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동아리가 뭔지 아무도 모름;
나영웅이 떠난 이후 그의 노고가 가득 담긴 동아리실은 다른 아카데미생들에게 회자가 되었다. 지존마 이외에도 창설된 동아리는 많았지만 그들 역시도 동아리가 뭔지 모르던 상태였다.
하지만 지존마의 동아리실을 본 아카데미생은 동아리가 무엇인지 깊이 깨달았다. 나영웅의 걸작품을 직관한 이들은 하나 같이 동아리는 저 정도로 진심으로 해야 한다고 느꼈다.
지금까지 겉치레로 취급받던 동아리가 지존마를 시작으로 스멀스멀 꽃피우기 시작했다.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엔 다들 동아리에 흠뻑 빠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머리카락으로 활쏘기, 밀가루 없이 빵 만들기, 수업을 화려하게 째는 법 연구부 등 비록 제대로 된 동아리는 하나도 없었지만, 그들이 훈련 이외에 새로운 것에 열정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덩달아 몇 주 뒤 열리는 축제의 오픈 공연을 동아리가 맡기로 했다.
하지만 모든 동아리가 나설 수는 없었기에 단 3팀만 뽑히기로 했다. 그 기준은 당연히 교장의 마음에 드는가였다.
그 안건을 위해 지존마도 동아리실에 모였다.
“있잖아. 너네 다른 동아리실 봤어? 다른 곳도 엄청나게 꾸몄더라.”
“이 지존마가 좋은 본보기가 되었소. 파쿠리 당하는 기분이지만 나쁘지만은 않소!”
남도와 우리앙이 기쁘게 웃었다.
앙피도 옆에서 어색하게나마 따라 웃어봤다.
그러면서 저 안건은 언제 이야기하나 눈치를 슬슬 봤지만, 나머지 둘이 안건에는 관심이 없는 듯 계속 딴소리를 이어갔다.
“남도야 이거 먹어 봤어? 매점에 새로 나온 트뤠 무 가슴살이야.”
우리앙이 가방에서 자연스럽게 먹을 걸 꺼냈다. 그녀의 가방 안에는 늘 먹을 것이 가득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입이 심심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자주 배고프다고 한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앙피는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호기심이 좋게 작용한 적이 거의 없었다.
“저기... 우리앙 님도 헤라 기숙사셨죠...?”
“응. 남도랑 똑같아!”
“그럼.... 힘 세요..?”
앙피는 순수하게 물어본 것일 테지만, 저 질문은 헤라 기숙사에선 금기와 같았다.
힘 좀 쓴다 싶은 녀석들 사이에서 저 말은 곧 ‘너 좀 치냐?’ 같은 시비와 같았다. 다시 말해 앙피가 힘으로 도발한 것이다.
“오. 그런 면도 있었소?”
“느에..?”
앙피는 남도가 왜 저런 말을 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대신 우리앙이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
그녀는 닭가슴살 3개를 입에 욱여넣으며 말했다.
“나와. 앙피.”
우리앙의 호리호리했던 팔뚝이 갑자기 부풀어 올랐다. 그녀는 마치 덩치를 키우는 호랑이처럼 앙피를 노려봤다.
앙피는 무언가 잘못된 걸 알았지만 여기서 발뺌했다간 진짜로 맞아 죽을 것 같았다. 차라리 빨리 상대해주고 빨리 져주는 편이 살길이었다.
“여기 앉아. 승부야.”
우리앙은 의자 두 개를 나란히 마주 보게 두고 그 사이에 책상 하나를 두었다.
앙피는 그녀 건너편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분명 앙피와 별로 덩치 차이가 안 날 정도로 호리호리했던 우리앙은 몸집이 거의 2, 3배는 부풀어 있었다.
그녀에겐 미약한 마법의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마 진지하게 마법사의 길을 걸었다면 제법 괜찮은 마법을 깨우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 마주 앉은 앙피는 그녀가 굳이 마법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걸 느꼈다.
“무슨 승부에요...? 팔씨름...?”
앙피는 가운데 놓인 책상을 어색하게 만지작댔다.
“아니. 근육의 70%는 하체에 있어. 다리 올려.”
헤라 기숙사의 승부는 발씨름으로 했다.
