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난 10년간 소환술을 썼어
앙피는 마법 종이가 든 가방을 소중히 끌어안은 채 교장이 도장을 찍어준다고 말하는 것만 기다렸다.
“그래그래. 축하하네.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2학년이 되다니. 앙피 학생은 분명 마왕도 쓰러뜨릴 용사가 될 것이야!”
교장이 마음에도 없는 축하를 건넸다.
그렇다고 마음을 담아 축하를 해도 딱히 들을 앙피도 아니었긴 했다.
앙피는 교장의 손에 들린 도장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지만 교장은 훈화에 빠져서 교장을 찍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별 영양가 없는 말만 하며 도장을 손에서 빙빙 돌려대기만 했다.
결국 앙피는 참지 못하고 교장의 말을 끊었다.
“그래. 결국 이 지저처럼···.”
“도장부터...! 찍어주세요...”
앙피가 갑자기 끼어들자 교장은 기분이 팍 상했다. 그는 교장실에서 키우는 지저들을 거칠게 쓰다듬고는 도장을 바로잡았다.
‘왕궁 놈이라 그런지 싸가지가 없군.’
교장은 혀를 차며 그냥 빨리 도장이나 찍어주고 보내기로 했다.
그가 귀찮다는 듯 도장을 높이 들고는 이내 앙피의 명찰을 향해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앙피가 준비했던 마법 종이로 도장을 막아냈다. 나르여앙에게 받았던 그 마법 종이다.
쾅-.
드디어 앙피가 검지의 도장을 받아냈다.
검지의 도장이 종이에 찍히자 종이는 저절로 편지 모양으로 접혔다. 그리고는 공중으로 떠올랐다. 마법 종이가 반응했다는 건 최소한 교장이 들고 있는 게 가짜 도장은 아니었다는 소리다.
‘ㅎ... 혹시나 도장까지 가짜일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교장이 그 정도까지 귀찮은 일은 안 좋아했다.
그러나 앙피의 돌발행동엔 적잖이 당황했다.
“뭐냐. 지금 뭘 한 거냐?”
교장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편지를 낚아채려 허우적댔다. 하지만 이 마법 편지는 그를 농락하듯 얄밉게 공중을 떠다니며 앙피의 도움을 기다렸다.
앙피는 도장을 확보했다는 걸 확실히 확인하고는 가방에서 무언가 꺼내 편지에 달았다. 그리고 편지가 잘 날아가게 창문을 활짝 열어버렸다.
편지는 열린 창문으로 곧장 교장실을 빠져나가 왕궁을 향해 날아갔다.
“이봐. 말해. 지금 뭘 한 거냐고!”
교장이 앙피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아마 앙피가 개인적인 이유로 도장을 모은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중대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전에도 앙피를 왕궁의 감찰관으로 오해했던 교장이었기에 이번에도 왕궁으로 아카데미의 비밀을 빼돌렸다고 생각했다.
저번엔 모두의 앞에서 벽을 언급하더니, 이번엔 내 도장으로 뭔 짓을 한 거야!
교장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앙피를 그대로 바닥에 내리쳤다.
“이 개자식이!! 백지 서류에 도장을 찍은 거냐!!”
“ㅇ... 으악!”
앙피는 안 그래도 기숙사 대전에서 힘을 잔뜩 빼고 온 탓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그의 상황을 잘 아는지 교장은 멀어져가는 편지를 노려보고는 앙피에게 주먹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앙피 얼굴의 절반은 되는 크기의 주먹을 잘도 꽂아 넣었다.
“ㅋ.. 크앍!”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 했냐고? 아니 전혀. 예측했기에 아무도 대기시키지 않은 것이었다. 카힐, 비비, 나영웅. 누구 하나라도 있다면 분명히 이 상황 자체엔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했다.
“ㄱ... 그러니까.. 여긴 나 혼자 해!”
앙피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큭? 소환술?”
교장은 그가 소환술사라는 게 떠올랐는지 잠깐 주춤했다.
하지만 틀렸다. 아무리 급해도 불면을 가속하는 소환술은 쓰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손을 뻗은 방향은 어딜까. 그래, 바로 교장 곁에 있는 지저들이다.
“물어..!”
