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앙피야 시작하자마자 이게 무슨...
1라운드에 천재가 숨겨놨던 무기를 꺼내쓰자 교장은 심기가 불편했다. 매일 호수나 바라보며 땡땡이만 치던 놈이 어디서 저런 걸 만들었지 싶었다.
그러나 지능이 낮다고 지식도 없는 건 아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저들과 만난 천재는 그들을 본떠 기계장치를 만들었다.
지저의 단단한 이빨을 따라 견고함을 높이고 지저의 넓적한 꼬리와 같은 무기를 만들었다. 넓적한 꼬리와 같은 판때기로 뭐든지 눌러버리는 무기였다.
천재는 언젠가 나갈 기숙사 대전을 위해 꾸준히 기계장치를 만들고 보강하며 수리했다. 그리고 1라운드에서 자신의 무기가 통했을 때 천재는 희망을 봤다.
드디어 이 아카데미에서 나갈 수 있다고. 지저 왕과 자유롭게 살아가고 밖에 있을 가족도 만날 수 있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가족은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아 했다.
그의 신분은 ‘개백’. 가장 낮은 신분이다.
그나마 같은 아카데미생이라, 같은 또래라, 아직 어려서 신분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이곳과 밖은 다르다.
검지는 철저한 신분제다. 그렇기에 천재의 부모님은 그가 편안한 아카데미에 남기를 바랬다. 개백 출신에 덜떨어진 놈이라면 사회에서 무슨 취급을 받을지 뻔했으니까.
그리고 그 철저한 신분제를 누구보다 잘 따르는 게 바로 교장이었다.
그는 1라운드가 끝난 휴식 시간에 테리아를 불러냈다. 그리고 천재의 발명품을 파괴하길 명령했다.
교장의 VIP석 뒤에는 담소를 위한 조그만 공간이 있었다.
이상할리만큼 밖과의 소리가 차단되어서 안에 들어가면 귀가 웅웅 울렸다. 그리고 그 조그만 공간에도 교장의 취향에만 맞는 가구밖에 없었다. 쓸데없이 화려하며 용도가 없는 가구들.
테리아는 어떤 수상한 남자의 부름에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교장에게서 천재의 기계장치를 파괴할 것을 전달받았다.
“진심이십니까.”
테리아가 온화함과 의구심 사이 어딘가의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 보나 마나 부당한 방법으로 만들었겠지. 어서 부숴.”
교장은 평소처럼 여유로운 말투로 말했다. 테리아는 그의 말을 가장 잘 듣는 아카데미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설마 테리아가 자신의 말에 의구심을 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테리아는 천재가 만든 기계장치가 마음에 걸렸다. 누구보다 그를 배척했었기에 그에 대해서 잘 알았다.
천재가 1라운드에서 썼던 기계장치는 아무리 봐도 천재가 만든 것이었다. 기계장치의 디자인이며 공격패턴이 천재와 너무나도 닮았으니까.
그럼에 테리아는 의심했다. 정말 그가 배제해야 할 인물이었을까?
“... 이것도 그분의 계시입니까?”
테리아는 또 자신만의 신을 언급했다.
그녀가 입학 당시에 만났다던 그 신. 이미 눈치챘겠지만, 그 신은 지저 왕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입학한 날 밤에 호수에서 지저 왕을 만났다.
달빛을 받으며 벽을 지켜보는 지저 왕의 모습이 경이롭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가 만난 지저 왕은 물에 젖은 흉측한 모습의 지저 왕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으로 아련히 벽을 쳐다보는 것에 테리아는 신비로움을 느낀 것이다.
그가 왜 벽을 그렇게 쳐다보는 것인지. 어째서 호수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교장실에서 그녀는 평범한 크기의 다른 지저를 만났다.
지저를 신기하다 못해 경이롭게 쳐다보는 테리아를 보며 교장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저를 자유롭게 다루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이 ‘신의 사도’와 같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사이비. 유치할 정도의 거짓말.
하지만 고작 10대 초였던 테리아는 그 말에 넘어가 버렸다. 교장이 지저 왕의 말을 전하는 사도라고. 그래서 작은 지저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테리아는 괴이한 신념을 계속해서 키워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인지하고 있었을까?
