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비켜 뚱땡아
우르르르.
중지의 랜드마크와도 같은 중지 감옥이 붕괴하고 있다.
그리고 감옥 바로 위에 지어진 재판소에서도 독대지가 잠에서 깼다.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굴죠. 경비병으로 중지인을 넣는 게 아니었는데. 끄응.”
그녀가 육중한 몸을 일으키기 힘든지 신음을 냈다.
독대지는 펑퍼짐한 잠옷을 질질 끌며 재판장 구석에 있던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재판소에서 모든 걸 해결하며 살고 있다. 그녀가 자고 있던 방은 본래 피고인 대기 방이었지만, 독대지의 1분컷 재판에 버려진 방이다.
독대지는 경비병에게 한마디 하기 위해 감옥으로 이어진 계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때.
“나가자!!”
“가자!”
비비에게 동화된 죄수들이 감옥을 탈출해 재판소까지 올라왔다. 한 무더기로 올라온 그들은 계단 입구의 독대지를 보고는 그대로 멈춰 섰다.
“...저기 봐. 독대지 님이야.”
중법 제0항. 중법은 독대지가 관리한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녀에게 휘둘리며 살아왔기에 본능적으로 얼어붙었다.
독재자와 같은 그녀의 행보에 불만을 품을 만도 했지만, 태생이 소심하고 예의 넘치는 중지인들에겐 불가능했다.
“어라. 죄수들이 어떻게 밖으로 나왔을까요? 설마 탈옥인가요?”
독대지가 뾰족한 안경을 쓱 올리며 계단 입구를 떡하니 막아섰다. 그녀의 육중한 날숨에 죄수들은 단체로 눈치만 보며 올라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중지인에게 누군가를 밀치거나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어필하는 일은 어려웠다. 혹여나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중지인에게만 해당한다.
“아치 양. 왜 앞으로 안 가?”
“조용히 해, 할배. 저 위에 독대지가 있다고...”
아치 역시 중지인이라 독대지에게 다짜고짜 덤비긴 힘들었다. 아치는 속으로 ‘이럴 줄 알았으면 앙피에게 흉악한 짓을 하나라도 더 배워오는 건데.’라고 생각했다.
“아씨. 앙피 같은 타지인이 있었다면···. 어? 잠시만 할배 중지인 아니지 않아?”
“그렇지. 난 소지에서 왔어.”
“아니 왜 지금까지 말 안 한 거야! 가자 할배! 할배가 앞장 서줘.”
아치가 제트의 등을 떠밀었다.
제트는 코를 후비적 파며 엉덩이를 쭉 빼고는 밀리지 않게 버텼다. 본인이 귀찮게 뭐하러 나서야 하냐고 했다.
“너 그···. 앙피! 앙피도 어차피 나오려면 쟤 뚫고 가야 돼. 주인에게 잘 보여야 하는 소환수라며 너. 아니 생각해보니까 지금까지 고작 소환수를 어르신 취급해준 거야 나? 열받네?”
아치가 손끝을 날카롭게 세우고는 제트의 등을 후벼팠다. 그녀 딴에는 화풀이였지만 근육이 잔뜩 뭉친 제트에겐 그저 좋은 안마였다.
“아이고. 시원해라. 아무튼 알았다.”
제트는 시원해진 등을 쭉 폈다. 그리고는 다른 죄수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제일 앞으로 나와 독대지와 마주 섰다.
“뭘까요. 노인이라도 죄수는 죄수예요.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여기 있는 모든 분들 사형시키겠어요.”
독대지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제트를 깔봤다. 그녀는 중지인을 잘 알았기에 그들을 다루는 방법도 잘 알았다.
중법을 강조하고 양심을 건들면 금세 꼬리를 내린다.
안타깝게도 제트는 중지인도 아닐뿐더러 ‘앙피의 소환수’지만 말이다.
앙피의 소환수인 게 무슨 상관이냐고?
카힐, 비비, 나영웅, 하이드로.
지금까지 그의 소환수 중 멀쩡한 녀석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된다.
“비켜. 이 뚱땡아.”
제트가 귀를 후비적대며 말했다.
“헉.”
“어떻게 저런 심한 말을.”
같은 죄수들도 웅성거릴 정도의 악담이다. 인신공격은 상상치도 못할 그들이니까.
그리고 뚱땡이 독대지도 그런 악담은 처음 들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그런 말을 못 했으니까.
“ㅁ...뭣?! 예의라고는 없는 분이군요! 이이익! 탈옥범 새끼가!”
독대지가 얼굴이 시뻘게져서 계단 입구의 문을 쾅쾅 내리쳤다. 그녀가 화를 내자 죄수들은 더욱 불안해했다.
“ㅈ..지금이라도 사과드려요.”
“괜히 탈출했나 봐요...”
몇몇 죄수는 무너져가는 감옥으로 슬슬 내빼려 했다.
“헹. 중법에 탈옥 금지는 없잖아.”
반면 제트는 당당하게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갔다.
그는 씨익씨익 화를 내는 독대지 앞에 서서 말했다.
“그리고 내가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말여. 너 중지인이 아니지?”
“개소리 마! 난 이 중지를 총괄하는 재판장이야!”
펄쩍 뛰는 독대지를 본 제트는 더욱 확신한 듯 말했다.
그리고 정황상 독대지가 중지인이 아니라는 증거는 많았다.
‘탈옥’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쓰거나, 화를 낼 때 욕설을 쓴다거나.
중지인이라면 불가능한 행보가 너무 많다.
