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벼랑 끝의 독대지. 돼지우리로 피신!
카힐이 다시 그녀를 손봐주러 가려던 찰나, 독대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 정도는 다 예상했죠!”
독대지는 갑자기 뒤를 돌아 뛰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피고인 대기방으로 들어갔다. 현재 독대지가 침실로 쓰던 그 방이다.
“뭐냐 쟤?”
“ㅇ...일단 쫓아가죠...”
그녀를 뒤쫓아가자 웬 희한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독대지가 침대를 낑낑 밀고 있는 게 아닌가. 호기롭게 뛰어간 것 치고는 볼품없는 모습이다.
“주무시려는 건가요...?”
“멍청아 저렇게 처맞고 잠이 오겠냐?”
두 사람의 태클에도 굴하지 않고 독대지는 열심히 침대를 밀어냈다. 침대를 밀자 그 아래엔 투명한 방 하나가 나타났다.
독대지는 얼른 다락문을 열고 투명한 방 안으로 뛰어내렸다.
“하하! 됐다! 됐어!”
독대지가 들어간 방은 마치 투명한 뚜껑의 햄스터 집을 보는 듯했다. 피고인 대기방과 이어진 천장은 투명한 유리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용도가 분명해 보일 정도로 강하고 단단한 유리였다.
카힐과 앙피는 그녀가 들어간 유리 감옥 위로 걸어갔다. 발밑에선 독대지가 세상 거만한 표정으로 둘을 올려다보고 있다.
“이거 부숴버리면 안 되나?”
카힐이 유리 바닥을 쾅쾅 밟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크게 점프해도 유리 바닥엔 조금의 금도 가지 않았다.
“호호. 멍청하군요. 이건 제가 의뢰해서 만든 특수 유리라 절대 깨지지 않아요. 감옥으로 쓰려던 방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호호호. 너무 똑똑한 게 아닌가 몰라.”
유리 바닥 너머로 독대지가 속 편히 누워있는 게 보였다. 이렇게 그녀를 보고 있자니 동물원 하마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근데 여기가 1층이면 저기가 지하 1층이니까... 아마...’
앙피는 무언가 깨달았는지 유리 바닥에 얼굴을 딱 붙였다. 그리고는 독대지와 방 안을 천천히 살폈다.
‘...돼지우리 같다. 히히...’
“....음. 이레스트 님 계시나요...?”
“네. 주인주인님. 항상 곁에 있었습니다.”
이레스트가 꽤나 편안한 복장으로 나타났다. 매일 정갈한 제복만 입던 그녀의 네츄럴한 모습은 귀했다.
아마 앙피가 감옥에 갇힌 김에 늘어지게 쉬고 있던 모양이다.
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앙피는 이레스트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이레스트는 잠시 생각하더니 “어렵진 않습니다.”라는 대답과 함께 사라졌다.
‘역시... 저분이 가장 믿음직해.... 내 소환수가 아니어서 그런가...?’
앙피는 본인의 소환수인 카힐을 슬쩍 쳐다봤다.
“카가가각!”
카힐은 이빨과 손톱으로 유리 바닥을 긁어대고 있다.
‘...왜 정상적인 소환수가 없는 걸까....’
앙피는 굳이 저 밖의 비비와 나영웅까지 확인하진 않기로 했다.
그는 이레스트가 부탁한 일을 처리할 때까지 기다리면 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둘 리 없는 사람이 있었다.
“야! 앙피. 유리 쪽을 못 깨면 바닥을 깨고 들어갈까?”
“......바닥을 깰 힘이면 유리를 깨지 않을까요..?”
이쪽을 얘기했던 게 아닌데. 앙피를 가만 냅둘 리 없는 쪽은 당연히 독대지 얘기였다.
독대지가 단순히 카힐을 피해 저곳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그녀의 재판봉의 힘을 떠올려 보아라.
앙피에게 남은 질문 수는 단 1개. 접촉하지 않고 대화만이 가능한 이 상태야말로 독대지에게 가장 유리한 상황이다.
‘왠지는 몰라도 저 얼빵한 놈이 도망가지는 않아. 아마 내 재판봉을 노리는 거겠지. 멍청하긴.’
독대지는 얼빵한 앙피를 올려다봤다. 유리 너머로 맹한 얼굴의 앙피가 퍽 우스워만 보였다. 저런 녀석을 카힐 같은 무서운 년이 따르는 걸 보면 마법사일 확률이 높다.
“그래봤자 이 대마법사의 물건을 이기진 못하지.
거기. 작은 어린이분! 제 재판봉을 노리시는 거죠?”
독대지가 자연스럽게 대답을 유도했다.
하지만 그런 살가운 질문에 호락호락 대답할 앙피가 아니었다. 우리 앙피는 그런 자연스러운 대화 잘 못 해!
“...”
“그게 뭔데! 좋은 거냐?”
대신 재판봉의 힘 따위 모르는 카힐이 대신 답해줬다. 독대지가 앙피에게 질문을 유도해도 옆에 있던 카힐이 의도치 않게 대신 대답하며 막아주었다.
“애초에 중지를 파괴할 생각으로 오신 거죠?”
“뭔 개소리야. 니네가 가두지만 않았어도 얌전히 있다 갔거든?”
“그쪽 말고 저분한테 질문한 거예요. 당신도 저런 괴팍한 여자랑 다니려면 힘들겠네요. 그죠?”
“하. 아까 덜 때렸나. 야, 앙피 대답 잘해라. 내가 괴팍해!?”
카힐이 앙피의 속도 모르고 앙피를 붙잡고 흔들었다. 대답을 할 수 없는 앙피는 입을 틀어막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힐이 아무리 무섭게 눈을 맞춰도 말할 수 없다고.
