기에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슬라임을 잡는 데 실패한 사람이 많다는 증거기도 했다.
그러나 퀘스트 창이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류 창이 화면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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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몬스터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퀘스트를 재개합니다.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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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소리야? 아직 슬라임 남아있다고!?”
“어디야! 어딘데!!”
아직 탈락 후보에서 벗어나지 못한 도전자들이 희망에 차서 서둘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 저흰 저기로 피해 있죠...”
앙피는 혹여나 불씨가 튈까 그들과 떨어져 있기로 했다. 문 너머에는 이곳과 똑같은 방이 있었다. 원래라면 1차 방어선이 되었을 그곳으로 몰래 들어갔다.
도전자들은 아직 여기까지 뒤져볼 생각은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앙피가 나머지 셋을 데리고 이동하는 동안, 실수로 시스템 창의 무언가를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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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피> : ㄱ.. 근데 많이 잡아도 좋은 건 없어요...?
<???> : 넌 뭐냐.
<???> : 어떻게 나에게 이런 고위 대화 마법을 쓴 거지?
<앙피> : ....카힐 님이 그럼 제일 민폐... 아.. 아니에요... 아무 말도···.
<???> : 카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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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소환수 목록 중 하나를 클릭한 모양이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전송되고 있단 사실도 모른 채 앙피는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방을 옮긴 앙피는 떠 있던 창을 한 번에 꺼버리는 바람에 이 대화를 보지 못했다.
“근데 튜토리얼이라 그런가 엄청 쉽다.”
“후후후. 그대는 어떻게 튜토리얼이란 단어를 아는 거지?”
“니가 아까 5분 동안 설명했잖아, 이 씹덕아!”
그 틈을 참지 못하고 카힐과 나영웅은 또 투닥댔다. 따지자면 나영웅 쪽이 맞기만 하는 거지만, 정신적으로는 승리했다고 믿는 그였다.
한편 저 너머 도전자들의 아우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야, 시스템! 없잖아!! 슬라임은 하나도 없다고!!”
“그래. 오류면 빨리 처리해!!”
그들이 아무리 뒤져봐도 슬라임의 점액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시스템은 다시 메시지를 출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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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몬스터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몬스터 처치 시 탈락 후보에서 제외됩니다.
남은 몬스터 : 3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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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창의 메시지를 잠시 쳐다보던 앙피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봐도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숫자.
“... 3명...”
앙피는 손가락 세 개를 폈다.
그리고 바로 옆을 보며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카힐, 비비, 나영웅.
“..... 3명...”
“삿대질 뭐냐. 꺾어줘?”
“아뇨.. 그게...”
그리고 앙피와 똑같은 생각을 한 놈들이 생겨났다.
“탐색!”
“추적!”
몬스터의 흔적을 찾거나 정보를 구별하는 스킬들을 남발하는 도전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다.
“저기다!”
“저 녀석들이라고 뜨는데?”
그 소리에 아직 몬스터를 잡지 못한 48명의 도전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일제히 앙피 일행을 노려봤다.
“분석!”
도전자 중 한 명이 아예 대놓고 앙피 일행을 향해 스킬을 썼다.
“야! 뭔데! 손가락 안 치워! 누굴 몬스터로 보나!”
“꾸어어!”
마족과 좀비가 격하게 반응했다.
잠시만. 마족과 좀비?
어... 이거..
- 작가의말
선호작과 댓글, 추천 감사합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돌려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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