어쩌면 테리아가 믿었던 건 지저 왕이 아니라 교장의 사탕발림이었다는 것을.
‘또 신 이야기군. 대체 뭘 보고 저러는지 몰라도 장단이나 맞춰줘야지.’
“그래. 신의 계시다. 그러니 어서 그 녀석의 무기를 없애라. 만약 그 녀석이 우승해서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기라도 한다면,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른다.”
교장은 늘 하던 대로 무게를 잡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왜일까. 평소라면 진짜로 신에게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받아들였을 아이인데. 오늘은 고민하는 게 표정으로 드러났다.
“무슨 일이냐. 왜 출발을 안 하지?”
“뭔가 이상합니다. 천재는 교장 선생님이 말해주신 것만큼 멍청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가 우승하려는 게 왜 이상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의 눈에선 순수한 열정이···.”
“닥쳐라!”
교장이 의자 손잡이를 쾅 내리쳤다. 그리고는 아까부터 주위를 맴돌던 수상한 남자를 곁으로 불렀다.
“그러니까 넌 내 말, 즉 신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소리군.”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이 자도 단 한 번 나의 말을 듣지 않았었지. 그때 내 말만 바로 따랐다면 이렇게 저주를 받지도 않았을 텐데.”
교장이 수상한 남자의 복면을 확 벗겨버렸다. 그러자 피부가 화상 자국으로 눌어붙은 교감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 모습에 테리아는 흠칫 놀랐다. 교감은 언제고 눈에 띄는 짓을 하지 않았고 별다른 특징도 없었다. 한 마디로 존재감 없는 극히 평범한 사람.
그런 평범함이 짙은 사람일수록 망가진 모습을 보면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테리아는 교감의 징그러운 피부를 차마 계속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마음속의 의구심은 미약하게 불씨를 피우고 있었다.
‘그래도 저 모습이 정말로 연관되었는지는···.’
“나처럼 되기 싫으면 어서 가렴.”
“들었지? 어서 출발해. 2라운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 알겠습니다.”
기껏해야 10대 중후반의 테리아는 결국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꺾어버렸다. 스스로 불씨를 밟아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믿어온 거짓된 신념이 잠깐 들었던 진실한 신념보다 강했으니까. 그리고 무거운 마음으로 떠나는 그녀의 모습을 남은 어른 둘이 매섭게 쳐다봤다.
그녀가 떠나자 교감은 한숨을 쉬었다.
“이제 됐나요. 제 화상은 저주가 아니라 어렸을 때 다친 겁니다. 저렇게 어린아이를 ”
“기어오를 생각 마라. 내가 개백 출신인 네놈을 왜 그 자리에 앉혀줬는지 생각해. 네 화상이 저주든 사고든 내가 저주라면 저주인 거다.”
“.. 네”
교장이 손을 뻗은 건 테리아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어쨌든 천재는 그렇게 맨몸으로 결승에 나가게 되었다.
‘무기도 없는 병신이 맨몸으로 우승할 수가 없지.’
교장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경기를 관람하러 나갔다.
「자, 그러면. 대망의 기숙사 대전 결승을 시작하겠습니다!!」
앙피는 1라운드 때와 달리 자신만만하게 몸을 풀었다. 상대는 고작해야 발발 떠는 천재 하나.
‘검지 도장도 얻었다.’
앙피는 이미 이겼다는 마음으로 천재를 노려봤다.
둘은 지금 다른 원에 있으므로 누군가 다른 원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앙피는 먼저 뛸 생각이 없었다.
‘저 정도 거리면... 뛸 수는 있지만... 안전하게 가자.’
앙피는 어떻게 천재를 이길까 고민했다.
또 나영웅을 불러서 밀어내? 아니, 이참에 카힐이랑 비비까지 불러? 어차피 이것만 우승하면 나가는데?
아니야. 관중난입으로 보여서 제지될 가능성이 커.
그런데 사실 소환술을 뺀 앙피에게 남는 건 없었다.
“ㅁ... 모르겠다..!”
앙피는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기러기와도 비등비등했으니 천재한테 밀릴 리는 없었으니까.
앙피는 잠시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고는 천재가 있는 원을 향해 발돋움했다. 앙피가 3M를 어떻게 뛰냐고?
