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무한한 미궁과 무한한 앙피의 호기심
본인이 만든 미궁 마법에 걸린 김인간. 그녀는 자신이 이런 멍청한 짓을 했다는 걸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거짓말. 거짓말이지. 내가 이렇게 멍청한 짓을... 다 저 녀석 때문에 정신이 팔려서...!”
김인간이 지하실 문이었던 것을 붙잡은 채 얼어붙었다. 그 너머에는 똑같은 디자인에 구조만 달라진 다른 통로가 있다.
“...? 어서 가자.”
“안 돼.”
김인간이 문을 쾅 닫아버렸다.
‘...언제는 빨리 가자면서...’
앙피는 단순히 그녀가 문을 잘못 찾았거니 싶었다. 그래서 바로 옆의 다른 문을 열었다.
“안 된다고!”
그러자 그녀가 황급히 그 문도 닫아버렸다.
이 미궁은 어떤 문을 열어도 나갈 수 없다. 열어도 비슷한 다른 통로로 이어질 뿐 마법이 걸린 범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리고 김인간이 건 마법의 범위가 바로 이 통로 하나. 낡은 문과 달빛이 쏟아지는 창문이 전부인 통로.
게다가 문을 열 때마다 문 너머의 공간이 바뀐다.
“그래서 길을 외울 수도 없어. 문 닫으면 영영 이별이라고.”
한 명이 다른 공간에 들어가 문을 닫아버리면 둘은 영영 만날 수 없다. 김인간은 이 공간에 홀로 남겨지고 싶진 않았다.
“...그럼 문 손잡이만 돌리면...?”
“그 정도는 괜찮아.”
“틈새가 겨우 보일 정도로만 열면...?”
“...글쎄...?”
“그러면 여기로 나가자.”
앙피가 마당 쪽으로 난 창문을 활짝 열었다. 원래라면 그곳엔 카힐과 비비가 서 있어야 했다. 앙피가 알아서 검은 구슬을 깰 테니 배를 벅벅 긁으며 말이다.
하지만 창문 건너편엔 다른 통로가 있다. 지금 있는 곳과 크게 다르지 않은 통로.
창문 역시도 이 미궁 마법의 일부라는 소리다. 창문도 문이니까.
“어떡하지.”
김인간이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급하게 만든 마법이라 해제하는 법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같은 길을 맴돌면 무섭겠지, 싶어서 급조한 마법이라 파훼법도 모른다.
이대로면 영영 이 통로에 저 이상한 남자애랑 갇혀있어야 한다. 혼자도 싫지만 쟨 너무 이상해, 라고 생각하는 김인간이다.
“머리카락을 넣고 문을 닫으면 어떻게 되지...”
이상한 남자애를 맡은 앙피가 문 하나를 붙잡고 머리카락을 들이밀고 있다. 머리스타일을 망치고 싶지 않다면 그만두는 게 좋을 것이다.
앙피가 앞머리를 가지런히 모아 문 사이에 끼워 넣었다.
쿵-
그리고 문을 닫아버렸다. 문을 닫는 순간 문 너머의 통로가 바뀌며 앙피의 앞머리도 어딘가로 같이 사라져버렸다.
덕분에 눈까지 오던 앙피의 앞머리가 눈에 띄게 짧아졌다.
“앗...”
쥐 파먹은 앞머리를 한 앙피가 사라진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앙피가 그렇게 멍청한 실험을 하고 있을 때, 김인간 역시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마법 술식이 이랬으니까... 해제하려면.... 흐엥...”
공포를 느끼라고 만든 마법에서 정작 공포를 느끼는 건 김인간 자신이었다.
만약 자신이 이곳에 갇힌 사이 누군가 검은 구슬을 깨버린다면, 이 검은 점과 함께 태어난 그녀 역시 같이 소멸한다.
그 때문에 어서 이곳에서 탈출해야 한다.
이처럼 검은 점에서 태어난 존재는 검은 구슬을 지키기 위해 혼신을 다해야 한다.
검은 구슬이 곧 자신의 목숨이니까.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 검은 점 안에서 목숨을 잃는다면, 검은 점은 그 생명을 흡수해 더욱 강화된다.
이곳도 원래는 좁은 판잣집 하나로 시작해 김인간의 활약으로 저택까지 강화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김인간이 선택한 것이 바로 공포다. 어린 소녀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여왔다.
허세 가득한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벌벌 떠는 모습에 그녀는 어느새 희열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분명, 그랬던 그녀인데.
“흐엥... 나갈래...”
지금은 이상한 남자애 하나 때문에 이 완벽한 전적에 금이 가버렸다.
그때 문을 얼만큼 닫으면 방이 바뀌나 실험하던(마치 냉장고 불빛이 언제 꺼지나 보는 것처럼) 앙피가 다가왔다.
“저기...”
“훌쩍... 왜, 할 말 있어?”
“문을 닫을 때마다 다른 공간이 열린댔잖아.”
“그래! 그래서 우린 영원히 갇혔다고 몇 번을 말해! 이제 난 죽을 거야.. 소멸당할 거라고. 흐어엉...”
가녀린 소녀가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늘어진 소매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벅벅 닦아댔다.
“...어... 죽진 않아... 검은 점에서는 식사나 배설이 필요 없다고 했어.”
앙피는 이전에 들었던 아주 중요한 정보를 그녀에게도 들려주었다. 참도 그녀가 안심을 할 내용이다.
저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영원히 고통받는다는 뜻이라는 걸 앙피는 알고 있는 걸까.
“너나 그렇지! 나는... 나는 죽는다고..”
