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아ㅋㅋ 이건 반칙이지
어째서인지 갑자기 일이 커졌다.
그냥 혼자 지내기 심심해서 부추긴 일이었는데, 이렇게 관심을 받을 줄 몰랐다.
헤라 기숙사생들 대부분이 동아리실 앞에 모여들었고 선생들도 신기한지 구경 왔다.
그리고 동아리실엔 단 세 명만이 있었다.
우선, 헤라 기숙사 대표이자 지존마의 회장.
남도!
“허허. 드디어 이 병신같은 짓의 정점을 찍었소.”
“여! 대표! 훈련은 언제나 값을 치르는 거야!”
“지지 말라고 쥐엔장!”
다음으로, 남도를 따라 입부했지만 부회장의 자리까지 오른 여자.
우리앙!
“좋아! 내 신기술을 보여주지!”
“이쁘다 우리앙!”
“남도 말고 나는 어때!!”
마지막으로, 그냥 일반부원.
앙피!
“누구임?”
“어.. 아직 말 안 했는···.”
“대체 언제 시작하냐 이거?”
셋은 각자 몸을 풀기 시작했다.
“누구부터 할래? 난 언제든 자신 있어.”
“ㄱ... 그냥 동시에 하죠...”
예상에 없던 관객의 등장에 부끄러워진 앙피였다.
“후후. 보는 이가 이리 많으니 순서대로 뽐내는 게 좋겠소.”
“그게 맞지. 그럼 직책 순으로 하자.”
순서는 남도, 우리앙, 앙피 순으로 정해졌다.
승부의 기준은 바닥에서 얼마나 뛰었는가.
그 공정함을 판결할 심판도 모셨다.
“후후후. 오랜만이군.”
거의 창립 멤버나 다름없는 나영웅이 이번 승부의 심판을 맡았다. 그는 측정을 위해 줄자도 가져왔다.
“그럼 [이제 무릎을 굽히지 않고 제자리에서 뛰기] 승부를 시작하지!”
나영웅이 드디어 승부의 정체를 밝혔다.
그러자 달아오른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하게 식어버렸다.
“뭐라고? 무릎 안 굽히고 뛰기?”
“뭐야. 고작 그런 것 때문에 그렇게나 훈련을 했단 말이야?”
“실망이네.”
구경 온 아카데미생들의 실망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몇몇은 흥미가 식은 듯 돌아가버리기까지 했다.
“어이. 이런 아둔한 녀석들 같으니.”
그 광경을 본 나영웅이 관중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관중은 여전히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그러자 나영웅은 그들을 향해 강하게 말했다.
“그대들은 이걸 해본 적이 있는가?
그대들은 무언가를 위해 죽도록 노력해본 적이 있는가?”
“용사 되려면 당연히 죽도록···.”
“아니! 너희들은 없다.
용사가 되겠다는 녀석들이 이렇게나 편협한 사고를 갖는 겐가?
다른 이의 노력을 비웃을 자라면 당장 이 앞에 나와서 직접 해봐라!!”
나영웅이 관중을 향해 소리치자 다들 경직되었다.
‘... 자기도 하기 싫다고 동아리 안 들어왔으면서...’
그런 모습을 어이없게 쳐다보는 앙피였다.
하지만 효과는 있었다.
구경하던 아카데미생 중 몇몇이 자신만만하게 동아리실로 들어왔다.
하지만 남도와 우리앙이 그랬듯 그 누구도 [무릎을 굽히지 않고 제자리에서 뛰기]를 성공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관중들이 비웃으며 연달아 나왔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몸을 들썩이는 게 전부였다.
결국 모두가 앞에 나서서, 혹은 관중 틈에서 조용히 직접 시도해보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다.
“이거. 엄청나게 어려운데...?”
“큭. 발목이 부서질 것 같아. 몸이 뜬 것 같지도 않잖아!”
“후후후. 이제야 깨달았군.
그렇다면 이제 시작하지. 자, 남도 군. 위치로.”
나영웅이 그어둔 선 위에 남도가 섰다.
일주일 전과 딱히 다를 바 없어 보였던 그는 나막신을 벗자 훈련의 진가가 드러났다.
남도의 발목과 발바닥이 나막신을 신었을 때와 별 차이 없을 정도로 딱딱했다. 얼마나 훈련을 한 건지 발목에는 살이 트이고 아문 흉터가 잔뜩 져 있었다.
남도는 제자리에 서서 준비했다.
“시작!”
나영웅의 신호에 남도는 발목을 강하게 폈다. 그리고 두 손을 마치 날갯짓하듯 허공을 내리쳤다.
