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도대체 한국은 얼마나 무서운 마을인 거죠?
중지의 먹거리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첫 번째. 먹는데 깔끔해야 할 것.
입에 소스가 질질 묻는다거나 입을 너무 크게 벌려 먹는 음식은 안 된다. 같이 먹는 자의 비위를 배려하는 것이다.
예의를 중시하는 중지에 어울리는 특징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공통점.
“후후후. 마지막 것도 맛있군.”
나영웅이 먹었던 적이 있다.
나영웅은 마을의 숨겨진 식당까지 찾아내 중지의 모든 음식을 먹었다. 마지막 음식까지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그는 그제야 만족한 듯 배를 두드렸다.
마을 사람 중 몇몇만 아는 이곳은 단골로만 운영되는 자그만 국수 가게였다. 테이블도 두 개밖에 없는 조촐한 곳이다.
메뉴도 ‘긴 국수’와 ‘짧은 국수’가 전부였고 물론 나영웅이 하나를 포기했을 리는 없다.
나영웅은 비비의 가방에서 골드를 꺼내고는 주인장을 불렀다. 앙피 일행이 잡혀갈 당시 갖고 있던 소지품은 전부 나영웅에게 떠넘겼다.
덕분에 나영웅의 배는 비비의 지갑으로 가득 찼다.
든든히 먹어야 그들을 구할 수 있으니 옳은 지출이라고 생각하는 나영웅이었다.
“어떻게 국수는 입에 맞으신가요? 타지인분이 오실만한 곳이 아니라서요.”
주인장이 나영웅이 해치운 국수 그릇을 수거하며 말했다.
“후후후. 걱정 고맙네. 중지의 음식은 하나같이 깔끔해서 좋군.”
나영웅은 어딜 가도 친절한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속까지 친절한 그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의 고향은 겉은 친절할지라도 그 속은 썩은 경우가 많았었으니.
그리고 나영웅 그는 지독한 이세계물 덕후일지언정 현실을 외면하는 이는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려 노력했으며 많은 이와 친해지고자 했다.
그리고 그 소망은 결국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이세계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제가 본 타지인 분 중에는 가장 친절하시네요. 대부분 저희 문화를 기피하시거든요. 물론 중법이란 게 생긴 이후로 조금 빡빡해지긴 했지만요.”
“이 몸이 살던 곳은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지.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예의가 없는 모습이 포착되면 수많은 이들이 죽일 듯이 달려들어 물어뜯는 무서운 곳이지.”
“그래도 저흰 죽이지는 않는데요... 얼마나 무서운 마을인 건가요. 분명 한국이란 곳에서 오셨댔죠? 왼섬에선 들어본 적 없는 곳인데 오른섬에 있는 마을인가요?”
주인장은 나영웅과의 이야기가 즐거운지 차 한잔을 내왔다. 그리고는 가게 앞에 적당한 벤치로 그를 안내했다.
구석진 가게라 그런지 주변이 휑해서 평화롭긴 했다. 그래도 높은 언덕 위의 재판소는 이곳에서도 보인다.
“그나저나 아까 중법이 생긴 이후라고 했지. 그렇다면 그 중법이란 건 원래 없었다는 것인가?”
나영웅은 조그만 눈을 예리하게 떴다. 이 정도 단서 캐치는 게임으로 단련된 그였다.
“네. 독대지란 분이 오셔서 만들어주셨어요. 그래도 좋은 점도 몇 개 생겼죠. 자연을 허물고 건물을 짓는 방법이나 죄수를 가둘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보다 차 맛은 좀 어떠세요?”
“후후후. 아둔하긴. 차는 입이 아닌 코로 마시는 것이다.”
나영웅은 푸른 찻잎이 들어간 차의 향을 깊게 들이마셨다. 코끝부터 한약을 들이 붓는듯한 쓴 향이 퍼진다.
그는 차에는 입을 대지 않고 향만 가득 마셨다.
“그보다 그 죄수들은 언제 나오는 건가? 내 이곳의 법은 잘 몰라서 말이지.”
“죄수는 나오지 않죠? 아, 사형수라면 금방 나오겠네요.”
“후후후. 시체로 나온다는 소린가. 그런 질 나쁜 농담도 하는군.”
그러자 주인장은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요. 사회적 사형이에요. 저 언덕 건너편으로 보내버리는 거예요. 저 언덕 건너편엔 중법을 지키지 않는 흉악범들이 모여 살거든요. 분명 지옥과도 같은 풍경일 거예요.”
“그렇군.”
나영웅은 차에 혀를 살짝 담가봤다. 그의 미간에 주름이 삽시간에 퍼진다.
그는 심각해진 표정으로 고민했다.
‘무기징역 아니면 유배라. 마스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은 불가능하겠군.’
나영웅은 결국 자신이 모두를 구할 사명을 가졌다는 것에 비장해졌다.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내 쳐들어갈 재판소를 올려다봤다.
“주인장.”
“네?”
“그렇다면 건너편이 아닌 이쪽으로 죄수들이 나오는 경우는 뭔가?”
“네? 글쎄 이쪽으로는 안 온다니까요. 사형수들은 전부 저쪽으로···.”
“그렇다면 저 죄수복을 입은 자들은 뭐지?”
나영웅이 재판소를 손으로 가리켰다.
“우어어어!”
“저기 마을이 보인다!!”
탈옥(?)에 성공한 죄수들이 재판소의 언덕을 그대로 뛰어 내려오고 있다.