하지만 사실 제트는 이 중 하나도 눈치챈 게 없다.
“응. 아닌 거 알아.”
그냥 무지성 무논리다. 나이를 헛먹었다의 대명사인 제트는 제 생각이 옳다고 믿는 철없는 노인이니까.
그리고 의외로 이가 또 죄수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들도 사람이기에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던 ‘독대지를 향한 불만’이 끓어오르는 것이다.
그들은 제트에게 동조하여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ㄱ..그래! 이 혼자서 모든 걸 차지하려는 사람아!”
“당장 거기서 비켜..요! 아니면 밀치고 지나가겠다...요!”
죄수들이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온다.
그 기세에 독대지는 당황하여 시뻘겠던 얼굴이 사그라들었다.
“ㅁ..뭐야! 대체 어떻게 중지인이 이런 짓을!”
“비켜 임마!”
제트가 선두로 독대지를 밀고 지나갔다. 그 용맹한 모습에 죄수들도 하나둘 독대지를 밀치며 지나간다.
“우어어어!”
“비비의 사상을 모두에게 전파해주자!”
“비비? 그게 누구야! 멈추라고요 당신들! 아니 멈춰!”
독대지는 고장 난 듯 중지인 흉내를 제대로 내지도 못했다. 존댓말과 반말이 섞여나오는 게 그 증거다.
아니, 이젠 죄수들도 반말을 쓰기 시작했으니 상관없나.
죄수들은 썩어빠진 중법을 이젠 잊으려는 듯 재판소를 우당탕 어지럽히며 그대로 마을로 향했다.
이리저리 치인 독대지는 바닥에 널브러져 소리쳤다.
“비비···. 누군지 몰라도 만나면 가만 안 두겠어요!!”
독대지가 증오심을 불태우는 동안, 아직 감옥에 남아있는 비비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
“드디어.. 풀렸다...!”
앙피는 비비의 도움으로 수갑을 풀었다.
비비처럼 손목을 꺾어서 푼 건 아니고 비비가 뭉치에게서 열쇠를 뺏었다.
“어서 나가야 합니다! 죄수로서의 예의보다는 목숨이 중요하단 말입니다!”
감옥을 무너뜨린 장본인 뭉치가 앙피를 들쳐멨다.
그는 어깨에 앙피를 올리고는 비비도 옆구리에 끼었다.
뭉치는 두 사람을 덜렁덜렁 들고 끝방을 나왔다.
“으아아아악... 멀미 나.”
“꾸어!”
우르르.
감옥은 정말 이제 한계인지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뭉치가 두 사람을 데리고 끝방을 나온 순간 끝방은 그대로 폭삭 무너졌다.
“어지러우십니까? 조금 천천히 달릴까요?”
덜그럭, 퍽.
뭉치의 머리 위로 벽돌 하나가 떨어졌다. 지하 2층과 3층 사이의 흙을 막아주던 천장의 벽돌이다.
프스스스. 벽돌이 떨어진 구멍으로 건조한 흙이 쏟아지며 천장에 큰 균열이 생겼다.
“ㄷ...됐으니까 달려요!”
“네!”
뭉치는 힘차게 복도를 내질렀다.
쿠구구궁-!
그의 힘찬 뜀박질에 복도가 더 빠르게 무너진다.
뭉치는 아슬아슬하게 무너지는 천장을 피하며 계단을 올랐다.
“으랏차!”
구멍이 숭숭 뚫린 계단을 뭉치가 힘차게 점프해서 넘었다. 얼마나 기운찬지 그가 밟는 계단마다 밑으로 푹 꺼졌다.
한층 올라가자 감방 복도는 바닥이 다 무너져 금방 있었던 지하 3층이 보였다. 아직 지하 2층의 천장은 멀쩡한 것 보면 그 위는 무너지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 뭉치는 계속해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ㅈ..잠시만요!”
지하 1층을 그대로 지나 올라가려던 뭉치를 앙피가 멈춰 세웠다.
“무슨 일이십니까? 멀미가 나신다면 역시 천천히 갈까요?”
뭉치가 힘든지 거친 숨을 내뱉었다. 본인이 천천히 가고 싶은 눈치였다.
“ㅇ..아뇨. 그게 아니라 카힐 님이 지하 1층에 갇혀 있다고 했어요..”
“끄어어?”
카힐이라는 소리에 비비가 내려달라고 버둥거렸다. 당장이라도 카힐을 구하러 갈 생각인 모양이다.
앙피도 구할 기회가 있다면 카힐을 구하고 싶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다.
“저길 간다고요? 당장 무너질 겁니다! 카힐 님이 누구신데요!”
“제 소환수에요... 뭉치 님과 같은...”
“ㄱ... 그래도 저긴 위험합니다...!”
뭉치가 지하 1층의 복도를 불안하게 바라봤다.
그래도 사형수가 카힐 하나였던 덕에 지하 1층에도 그녀밖에 없었기에 아직 무너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복도의 바닥에 조금씩 금이 가 있는 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일이다.
“어떡하지···.”
앙피는 생각해 내야 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저 바닥을 밟으며 카힐을 구할 방법을 말이다.
앙피는 비장하게 눈을 감았다 뜨고는 뭉치의 등을 툭 두드렸다.
“가죠! 뭉치 님!”
“알겠습니다! 같은 소환수로써 최선을 다해서 구하겠습니다!”
“아뇨! 도망치자고요!”
살 사람은 살아야지.
앙피는 계단 위쪽을 비장하게 바라봤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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