콰직-! 팡-
남도는 단순히 발목의 힘으로만 바닥을 박살 내며 공중으로 날았다. 동시에 허공을 내리친 파장으로 풍압이 발생해 점프력에 힘을 더했다.
이 얼마나 미친 피지컬인가.
남도는 자세를 꼿꼿이 유지한 채 엄청난 목 근육으로 천장을 뚫고 위층까지 올라갔다.
“우와아아아!!”
“역시 대표야. 흐어엉.”
군중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기껏해야 몇 센티 차이일 줄 알았는데 초장부터 이런 기록을 보이다니.
이날 그가 뚫은 위층의 동아리는 ‘놀람 참기 동아리 : 안놀라유’로 놀라면 동아리 탈퇴를 당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남도 덕분에 동아리 인원 절반이 탈퇴 당했다.
위층까지 뚫고 올라갔던 남도는 구멍으로 다시 내려왔다.
“허허. 아쉽소. 천장이 없었다면 5층 높이 이상은 뛸 수 있었소.”
아쉽다는 듯 말하는 남도를 본 앙피는 말을 잃었다.
사실 오늘 아침에 6cm라는 신기록을 세워 기뻐했었던 앙피였다. 그는 자신이 마지막 차례라는 것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반면 우리앙은 긴장된다는 듯 웃었다.
“역시 우리 남도야. 무식하게 힘으로 그 정도까지 다다를 줄이야.”
“고맙소. 우리앙도 이 정도는 가능하지 않소?”
“당연하지. 나한테 반할 준비해.”
남도와 우리앙 사이에 핑크빛 경쟁심이 불타올랐다.
“후후후. 줄자가 필요 없을 정도의 훌륭한 경기였군! 기록은 2층으로 하겠네!
다음으론 우리앙! 위치로.”
나영웅의 신호에 우리앙이 위치로 이동했다.
나영웅이 그어둔 선은 남도가 박살 낸 덕에 바닥도 움푹 들어갔다. 움푹 들어간 바닥 가운데엔 남도의 발자국이 선명히 찍혔다.
“거긴 패널티가 있으니 한 발자국 뒤에서 하게.”
“아 괜찮아. 여기서 할게.”
우리앙은 조신하게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는 남도의 발자국에 맞춰 섰다. 아마 목적이 이쪽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그녀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남도의 발자국과 정확히 맞춰 섰다.
“그럼. 시작!”
“아! 잠시만!”
우리앙이 급하게 나영웅을 멈춰 세웠다. 정식 경기 같은 것도 아니니 별로 문제가 되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쳐놨던 암막 커튼을 걷어내고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됐는가. 그럼···.”
“아. 잠시만!!”
아무리 정식 경기가 아니래도 이건 좀.
우리앙은 한쪽에 놓아둔 가방으로 총총 걸어가더니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그리고는 금방 돌아와 다시 자리에 섰다.
가방 가까이 있던 앙피만 우리앙이 무엇을 했는지 봤다. 그녀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다 유추할 수 있었는데, 그냥 미리 뜯어둔 고기를 엄청나게 흡입했다.
지난번에 본 게 있었기에 앙피는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이 갔다.
‘발바닥 근육을 엄청나게 부풀리려나..?’
딱히 맞을 것 같은 예상은 아니었다.
한편 우리앙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로브를 뒤집어썼다.
그리고는 입맛을 다시며 신호를 보냈다.
“쯔읍. 좋아, 됐어!”
“알았네. 그럼. 시작!”
나영웅의 시작 신호와 함께 모두가 그녀의 다리에 집중했다.
무릎을 피면 실격일뿐더러 이 활동의 핵심은 발목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앙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설마 포기했을 리가 없는 그녀는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형용할 수 없는 신비함이 느껴져 모두 숨을 죽이고 바라봤다.
한참을 중얼거린 그녀는 갑자기 팔을 뻗었다.
“마근술. 광배근.”
우리앙이 낮게 읊조렸다.
그러자 그녀의 로브가 꿈틀거렸다. 로브가 거의 끓는 물처럼 부풀더니 등 부분이 팡 하고 찢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근육 덩어리로 이루어진 날개가 뻗어 나왔다.
“뭐야!”
“역시 우리앙은 천사였어!”
우리앙은 꼿꼿한 자세로 날개를 퍼덕이며 미리 열어둔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녀는 단순한 근력 강화로만 쓰던 마법의 힘을 일주일 만에 터득해버렸다. 고작 동아리 활동을 위해서 말이다.
덕분에 우리앙은 이제 자신의 근육을 마법으로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었다. 단순히 근육을 키우고 줄이는 수준이 아니라 원하는 형태로 변형하는 마법이었다.