팔씨름의 팔 대신 다리를 쓴다고 이해하면 편하다. 단 조금 다른 점이 있는데 밀어내는 것은 상대방의 팔이 아닌 몸통이다.
서로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린 후 발을 상대 몸통에 둔다. 그리고 동시에 힘을 주어 먼저 상대를 의자 밖으로 밀쳐내면 이기는 것이다.
상대를 밀어내는 하체 힘과 그걸 버텨내는 상체와 코어 힘이 중요한 승부였다.
그리고 어차피 질 생각으로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은 앙피는 시작하자마자 몸이 붕 떴다.
쾅-
앙피의 앙증맞은 발에 힘이 들어가기도 전에 그는 교실 끝까지 날아가 버렸다.
거의 피를 토하며 올려다본 그곳엔 다시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돌아간 우리앙이 앙증맞게 웃고 있었다.
앙피는 헤라 기숙사생에겐 함부로 말을 걸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 근데 저희는 축제 공연은 안 나가죠..?”
앙피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라도 전교생 앞에서 지존마의 ‘그것’을 하고 싶진 않았다.
다행히 남도와 우리앙도 딱히 관심은 없다는 반응이었다.
“굳이 동물원 원숭이가 될 필요는 없지 않소? 그런 관종짓은 소인과는 맞지 않소.”
“맞아. 솔직히 난 뭐 안 해도 괜찮아. 그냥 이렇게 동아리실에 가끔 모이는 걸로 충분해.”
우리앙이 슬쩍 남도에게 몸을 기댔다.
“그건 안 돼요...!”
앙피가 겁 없이 또 나섰다.
하지만 앙피는 앙피대로 이유가 있었다.
앙피는 혼자서 엄청나게 연습했단 말이다. 무소속인 그가 할 짓이라곤 이것밖에 없었다.
애초에 이 이상한 활동의 동아리를 들어온 것도 할 일이 너무나도 없어서였다. 다른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훈련을 할 동안 앙피는 계속해서 [무릎을 굽히지 않고 제자리에서 뛰기]를 연습했다.
그렇기에 다 같이 이걸 해줬으면 하는 앙피였다.
“으. 귀찮은데...”
우리앙은 하기 싫어하면서도 앙피를 위해 일어났다.
선뜻 할만한 활동도 아닌데 그래도 착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조금 들뜬 앙피 옆에 나란히 섰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는 건데?”
우리앙은 어정쩡하게 자세를 잡았다. 활동 내용이 워낙 난해해서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무릎을 굽히지 않고 제자리에서 뛰기.
한마디로 무릎을 굽히지 않고 점프를 하라는 소리다. 그런데 인간의 신체 구조상 무릎을 움직이지 않고 점프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매일 같이 이를 연습해본 앙피는 대략 감을 잡았다.
앙피는 시범을 보이려 자세를 잡았다.
무릎은 굽히면 안 되니 다리는 꼿꼿하게 고정. 상체도 점프에 방해되지 않게 꼿꼿이 세워준다.
그리고 핵심이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발목의 힘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미세하게나마 점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앙피는 위 내용 중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고 그냥 바로 보여줬다.
“읏!”
앙피가 무려 5cm나 점프했다.
그의 신기록이었다.
뿌듯해하는 앙피와 달리 나머지 둘은 웃음이 빵 터졌다.
“꺄르륵. 그게 뭐야. 그게 뛴 거야?”
“허허. 비장한 표정은 왜 지었소?”
하지만 그건 ‘무릎을 굽히지 않고 제자리에서 뛰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그렇기에 앙피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ㅎ.. 한 번 해봐요... 생각보다···.”
“야. 한 발로 뛰어도 그것보다 잘 뛰어.”
우리앙은 자신만만하게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가볍게 뛰려는 순간 앙피가 소리치는 바람에 어정쩡하게 몸개그를 했다.
“ㅇ.. 안 돼요!”
“아 깜짝야. 왜!”
“ㅁ.. 무릎을 굽히셨잖아요...”
“아. 맞다. 무릎 안 굽히고 뛰는 거지?”
우리앙이 자연스럽게 무릎을 굽힌 채 준비하는 바람에 멈춰 세웠나 보다.
그녀는 다시 한번 무릎을 꼿꼿이 펴고 뛸 준비를 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쉽사리 움직이질 않았다.