앙피의 명령에 지저들의 눈빛이 돌변하더니 이내 옆에 있던 교장을 물어버렸다. 그들의 넓고 튼실한 치아가 교장 살점에 콱콱 박히니 교장은 비명을 질러댔다.
“끄아아악! 아파!! 이놈들이 내가 키워줬건만!!”
교장이 아무리 뿌리치려 해도 지저들은 교장의 손을 이리저리 피하며 깨물어댔다. 그리고 저 구석에 있던 기숙사 선별용 지저도 상자에서 튀어나와 교장에게 달려들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것들은 앙피의 소환수가 아니다. 지저 왕에게서 파생된 새끼들일 뿐, 앙피의 명령에 복종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앙피는 본능적으로 그것들도 자신의 말을 따를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아마, 그가 무소속이 된 이유와 같을 것이다. 그는 성장하는 유일한 마법사였으니까(대마법사를 제외하면).
기숙사 선별용 지저가 앙피를 향해 강렬한 눈빛을 보내더니 교장의 코를 깨물어버렸다. 앙피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가 다분했지만, 정작 앙피는 못 본 모양이었다.
“으아악! 아주 그냥!!”
교장이 지저들을 떼어놓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는지 다리를 높게 들었다.
그리고는.
쾅-.
지저 하나의 머리를 발로 밟아 으깨버렸다. 가여운 지저는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교장은 진득한 살점이 묻은 신발을 바닥에 문대며 앙피를 노려봤다. 그 눈빛이 마치 앙피를 금방 그 지저처럼 밟아버리겠다는 것같이 살벌했다.
그 모습을 본 앙피는 인상을 확 구겼다.
그가 왜 소환수들을 어색해하는지 아는가?
그들이 싫어서? 친해지고 싶지 않아서?
절대 아니다.
앙피는 소환수를 하나의 목숨으로 생각하기에 어려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소환수를 누구보다 아끼기에 함부로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다.
“다 도망쳐.”
지저가 위험할 수도 있단 걸 본 앙피는 즉시 교장에게서 떨어질 것을 명령했다. 그의 말에 지저들은 곧장 친구의 시체를 챙겨 교장에게서 퇴각했다.
“하하! 이 멍청한 것이. 이런 잔재주도 안 부리면 네가 뭘 할 수 있겠느냐?”
귀찮은 지저들이 사라지자 교장은 곧장 앙피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그리고 앙피의 머리를 향해 다리를 높게 올렸다.
더러워진 교장의 구두 바닥을 보며 앙피는 읊조렸다.
“난. 소환술사야.”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난... 지난 10년간 소환술을 썼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고 징그러울 정도로 많아!”
앙피가 당당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이내 아주 먼 곳에서 굉음이 울렸다.
콰아앙-! 쿠구구구궁-!!
그 진동과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건 정말이지 무언가 커다란 괴물이 아카데미를 향해 달려오는 것만 같은 소리였다.
“뭐야. 이런 약해빠진 놈이 뭔 짓을 한 거냐!!”
***
한편, 앙피의 작전대로 천재를 찾아간 셋.
그들은 무사히 천재와 접촉해 이야기를 마쳤다.
“... 알았어.”
천재는 처음에 그들을 믿지 않았다. 이미 받은 충격과 상처가 컸기에 아카데미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진절머리가 났었다.
하지만 그들이 앙피의 소환수임을 알고는 마지못해 수락했다.
“근데. 쿠과광 작전은 언제 시작인데...?”
“후훗. 소년이여. 쿠과광이 아니라 콰과광이네.”
“하, 작전 이름 참 뭣 같네..”
카힐이 앙피의 작명센스에 한숨을 쉬었다.
“꾸어어!”
천재의 질문에 대한 답은 비비가 해주었다.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천재에게 손바닥을 보여줬다.
그러나 천재가 기적적으로 좀비어를 알아들을 일은 없었다. 그는 비비가 좀비라기보다는 자신보다 더 덜떨어진 녀석이라 생각했다.
“.... 얘 바보야..?”
“꾸에에엙!”
천재한테 바보 취급을 받은 비비는 덥석 화를 냈다. 비비는 천재의 팔뚝을 앙 물어버리고는 자신의 손바닥을 다시 들이밀었다.
“으아악! 왜 깨무러!”
