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물에 빠진 마족 구해주니, 보따리 내놔!
카힐은 사실 기분이 꽤 좋던 상태였다.
그리고 그건 감옥 바닥에 버리고 온 뭉치 덕분이었다.
***
조금 전, 카힐이 아직 감옥 지하 1층에 갇혀 있었을 때.
그녀는 가장 안쪽의 독방에 갇혀 있었다.
“아까부터 더럽게 시끄럽네. 밑에서 파티라도 하나?”
카힐은 바닥에 귀를 가만히 대 봤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와 신나게(?)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는 것 보니 맞는 것 같기도.
그렇게 이상한 오해를 할뻔한 순간 카힐의 독방 바닥에 쩌적 하고 금이 갔다.
쩌저저적-.
바닥의 선명한 금이 카힐을 향해 달려온다.
“엥? 어!”
그제야 파티가 아닌 장례식이란 걸 눈치챈 카힐이 부리나케 밖을 향해 소리쳤다.
“야! 뭐야! 여기 왜 무너져? 사형이란 게 다 같이 죽는 거였냐!!”
하지만 카힐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밖까지 닿지 않았다. 그녀가 붕괴를 눈치챈 시점에 다른 죄수들은 모두 빠져나갔으니까.
그사이 실금처럼 가늘던 선이 몸집을 더욱 키우고 있다.
“아 씨! 사형 날짜 착각할 때부터 알아봤다 이 새끼들아! 사형이 죽는 거 아니라며. 그것도 거짓말이었냐고!!”
그리고 그때 뭉치가 나타났다.
같이 있었던 앙피와 비비는 이미 지상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같은 소환수를 버릴 수 없던 뭉치는 카힐의 목소리를 듣고 급하게 달려왔다.
그런데 막상 그녀와 마주하고는 선뜻 독방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당신이 카힐이 맞습니까.”
뭉치는 지하 1층에 유일하게 갇힌 카힐에게 물었다.
달리 그녀 말고 있는 사람도 없는데. 어쩌면 뭉치는 본능적으로 마족의 악의를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카힐은 조그만 뿔을 손가락으로 만지작대며 그렇다고 답했다.
“...이상합니다. 앙피 님은 분명 좋은 분이신데 어째서 이런 소환수를...”
“야이씨. 말 다 했냐?!”
카힐이 문의 창살 사이로 팔을 확 빼더니 그대로 뭉치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나 뭉치의 우직한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구속구가 없었다면 모를까, 지금의 카힐은 뭉치에게 너무나 약했다.
“죄송합니다. 선입견은 좋지 않은 거겠죠. 조금 물러나 주세요. 문을 열겠습니다.”
뭉치가 카힐의 손을 고이 다시 넣어주고는 문을 열어줬다. 감옥의 경비 일을 허투루 하지 않은 그이기에 이전에 비비에게 뺏겼던 감옥 열쇠 정도는 쉽게(?) 돌려받았다.
그리고 수갑 열쇠도 그녀에게 던져주었다. 수갑을 풀어주느라 접촉하면 그녀가 싫어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가 의외로 고분고분 자신을 풀어주자 카힐은 얼떨떨하면서도 얼른 독방 밖으로 나왔다. 수갑을 풀어도 여전히 구속구가 손목을 억제하고 있긴 하지만.
“ㅇ..어. 그래! 너 한 번만 봐준다. 보기보다 남자답네.”
보기에도 남자다운 뭉치는 남은 사형수가 더 있진 않나 살펴보고는 카힐의 상태를 점검했다.
카힐은 독방에서 잘 쉬고 있었기에 별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보다 바닥의 상태를 신경 쓰는 편이 좋을 텐데.
둘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복도 중앙에 작은 구멍이 생겼다.
투둑-
그 구멍의 가장자리를 따라 작은 부스러기들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보다 자세는 왜 그러신 겁니까? 수갑을 너무 오래 해서 팔근육이 굳으신 겁니까!? 역시 죄수들에게 수갑을 하는 건 앞으로 없애야겠습니다. 아.. 없어진 감옥부터 다시 지어야겠지만요. 하하..”