이래 봬도 지존마의 창시자(로 불리는) 앙피였다. 뛰는 연습이라면 실컷 했다는 말이다.
앙피는 슝하고 힘껏 뛰어 그대로 천재 건너편에 착지했다.
“ㅎ... 제가 특별히 와 드린 거예요..”
「어라? 앙피 선수-! 원 밖으로 나갔습니다!」
“ㅔ.. 느에?”
앙피는 급하게 고개를 숙여 발밑을 확인했다.
이런, 발 앞꿈치가 간당간당하게 선에 닿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무릎 안 굽히고 뛰기’도 애초에 6cm 겨우 뛰었던 애가 그렇게 크게 성장했을 리가 없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앙피가 원 밖으로 착지했다는 것.
한마디로 탈락이다, 탈락.
경기가 허무할 정도로 빨리 끝나자 아카데미생들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언네임드의 계략인가? 천재를 우승시켜주려는 배려인가? 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리고 그때 방송 마이크 너머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무효일세-! 한 번은 봐주기로 하지. 듣자 하니 원 사이의 거리가 계획보다 10cm 정도 더 떨어지게 그려졌다고 하네. 그러므로 앙피 자네는 아직 탈락이 아니네!
그럼 경기를 속행하길 바라네.」
이 걸걸한 목소리는 교장의 것이 분명했다.
미친 앙피 놈이 시작하자마자 탈락하는 모습을 보고는 급하게 달려가 마이크를 뺏을 것이다.
「잠시만요. 제가 가서 확인을···.
됐어-! 빨리 경기 재개해!」
마이크 너머로 심판을 막아서는 교장의 말을 끝으로 방송은 급하게 꺼졌다.
‘오.. 다행이다..’
앙피는 정말로 경기장의 원이 잘못 그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마터면 이런 쉬운 경기를 바로 패배할뻔했으니까.
앙피는 다시 긴장감을 갖고 천재와 마주 섰다.
그러나 천재는 정말 자신 없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아까 대기실에선 그렇게나 자신만만했으면서 왜 이러는지 앙피는 몰랐다. 그는 1라운드에 워낙 바빠서 천재 쪽을 볼 여유가 없었으니까.
“ㄱ.. 갈게요..!”
앙피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 발은 조금씩 움직였다.
주춤-. 주춤-.
혹여나 뛰다가 넘어져서 원 밖으로 넘어지는 미래가 보였기에 조금씩 천재를 향해 전진했다.
발가락만 움직이는 수준으로 스멀스멀 움직이자 이게 관객석에선 엄청난 보법으로 보였다.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몸이 앞으로 가는 것만 같은 모습으로 보였다.
“세상에. 언네임드가 가만히 서서 움직이고 있어!”
“설마 자전을 무시하고 버티고 있는 건가? 자전을 무시하는 자로 불러야겠어!”
앙피에게 이상한 별명이 추가되고 있었다.
그리고 천재는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앙피에게 달려들었다.
“오! 지컬 기숙사가 먼저 친다!”
“힘내라!!”
천재는 그대로 앙피의 몸에 머리를 박고 그를 밀어내려 애썼다.
하지만 그럼 그렇지, 앙피가 아무리 약하다 한들 천재보다 약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가 아무리 밀어대도 앙피는 조금도 밀리지 않고 서 있었다.
근데 한 가지 사실을 말해주자면, 그렇다고 천재를 밖으로 밀어낼 힘까지 되는 건 아니었다.
둘은 서로 밀어내지 못하고 말 그대로 고착 상태에 빠졌다.
“왜 아무도 움직이지 않지!?”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거야. 쟤넨 지금 붙어서 영혼의 격돌이 일어나고 있다고!”
앙피와 천재가 딱히 뭘 하지 않아도 관객들이 알아서 경기를 재밌게 만들어 줬다.
그렇게 별 의미도 없는 힘겨루기가 계속되던 와중.
천재가 울분에 가까운 기합을 냈다.
“으아아악!”
자유를 코앞에 두고 좌절당하는 기분. 그런 기분으로 천재는 몸을 더 앞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며 드디어 경기가 끝이 났다.
힘의 균형이 깨지자 한 녀석이 경기장 밖으로 넘어졌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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