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갑자기 분위기 퀴즈쇼
“자! 첫 번째 질문! 탈옥은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일까요?”
“ㅁ...몰라요. 전 나올 생각이 없었는데..”
쾅-.
독대지가 재판봉을 바닥에 두드렸다. 그리고는 오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대답을 똑바로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제 질문에 올바른 답을 하지 못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장담 못 해요.”
그녀가 재판봉으로 손을 툭툭 두드렸다. 협박인지 사실인지는 몰라도 그녀가 세 번째 질문까지 마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재판봉의 마법에 걸린 이상 독대지의 질문의 정답을 맞혀야 한다. 과연 첫 번째 질문엔 제대로 답을 한 것일까?
독대지의 표정만 봐선 알 수 없었다.
한편 앙피는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저게 그거지...? 인장....이었나?’
앙피가 독대지 손에 들린 재판봉을 유심히 바라봤다.
저번 재판에서 어렴풋이 봤었다. 재판봉의 머리 부분에 인장처럼 보이는 문양이 있었다.
다른 손가락의 인장과 같이 지문 모양으로 파인 모양에 ‘중지’라는 글씨가 보였다. 중지의 인장이 확실하다.
“하...”
앙피는 인장의 위치를 파악했음에도 한숨을 쉬었다. 사실 그는 이미 재판봉의 마법을 파훼할 방법을 떠올렸었기 때문이다.
질문에 잘 대답해야 한다. 다른 말로 대답을 안 하면 된다는 소리다.
뭉치가 카힐을 구하러 간 게 조금 되었으니 곧 올라올 것이다. 그렇다면 둘에게 달라붙어 그대로 도망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도망간 이후 마을에서 인장을 찾는다는 가정하에 가능하다. 애초에 중지의 인장이 독대지에게 있다면 그녀에게서 도망갈 수 없게 된다.
‘...그래도 방법이 하나 더 있지.’
“비비 님. 잠깐 귀 좀···.”
앙피가 비비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 내용은 모르겠지만 비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판소에선 잡담 금지입니다! 당신들은 제가 꼭 사형시켜드리죠. 중지식 사형이 아닌, 진짜 사형을 말이죠. 알았으면 이제 대답해!”
독대지가 독기 가득한 눈으로 앙피를 노려봤다.
꿀꺽. 앙피는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으로선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이 너무 적다. 누군가. 아무나 빨리 와준다면 방법이 더 생길 텐데.
“자, 두 번째 질문! 일 더하기 일은 뭐죠?!”
1+1. 아무리 교육과 학업이 발달하지 않은 소지에서 자랐다 해도 너무 무시하는 질문이었다. 식당을 하던 앙피가 돈 계산을 한 게 몇 번인데 이런 간단한 계산조차 못 하겠는가.
어서 정답을 말해줘 앙피.
“쿠에에엙!”
“뭐죠? 그게 대답인가요?”
두 번째 질문에 앙피 대신 비비가 대답했다.
이는 앙피의 전략이었다. 침묵을 유지하고 도망갈 수 없다면, 이상한 대답으로 시간을 끌자. 그렇게 카힐과 뭉치가 오면 합심해서 저 재판봉을 빼앗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독대지는 생각보다 더 독한 여자였다.
“오답이에요!”
이상한 대답으로 시간을 끌어? 어림도 없는 소리. 답안지에 헛소리를 장황하게 써봤자 오답은 오답이다.
앙피는 독대지가 ‘그게 무슨 뜻이죠?’라고 반문하면 계속해서 시간을 끌 생각이었겠지만 그건 독대지가 친절해야 가능한 일이다. 독대지로서는 매정하게 걷어차 버리면 그만이다.
독대지는 과장될 정도로 크게 웃었댔다.
“자. 당신들이 제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했다고 인정하시죠?”
그녀는 다 끝났다는 뉘앙스로 재판봉을 들어 보였다.
그렇게 앙피가 최후의 수단을 꺼내려던 그때.
“후후후. 이의 있소.”
재판소의 정문으로 나영웅이 등장했다.
올라오는 언덕이 힘들었는지 땀에 흠뻑 젖었는데 그 땀이 빛을 머금어 반짝반짝 빛났다.
“뭐라고요? 그쪽은 누군데 끼어들죠? 당장 나가요!”
“그대는 어째서 비비 양의 답이 오답이라 치부하는 것이지?”
“하. 저딴 엉터리 대답은 당연히 오답이지! 뭣도 모르면 빠져요. 이 개돼지야!”
“후후후. 돼지 눈엔 돼지만 보인다 했지. 그대는 너무나도 우둔하군.”
나영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재판소 중앙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씩씩대는 독대지를 향해 진중한 어투로 물었다.
“그대는 좀비어를 할 줄 아는가?”
“뭐? 갑자기 뭔 개소리죠?”
“저 ‘쿠에에엙!’이 무슨 뜻인 줄 알고 오답이라 확신하는 것이지? 이 몸에게는 분명한 정.답.으로 들렸다만. 그대는 다른 종족의 언어를 차별하는 레이시스트인가?”
나영웅은 엄청난 기세로 독대지를 압박했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 앙피에게 걱정 말라는 윙크를 보냈다.
앙피는 속이 조금 울렁거렸지만, 그가 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독대지는 주춤거리다가 우물쭈물 다시 반격에 나섰다.