어색하게 웃은 뭉치가 싹 정색을 하더니 카힐의 팔을 움켜쥐었다.
구속구 때문에 어정쩡하게 팔을 붙이고 있는 건데. 뭉치는 아직 구속구를 보지 못한 모양이다.
“뭐야? 뭐 하는 거야?”
“이렇게 하면 금방 근육이 풀릴 겁니다.”
뭉치는 카힐의 팔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리고 곧 좌우로 빙글빙글, 이리저리.
카힐이 으르렁거리며 놓으라고 윽박지르고 나서야 문박은 카힐의 손목을 감싼 구속구를 발견했다.
“뭡니까? 수갑 열쇠를 쓸 줄 모르시는 겁니까? 아까 드린 열쇠를 수갑 구멍에 넣으면···.”
“나 그렇게 안 멍청하거든? 이거 수갑 아냐. 잘 봐봐!”
카힐이 손목을 뭉치 눈앞에 들이밀었다. 뭉치는 한참을 구속구를 들여다보더니 다시 한번 카힐의 손목을 붙잡았다.
“흐이럇!!”
“이 멍청아! 힘으로 되겠냐?”
카힐의 만류에도 굴하지 않고 구속구를 힘으로 뜯으려던 뭉치. 결국 금방 포기했다.
“하. 대체 뭐로 만든 수갑이죠? 부서지지 않을 리가 없는데.”
“이건 앙피가 만든 거야. 마법이 깃든 구속구라고. 시발 그래서 내 힘도 다 봉인됐어!”
“마법입니까?”
마법이라는 단어에 뭉치가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러더니 “앗!”하는 탄식과 함께 갑옷 안을 엄청나게 뒤적거렸다.
그리고 이내 푸른 종이 하나를 꺼냈다. 빳빳한 종이를 영롱한 푸른빛이 감싸 얼핏 봐도 그냥 종이가 아니었다.
“이건 ‘자유이용권’이라는 마법이 깃든 종이입니다. 감옥을 지을 당시 마법이 깃든 수갑을 쓰기로 해서 만든 건데요, 결국 비용 문제로 일반 수갑으로 바꾸면서 같이 폐기된 마법 종이입니다.”
“설마 그거..”
“네. 맞습니다. 죄수의 수갑을 풀어주는 종이입니다. 원래 쓰려던 마법 수갑은 이 종이 이외엔 절대 풀 수 없으려던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형량을 채운 분의 수갑을 풀어줄 용도였죠. 하지만 독대지 님이 무기징역만 때리는 탓에···.”
“야. 알았으니까 빨리 내놔봐. 어쨌든 그걸로 내 구속구도 푼다는 거 아니야!”
뭉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카힐은 그의 손에서 종이를 뺏으려 했지만 뭉치는 바로 넘겨주지 않았다.
그리고 슬슬 이곳의 바닥도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복도 중앙의 조그맸던 구멍은 어느새 사람 하나가 누울 정도로 커져 있었다.
뭉치는 매달리는 카힐을 뿌리치며 말했다.
“우선. 이걸 알아주셔야 합니다. 앙피 님이 당신에게 구속구를 건 이유가 분명 있을 터. 하지만 저는 같은 소환수의 의리. 바로 이 의리를 지키기 위해···.”
“그만!!”
쿠르르릉-.
카힐의 호통과 동시에 복도의 구멍이 무너지는 속도가 가속되었다.
쿠구구구궁-.
아직 중앙을 지나지 못한 둘은 꼼짝없이 갇히게 될 것이다. 구멍이 더 커져 완전히 고립되기 전에 빨리 넘어가야 한다.
“야! 일단 써! 일단 넘어가고 말해!”
“으앗! 네!”
뭉치는 빳빳한 종이를 카힐의 구속구 중앙에 댔다. 그리고는 그대로 쓱 내리자 그 단단했던 구속구가 고작 종이에 반으로 잘려버렸다.