우리앙은 자꾸 흉측하게 변형하는 근육 때문에 사용을 꺼려했지만, 결국 지금의 날개 형태를 완성했다.
창문을 통해 나간 그녀는 여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녔다. 근데 무릎을 꼿꼿이 피고 있으니 뭐랄까, 잠자리 같았다.
아니 근데 뛰기 대회에서 날아다니는 건 반칙 수준이었다.
“어때. 이건 예상 못 했지!”
관중들은 창문에 들러붙어 그 광경을 감상하며 열광했다.
남도도 그녀가 새로운 힘을 깨우친 것에 박수를 보냈다. 패배했다는 사실에 육두문자가 입에서 질질 샜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리앙 덕분에 위층의 놀람 참기 동아리는 완전히 폐부 되었다.
한참을 하늘을 유영한 우리앙은 만족하며 다시 동아리실로 돌아왔다.
압도적인 그녀에게 나영웅은 1별관이라는 기록을 부여했다.
모두가 우리앙의 이름을 외치며 열광했다.
그리고 그다음 차례인 앙피는 심장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으어....으어어어떡하지..’
앙피는 용사 아카데미생을 너무 얕보았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서성이다가 우리앙 가방과 부딪혔다. 그 안에는 아직 뜯지 않은 포장된 고기가 하나 남아있었다.
‘저 고기에 마법을 부여해놨나..?’
앙피는 얼른 그 포장된 고기를 주웠다.
겉에는 ‘민르렁 허릿살’이라고 적혀있었다. 고기도 손가락만 한 크기로 엄청 작았다.
앙피는 우리앙이 기쁨을 만끽하는 틈을 타 얼른 포장을 뜯어 입에 넣었다.
고기는 예상외로 엄청나게 미끈거렸다. 씹으려 해도 치아 사이를 미끄러지며 입 안을 돌아다녔다.
헛 씹기를 반복하던 앙피는 나영웅의 신호에 꿀떡 고기를 삼켰다.
앙피는 두 사람이 뛴 곳에서 섰다. 패널티를 감수할 생각은 없었지만, 움푹 파인 곳 뒤에 서려니 관중의 눈초리가 따가웠다.
앙피는 준비된 곳에 서자 심장이 아까보다 더 뛰는 것 같았다.
뒤에서 구경할 땐 몰랐는데 막상 이 자리에 서니 관중이 너무 잘 보인다.
하필 금방 우리앙이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인 탓에 관중들의 기대도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그 기운이 전부 마지막 주자인 앙피에게 박혔다.
여기서 무언가 보여주지 않으면 따라올 관객의 야유가 너무나도 무서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보여줄 것도 없다.
소환술을 쓰지 않기로 한 앙피는 그냥 연약한 소년이었으니까.
그렇다고 그만두면 동아리를 한 의미가 없어진다. 이제야 혼자가 아닌 다른 이와 같이할 활동이 생겼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앙피는 그런 마음으로 뛸 준비를 했다. 아까 먹은 이상한 고기가 목구멍을 간지럽히는 기분이었다.
그 때문에 폴짝 뛴 앙피는 재채기를 하며 0.1cm 더 높게 뛰었다.
기록은 무려 6.1cm. 그의 신기록이었다.
앙피는 그래도 관객의 시선을 이겨내고 시도를 했단 사실에 자신이 성장했음을 느꼈다.
“야! 심판 언제 시작해!”
“마지막 주자 기대된다! 무소속 언네임드!”
하지만 움푹 파인 구덩이를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라 관객들은 앙피가 뛰었는지조차 몰랐다.
“자. 그럼 준비됐는가, 앙피 군.”
“아...”
그래 까짓것 눈 딱 감고 한 번 더 뛰자 싶었던 때였다.
관중 사이에 숨어 있던 교장과 눈이 마주쳤다.
교장은 앞선 두 명의 기록에 감명을 받은 듯 엄청나게 집중한 표정이었다.
그런 이글이글한 눈과 마주치니 앙피는 기세가 꺾였다.
“..... 포기.”
앙피는 그대로 동아리실에서 도망갔다.
“이예! 내가 무릎을 굽히지 않고 제자리에서 뛰기 왕이다!”
그렇게 앙피는 동아리도 탈퇴하였다.
사실 이미 예견된 사태이기에 익숙한 결과였다. 하지만 곧 앙피에게도 피할 수 없는 시련이 다가오고 있었다.
늘 하던 것처럼 피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그런 일.
그 일이 벌어질 축제까지 단 5일 남았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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