앙피는 그녀가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됐다. 원래도 이 저택에 몇 년이나 갇혀있었다며, 여기 갇힌 지 아직 10분밖에 되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기껏해야 그냥 같은 통로가 반복되는 것에 왜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다.
앙피는 다시 문 하나의 앞에 가 섰다.
“만약 문을.. 계속 열었다 닫았다 하면..?”
앙피가 문손잡이를 꽉 잡았다.
“...? 무슨 소리야...?”
앙피가 문손잡이를 잡고는 문을 확 열었다. 건너편엔 처음 보는 통로가 있다.
그는 문을 다시 쾅 닫았다. 그리고 다시 확 열었다.
당연히 건너편은 다른 통로로 바뀌어 있다.
하지만 앙피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했다.
문을 닫았다 열고, 닫았다 열고, 닫고, 열고, 닫고, 열고, 열닫열ㄷㅇㄷㅇ.
그러자 앙피가 문을 열 때마다 안의 통로가 계속해서 바뀌었다.
덜컥, 덜컥, 덜컥, 덜컥.
네모난 통로, 세모난 통로, 구불구불한 통로, 어두운 통로, 뒤집힌 통로.
그러다 순간. 무언가 쩌저적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미궁 마법이 과부하가 걸려 파괴되는 소리였다.
쨍그랑-
그리고는 김인간의 급조한 미궁 마법이 깨져버렸다.
앙피가 잡고 있던 문 건너편엔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앗. 지하실로 가는 길이다..”
‘뭐지 이 미친놈은..?’
“ㄱ...그래! 잘했어! 어서 가자!”
김인간은 자신의 마법이 이렇게나 약했다는 사실에 좌절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이젠 앙피를 제대로 겁을 먹여 구워삶을 예정이다. 금방 미궁은 자신도 처음 겪는 거라 당황했지만 이제부턴 전부 홈그라운드다.
“흐흐흐.. 평범한 사람이 견디기 힘들걸.”
‘.... 자꾸 혼자 중얼거리네.’
앙피와 김인간은 어두운 지하실 계단을 뚜벅뚜벅 내려갔다.
지하실은 오래된 전구가 곳곳에 켜져 있었지만, 빛이 너무나도 약했다. 그 탓에 지하실 전체에 스산한 색감이 묻어났다.
지하실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있다. 선반이 빼곡히 있는 것이 마치 마트의 창고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앙피는 계단의 선반에서 손전등 하나를 발견했다.
‘흐흐흐.. 저 손전등은 켜는 순간 엄청나게 밝아져서 괴물들이 몰려오게 되지. 어두우면 빛을 찾는 사람의 습성을 이용한 함정이다!’
앙피는 손전등을 그냥 내려놨다. 머릿속에 다락방 열쇠를 찾을 생각뿐이라 다른 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혹시 괴물은 어딜 돌아다녀..?”
‘윽! 이걸 눈치채다니. 역시 미궁 마법을 깰 때부터 심상치 않은 녀석이라 느끼긴 했지.’
“괴물들? 일단···.”
“쿠에에에엙!!”
어둠 속에서 괴성이 들려온다. 성대가 갈기갈기 찢어진 채 포효하는 듯하다.
‘흐흐흐. 시작했다. 어서 이리로 오라고!’
“꺄악!”
김인간이 일부러 소리를 질렀다.
“퀘에엙!”
덕분에 괴물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쾅쾅쾅-. 흐리멍덩한 전구의 불빛 사이로 무언가 빠르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괴물은 자신의 몸을 주체할 수 없는지 선반에 쉴새 없이 부딪히며 뛰어온다.
“음... 저거..”
앙피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다가오는 괴물을 바라봤다.
뭔가 익숙한 피부색과 걸음걸이.
“비비인가...?”
괴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좀비였다. 다만 그게 비비는 아니었다. 좀비라고 다 같은 좀비가 아니라는 말이 바로 이 뜻이다.
좀비는 비비와 달리 지성이 없이 단순히 공격본능만으로 앙피를 향해 뛰어왔다.
그리고 비비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좀비는 눈알이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으익!”
앙피는 그대로 혼자 도망갔다. 비비는 그나마 좀비중에 선녀라는 사실을 깊게 깨달은 채 말이다.
“흐흐흐. 역시 무서워하는군.”
“쿠이이에에엙!!”
“이제 저기로 도망가면 다락방 열쇠가 있는 상자가 나오지. 넌 이 정도로 죽여줄 수 없어. 더욱 겁에 질리게 한 뒤에···.”
“퀘에에에에에에에엙!!”
“...끼야아악! 날 왜 쫓아와!”
말하지 않았는가. 지성이 없는 좀비라고.
비비와 달리 이 좀비는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끼야아아아악!!”
“쿠에에엙!”
본의 아니게 자신의 괴물과 추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김인간은 발을 몇 번이나 절며 도망갔다.
뒤에서는 좀비가 바짝 그녀를 뒤쫓는다.
쾅-쾅-
좀비가 그녀를 잡을 듯 말 듯 하며 선반에 부딪힌다.
“그렇지. 극도의 긴장감을 주기 위한 추격법!”
김인간이 좀비를 열심히 훈련시킨 결과였다.
“쿠에에엙!”
“끼야악! 안심할 때쯤 들리는 괴성!”
김인간은 혼비백산 도망가면서도 자신이 이렇게나 멋진 작전을 완성했다는 것에 뿌듯해했다.
“근데 언제까지 쫓아올 거야!”
“쿠엙!”
한편 먼저 도망간 앙피.
“이 틈에 열쇠를···.”
홀로 도망갈 방법 모색 중.
- 작가의말
선호작과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Comment ' 0