“드디어. 드디어!”
카힐은 두 팔을 빙빙 돌렸다. 언제나 가지런히 모여있던 두 손이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
카힐은 기뻐서 방방 뛰었다. 있을 때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지만 역시 두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건 엄청난 해방감이 있었다.
“좋아! 탈출하자!!”
카힐은 잔뜩 업되서 복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중앙의 구멍이 점점 넓어지고 있어 최대한 빠르고 멀리 점프해도 간당간당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뭉치는 일침을 끊지 않았다.
“구속이 풀렸다고 앙피 님에게 기어오르시면 안 됩니다. 소환수끼리의 의리와 주종의 관계는 다르니까요. 또···.”
“조용히 좀 해! 설명충 극혐이야!”
카힐이 뭉치에게 소리를 지르며 먼저 도약했다.
슈우우웅.
카힐은 가벼워진 두 손 덕분인지 쉽게 구멍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그 뒤를 뭉치가 있는 힘껏 점프했다.
“크윽!”
하지만 조금 짧았다.
구멍에 빠지진 않았지만 턱을 잡고 겨우 버티고 있다. 허나 막 무너지고 있는 가장자리는 뭉치의 무게를 그렇게 오래 버텨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뭉치가 어련히 건너겠지 싶었던 카힐은 이미 계단까지 뛰어간 상태였다.
“도와주십쇼!”
저 앞에서 뭉치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뭉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뭐야? 어디 갔냐!”
“저 구멍에 매달려 있습니다! 어서 끌어올려 주십시오!”
뭉치는 자신이 힘을 주어 기어오르면 가장자리가 부서져 버릴 것이라는 걸 느꼈다.
그리고 카힐은 이렇게 말했다.
“뭐. 알아서 와~”
인간을 벌레 보듯 보는 카힐에게 뭉치의 안위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을 꺼내줬는데 너무하지 않냐고? 카힐은 그저 ‘나뭇가지’를 잡고 강물을 탈출했다 생각할 뿐이다. 강물에서 나온 사람이 나뭇가지가 부러졌는지 걱정하지는 않으니까.
카힐은 뭉치의 외침을 무시하고 계단을 올랐다.
“카힐 씨! 소환수끼리의 의리를!! 의리······.”
계단을 올라서인지 뭉치가 떨어져서인지 그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
그렇게 다시 지금.
중지의 재판소엔 둔탁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이. 싸가지. 없는. 년아. 왜 시비 걸고 지랄이야.”
“끄어어억!”
카힐은 이제 연타가 가능하단 사실이 기뻤다. 이제까지 두 손으로 내리찍기만 했는데 드디어 양손을 번갈아 가며 휘두를 수 있다.
“아으 드럽게 질기네!”
“너.. 내가···.”
“닥쳐! 어차피 뭐라 하는지 안 들을 거야!”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근데 이거 힘은 거의 그대론데? 뭐야!”
‘자유이용권’이라는 마법 종이는 정확히 말하자면 수갑을 반으로 자르는 마법이다. 재범률을 걱정했기에 언제든 다시 붙일 수 있게 말이다.
한마디로 봉인된 그녀의 힘이 돌아오진 않는다는 소리다. 그냥 ‘자유로운 구속구’라는 역설적인 물체가 되었다.
카힐은 그렇게 실컷 독대지를 패고는 터벅터벅 앙피에게 돌아왔다.
어째서인지 엄청나게 후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개운해!”
“그... 혹시 재판봉 가져오셨나요..?”
앙피는 다른 계획을 실행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카힐이 독대지를 팼으니 재판봉은 공짜였으니까.
하지만 카힐이 그런 사소한 일을 신경 썼을 리가.
“하...하.... 이 개자식들이!! 가만 안 둘 거야!!”
하도 처맞아서 피부가 부드러워진 독대지가 재판봉을 높게 들어 올렸다.
“앗... 저거 가져와야 했는데...”
“뭐. 다시 패서 가져올게.”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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