“야. 대답 안 하냐? 응? 나랑 다니는 게 힘드냐고. 니가 같이 가자며.”
“...”
앙피는 눈을 이리저리 돌렸지만, 카힐은 집요하게 앙피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저 봐봐. 저렇게 쪼아대니 남자애가 기를 못 펴지.”
“야! 얜 처음부터 이렇게 힘없었거든? 생긴 걸 봐!”
카힐이 앙피를 장난감마냥 좌우로 흔들었다. 앙피는 그저 힘없이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본 독대지가 재판봉을 앙피에게 떡하니 보여줬다. 그리고는 살랑살랑 흔들며 물었다.
“그래. 내가 저 녀석을 없애 줄까? 내 재판봉의 힘이면 가능해!”
“정말요?”
앙피는 얼떨결에 넙죽 대답해버렸다. 앙피는 정말 본인의 손으로 없애는 것만 싫은 거지 남이 없애주는 건 좋은 모양이다.
“하하하! 으하하하하!”
덕분에 질문 세 가지를 모두 완성한 독대지는 귀가 떨어지라 웃어댔다.
독대지의 재판봉이 웅웅 빛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이내 앙피의 목과 형체 없는 사슬로 이어진다.
판결 시간이다. 세 가지 질문에 모두 답해버린 앙피의 운명은 이제 독대지에게 달렸다.
“당연히 사형이에요! 잘 죽어! 내 중지를 망친 죄수 놈!”
독대지가 빛나는 재판봉을 높게 들어올린다.
“이레스트 님!!”
앙피가 애타게 부르는 소리는 독대지의 재판봉 소리에 바로 묻혀버렸다.
꽝- 꽝- 꽝-.
둔탁한 소리.
“뭐야? 쾅쾅이 아니라?”
독대지는 이상하게 탁한 소리의 재판봉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는 썩은 피부의 팔 하나가 들려있었다.
“우아악! 뭐야!!”
독대지는 깜짝 놀라서 뒤로 자빠졌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며 올려다본 그곳엔 앙피가 재판봉을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팔 하나가 없는 비비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꾸어!”
“ㅇ..어떻게! 문은 절대 열릴 리가 없다고요!”
독대지가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다락문을 확인했다. 하지만 다락문은 확실히 잠겨있다. 누군가 들어온 흔적조차 없다.
“마법! 저 꼬맹이 녀석이 또 마법을 쓴 거야!!”
독대지가 모든 걸 잃은 채로 방방 뛰어 댔다. 또 화를 내며 씩씩거린다.
그녀가 방방 뛸 때마다 재판소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앙피는 뺏은 재판봉을 소중히 끌어안고 그 모습을 신기하게 봤다. 보다 못한 이레스트가 인주와 종이를 가져와 인장을 찍는 것을 도와주었다.
덕분에 벌써 소지, 약지, 중지. 총 3개의 인장을 모았다. 남은 건 단 2개.
“야! 이 돼지들아! 내가 용서할 것 같아!!”
한편 독대지는 여전히 얼굴이 시뻘게져서 발을 쾅쾅 구르고 있다.
‘돼지 눈엔 돼지만 보인댔어...’
“그보다... 혹시 지하에서 무슨 일 일어났는지 모르세요....?”
앙피는 유리 바닥에 쪼그려 앉아 독대지를 가엽게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독대지는 지상인 재판소에서만 있었기에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경비병인 뭉치가 지하를 터뜨려 무너뜨렸다는 사실을.
이미 이 시점에 감옥이 있던 지하는 전부 무너졌다. 그리고 그 위에 위태롭게 버티던 재판소. 게다가 그 재판소 중에서도 가장 밑으로 보이는 저 방.
“말 더듬지 말고 똑바로 하세요!”
독대지가 방방 뛰고 있는 저 방. 저 밑엔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는 소리는, 저렇게 계속해서 충격을 주면···.
쿠구궁. 콰그극.
독대지가 있는 방 모서리가 불길한 소리를 내며 뜯겨 떨어졌다. 금방 이레스트가 재판봉을 훔치러 갔던 구멍도 바로 저곳이다.
그리고 이레스트가 뚫었던 구멍과 독대지가 방방 뛰는 충격에 순식간에 바닥 전체에 큰 균열이 생겼다.
“어?”
독대지는 서늘함을 감지하고 뛰는 것을 멈췄다. 그녀의 붉은 얼굴이 삽시간에 파랗게 질린다.
“ㅅ...살려줘.”
독대지는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바닥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얼어붙었다. 그녀는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앙피를 올려다봤다.
재판봉도 가져갔으니 자신을 죽게 놔둘 이유는 없지 않으냐 하는 쓸데없는 하소연을 시작했다.
“ㄴ..난 중지를 보다 질서 있게 만들려고 했을 뿐이에요. 그게 나쁜 건 아니잖니!”
독대지가 지루한 악당 같은 대사를 뱉는다.
그리고 전혀 영웅의 면모가 없는 앙피는 이렇게 말했다.
“ㅇ..어... 떨어질 때 등으로 착지하면 생존 확률이 오를 거예요...!”
쿠과가가강-!
재판소의 어딘가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이곳도 곧 무너질 것이다.
앙피는 재빨리 발을 구르며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누구보다 빨리 도망가는 주인을 소환수들도 어서 쫓았다.
그 누구도 독대지의 하소연을 들을 생각조차 없었다.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그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던 독대지는 바닥이 무너지며 그대로 추락했다.
그녀는 떨어지면서 앙피의 조언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등을 바닥을 향하게 했지만, 바닥엔 둔탁한 잔해가 그녀의 허리를 끊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만약, 똑바로 바닥을 보고 있었다면 잔해 옆에 서 있던 뭉치가 받아줬을 텐데.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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