“그럼. 대답해보시죠. 저 좀비가 뭐라고 말했는데요. 그쪽은 당연히 좀비어인가 뭔가를 할 줄 알아서 그런 말을 했겠죠? 자! 대답해보라고요! 개돼지 놈아!”
“후후후. 흥분해서 인신공격부터 하는군. 수준.”
“이익 시발!”
“그나저나 질문이 뭐였지?”
“너 이 돼지 새끼가! 장난치냐!”
독대지가 다른 종족으로 보일 정도로 온몸이 붉어졌다. 반면 나영웅은 이런 설전이 익숙한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앙피가 뒤에서 조용히 두 번째 질문을 말해줬다.
두 번째 질문을 파악한 나영웅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이제야 비비 양의 대답이 이해되는군.”
“거짓말 치지마!”
“아아. 조용히 해주게. 좀비어는 보기보다 섬세해서 번역하기 힘들거든.”
나영웅은 허공에 손가락을 허우적거리며 정말 좀비어를 해독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이내 행동을 멈추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 해독을 지금···.”
“비비 양은 이렇게 말했더군.
[1+1의 답은 간단하다. 수학적으로 본다면 2이다. 하지만 물 한 방울과 한 방울이 만나도 한 방울이므로 감성적으론 1일 수도 있다. 또한 재치 있게 대답하자면 답은 ‘창문’이다.]
라고 말이지.”
“개소리! 시발 개소리! 그렇게나 길게 해석이 될 리가 없어요!”
독대지가 방방 뛰었다.
하지만 나영웅은 뭘 모른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씨이익. 씨이익.”
그리고 더 날뛸 줄 알았던 독대지는 갑자기 감정을 추슬렀다.
그녀는 나영웅을 한참을 노려보다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죠.”라고 했다.
나영웅은 승리가 당연하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몰래 미소를 짓는 건 독대지도 마찬가지였다.
‘이겼다고 실컷 착각하라고.’
독대지의 재판봉은 정답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멍청이들. 사실 너희들이 뭐라 대답하는지는 중요치 않아. 내 질문에 세 번 대답한다는 게 중요한 거라고.’
독대지는 쾅- 하고 재판봉을 바닥에 두드렸다.
이로써 앙피네는 2번이나 독대지의 질문에 답했다. 사실 비비의 ‘쿠에에엙’은 대답보다는 효과음에 가깝다고 판단되었는지 카운트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 돼지 놈이 열심히 해석해준 덕에 대답으로 처리됐어. 그럼 그렇지 한심한 돼지가 어딜.’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 앙피나 비비가 이 질문에 대답한다면 조건이 충족되어 재판봉의 마법이 발동될 것이다.
재판봉의 마법은 다름 아닌 ‘선고’.
재판봉을 쥔 자가 내린 판결문을 그대로 수행하게 된다.
독대지가 사형이라 하면 즉시 목이 부러져 죽을 것이고 유배라고 하면 즉시 중지 깊은 지하의 작은 동굴에 갇힐 것이다.
사기적인 성능의 인장이 박힌 재판봉. 누가 만들었는지 명확한 물건이다. 반지를 건설한, 앙피가 찾는 그 대마법사겠지.
“자. 그럼 마지막 질문을···.”
우르르르르 쿠구궁-!
독대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갑자기 엄청난 굉음이 들리며 바닥이 흔들렸다.
그리고 감옥으로 향하는 계단 입구에서 매캐한 먼지가 올라오더니 그 사이에서 카힐이 뛰어올랐다.
“푸하! 나왔다!”
“카힐 님? 나오셨네요..!”
“아. 당연하지! 아주 대사고를 쳤더라 앙피?”
카힐이 먼지를 여기저기 뒤집어쓴 채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데... 뭉치 님은 어딨어요...?”
앙피는 혼자 올라온 카힐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분명 뭉치가 그녀를 구하러 갔었는데 엇갈려서 카힐이 혼자 탈출한 건가?
“아, 그 덩치? 소환수의 의리 갖고 설교하길래 저 밑에 두고 왔는데? 감옥은 완전히 무너졌던데 깔렸으려나.”
“...아하.”
“그보다 아직도 여기서 뭐 해? 빨리 나가자, 여기도 곧 무너질 거야.”
그녀의 말대로 재판소 바닥에도 이제 눈에 띄는 균열이 잔뜩 생겼다. 지하가 전부 무너졌으니 지상의 재판소가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아.. 그게 사실...”
앙피는 독대지 쪽으로 눈치를 보냈다.
“아니. 시발 넌 또 누구야! 그만 좀 나오세요!”
자꾸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앙피의 소환수들에 독대지는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금방 나영웅과의 설전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탓에 신경이 날카로웠다.
“뭐? 나한테 한 소리야?”
“그래요. 이년아! 너도 저 앙피라는 얘 부하지? 하여튼 생긴 것부터 상스러운 년들은 이유가 있어요.”
독대지는 앙피 일행이라면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나같이 이상하게 생기고 하는 짓도 괴상하다.
근데 그렇다면 최소한 그녀는 건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씻팔년이. 갑자기 뭔 좃같은 소리냐? 저번에 얌전히 있었다고 이지랄인가?”
“ㅁ...뭐라고요? 지금 뭐라고···.”
“개!@#% !)#$#한 년이 @%@!&해버릴까.
넌 살 좀 도려내도 남은 살 많겠다 뚱보년아. 좀 맞자.”
카힐이 독대지의 어설픈 독설과는 차원이 다른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마치 살육을 즐기는 듯한 표정이 그녀가 마족임을 실감시킨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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