그녀가 뛰지는 않고 무릎을 살짝살짝 움직이며 꿈틀거리기만 하자 남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안 뛰는 것이오?”
“음...”
우리앙은 그제야 이 활동의 진가를 알아챘다.
본능적으로 뛰기 위해 무릎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이걸 강제로 억제하니 어떻게 뛰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팔을 휘적거리며 시도하다 쾅 하고 넘어져 버렸다.
“흐흫..”
“하하하. 뭐하시오?”
남도는 또 빵 터져서 그녀를 비웃었다.
우리앙은 창피한지 얼굴을 확 붉히며 화를 냈다.
“남도 네가 해봐!”
“어렵지 않소. 고작 뛰는 게 뭐가 힘들단 말이오.”
남도가 자신만만하게 서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우리앙과 다를 바 없이 한참을 얼타다가 시도 자체를 포기했다. 아무래도 몸을 가장 많이 써봤기에 이런 비효율적인 움직임을 떠올리기 힘든 모양이었다.
“봐봐. 어렵지!?”
“누가 이런 해괴망측한 활동을 한단 말이오!”
‘..... 네가 만들었잖아...’
“... 헤헤.. 쉬운데..”
앙피는 보란 듯이 한 번 더 점프를 해 보였다.
그러자 아까와 달리 이번엔 감탄이 나왔다. 막상 이 활동의 진가를 알고 나니 앙피가 다르게 보였다.
앙피가 계속해서 뛰어대자 둘은 약이 올랐는지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아니. 어떻게 하는 거야!”
“마법사라 가능한 거였소?”
“알려드릴까요...?”
“됐어!”
“됐소!”
그런 지시적인 제안을 받아들일 검지인이 아니었다.
둘은 일주일 후에 보자는 말과 함께 동아리실을 나가버렸다.
결국 앙피는 또 혼자 남았다. 이럴 거면 이상한 동아리까지 들어온 이유가 없었다. 앙피는 또 혼자서 이 쓸데없는 행동이나 연습하게 되었다.
그렇게 혼자서 동아리실을 일주일째 쓰고나서야 남도와 우리앙이 돌아왔다.
사실 그간 일주일 동안 앙피는 이상한 소문을 몇 개 들었다.
헤라 기숙사 대표가 이상한 훈련을 시작했다거나 밤마다 아카데미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는 자들이 있다는 소리를.
앙피는 그 소문의 누군지 빤히 예상이 갔지만 모른 척했다.
드르륵- 쾅.
동아리실 문이 열리며 우리앙이 들어왔다.
그녀는 아주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그녀의 가방이 이전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였다.
게다가 단정했던 교복 대신 이상한 로브를 뒤집어쓰고 왔다. 마치 긴 훈련을 끝내고 하산한 인물 같았다.
“.... 드디어 왔군.”
앙피는 어쩐지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 승부하자고. 앙피.”
“후후. 아직 한 녀석이 안 왔···. 아... 못 하겠어요.”
앙피는 갑작스러운 상황극을 감당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앙은 계속 분위기를 이어 나갔다.
“그래. 우리의 회장 말이지. 지금 오고 있다.”
우리앙의 말이 끝나자 저 멀리서 엄청난 진동이 느껴졌다.
별관의 입구에서부터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몰려오고 있었다.
“대표! 드디어 훈련의 성과를!”
“그래. 어서 보여주라고!”
“허허. 내 똑똑히 증명하겠소.”
대표의 괴상한 훈련에 이유를 찾지 못한 일부 기숙사생들이 그 훈련에 동참했다.
그들은 남도가 하는 무릎을 굽히지 않고 제자리에서 뛰기 훈련을 이렇게 해석했다.
절제력, 선택과 집중, 힘의 분산, 사고력 등등. 수많은 능력을 향상하는 훈련이라고.
그렇게 이 이상한 훈련에 동참한 기숙사생들과 함께 남도가 동아리실로 들어왔다.
“왔군. 마지막 녀석이.”
“허허허. 급하게 굴지 마시오.”
“어으.. 어서 시작... 하자고...”
앙피, 남도, 우리앙의 삼파전이 시작된다.
‘... 이 상황극 언제까지 해...?’
과연 무릎을 굽···. 어쩌고의 최강자는 누가 될 것인가!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순수한 열정이 맞붙는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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