“후후후. 저게 신호라네. 잘 보게 소년이여. 비비의 손가락 하나가 없지 않은가?”
나영웅의 말을 듣고 보니 비비의 새끼손가락 하나가 없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녀의 손가락이 돌아오는 순간이 작전 시작이라고 했다.
비비는 복구 불가능한 신체는 알아서 재생하지만, 의도적으로 떼어놓은 신체는 비비를 향해 자동으로 날아와 달라붙는다고 했다.
미리 떼어놓은 비비의 새끼손가락은 앙피에게 주었다. 그리고 도장이 확보되는 즉시 창밖으로 던지라고 했다.
그러면 알아서 비비에게 날아갈 것이고, 그것이 곧 작전 신호였다.
그리고 이쯤이 앙피가 편지에 손가락을 실어 날려 보냈을 때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아카데미 본관에서 이곳까지는 조금 걸릴 것이다. 아무래도 본관에서 ‘가장 먼 곳’이었으니까.
그렇게 비비의 손가락이 열심히 비비를 찾아 뛰어오는 동안, 작전 시작을 기다리던 천재가 슬그머니 질문을 했다.
“근데.. 너네는 앙피랑 다니면 즐거워...?”
천재가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우물쭈물 물었다.
그가 갑자기 저런 질문을 한다니, 혼자 남겨진 상처가 큰 걸까. 나영웅과 카힐이 잠시 눈빛을 교환하더니 그를 격려하기 시작했다.
“후후후. 당연하네. 우린 마스터와 다니는 게 즐겁다네. 항상 정신없고 우당탕한 모험이지만, 그래서 모험이 아니겠는가?”
나영웅이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대사를 뱉었다. 이세계로 오기 전부터 생각해봤던 대사였다.
“그래. 걔가 좀 맹하고 생각 없어 보이긴 해도, 나름 잘 챙겨. 나....름?”
카힐이 몇 번이나 버려졌던 생각이 떠오르는 탓에 제대로 앙피 칭찬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앙피와 함께 다니는 게 즐겁다고 말하면, 천재가 자유를 좇아 따라오리라 생각했다.
원래 이런 곳에서 동료가 하나 늘어나는 게 국룰이었으니까.
그러나 천재의 질문 의도는 그쪽이 아니었는지 시무룩해졌다. 하긴, 천재가 굳이 앙피랑 다니고 싶어 할 이유는 없었다.
그가 궁금한 건 앙피가 아니라, 소환수인 그들에 대해서였다.
천재는 같은 소환수인 지저 왕이 걱정되었던 것이었다.
혹여나 이곳을 나가면 앙피를 쫓아가는 게 아닐까, 그것이 지저 왕이 원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게다가 전에도 홀라당 넘어가 앙피의 명령만 들은 걸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그때 비비가 천재의 어깨에 팔을 턱 걸쳤다.
“꾸어어. 쿠에엙.”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팡팡 치고는 저 멀리를 가리켰다. 그리고는 따봉을 날렸다.
“아, 아라써. 고마어.”
“뭐야. 이걸 알아들었다고? 나영웅, 너도 알아들었냐?”
“후후후. 당연하네. 역시 비비 양다운 조언이었네.”
나영웅은 일단 긍정했다.
“아니 나만 못 알아듣는다고? 비비! 내가 제일 오랫동안 같이 있었잖아!”
카힐처럼 못 알아듣는 이를 위해 말해주자면, 비비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앙피를 쫓아가는 건, 우리의 선택이라고. 우리가 떠나는 것도 우리의 선택이라고.
그렇기에 지저 왕이 앙피를 쫓아올지 천재와 남을지는 지저 왕 스스로 정할 것이다.
이 소환술사와 소환수의 관계라기엔 너무나 자유로운 관계가 앙피가 추구하는 바였다.
“워!”
비비가 천재의 천재를 향해 따봉을 날려주었다. 그녀가 보기에 지저 왕이 본인들과 같이할 가능성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너 손꾸락 다 이써.”
“꾸어?”
“손꾸락. 출발 신호.”
천재가 비비의 손가락을 툭툭 건드렸다.
비비는 새끼손가락이 멀쩡히 붙어있는 걸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뭐냐. 언제 왔어. 작전 시작이잖아! 야야! 시작해!”
“후후후. 시작이군!”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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