그 잠깐 사이 중지인의 본능을 얼마나 버렸는지 죄수복도 제각각으로 찢어져 있다. 각자 개성대로 죄수복을 찢고 묶어 입은 게 이젠 정말 죄수 집단 같다.
그들은 그대로 중지인들이 모여있는 마을로 곧장 뛰어갔다. 나영웅과 주인장도 처음 보는 광경에 어서 마을로 갔다.
분명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던 중지 마을이 죄수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실 모여서 연설을 하는 게 전부였지만 중지에서 이 정도면 아수라장이 맞다.
죄수들은 마을 광장에서 모두가 들리도록 ‘큰 소리’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중법은 독대지가 중지인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목줄이다!”
“목줄이다! 목줄이다!”
벌써 중법 중 다섯 가지나 어기고 있다. 짧은 시간에 이 정도로 거칠어지다니. 어쩌면 중지인의 숨겨진 본능은 이쪽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한껏 불량함을 머금은 죄수들은 지나가는 중지인을 붙잡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에게도 자신이 배운 깨달음을 전파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중지인들에겐 더할 나위 없던 충격이었다.
나영웅을 따라 마을로 온 국수 가게 주인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감옥이 얼마나 힘들면 그 멀쩡한 사람들이 저렇게나 망가진 거죠?!”
하지만 나영웅이 보기에 그들은 여전히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친절하게 말을 걸며 듣고 싶지 않다는 이는 보내주고, 모여서 연설하다가도 아이의 울음소리에 연설을 멈추는.
나영웅은 그들을 매정하게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이야말로 불친절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타인의 상처를 보는 이들은 자신의 흉터는 잊은 것인가.”
나영웅은 팔짱을 끼고 허무한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그때 죄수들이 나영웅의 근처까지 왔다.
죄수들이 나영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나저나 비비랑 앙피란 자는 아직 안 나온 건가?”
“아마. 독대지를 몰아낼 생각이 아닐까.”
“후후후. 마스터가 또 마을 하나를 뒤바꿀 생각이군. (코쓱) 역시 나의 마스터.”
만족스럽게 웃는 나영웅을 주인장이 이상하게 바라봤다.
***
본인도 모르게 마을을 바꾸게 된 앙피.
홀로 카힐을 구하러 가겠다는 뭉치를 뒤로하고 비비와 함께 재판소가 있는 1층으로 올라갔다.
재판소는 이미 죄수들이 한바탕 휩쓸고 간 탓에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그 난장판 한가운데 독대지가 독기를 가득 품고 서 있었다.
그녀는 머리가 잔뜩 뻗친 채 재판봉을 손이 떨릴 정도로 강하게 쥐고 있다. 본래 그녀가 있어야 할 자리는 중지인의 발자국으로 더럽혀져 있다.
독대지는 뒤늦게 올라온 앙피와 비비의 정체를 바로 파악했다.
“그쪽이 비비죠. 내 신성한 재판소를 더럽힌 주범.”
그녀는 당장이라도 재판봉으로 비비의 머리를 내리칠 기세였다.
“ㅇ...아뇨. 전 앙피에요.”
“그쪽 말한 거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다 최근에 잡힌 타지인이군요. 이럴 줄 알았어요. 아무튼 타지인은 정상이 없어. 중지인이 아니면 통제가 힘들다고. 시발 그냥 ‘타지인 금지’ 조항을 넣었어야 했어!!”
독대지가 급발진하며 재판봉을 바닥에 쾅쾅 두드렸다. 평범한 나무로 보이는 재판봉은 보기보다 튼튼한지 멀쩡했다.
“...비비 몰래 지나가자.”
“우어.”
혼자서 방방 뛰는 독대지를 무시하고 살금살금 기어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순순히 보내줄 리가 없다.
독대지는 두 사람을 향해 재판봉을 꼿꼿이 들었다.
“재판 진행!”
그러자 재판봉에서 희미한 사슬이 뻗어 나와 두 사람을 묶었다.
“지금까지 내 재판에 불만을 품은 자가 없었을 것 같나요?! 이 재판봉의 힘을 보여드리죠!”
뻗어 나온 사슬이 이내 투명해져 사라졌다. 물리적으로 묶어두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아 사슬은 무언가를 ‘연결’하는 역할로 보인다.
독대지 그녀가 마법사는 아니지만, 저 재판봉만은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다. 이를테면 마법봉인 셈이지.
하지만 막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비비는 쿡 비웃었다.
“꾸어꾸어꾸어. 퀰퀰.”
독대지는 흔히 볼 수 없는 마법으로 무게 좀 잡아볼 생각이었나 본데 진짜 마법사이자 소환술사인 앙피와 함께 있는 비비에겐 가소로웠다.
비비는 앙피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공격 신호를 보냈다. 무슨 포켓몬에게 기술 시전을 시키듯 말이다.
소환술로 기강을 잡아주길 바란 비비의 마음이 무색하게 앙피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환술은 다신 안 써.’
그는 이제 소환술을 쓸 생각이 없다.
애초에 능력을 없애는 여정이다.
애초에 소환술을 쓸수록 피곤해지는 건 자신이다.
애초에 소환수 따위 앙피에게 중요하지 않다.
앙피는 소환술을 다신 쓰지 않을 것이다.
“자! 첫 번째 질문!”
그리고 독대지가 마법봉의 힘을 펼치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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